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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42화 (204/263)

크게 보세요. 그리고 높이 보셔야 합니다.

한록과 하정엽이 단 둘이서 한 얘기를 알고 있는 최경준. 아마 최경준은 둘의 대화를 미리 짐작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차를 좀 가져다주게.”

최경준이 차를 핑계로 장비서를 한록의 사무실에서 내보냈다. 아주 긴밀한 얘기를 시작하리란 뜻이었다.

“난 예전부터 이런 날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 내가 자네를 이길 수 없는 날이 올 거라는 사실 말이야. 하지만 말이야. 자네를 이길 순 없더라도 같이 죽을 순 있어. 이 나이가 되어서 자네 하나 못 꺾으면 최경준이라 말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최경준이 턱을 괴고 미소를 지으며 한록을 바라보았다. 당장 사장이 자기 뒤를 이을 사람으로 한록을 지목한 와중에도 무척이나 여유로운 태도. 최경준이란 사람이 쌓아온 능력, 배경, 자신감을 모두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럴 마음은 없어.”

그러나 최경준이 오늘 하고 싶은 건 그 말이 아닌 듯 했다. 최경준은 지나온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네를 죽일 수 있는 순간은 얼마든지 있었어. 그걸 느끼게 된 건...<퀸>때부터였던 것 같은데. 그때 자네 편을 들지 않고 사장님 편을 들었다면 지금 자네는 여기 없었을 거야. 부산 영화제 때도 마찬가지고. 자네는 항상 과감했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 그런 사람을 죽이는 건 너무나 쉽다네. 하지만 나는 계속 자네의 편을 들어줬어. 왜인지 아나.”

한록을 지켜봐온 순간을 얘기하는 최경준. 그가 이 말을 하는 핵심은...

“자네가 자랑스러웠네.”

한록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누구도 한국 영화를 알아주지 않았어. 그런데 이제 우리 영화들이 헐리웃의 박스오피스를 채우고 있지. 내가 현역시절에, 아니, 살아서 볼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그게 모두 자네가 한 일이란 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지.”

언제나 냉철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만을 선택하는 최경준. 최경준은 아직 젊고 혈기왕성한 하정엽보다 더 기업가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도 가끔은 평범한 인간이란 사실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자네 나이 때 꿈꾸었던 일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어.”

바로 젊은 시절의 꿈에 대한 얘기를 할 때였다.

한록이 태어나기도 전인, 30여년 전이라는 아득한 시절. 하태준과 최경준이 영화계에 뛰어든 시기였다. 그들이 어떤 꿈과 어떤 마음으로 영화계에 뛰어들었을까. 그리고 그 긴 시간동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일해 왔고, 어떻게 한록을 바라보았을까. 한록의 입장에선 절대 알 수 없는 일들이었다. 다만, 확실한 게 있다면...

“자네가 어디까지 할 수 있나. 과연 어디까지 이룰 수 있나.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나도 그게 궁금해.”

이 사람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는 것.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이 자네의 꿈의 영화라고 들었네. 그때까지는 최대한으로 자네를 돕지.”

그래서 한록의 꿈에 함께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네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때까지 방해하지 않겠다’는 최경준의 말. 한록이 들어본 말 중 가장 멋진 휴전 선언이었다. 하지만, 아직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최경준의 말을 듣고 있던 한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이 끝나면, 그 뒤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한록이 궁금한 건 바로 이것이었다. 최경준은 한록을 죽일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은퇴, 혹은 한록의 밑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경준은 남은 선택지의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직도 건장한 노장.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려할까.

“쉬어야지. 그리고 계약이 자유로워지면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할 생각이네.”

“어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샬롯테 아니겠나. 그 곳을 CK만큼 키워볼 생각이야.”

최경준의 선언에 한록은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CK에서 밀려났다. 그렇다면, 샬롯테로 옮겨서 CK만큼 키워보겠다.’ 최경준은 역시 이런 사람이었다. 절대로 물러나지 않고, 언제나 위를 꿈꾸는 남자.

익숙한 최경준의 모습에 한록이 미소를 지었다. 한 회사에 뼈를 묻을 것처럼 굴더니, 그 회사에서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바로 다른 선택을 한다. 최경준은 절대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대였다.

“자네와 싸울 날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군.”

하지만 역시, 멋진 상대라는 말에는 딱 걸맞았다.

“이건 나중 얘기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까지는 자네를 무조건적으로 도울 거라는 거지. 그럼 이만 가보겠네.”

최경준이 그렇게 오늘의 용건을 정리했다. 네 꿈을 이룰 날까지 너를 돕겠다. 하지만, 그 뒤에 우리는 적이 될 것이다. 최경준이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한록과 최경준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할 것이었다.

“본부장님. 잠시만요.”

하지만 한록은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한록이 ENM의 실세가 될 것이다.’

최경준과 하정엽이 이미 짐작하고, 자신만의 ‘계획’을 가져온 안건.

그렇다면 한록 역시 계획이 있었다.

“저와 사장님이 정확히 어떤 얘기를 했는지 아십니까?”

그리고 한록은 그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

몇 시간 전, 사장실.

“뒤는 맡겨주십시오.”

“그럼, 차후 ENM의 사장자리는 이한록 팀장이 맡는걸로...”

한록과 하정엽은 차기 ENM의 사장 자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화는 하정엽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뇨. 역시 그 자리는 최경준 본부장님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사장님께서 저는 5년간 다른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최경준 본부장님은 이미 준비가 필요없으신 분입니다. 그 분이 계신데 제가 ENM을 맡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ENM의 매출을 끌어올린 건 최경준 본부장이 아니라 이한록 팀장인데요.”

“ENM이 아니라 영화사업본부의 매출이었죠. 저는 영화가 아닌 다른 분야를 담당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 출신은 영화입니다. 저는 제가 가장 잘하는 곳에 있고 싶습니다.”

한록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는 하정엽. ‘지나치게 겸손하게 구는군.’이라는 생각이 담긴 얼굴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아하.”

하정엽은 한록의 얼굴에 떠오른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록은 겸손하게 굴거나, 자신감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지금 나한테 회사를 하나 만들어 달라는 겁니까?”

정말 ‘한번 끝까지 가보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네, 맞습니다.”

한록이 하정엽의 말에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장님. 영화사업본부가 만든 성과들을 보십시오. 이미 ENM의 전체 매출 중 70%가 영화사업본부의 매출입니다. 회사의 본부 하나로 갇혀 있기엔 너무 대단한 성과 아닙니까. 이제는 분할을 고려하실 때입니다.”

지금 한록의 요청은 바로 영화사업본부의 분할을 통해 영화 전문회사를 하나 만들어달라는 것. 한록의 말에 하정엽은 그 동안의 결과물에 대해 생각했다. 한국 영화, CK. 그리고 한록이 만들어낸 모든 성과들...

‘새로운 회사를 만들기에 명분이 부족하지는 않다.’

하지만 회사 하나를 만든다는게 그렇게 쉽게 진행되는 일이 아니었다.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사업본부가 빠진다면 ENM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새로운 환경에 놓여진 영화사업본부가 과연 이전과 같은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회사의 설립이라는 과제를 앞두고 여러 고민에 빠져있는 하정엽. 그런 하정엽의 모습에 한록은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어떤 큰 도전을 앞두고 있는 젊은 남자. 젊고, 미숙하고, 가능성만 가득한 시기. 자신이 이뤄낸 성과와 앞으로 나아갈 길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 모습은...

‘나다.’

꼭 회귀 초반부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때, 한록에게 용기를 주었던 정부장의 말이있었다.

‘크게 봐라. 그리고 높이 봐.’

한록은 깨달았다. 이제는, 드디어...

‘내 차례다.’

한록이 그걸 누군가에게 돌려줄 때가 온 것이었다.

과거 정부장에게 용기를 받았던 자신. 그리고 지금... 알 수 없는 고양감과 뿌듯함에 한록이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고, 그로 인해 기뻐하던 나날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성장을 한 사람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예전에는 없던 지혜와 안목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위치가 된 사람.

“사장님. 크게 보세요. 그리고 높이 보셔야 합니다.”

바로 한록 자신이었다.

한록이 말에 하정엽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하정엽의 눈에는 본인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 담기기 시작했다. 마치 몇 년전, 정부장의 말을 들었을 때 한록의 모습과 꼭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한록은 목덜미가 짜릿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눈앞에서 야망을 불태우는 젊은 청년을 보며 느껴지는 감정. 그러니까, 이 느낌은.

“좋습니다. 이한록 팀장의 제안, 추진해보겠습니다.”

이 사람과 무언가 엄청난 일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란 예감이었다.

상대에 대한 애틋함과 자신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 그때 당시 정부장이 한록에게 느꼈을 모든 것을 똑같이 느끼며, 한록이 하정엽에게 답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

“본부장님은 CK ENM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 회사가 정착할 때까지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처음에는 마케팅 대행사로 시작할 테니, 아마 5년 정도면 자리가 잡힐 겁니다. 본부장님이 은퇴를 생각하실 시점이겠죠.”

‘나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거고, 사장이 될 거다. 너는 나를 도와라.’ 한록의 믿기지 않는 포부. 그 모습에 최경준이 이마를 짚었다.

“나도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는 걸로는 자부심이 있는 사람인데...역시 자네를 따라갈 순 없었군.”

CK와 싸워보겠다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과감한 한록의 계획. 그러나 정작 앞에 앉은 한록의 얼굴은 태연했다. 자신의 계획이 이뤄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었다.

“이건 자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될 거라네. ENM은 꽤 자리를 잡은 회사야. 사실상 사장의 역할은 현명한 결정을 하는 것 뿐이지. 그런데 새 회사라면 말이 달라져. 자네가 모든 걸 컨트롤하고, 만들어내고, 책임까지 져야하지. 자네와 사장님이 그걸 감당할 수 있으리라 보나?”

최경준의 타당한 지적. 그에 대해 한록의 반박은 길지 않았다.

“네.”

오늘 자신은 눈앞에서 하정엽의 다짐과 야망을 보았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그걸 실현시켜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예언과도 같은 말에 최경준은 할 말을 잃고 한록을 바라보았다. 한록의 말은 그저 다짐이나 패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에 대한 모든 고민과 걱정. 그 모든 것을 고려했음에도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란 확신이 담긴 말이었다.

“...내가 말릴 일이 아니군.”

최경준은 더 이상 이 일에 입을 대지 않았다. 애초에 사장도 동조를 한 일이니, 최경준이 해라마라를 지시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최경준이 두 젊은이들 앞에서 할 말은...

“내 은퇴 전까지 모두 끝낼 수 있겠나.”

그들을 응원하는 것 뿐.

“그건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노력하겠습니다.”

“하하!”

아까와 달리, 조금 조심스러워진 한록의 답. 너무나 솔직한 한록의 답에 최경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한참 후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빨리 움직이게. 새 회사가 출범하기 전까지 땅을 잘 다져두는게 좋아. 샬롯테는 이번 기회에 정감독과 함께 제거하고, <오징어 서바이벌>과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은 되도록 빨리 개봉하는게 좋겠군. 헐리웃에서도 확실히 입지를 잡아두고.”

한록에게 사업적인 조언을 해주는 최경준. 그렇게 한참이나 얘기를 하던 최경준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그를 위해 계획하며, 누군가와 얘기를 나눈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출 수 없는 이 기쁨. 그건, 바로...

“내가 이 나이에 또 꿈을 꾸고 있군.”

새로운 꿈이 생겼을 때의 행동이었다.

50대 중반. 누군가는 은퇴를 생각하고, 누군가는 이미 회사에서 물러난 나이. 그 나이에 또 꿈을 꾸는 남자. 그 남자가 많은 감정이 스쳐지나가는 얼굴로 한록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한록 팀장. 자네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기쁘네.”

“저도 그렇습니다, 본부장님.”

그리고 한록이 존경스러운 상사에게 답했다.

**

그렇게 하루만에 그룹 승계와 분사. 그리고 사장 교체에 대한 얘기가 나온 CK ENM. 일반 직원들은 이 소식을 모르지만, 임원들 사이에서는 긴밀하게 얘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팀장님. 홈쇼핑 사업본부, 공연사업본부, 회계부에서 미팅 요청이 왔습니다. 본사에서도요.”

한록 역시 넘치는 미팅 요청 때문에 계속 마다하던 비서를 들인 상황.

“오늘 중요한 일이 있으니 전부 거절해주세요. 본사 미팅은 내일로 넘기고요.”

하지만, 회사에서 정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일이다. 한록은 어떻게든 줄을 타보려는 사람들의 연락에 동조할 생각이 없었다. <오징어 서바이벌>의 완성까지 반년 정도가 남았고, 이제는 정말 중요한 시기에 돌입했으니까.

“네. 두시 미팅 빼고 전부 취소하겠습니다.”

한록의 말에 비서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두시가 되었고, 한록이 기다린 ‘귀빈’이 등장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앉으세요.”

‘귀빈’의 등장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록이 모든 약속을 취소하며 기다린 ‘귀빈’과 중요한 미팅. 지금부터 한록의 사무실에서는 엄청난 일이 시작될 것이었다.

“으. 갑작스럽게 무슨 존댓말이야.”

“왜 그러세요, 임감독님. 감독님한테는 당연히 존댓말을 해야죠.”

“갑작스럽게 감독님은 무슨 감독님.”

“당연히 감독님이죠. 이제 촬영을 시작하실 건데.”

바로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의 촬영 시작이었다.

**

“그래서 무슨 일이신가요, 감독님?”

“그거 좀 그만 해주면 안돼?”

“알았어. 무슨 일인데?”

임감독의 진저리에 한록이 웃으며 말을 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임감독 역시 본론을 꺼내놓았다.

“제작자 때문에.”

“제작자? 서감독님이 맡아주시기로 하셨잖아.”

제작자. 영화에서 감독 다음으로, 아니 감독만큼이나 큰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제작자는 시나리오를 선택하고, 배우를 캐스팅하고, 편집을 점검하고, 영화관을 섭외하는 등 영화에 관련된 모든 일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감독이 현장에서 영화를 ‘찍는’ 사람이라면, 제작자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 비유하자면, 감독이 영화라는 요리를 만드는 주방장이라면 제작자는 재료를 조달하고, 그 음식을 맛보고, 손님들에게 내놓는 과정을 책임지는 레스토랑의 오너였다.

영화마다 제작자가 맡는 역할의 크기가 다르지만,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은 임감독이 오랜 기간 쉬다가 돌아온 작품인만큼 제작자가 많은 부분에서 참여 하기로 한 상황. 다행히도 서감독이 그 역할을 맡아주기로 했고, 캐스팅부터 촬영, 그리고 편집까지 모든 과정에 함께하기로 해주었다.

세계적인 감독이 함께 영화를 만들어준다. 신인 감독에게는 영광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임감독은 지금 제작자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며 한록을 찾아왔다.

“서감독님이 물러나시겠대?”

“응.”

“왜? 무슨 일 있었어? 혹시 서감독님이랑 싸운거야?”

제작자와 감독의 의견충돌. 둘은 함께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입장이다보니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임감독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아니. 안 싸웠고, 의견조율도 잘 됐어. 서감독님도 이 영화 마음에 들어하시는거 같아.”

임감독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시나리오를 살피던 서감독.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볼때부터 임감독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영화는 아주 오래 기억될 겁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서 저 대신 다른 사람이 제작자로 들어가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 기대가 크대. 그래서 자기보다 더 이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생각났대.”

“그게 누군데?”

그리고, 서감독이 오랜 고민 끝에 지목한 사람은...

“너.”

-이한록 팀장님이 제작을 담당하시는게 좋겠습니다.

한록이었다.

“한록아. 아니...이한록 팀장님.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의 제작자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임감독이 한록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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