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56화 (218/263)

[외전] 현차장 마케팅 천재 만들기 프로젝트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의 대성공.

헐리웃을 지배한 CK.

하정엽의 그룹 승계.

모든 것의 마무리! 멋진 마지막! 아름다운 이별!

...이란 건 없다.

“하아...오늘 왜 월요일이지? 왜 시계는 멈추지 않는 거지? 왜 지구는 돌아가는 거냐고.”

회사원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출근을 해야 하니까.

“이팀자아앙...”

“차장님.”

“잔소리 금지! 저는 안 힘듭니다 금지! 저는 이 일이 좋습니다도 금지!”

“잔소리 아닙니다. 저도 오늘은 유독 힘들다고 말할 거였습니다. 시차 적응이 안 되네요.”

“이팀장도 회사원이긴 하구나...”

“당연하죠.”

그렇게, 월요병에 걸려서 회사에 출근한 현차장과 한록.

“이팀장...점심시간 세 시간으로 해줘...”

“안 됩니다.”

그러나 현차장의 무기력은 오래 가지 않았다.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해외팀 월요일 정기회의가 시작된 것이었다.

최근 <오징어 서바이벌>과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을 성공시킨 해외팀. 그 뒤로 몇 개의 빅히트작이 이어졌고, 이제 4개월 뒤에는 <삼일의 삶>의 감독인 윤감독의 신작이 잡혀있었다.

몇 달 뒤면 신작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 지금 이 타이밍에 대규모 영화를 잡아서 공을 들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놀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은 그 공백을 메울만한 작품을 정해야 했다.

수고가 많이 들지 않는. 하지만 어느 정도 성과는 있어야 하는 이번 작품. 그 작품의 후보작으로...

“세 번째. 애니메이션 <참새의 꿈>입니다.”

애니메이션이 등장했다.

“이한록. 내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거 맞냐?”

“...애니메이션...이요?”

한록이 가져온 후보작에 깜짝 놀란 정부장과 하과장. 그러나 최과장의 반응은 달랐다.

“어, 이거. 김소라 작가 원작에 우정선 감독이네요.”

“우정선? 그 스톱모션 감독?”

“네.”

“김소라도 유명한 사람이야?”

“데니스상 받은 작가예요. 동화계의 노벨상.”

12세 이하 아동을 타겟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참새의 꿈>. 그 제작진이 동화계에선 세계적인 거물들이었던 것이다. 한록이 최과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용도 재밌고, 작품성이 뛰어납니다. 연출도 아름답고요. 특히 해외에서 인정받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애니메이션이잖아. 매출에 한계가 있을 텐데.”

“네, 당연합니다. 대신 그만큼 비용과 노력이 절감되죠. 지금은 윤감독님 신작 전에 쉬어가는 시기니 실험을 해보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참새의 꿈>이 성공하면 디즈니나 픽사처럼 애니메이션 쪽으로 저변을 넓힐 수도 있고요.”

“흠. 새로운 시도를 좀 해보자 이거지?”

“네. 다만 아직 이걸로 확정하진 않았습니다. 부장님 말대로 애니메이션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리고?”

“솔직히 어떻게 마케팅 해야 할 지 확신이 안 섭니다.”

한록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겟 연령 12세 이하. 참새와 독수리의 귀여운 우정 얘기, <참새의 꿈>. 그건 여태까지 해외팀이 다뤄왔던 영화들과 너무 다른 결의 영화였다.

“그러게. 나도 감이 안 잡힌다.”

“애니메이션이라...광고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키즈 크리에이터들한테 연락 돌리는 게 나을까요?”

그렇게 모두가 너무나 새로운 영화에 당황하고.

“팀장님. 이거 각이 안 나오는데요.”

“그렇죠. 저도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참새의 꿈>을 포기하려 할 때.

“이팀장.”

“네, 차장님.”

현차장이 비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했다.

“나...느낌이 온다!”

“...무슨 느낌 말씀이십니까?”

20년차 직장인, 현차장.

“이건 대박이 날 거야!”

그가 회사생활 중 가장 확신에 차서 외친 말이었다.

**

“이건 대박날 거야. 틀림없어!”

모두가 애매함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 단호하게 외친 현차장. 현차장이 PPT가 띄워진 스크린 앞으로 나가더니 말했다.

“캐릭터 디자인! 중간에 삽입된 음악! 다 완벽해!”

“어...완벽한가요?”

“이거 봐. 이 날개의 비율! 아기들 신체비율이랑 거의 똑같아. 얼마나 귀여워. 분명 애들이 좋아할 거야!”

“...그런가요?”

현차장의 말에 애매하게 대답하는 유선. 유선은 현차장의 말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건 유선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해외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 딱 애들 비율이긴 하다.”

“우리 막내가 저런 노래 좋아하는데.”

해외팀의 엄마, 아빠들 빼고는.

해외팀 부모들의 든든한 지지에 힘을 얻은 현차장. 그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이팀장. 차기작 무조건 이걸로 가자!”

그 말에 한록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번 가볼까요.”

평소의 한록과는 달리, 약간의 의구심이 섞인 목소리였다.

**

그렇게 해외팀의 차기작으로 낙점된 <참새의 꿈>.

“잠깐만. 이거 감독 인터뷰 하나 있으면 딱이겠네. 내가 인터뷰 따올게!”

현차장은 바로 할 일을 찾아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부장이 한록에게 물었다.

“이거 진짜 잘 될 거 같다고 생각하냐?”

“CK가 진출하지 못한 영역이 얼마 안 되니까요. 애니메이션을 노려보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하지 않단 거지?”

“...네.”

“그럼 왜 가자고 한 거냐? 너답지 않은데.”

정부장의 말이 맞았다. 한록은 언제나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는 타입이었다. 여태까지 한록이 했던 일들. 그건 남들이 보기에는 무모한 짓이었으나, 한록에게는 확신이 있기에 실행할 가치가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이건 경우가 조금 달랐다.

낯선 영화. 확신할 수 없는 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록이 <참새의 꿈>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느낌이 좋았습니다.”

다른 종류의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거 말고는? 영화에 대한 확신이라던가, 그런 거.”

“그냥 느낌이 왔습니다.”

“...찍었다?”

“...”

“설마. 진짜로?”

“...”

“맞지?”

“굳이 말하자면 그렇죠.”

“너 뭐가 이렇게 당당한 거냐?”

정부장이 놀랍다는 듯 한록을 보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장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은 쉬어가는 타이밍.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겠다는 한록의 선택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장이 전화통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현차장을 보며 말했다.

“뭐, 손해 볼 건 없으니까. 네 감이 얼마나 좋은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인터뷰 따왔습니다!”

정부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무실에 들어온 현차장이 즐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

현차장의 강력한 추천으로 선택된 <참새의 꿈>과...

“...오빠. 그 귀여운 참새 인형은 뭐야?”

“회사 소품.”

“회사에서 이런 걸 줘? 오빠 회사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됐다. 말하자면 길어.”

“뭐야!”

“여보. 유선이가 하루 종일 애기들 유튜브를 보는데...”

“...우리가 어릴 때 너무 못해줬나?”

“너 최근에 해외팀 가봤냐?”

“아니? 왜?”

“거기 무슨 참새 밭이야. 들어가자마자 참새 장난감이 돌아다녀.”

<참새의 꿈>이 개봉하기까지 약 두 달 간 귀여운 근무환경에 놓이게 된 해외팀.

처음에는 ‘이 나이 먹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라고 불만을 터뜨리던 해외팀 사람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들에게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늘 정부장 봤어?”

“봤지. 뭔 집채만한 새 인형을 안고 가던데.”

“끔찍하더라.”

“어.”

“근데 더 끔찍한 게 뭔지 알아?”

“뭔데?”

“정부장 웃고 있었어.”

그들도 <참새의 꿈>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에 익숙해진 해외팀 사람들과, 월요일 정기회의 시간, 해외팀 사람들은 각자 준비한 <참새의 꿈>의 마케팅 방안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요새 키즈 컨텐츠는 대부분 유튜브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새의 꿈>도 유튜브에 공을 들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중간에 노래와 율동이 나오는 장면을 유튜브 숏츠로 업로드 하는 거죠.”

“사실 이건 학부모와 애들을 다 잡아야 하는 거잖아요. 강남에 팝업스토어 하나 설치하면 좋을 것 같아요.”

“완구회사랑 협업해서 인형놀이 세트를 내는 방안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참새의 꿈> 전용 에디션으로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인형 놀이 아니면 레고도 좋을 것 같고요.”

한록을 필두로 여러 아이디어를 얘기하는 해외팀 팀원들. 한 달여간의 귀여운 근무환경 덕분인지, 얼핏 봐도 대부분 좋은 아이디어들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그래서 어느 게 제일 낫지?”

과연, <참새의 꿈>의 주 고객인 아이들은 어떤 마케팅을 좋아할지 감이 안 잡힌다는 것.

“...모르겠는데요.”

아무리 마케팅 불패신화를 쓰고 있는 CK라 해도 12세 아동의 심정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 정부장이 CK의 심장이자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한록. 어떻게 생각하냐.”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한록이 답했다.

“저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이 녀석 요즘 왜 이리 당당한 거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하는 정부장. 그러나 한록에게는 ‘믿을 구석’이 있었다.

“차장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록의 말에 아무 말도 없던 현차장이 입을 열었다. 언제나 의견을 내기보다는 이미 결정된 사안을 보조하는 타입이었던 현차장. 사람들은 늘 그렇듯 현차장의 발언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때 현차장이...

“미안하지만, 송과장 아이디어는 별로야. 애기들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것부터 너무 번거로운 방법인 것 같아. 하과장이랑 최과장 아이디어는 타겟팅이 잘못 됐다. 12살이면 인형놀이 다 졸업했지. 걔들 다 아이패드 쓰고 있어.”

날카로운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현차장의 모습에 깜짝 놀란 사람들. 그러나 현차장의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현차장이 한록을 보며 말했다.

“이팀장 아이디어는 좋아 보여. 노래랑, 율동이랑, 알록달록한 캐릭터랑. 분명 애기들 마음을 흔들어 놓을 거야. 그럼 부모들은 계속 영상을 보여줄 거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영화관까지 유입이 될 것 같네.”

“...그렇습니까?”

“응.”

놀랍게도, 이 회의는...

“백퍼센트다. 이대로 가자.”

현차장이 주도하고 있었다.

**

그렇게 현차장의 활약 아래, <참새의 꿈>의 개봉이 다가왔다.

영화가 개봉할 때면 늘 그렇듯 관객 반응을 살피기 위해 개봉 첫날 영화관을 찾은 한록. 한록이 영화관 내부의 카페에 앉아 관객들을 둘러보았다. 차가운 분위기에 연예인 같은 외모. 손에 들고 있는 아이패드. 책상의 커피 한잔. 그리고...

“엄마! 저 아저씨는 왜 인형을 안고 있는 거야?”

“쉿! 손가락질 하면 안 돼!”

품속의 참새인형.

“저 사람 <참새의 꿈>이 엄청 좋은가보다...”

“...오타쿠...인가?”

“얼굴은 잘생겼는데...”

극장을 찾은 부모들이 한록을 보고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

<참새의 꿈>의 첫날 개봉. 그 결과는...

[<참새의 꿈>. 예매율 1위 달성.]

대성공이었다.

모두가 의아해하던 애니메이션의 성공. 그 결과를 지켜본 정부장이 한록에게 말했다.

“잘 찍었네, 이한록.”

“그냥 찍은 건 아닙니다.”

정부장의 말에 답하는 한록. 사실,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을 뿐 한록이 <참새의 꿈>을 선택한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럼 뭔데?”

“믿는 구석이 있었죠.”

“어떤 거?”

한록의 믿는 구석은 바로...

“현차장님이요.”

현차장이었다.

현차장은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을뿐, 언제나 좋은 인사이트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현차장이 처음으로 보여준 강한 의견. 거기에 은서와 은아라는 엄청난 조력자들.

“은서랑 은아면...”

“현차장님 따님들이요.”

“허이구야.”

이 영화를 현차장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 생각이 한록의 결정을 이끈 것이었다. 그리고 현차장은 그 믿음에 부응했다.

“사장님이 애니메이션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해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그 부분은 전적으로 현차장님께 맡길 생각입니다.”

현차장의 활약으로 생긴 새로운 사업 기회. 과연 이 신사업을 현차장이란 사람에게 맡겨도 되는 걸까. 한록의 말에 정부장이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그래. 그건 현차장이 제일 잘할 것 같다.”

긍정의 답을 보내왔다.

**

그리고 며칠 뒤 오후.

“차장님. CKV 강남점에서 문의 들어왔는데요. 여기 <참새의 꿈> 팝업 스토어 설치해도 괜찮을까요?”

“최과장이 왜 나한테 질문을...?”

최과장의 말에 현차장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최과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말했다.

“이건 당연히 차장님한테 여쭤봐야죠. 이 쪽은 차장님이 전문가시잖아요”

그 말에 현차장의 눈이 더욱 커졌다.

“나?”

“네. 차장님이요.”

그 말에 현차장은 며칠 전 한록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차장님. 이제 애니메이션은 차장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그 말이 단순한 위로나 응원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록이 보여준 믿음. 그로 인해 변화한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인정. 그 달콤한 보상들에 현차장이 들뜬 기분으로 최과장을 바라보았다.

현차장. 47세. 20년차 회사원. 두 아이의 아빠이자,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목표인 남자. 불과 몇 년 전까지 회사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하던 가장.

오늘은, 그런 현차장이...

“그래, 나한테 맡겨!”

처음으로 전문가 타이틀을 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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