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55화 (217/263)

[외전] 김유선 멋진 선배 만들기 프로젝트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의 성공, 그 이후.

[CK 차남 하정엽, CK 그룹 차기 후계자로 확정.]

[CK그룹이 승계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하정엽은 현재 CK ENM의 사장으로...]

[하태준 회장의 후계 결정에는 ENM의 헐리웃 진출, 그리고 이한록 팀장의 활약이 컸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차기 CK 그룹의 핵심은 CK제당과 ENM이 될 것 같다는 추측입니다.]

하정엽이 CK그룹을 물려받는 것이 확정되었고, ENM에는 즐거운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회장 되시면...우리 회사도 파워가 좀 생기려나?”

“그렇겠지. 회장 되는데 이한록 덕을 얼마나 보셨는데.”

바로 ENM의 파워가 강해지리란 것.

한록의 등장 전까지 ENM은 CK 그룹의 수많은 회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록의 활약으로 ENM은 여러 계열사 중 가장 주목받는 회사로 성장했고, 그 결과 하정엽이 CK그룹의 회장이 되었다. 이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ENM이 CK그룹의 캐시카우인 CK제당 급으로 성장하리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신규채용 규모 장난 아니네?”

그리고 하정엽은 사람들의 기대에 확실히 보답했다.

“영화사업본부는 대체 몇 명을 뽑는 거야?”

“대부분 해외팀이네. 이 정도면 본부 하나 새로 생기는 건데?”

“해외팀 아래에 제작사도 하나 더 만든대. 서지훈 감독이 이사로 들어오고.”

“와, 본격적이네. 이한록 사단 만들어주겠단 거잖아.”

상반기 신규 채용을 준비중인 ENM, 이번 신규채용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규모였다. 특히, 해외팀에 대부분의 인력이 쏠린 상황.

그건 몇 달 전 하정엽이 한록에게 약속했던 방향이기도 했다.

몇 달 전. 한록을 사무실로 부른 하정엽.

“상반기 신규채용은 해외팀 위주로 진행될 겁니다. 해외팀을 본부 급으로 만들어 줄테니 이한록 팀장이 원하는 규모와 구조를 생각해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하정엽의 말에 한록이 짧게 답했다. 그리고 한록이 묻기도 전, 하정엽은 알아서 다음 얘기를 꺼내주었다.

“해외팀 전체 승진도 같이 진행될 겁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씩 웃으며 하정엽에게 답하는 한록. 그 말에 하정엽이 싫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록에게 답했다.

“어차피 곧 공개될 소식입니다. 팀원들에게 전해주세요.”

이제는 직원들의 사기도 생각할 줄 아는 하정엽의 모습. 그 모습에 한록이 속으로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네. 사장님이 배려해주셨다고 전하겠습니다.”

역시, 내가 사장 하나는 잘 골랐다.

**

“우리 또 승진한다고?!”

“최근에 승진이 없었던 사람만요.”

신규채용에 대한 얘기가 어느 정도 퍼지고 나서, 한록은 해외팀 사람들에게 승진 소식을 공유했다. 한록의 말에 현차장이 기쁨을 감출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럼 유선씨 대리되는 거네?”

“헉!”

깜짝 놀란 유선과, 뿌듯한 얼굴로 유선을 바라보는 현차장과 한록. 그때 최과장이 현차장에게 말했다.

“차장님. 이제 유선씨 아니고 김대리죠.”

“그러게, 내가 실수했네. 이제 김대리네, 김대리!”

실무의 핵심이자, 이제 정말 ‘회사원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위치, 대리. 유선이 드디어 그 이름을 달게 되는 것이었다.

“이팀장 이후로 최단기 승진 아니야?”

“축하해요, 유선씨.”

“어허, 이팀장. 이제 김대리라니까!”

“아, 아니에요! 그냥 편하게 부르세요!”

“회사에서 편한 게 어딨어. 승진한대로 불러줘야지.”

사람들의 애정이 섞인 장난에 유선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답했다. 그러나 유선도 당황했을 뿐 싫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때 최과장이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이제 대리가 되는 유선. 그리고 해외팀 위주의 신규채용. 그렇다면...

“유선씨, 이제 후임 들어오겠네요?”

유선이 사수가 된다는 뜻이었다.

최과장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유선. 잠시 후, 유선의 표정이 변했다. 드디어 최과장의 말을 이해한 것이었다. 그리고 유선은...

“꺄악!!!”

비명을 질렀다.

**

그로부터 세 달 후. ENM의 신규채용이 마무리 되고, 유선과 하대리가 김대리, 하과장으로 승진 한 날. 그리고 신규 입사자들이 들어오기 바로 전 날.

“하과장. 그리고 김대리를 위하여!”

해외팀 사람들은 유선, 하과장의 승진과 해외팀의 규모 확장을 자축하는 술자리를 가졌다.

“크으. 해외팀이 그간 ENM 최고의 승진 기록이래. 우리가 바로 북산이다. 북산! 내가 정대만이다!”

“지금 차장님이 정대만이라고 하신 겁니까?”

“이팀장. 그냥 맞장구 쳐주면 안 돼?!”

“안 됩니다.”

늘 그렇듯. 하지만 오늘따라 유달리 활기찬 해외팀의 술자리. 모두 기쁜 소식에 마음이 한껏 들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기쁜 술자리에서 표정이 어두운 사람이 있었으니...

“하아아아아아아....”

“...유선씨. 표정이 왜 그래?”

“지금 땅 무너진 거 아니지?”

이 술자리의 주인공 중 한명인 유선이었다. 유선이 걱정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얘기를 꺼냈다.

대리로의 승진. 물론 그것도 기뻤지만,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었으니.

“이제 내일이면 후임이 들어오는데...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배가 되었단 사실이었다.

“어, 후임 들어오면 오히려 좋지 않나? 뭐 그런 걸 걱정하고 그래.”

“그러게요. 후임 들어오면 일이 좀 편해질 거예요. 걱정할게 아니라 좋은 일이에요.”‘

유선에게 조언을 해주는 현차장과 하과장. 그러나 유선의 표정은 밝아질 줄을 몰랐다. 후배가 들어온다. 물론 설레고 뿌듯한 일이었다.

“저는 팀원 분들한테 너무 많이 도움을 받았는데...제가 그만큼 좋은 선배가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갑작스럽게 드는 불안감. 너무 멋진 상사를 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걱정이었다.

“우리가 좋은 선배였다고...?”

유선의 고맙고 기특한 걱정에 해외팀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가 그만큼 좋은 선배가 될 수 있을까요?’

회사 생활에 잔뼈가 굵은 직장생활의 프로들. 그들은 이미 유선의 심금을 울리는 말에 완전히 넘어가버린 후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래, 지금부터 멋진 선배들의 조언 시작한다!”

‘김대리 멋진 선배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김대리 멋진 선배 만들기 프로젝트.

“자, 나는 이렇게 신입을 가르친다. 노하우가 있는 사람들 말해봐. 제일 좋은 조언을 한 사람이 최고의 멋진 선배가 되는 거다!”

그 첫 타자는...

“우리 중에 제일 상사! 이팀장부터!”

한록.

‘신입을 본 게 언제 적이었더라.’

이미 신입을 가르치기엔 너무 많은 길을 걸어온 한록. 한록의 기억에 남은 신입은 유선이 마지막이었다. 한록은 유선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가장 중요한건 인수인계죠. 중요한 업무를 A4 10장 정도로 정리해서 외우라고 줬던 기억이 나네요.”

한록의 말에 유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록에게 받았던, 일명 ‘마케팅부서 업무지침’. 그걸 받은 기분이 어땠냐면.

“유선씨. 그때 어땠어?”

“되게 도움이 됐고...그 파일 덕분에 바로 업무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팀장님 정말 멋진 선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이런 분 앞에서 실수하면 끝이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탈락!”

그렇게 한록은 ‘멋진 선배 콘테스트’에서 바로 탈락해버렸다.

그리고 다음 타자.

“부장님은요?”

“나는 처음부터 잘 하는 놈들만 데려갔다.”

“괜히 물어봤네. 탈락!”

정부장이 3분 만에 탈락했다.

그리고 세 번째 타자 현차장.

“그럼 차장님은 어떻게 하셨는데요?”

“음...나는 첫 날에 같이 술 마시러 가자고 했던 것 같다. 긴장 좀 풀어주려 했지. 하과장이랑 유선씨한테 둘 다 그랬던 것 같은데.”

현차장의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짓는 하과장. 하과장의 표정을 보고 현차장이 물었다.

“하과장. 왜 그래? 혹시 싫었어?”

“아뇨. 저는 좋았죠. 그 뒤로 차장님이랑 친해졌잖아요.”

“그랬는데?”

“여자친구가 첫 출근부터 회식이냐고 기겁하긴 하더라고요.”

“...이래서 MZ세대들이란!”

하과장의 말에 현차장이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겠다...”

“차장님도 탈락.”

그렇게 현차장도 탈락. 이제는 최과장의 차례였다.

“저는 그냥 적당히 했어요. 기본적인 거 알려주고. 밥 같이 먹고. 모르는 거 있는데 못 물어보는 거 같으면 먼저 알려주고. 그 정도.”

“너무 무난한데?”

“그 이상으로 하면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아주 무난하고, 특별할 것 없는 최과장의 조언. 그러나 그 말에 하과장과 유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정도만 해줘도 충분하죠. 신입들은 너무 관심 받는 것도 무서워해요.”

“아...맞아요. 사실 저도 최과장님한테 뭐 물어보기 되게 편했어요.”

의외로 반응이 좋은 최과장의 조언. 그 말에 현차장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설마, 이게...”

“제일 좋은 방법 같네요.”

“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MZ 세대의 대표. 하과장과 유선이 최과장의 방법을 최고의 방법으로 인정해버린 것이었다.

“크흑...!”

잠시 뼈아픈 패배를 실감하던 현차장. 현차장이 곁에 있던 한록에게 말했다.

“이팀장! 이팀장도 MZ세대긴 하지?”

“...그렇긴 하죠.”

“이팀장은 저 말에 동의해? MZ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한록에게 마지막 손길을 뻗은 현차장.

‘이팀장은 말만 MZ지, 속은 거의 할아버지니까!’

그리고 현차장의 얕은 수는...

“저도 저게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최과장님이 확실히 사람을 잘 다루시네요.”

한록의 마지막 한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최과장. 해외팀 공식 멋진 선배가 된 걸 축하해.”

그리고 현차장은...

“오.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렇게 태연하니까 더 멋있어 보이잖아!”

자신이 패배했다는 걸 완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유선.

유선은 택시 안에서 아이패드로 오늘 들었던 얘기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중요 업무 A4 10장으로 정리...이건 너무 무서워. 3장 정도로 주고 다른 건 그때마다 물어보라고 하자. 첫 만남에 술자리. 난 좋았는데...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럼 2주쯤에 가자고 해야겠다. 밥 같이 먹기. 그래, 이거다. 한 달 정도는 같이 먹으러 가야지.”

멋진 선배 최과장과 탈락자들이 해준 조언들을 열심히 노트에 기록하는 유선. 오늘 들은 얘기를 다 기록한 유선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ENM의 사옥이 보이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저곳에서 나는 ‘선배’가 된다.

‘으...떨려.’

입사. 그리고 승진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 그런 긴장감에 유선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기대된다.’

참을 수 없는 두근거림에 미소를 지었다.

**

그리고 다음날.

“...유선씨. 그게 뭐야?”

“신입 대처 매뉴얼이요!”

“...그게 전부? 한 20장은 되는 거 같은데?”

“네! 전부요!”

“유선씨 사실 이팀장 동생 아니야?”

그 전날. 아니 몇 달 전부터 자신이 마련한 ‘신입 대처 매뉴얼’을 품에 안고 출근을 한 유선.

‘이제 진짜 곧이다!’

신입사원들은 교육을 마치고 곧 사무실로 도착할 예정이었다. 얼마남지 않은 만남에 유선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켰다. 그리고 오전 11시.

“안녕하십니까!”

해외팀의 신입사원들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잘 부탁합니다.”

해외팀의 팀장인 한록에게 몰려가 인사를 하는 신입사원들. 한록이 짧게 답을 했고, 신입들을 각자 배정된 팀으로 안내해주었다.

“유선씨. 여기 은주씨요.”

그리고 드디어 유선의 후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입 등장이다! 1페이지 2번, 인사부터 시작...!’

긴장된 얼굴로 새로운 신입을 마주한 유선. 그러나 마주치는 시선에, 유선의 생각이 바뀌었다.

“안녕하십니까..! 정은주라고 합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의 여성. 두려움과 긴장이 담긴 표정. 하지만 ‘잘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총명한 눈빛.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몇 년 전의 누군가가 떠올랐다.

첫 입사. 너무나 떨리고, 무섭고, 긴장되던. 하지만 그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던.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인정받고, 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나다.’

몇 년 전 자신의 모습이었다.

“대...대리님?”

유선이 답이 없지, 신입사원 은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유선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 유선은 이제야 선배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을 알려주고 싶던 한록도. 의지할 사람이 되어주고 싶던 현차장도. 강하게 키우고 싶던 정부장도. 그들은 모두 멋진 선배들이었고, 그들의 말에서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그들 모두가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방식으로 유선 가르쳐주었다. 유선이 얼른 회사에 적응하길 바라며. 유선이 이 회사를 두려워하지 않길 바라며.

유선이 멋진 직원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 유선. 유선은 어젯밤 밤새 작성했던 신입사원 대응 매뉴얼을 마음 속에서 모두 지워버렸다. 그리고 은주에게 말했다.

“은주씨.”

“네...네!”

나의 멋진 선배들. 그들이 알려준 대로.

그러나 나만의 방식으로.

“혹시 무슨 영화 좋아해요?”

이제는 멋진 선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저...저는 좀비영화 좋아합니다!”

“저도요.”

“헉, 정말요? 저 <시험>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그거 때문에 여기 지원했어요!”

신입사원 은주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는 유선. 그리고, 유선의 말에 한결 표정이 풀린 은주.

“역시, 잘할 것 같았어.”

그런 유선을 보고 현차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곁에 있던 한록에게 말했다.

“어때. 내가 키운 후배다.”

현차장의 그 말에 한록이 답했다.

“유선씨는 제가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한록의 말에 현차장이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유선씨 원래 우리 팀이었어!”

“실무는 저랑 같이 했습니다.”

“어허! 내가 더 먼저 만났다고!”

“언제 만났는지 보다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팀장!!!”

그리고 멋진 선배들의 유치한 질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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