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이한록 쓰러졌다는데?
금요일 아침. 한록은 출근을 위해 눈을 떴다.
늘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뜨던 한록. 그러나 오늘 아침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졌고, 어제 야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아주 상쾌했다.
‘오늘 컨디션이 좋네.’
그렇게 핸드폰을 확인한 한록은 이 알 수 없는 상쾌함의 이유를 알아차렸다. 오늘 유달리 기분이 좋은 이유. 어제 야근을 했어도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 이유. 그 이유는 바로.
[오전 10시 23분]
[부재중 전화: 21통]
[주훈: 이팀장 어디야 나 결재 받아야해~~~]
[주훈: 이팀장 설마 지각?ㅋㅋㅋ]
[주훈: 갑자기 무슨 일이래? ㅎㅎㅎㅎㅎ]
[주훈: 이팀장이 지각을 다하고 ㅋㅋㅋㅋ ]
[주훈: 이팀장]
[주훈: 이팀장???]
[주훈: 이팀장 무슨 일 있어?]
[주훈: 이팀장 어디 아파?]
늦잠을 잤기 때문이었다.
[유선: 팀장님 어디세요?]
[선우: 팀장님 사무실에 안 계시네요]
[정엽: 이한록 팀장?]
잔뜩 쌓인 사람들의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 한록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이 10시 반이니까...샤워하고 도착하면 11시 반. 아냐. 대충 씻고 나가자. 그러면 몇 시지? 아, 잠깐. 지금 차 막힐 텐데.’
한록은 늦잠을 잔 사람들이 늘 그렇듯 최단 시간에 회사에 도착할 루트를 짜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하고 나간다면 11시 쯤에는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짜고짜 양말부터 신기 시작하던 한록은 누군가의 메시지에 모든 계획을 포기해 버렸다.
[윤일: 1이 사라졌는데 대답이 없군요]
[윤일: 열시 반에 갑자기 카톡을 확인한다라...]
[윤일: 팀장님 지금 일어나신 것 같은데요?]
눈치 빠른 최과장이 진실을 파악한 것이었다.
[주훈: 오잉]
[민성: 이한록이 그럴 놈이 아닌데]
[유선: 맞아요 한 번도 늦으신 적 없으시잖아요!]
[윤일: 다들 잊으셨네. 저번에 승진하셨을 때 설레서 늦잠 잤다고 하셨잖아요 ㅋㅋ]
[주훈: 오잉!]
[선우: 아...맞아요 잊고 있었네]
모두가 기억에서 지워버린 그때의 일을 꺼낸 최과장.
[윤일: 방금 일어나서 카톡 보고 계신다에 한 표 던집니다. 이것도 읽고 계시면서 답이 없으시네요 ㅎㅎ]
심지어 최과장은 한록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마저 알고 있었다.
‘뭐라고 하지? 솔직히 말해야하나?’
[윤일: 일어나셨는지 전화 한 번 해볼게요~]
그때 고민하는 한록에게 걸려온 전화 한통. 최과장이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건 것이었다. ‘...그냥 모르는 척 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계속 잠수를 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망설이던 한록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 접니다.>
“네, 최과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팀장님이 계속 안 보이셔서요. 혹시 아프신 거 아닌가 걱정이 돼서 전화 드렸죠. 그런데 목소리 들어보니까...방금 일어나신 거 맞죠?>
웃음기 섞인 최과장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한록은 자신이 간신히 지각을 면했던 날을 떠올렸다.
‘이한록이 지각했다고?’
‘이한록이? 지각을?’
‘늦잠을 잤다고?’
‘이한록이 승진한다고 설레서 늦잠을 잤단다!!!’
‘이거 두 번 승진하면 회사 안 나오겠는데?’
보기 드문 한록의 실수에 신이 났던 마케팅 부서 사람들. 그리고 하루 종일 쏟아지던 놀림들...한록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오늘 자신이 겪을 일을 예감했다. 그리고...
<빨리 오세요, 팀장님. 아, 혹시 좀 더 주무시려고->
“저 오늘 아파서 출근 못합니다.”
거짓말을 했다.
**
<아프시다고요?>
“네. 크흡, 흡.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안 나오네요.”
<거짓말 하시는 거 같은데?>
“크흡. 목이 아파서 메시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급한 일은 전화주세요.”
그렇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한 후 전화를 끊어버린 한록.
[주훈: 이팀장 아프다며! 급한 일 없으니까 쉬어!]
다행히 거짓말은 잘 통한 것 같았다. 팀원들의 걱정하는 메시지를 보며 한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윤일: 분명 그건 잠에서 덜 깬 목소리였는데??]
물론 아직 의심하는 시선이 있기도 했지만, 어쨌든 가장 중요한 고비는 넘긴 상황. 한록은 침대에 누워 갑작스럽게 주어진 휴식을 만끽했다. 그리고...
‘넷플릭스나 볼까?’
본격적으로 휴일을 보낼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
“이한록 팀장님은요?”
“오늘 안 나왔어.”
“헉. 왜요?”
“아프대.”
“야. 이한록 아프다던데?”
“이한록이?”
“현차장. 그쪽 팀장 아프다며?”
“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돌았어?”
그리고 한 시간 쯤 지나자 ‘이한록이 오늘 아파서 못 나왔다’라는 소문이 회사에 전부 퍼져버렸다.
“해외팀 빡세긴 하지.”
“얼마 전에 이한록 코피 흘리는 거 본 것 같은데.”
“그 사람 저번에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지지 않았어?”
“아니야. 그냥 발 헛디딘 거였어.”
“아니, 쓰러졌어. 분명해.”
그리고 그 소문은...
“이한록 과로로 코피 흘리고 쓰러졌다더라!”
눈덩이처럼 불어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퍼진 소문.
“이팀장...진짜 많이 아픈가봐!”
걱정하는 현차장.
“하...이상해. 그럴 리가 없는데.”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최과장.
“오늘은 라면 말고 짜파게티를 먹을까.”
그리고 거실 바닥에 누워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한록.
그렇게 금요일의 하루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
이한록이 과도한 업무로 쓰러졌다.
원래도 좀 아픈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를 못 나왔다!
...라는 과장된 소문을 전달받은 현차장. 현차장은 그때부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차장님. 커피 마시러 가요.”
“이팀장 밥은 먹었을까...?”
(한록은 짜파게티를 먹었다.)
“차장님. 왜 자꾸 핸드폰을 보시는 거예요?”
“이팀장이 연락이 안 돼. 왜지? 너무 아파서 또 쓰러졌나?”
(한록은 짜파게티를 먹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현차장. 윤감독님이 떡 사오셨다.”
“이팀장은 지금 아파서 누워있을 텐데...”
(한록은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차장님. 라운지에서 당구 한 판만 치고 오죠.”
“이팀장은 지금 혼자 힘들어 하고 있을 텐데!”
(한록은 본가의 강아지 쪼쪼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현차장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한록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보다못한 정부장이 현차장에게 말했다.
“뭐 그렇게 걱정을 해? 걔 서른 셋이다. 어린 애 아니야. 하루 아프다고 안 죽어.”
“그치만 이팀장 혼자 살잖아요! 아픈데 챙겨줄 사람 없으면 얼마나 서러운지 아세요? 누가 돌봐줘야 하는데!”
“알아. 나도 젊을 때 자취했어.”
“부장님이 아실 리가 없지. 부장님은 감정이 없는 분이시니까요. 매정한 사람.”
“왜 가만히 있는 내가 욕을 먹는 거지?”
누가 뭐라 하든, 혼자 사는 한록이 아프단 사실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 현차장. 하대리가 이에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렇게 걱정되시면 저녁에 한 번 찾아가 보시는 게 어때요?”
“아픈데 찾아가도 되나?”
“먼저 물어보고 찾아가면 되죠.”
“그래! 그럼 되겠다.”
하대리의 말에 현차장이 얼른 한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한록의 답이 올 때까지 안절부절 못하며 답장을 기다렸고...(한록은 운동을 하고 있었다.)
[네. 그럼 감사하죠.]
드디어 한록의 허락이 떨어졌다.
**
한편, 운동을 끝내고 핸드폰을 확인한 한록. 그 사이에 핸드폰에는 동료들의 걱정 메시지가 또 잔뜩 쌓여있었다.
[정엽: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경준: 일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군. 혹시 인력충원이 필요한가?]
[영도: 형 어디가 아픈 거야???]
[윤일: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러워요...ㅡㅡ그래도 푹 쉬세요.]
“왜 이렇게까지 걱정하지...?”
[성우: 한록아]
[성우: 너 과로 때문에 쓰러졌다는데 진짜야?]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임감독의 문자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했다.
[한록: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성우: 방송국 사람들한테 들었어.]
[한록: 방송국도 안다고?]
[성우: 응 만나는 사람마다 네 얘기 하던데]
[성우: 그보다 괜찮은 거야?]
[한록: 응 괜찮아]
[성우: 진짜? 정말이야? 심장질환이라던데?]
[한록: 내가?]
[성우: 응 네가]
[한록: 그냥 피곤해서 늦잠 잔거야. 비밀이다.]
한록이 모르는 새에 엄청나게 과장된 소문들. 그제야 한록은 동료들의 걱정 어린 문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한록이 엄청나게 아프다’라는 얘기가 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 현차장의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주훈: 이팀장! 저녁에 과일이라도 사서 들릴까?]
[주훈: 이팀장 혼자 사니까 밥은 먹었나 걱정이 돼서]
[주훈: 아 혼자 쉬고 싶으려나?]
[주훈: 이팀장 왜 답이 없어]
[주훈: 이팀장 혹시 또 쓰러진 거야???]
정확히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지만.
쌓이고 쌓인 오해. 회사에 돌고 있는 소문. 그리고 평소 현차장의 호들갑 정도...그 모든 걸 계산한 한록은 결단을 내렸다. ‘얼굴 보여드리기 전까진 계속 이러시겠군.’ 그리고 현차장에게 답장을 보냈다.
[네. 그럼 감사하죠.]
[그래! 과일 사갈게! 뭐 필요해? 주말에 부모님 오시나? 아님 여자친구 온대?]
[혼자 있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죽 사갈게!!!]
[안 그러셔도 괜찮습니다.]
[데워 먹을 수 있는 걸로 사갈게! 조금만 기다려!]
[네...]
그리고 자신의 예감이 정확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퇴근 10분 전. 현차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현차장의 곁에 있던 하대리가 물었다.
“차장님. 오늘 어디 가세요?”
“이팀장네.”
“어? 팀장님이 진짜 와도 된다고 하셨어요?
“응.”
“그럼 저도 갈래요!”
그러자 옆 자리에서 튀어나온 유선.
“저도요. 진짜 아픈지 확인 좀 해봐야겠어요.”
그리고 최과장.
“이렇게 다 같이 가도 돼요?”
“안 그래도 아까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하더라. 나 혼자 오는 건 미안해 하는 거 같더라고.”
“음...그럼 저도 갈게요.”
“그래, 다같이 가자.”
하대리까지.
어느새 결성된 병문안조. 그들을 지켜보던 정부장이 짐을 챙기는 병문안조에게 말을 걸었다.
“얘들아. 잠시만.”
“부장님도 같이 가시는 거죠?”
“아니, 그게 아니고.”
“갑시다. 다들 가방 챙겨!”
“야. 나 말하고 있잖아.”
“부장님! 주차장에서 기다릴게요!”
그러나 병문안조는 빠르게 사무실을 빠져나가 버렸고...
“아픈 애는 혼자 냅두는 게 낫지 않겠냐?”
정부장의 말은 텅 빈 사무실에 쓸쓸하게 메아리칠 뿐이었다.
**
그날 저녁 7시. 한록의 집.
“이팀장!”
“...차장님. 유선씨...부장님?”
한록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팀장. 괜찮아? 다들 걱정 된다고 해서 다 같이 왔어.”
“어...네. 괜찮습니다.”
현차장의 말에 한록은 말을 더듬었다. 기껏해야 유선이 함께 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 이렇게 다같이 자신을 찾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너무 많이 왔나? 돌아갈까?”
“아뇨. 그게 아니라...”
하지만 한록이 할 말을 잃은 건 귀찮음이나 짜증 때문이 아니라...
“팀장님. 괜찮으세요?”
“많이 아프냐?”
자신을 걱정하는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힘든 업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동료들. 그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곳에 찾아왔다. 한록이 많이 아프지는 않은지, 몸조리는 잘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어서였다.
문득 느껴지는 동료들을 향한 고마움과 이들을 걱정시켰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가슴을 따듯하게 채워오는 그 감정들에 한록은 다짐했다.
자신 또한 언젠가 이들에게 호의를 돌려주기로.
‘다음부턴 거짓말은 하지 말자.’
그리고 절대 이들을 걱정시키지 않기로.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한록이 젖은 목소리로 고마움을 전했을때. 그리고 따뜻한 감동에 젖어있을때...최과장이 날카로운 질문을 하나 던졌다.
“팀장님. 하나도 안 아파보이시는데요? 늦잠 잤는데 말하면 놀림받을까봐 거짓말 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다시는 이 사람들을 걱정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한록은...
“아, 머리가...”
“이팀장 쓰러졌어!”
“구급차 불러! 구급차!”
명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