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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습격 (2/210)


2화 습격
2022.10.05.


자이안은 거칠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말을 심하게 했나……. 아버님께서 너무 상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가문을 떠나 달라는 백작의 선고에, 홧김에 비꼬는 말을 꺼낸 게 일주일 전.

자이안의 ‘요양’을 위한 준비는 그사이에 신속하게 끝났다. 미오네 부인도 시원스레 동의했다.

자이안 하나를 배제하기 위해 가문에 피바람을 일으키는 건 그녀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을 터. 평화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면 그리하고 가문의 힘을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리투안 공국, 200년 전에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은 나라. 국토 면적이 변경백령보다 조금 큰 수준이었지. 왕국보다는 제국의 영향력이 훨씬 강하니 안전하기는 하겠네.’

요양지로는 이웃 나라에 지어진 백작가의 별장이 선택됐다.

일주일에 걸쳐 자이안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침착하게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쇠약증이 악화되어 요절할 생각도 없었고, 언젠가 쇠약증을 극복하고 건강해지면 가문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쯤 되면 백작위를 계승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병을 극복하고 그동안 노력했다는 사실 정도는 백작과 미오네, 동생인 바란드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그들과 평범한 가족처럼 지내고도 싶었다.

-히히히힝!

별안간 마차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사색에 잠겨 있던 자이안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뒤이어 비명 소리, 그리고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이안은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적습! 적습!”

“도적이다! 도적이 나타났다!”

“도련님을 지켜라! 마차를 보호해!”

“당황하지 마라! 알레프 가의 힘을 보…… 으억!”

사기를 고양하기 위해 소리치던 병사의 관자놀이에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단말마와 함께 병사가 낙마하고, 공포에 질린 말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자이안은 신음을 터뜨렸다.

숲과 언덕으로 둘러싸인 도로. 도적들이 매복하기엔 최적의 장소이기는 했다. 문제는 이 길이, 왕가에서 직접 관리하며 안전성이 검증된 길이라는 점이었다.

“전열을 가다듬어라! 적은 별거 아닌 도적들…… 끄아악!”

병사들을 지휘하던 기사 한 명이 창에 찔려 비명을 질렀다. 자이안도 똑같이 비명을 터뜨릴 뻔했다.

기사를 창으로 찌른 자는 도적이 아니었다. 마차를 호위하던 병사들 중 한 명이 공포에 질린 척하면서 기사를 찌른 것이다.

‘설마……!’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자이안은 잠시 망설인 끝에 마차를 박차고 뛰어나와 근방에 널브러진 검을 주워들었다.

물증은 없지만, 상황이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다. 미오네 부인이 자이안을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 암살자를 보낸 것이다.

미오네의 입김이 닿은 자들을 배제하기 위해 백작이 직접 선발한, 그래서 일반적인 마차 호위 병력의 2/3 정도밖에 되지 않는 병사 중에서도 이 일에 가담한 이들이 섞여 있을 것이다.

“도련님! 나오시면 안 됩니다!”

“도적이 아냐! 암살자다!”

“갑자기 무슨 말씀…… 크억!”

마차에서 나온 자이안을 만류하던 기사가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조용히 다가온 병사 하나가 칼을 휘둘러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병사는 지체 없는 동작으로 칼을 재차 휘둘러, 두꺼운 갑주 틈새로 기사의 목을 정확히 베었다. 일개 병사의 솜씨가 아니었다.

게다가 모든 병사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자이안이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암살자!’

장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암살자가 자이안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직후, 자이안이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심장을 노리고 짓쳐들어온 칼날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막힐 줄은 예상치 못한 듯 암살자의 움직임이 짧게 굳었다.

그 실낱같은 틈을 노리고 자이안이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둘렀다. 목을 꿰뚫린 암살자가 피거품을 내며 쓰러졌다.

완전히 숨이 끊어지기 직전, 암살자가 작은 바늘을 던졌다. 짧은 공방 속에서 급격하게 체력을 소모한 자이안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던져진 바늘이 팔뚝에 꽂혔다.

“윽……!”

신음을 삼킨 자이안이 급히 바늘을 뽑아 던진 순간 강한 현기증이 그를 덮쳤다. 독이 발린 바늘이었다.

치사성 독은 아닌 듯했지만, 시야가 빙글빙글 돌고 사지의 힘이 빠져나가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전신이 땀으로 흥건해진 채, 자이안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칼을 꽂으며 힘겹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차를 습격한 자들은 산적처럼 추레한 복장을 하고 있었으나, 기사와 병사를 참살하는 그 솜씨는 섬뜩할 정도로 숙달된 것이었다.

남은 병력이 분전했으나 이미 전세는 어쩔 도리가 없이 기울어진 상태였다.

“다들…… 도망…….”

구토감과 탈력감, 현기증 탓에 말을 꺼내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무력감에 자이안은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동시에, 검고 추악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는 거야.’

갈 곳 없는 원망이었다.

‘난…… 그저, 노력했을 뿐인데.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포기하지 않았을 뿐인데. 희망을 잃지 않았을 뿐인데.’

저벅저벅, 사방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흐려진 시야에 암살자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호위병들은 전멸한 뒤였다. 시종 중에서도 살아남은 이들은 없었다.

자이안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다. 아무 죄도 없는데, 불합리한 이유로 죽고 말았다.

“포획용 독에 당했군. 박쥐는…… 죽었나.”

“이 자리에서 죽일까?”

“도적들에게 습격당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 목을 베거나 심장을 찌르는 건 부자연스럽지. 도적이라면 귀족가의 도련님을 죽이기보다는 붙잡아서 외국에 팔아넘기려 할 거다.”

“그렇다면…… 반항하는 도련님을 제압하다가 벌어진 사고로 꾸며야겠군.”

“어차피 독에 당한 이상 도망치지는 못할 거다. 배를 찢어 놓고 죽을 때까지 지켜보면 되겠지.”

의식이 몽롱해지기 시작한 자이안의 귀에 암살자들의 대화 내용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 속에 매몰된 채 자이안은 그저 생각했다.

‘어머니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었나? 그 모든 게 아무 쓸모 없는 훈계에 불과했던 게…….’

무언가가 자이안의 몸을 밀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잠시 뒤, 차가우면서도 불덩이 같은, 단단한 무언가가 그의 배에 꽂혔다. 흐릿하던 시야가 다소 밝아졌다.

자이안은 배를 내려다보았다. 칼이 꽂힌 채 참혹하게 벌어진 뱃가죽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하…….”

웃음인지 흐느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막기 위해 가져다 댄 손이 삽시간에 피로 흥건하게 젖었다.

‘어머니…….’

저도 모르는 새, 자이안은 나이아의 유품인 펜던트를 피에 젖은 손으로 힘껏 쥐고 있었다.

‘……죄송해요.’

사죄와 함께, 자이안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나이아? 나, 나이아냐? 정말, 정말 너야?!」

그의 머릿속에 생전 처음 듣는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 * *

“생각보다 끈질긴데?”

“쇠약증을 앓고 있다더니 어지간한 놈들보다 명줄이 길군.”

암살자들이 배에 깊은 상흔을 입은 채 쓰러진 자이안이 죽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머릿속으로 정체불명의 목소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어, 어……? 나, 나이아의 목소리가 아니잖아. 너, 너, 넌 누구냐?」

‘나이아……. 어머니를 알고 계세요?’

자연스럽게 반문하면서도 자이안은 문득 지금 상황이 우스웠다. 죽을 때가 되어 갑자기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라니, 환청일 게 뻔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죽음을 코앞에 두고 정신이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나이아의…… 아들이라고? 이런 젠장, 이게 다 무슨 미친 소리야. 잠깐 기다려봐라. 음성통신 기능이 살아났으니, 잘만 하면 화상통신 역시 뚫릴지도……. 그놈들이 가르쳐준 대로 하면…… 됐다!」

남자가 환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자이안의 뇌리에 별안간 이상한 광경이 그려졌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추레한 행색의 남자가 그와 어울리지 않는 넓고 호화로운 방 안을 서성이는 모습이었다.

「미친! 너 뭐야! 다 죽어가잖아!」

머릿속에 그려진 광경의 남자가 기겁하며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이건…… 뭡니까? 당신의 모습인가요? 이게 왜 제 머릿속에 보이는 거죠?’

「넌 다 죽어 가는데 왜 이렇게 침착하냐?! 이런, 무슨 방법이 있을 텐데……! 아, 그래, 아바타 소환! 야, 꼬맹아, 후우, 치, 침착하고 내 말 그대로 따라 해. 죽기 싫으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진정하세요.’

「지금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 진정하게 생겼냐?! 젠장, 그래, 펜던트 있지? 펜던트. 네가 나랑 이렇게 통신이 연결된 것도 펜던트 덕분 아니냐. 그 펜던트의 꼭짓점 8개 중에서 여섯 번째 꼭짓점을 눌러라. 정점을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여섯 번째다!」

‘갑자기 무슨 말씀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자이안은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펜던트를 쥐었다. 암살자들은 무의미해 보이는 그 행동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좋아, 제대로 눌렀군! 이제 내가 하는 말을 따라해! ‘아포칼립스’다!」

“아포…… 립…….”

「젠장,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펜던트가 인식을 못 하고 있어! 꼬맹아, 정신 꽉 잡고 똑바로 들어! 아포칼립스, 프레이 알코스! 올마이티 나이아 알코스의 하나뿐인 가족이며, 모든 마물의 종말! 그게 바로 나다! 말해봐, 내가 누구라고?!」

“……아포칼립스.”

꺼져가는 목소리를 쥐어짜낸 자이안이 마침내 그 이름을 읊었다.

그 순간, 빛이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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