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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 (2) (5/210)


5화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 (2)
2022.10.08.


나이아가 사라진 뒤, 특수 설비를 통해 유지되고 있던 게이트 역시 삽시간에 사라졌다.

프레이는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남은 이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나이아의 연락이 닿기를 기다렸다.

몇 달 뒤, 펜던트와의 통신을 위해 만들어진 단말기가 마침내 작동했다.

「오오……. 드디어 연결됐네.」

“나, 나이아! 괜찮은 거냐! 괜찮은 거 맞지?!”

「아……. 오빠, 목소리네. 오랜만이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위태로운 목소리로, 나이아는 게이트를 통과한 뒤 겪은 일들을 보고했다.

검은 대지와 붉은 하늘이 펼쳐지고, 낮밤의 구분도 없는 기괴한 세계. 예상대로 게이트 너머는 몬스터들로 가득한 지옥이었다.

지구에는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는 강대한 힘을 가진 몬스터들이 셀 수도 없이 존재했고, 심지어는 인간과 몹시 흡사하며 고등한 언어체계를 가진 몬스터도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여기……. 나는 일단 마계라고 부르고 있는데……. 원인, 찾았어.」

더할 나위 없는 길보였다. 뒤이은 말이 없었다면.

「미안……. 진짜, 미안. 이건 나도 못 이길 거 같아.」

나이아는 마계를 헤맨 끝에 게이트 사태의 원흉이라 여겨지는 ‘거대한 존재’를 발견했다. 처음, 그것은 나이아의 존재를 감지하지도 못한 듯 보였다.

나이아가 혼신을 다한 공격을 감행한 후에야 그것은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이아에게 의식을 향했다.

[ 작 은 생 명 체 외 계 의 강 자 ]

머릿속을 직접 휘젓는 것 같은 혐오스러운 목소리였다.

[ 흥 미 롭 군 ]

나이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 쌓은 경험과 직감, 그리고 행운이 겹친 결과였다.

파멸적인 공격에서 몸을 피해 숨고, 펜던트의 일부 기능을 수복해 간신히 통신을 보내고는 있지만 상황은 결코 좋지 않다.

「아마 저건 날 죽이려는 게 아니라…… 나를 흡수해서, 자기 걸로 만들려는 것 같아. 어쩌면 내 힘뿐만이 아니라, 기억이나 그런 것들까지 흡수될지도 몰라. 그냥 감이지만.」

통신을 듣고 있던 이들은 끔찍한 미래를 상상했다.

적이 나이아의 힘과 기억을 흡수한다면, 이를 통해 지구의 상황을 확실히 알게 된다면…… 만약 놈이 직접 지구를 침략하기라도 한다면, 인류가 멸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구라는 행성이 사라질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게이트는 지금 내가 여기서 닫을게.」

펜던트에는 지구로 돌아오기 위한 기능 말고도 소유자를 미지의 다른 차원으로 도약시키는, 일종의 긴급 탈출 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차원과 세계에 대한 구조는 아직 인류가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영역이었고, 해당 기능도 실제로 작동할지는 알 수 없는 실험적인 것에 불과했다.

직접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차원과 세계의 구조를 어느 정도 이해한 나이아는 자신이 실패할 때를 대비해 틈틈이 펜던트의 기능을 일부 개조했다.

이 기능을 발동하면 펜던트는 비축한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여 사용자와 함께 차원을 도약한다. 동시에 차원과 연결된 모든 연결부를 끊어 혹시 모를 추적까지 차단한다.

나이아의 계산상으로 성공 확률은 약 5%가량이었다.

다른 각성자였다면 꿈도 못 꿨을 일이었다. 펜던트는 생산 계통 능력의 정점이라 일컬어지는 데우스 마키나가 무제한적인 예산과 인적 자원을 동원하여 만들어낸 역작이었으니까.

올마이티,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능력을 다룰 수 있는 나이아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나이아가 게이트를 통과하겠다고 자원한 것은 처음부터 이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게이트는 영영 닫힐 거고, 내가 저 징그러운 괴물한테 잡아먹히는 일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나이아! 이 멍청한 년아! 그러지 마! 왜 항상 너만 희생하는 거야! 언제나 그렇게……!”

통신기를 붙잡고 오열하는 프레이에게, 나이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잖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 걸. 내 마음이 그러라고 하는데, 거기서 눈 돌리고 외면하는 건 싫어.」

통신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로 지구 전역에서 게이트 재해가 종적을 감췄다. 더 이상 새로운 각성자가 탄생하는 일도 없었다.

지구는 평화를 되찾았다.

* * *

믿기 힘든 얘기였다. 애초에 다른 차원이라는 개념이 잘 이해가 안 됐다. 프레이라고 차원이라는 개념과 원리를 명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원래는 그쪽 차원 사람이었고, 게이트? 재해?의 원인을 없애려고 마계라는 차원으로 혼자 들어갔고, 거기서 그 원인이 되는 존재…… 마물을 쓰러뜨리지 못해서 자칫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도박수를 뒀고, 운 좋게 잘 풀려서 살아남아 저희 차원에 불시착했다……. 이게 맞습니까?”

「이해력이 좋구나. 나이아하고는 딴판이네.」

“어머닌 저 같은 건 비교도 안 되는 총명하신 분이셨는데요?”

「네가 그 녀석의 본성을 몰라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거다. 원래 사람이 기억상실에 걸리고 그러면 성격도 좀 바뀌고 그러거든.」

나이아가 최강의 각성자였다는 사실도 자이안은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나이아는 쇠약증 때문에 정원 산책조차도 힘들어했다.

「펜던트의 부작용일 거다. 아니, 정확히는…… 펜던트의 사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생긴 사고라고 봐야지.」

프레이가 차근차근 설명했다.

「차원이 달라지면 환경 역시 극적으로 달라진다. 공기 비율이 조금만 달라져도 픽 쓰러지는 게 인간이라고.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이상, 보호 기능에 힘을 쏟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펜던트가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 소유자의 힘을 흡수한다는 사실이었다.

「각성자의 힘의 근원은 MP다. 그리고 각성자는 마물을 토벌해 MP를 흡수하지.」

자이안은 전모를 파악했다. 자이안의 세계에서 마물이란 존재는 토벌 대상이 아니라 항거할 수 없는 재앙이다.

극히 일부의 지역을 제외하면 마물을 마주하는 것부터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전 ‘각성자’가 아니에요. 마물을 본 적은 있지만 직접 죽인 적은 없습니다.”

프레이의 설명에 자이안은 복잡한 표정이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제게 이걸 유품으로 남기셨습니다. 비록 기억을 잃었지만, 이건 절대 버려서는 안 되는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저 역시 버리지 말고 항상 가지고 있으라고.”

「기억도 못 하면서 감 하난 좋은 녀석이라니까.」

펜던트를 가진 탓에 자이안은 쇠약증을 앓았고 가문에서 쫓겨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그 펜던트 덕분에 목숨을 구하고 어머니의 가족과 만났으며 과거를 알게 되었다.

‘만약 어머니께서 펜던트를 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자이안의 처지가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고, 자이안은 결국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왕가의 목적은 알레프 가를 수중에 두는 것이고, 자이안의 쇠약증은 이를 위한 명분일 뿐이다.

설령 자이안이 쇠약증을 앓지 않았더라도, 왕가는 나이아의 신분 따위를 트집 잡아 미오네와 백작의 재혼을 강행했으리라.

그렇게 납득하며 받아들였지만, 자이안 자신의 쇠약증은 고쳐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아쉬웠다.

그렇다고 펜던트를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나이아가 남긴 좀 과한 애정이겠거니 하고 평생 안고 가는 수밖에.

「쇠약증은 고칠 수 있다. 아니, 고친다는 표현도 좀 이상하구만. 애초에 병이 아니니까.」

그렇게 기껏 마음을 다잡는데 프레이의 말이 가차 없이 뒤통수를 때렸다.

“……예에?”

「네가 잠든 사이에 펜던트의 기능을 좀 건드려 놨다. 난 아티팩트 정비는 잘 몰라서 그냥 겉만 살짝 만진 수준이긴 한데…… 적어도 환경 보호 기능 때문에 MP가 과도하게 빨리는 일은 이제 없을 거다.」

그것 말고도 프레이는 펜던트의 여러 기능을 자잘하게 점검했다. 통신 기능과 소환 기능이 가장 중요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둘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능이 모두 멀쩡했다.

덕분에, 프레이와 자이안은 서로가 가진 펜던트와 단말기를 중심으로 주위 모습을 인식할 수 있던 것이었다.

통신이 기본 기능이라면 소환은 핵심 기능이었다. 그러나 통신과 달리 소환은 아무 상황에서나 제한 없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아까 전 프레이가 극적으로 소환될 수 있었던 것은, 펜던트에 자이안의 피가 대량으로 묻으면서 안전을 위한 긴급 소환 기능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경황이 없어서 대충 지나치고 말았지만, 돌이켜보면 천운도 이런 천운이 없었다.

뭐 하나만 살짝 삐끗했어도 프레이가 소환되지도 못하고 자이안은 죽고 말았으리라. 프레이는 새삼 간담이 서늘해졌다.

「되도록 마물을 많이 잡아라. 근처에 나뒹구는 고블린 정도여도 괜찮다. 그러면서 네가 각성자로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파악해보자고. 스스로의 힘을 파악하는 건 각성자로서 기본이다.」

“여기는 그쪽 차원과는 달리 마물들이 사방에서 활개 치고 다니지는 않아요.”

「여기도 똑같아 이놈아. 다 그 녀석 덕분이지. 아직도 살아남아서 오지에 숨어든 마물들이 좀 남아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건 다른 놈들 보고 알아서 하라 그래.」

마물을 많이 잡으라는 프레이의 말은, 결국 강해지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자이안은 왜 그래야 하나 싶었다.

「왜? 강해지는 건 싫으냐?」

자이안의 표정을 본 프레이가 물었다.

“싫다기보다는…… 그렇게 강해져봤자 뭘 어쩌나 싶습니다.”

「그럼 넌 정확히 뭘 하고 싶은데?」

“……글쎄요.”

그 질문에 자이안이 느낀 것은 막막함이었다. 뭘 하고 싶은 걸까? 억울하게 죽은 시종의 시신을 훼손하면서까지 살아남은 자신은, 뭘 해야 하는 걸까?

「다시 가문에 돌아가진 못할 거 아니냐? 아니면 뭐, 그 미오네인지 하는 사람이랑 사실 좀 친하냐? 그러고 보니까 무슨 우여곡절이 있어서 암살을 당할 뻔한 건지도 못 들었네. 새엄마하고 대체 무슨 원수를 진 거냐?」

“그건 설명하려면 길어요.”

「나 얘기 듣는 거 좋아해.」

짐짓 엄중한 표정으로 얘기를 경청할 자세를 취하는 모습은 퍽 웃겼다. 자이안은 힘없이 웃으며, 자신의 일생을 얘기하기 쉽게 머릿속에 정리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짜 뭘 해야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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