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39화 (262/263)

여태 못해준 말

9월의 어느 여름날. 관객들은 아직도 <인듀어런스>를 찾아 영화관을 찾는 시점에서 <삼일의 삶>의 광고가 공개되었다.

[그간 본 다큐멘터리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삼일의 삶>에 대해 극찬을 하는 중년의 백인남자. 그는 바로 알렉산드로 감독-

[감독 유리 발드셸]

이 아닌, 러시아의 유명 감독.

그리고 다음날 공개 된 또 하나의 광고.

[누구나 이 영화를 사랑할 겁니다.]

<삼일의 삶>을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거장 감독. 그 사람은, 이제는 정말 알렉산드로 감독-

[감독 제시카 오웬]

이 아닌 미국의 다큐멘터리 거장.

[영화가 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위로.]

[-지오 데프킨]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줄리에타 캘버]

[내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네요.]

[-로버트 킹스톤]

하루 간격으로 공개되는 거장 감독들의 <삼일의 삶>에 대한 감상평. 누구나 입이 떡 벌어질만한 감독들의 등장에 미국, 한국 할 것 없이 인터넷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삼일의 삶> 감독 라인업]

[<삼일의 삶>다음 광고 떴다]

[하 이번엔 스콜세지네 ㅋㅋㅋ미쳤나 진짜]

[이거 감독들한테 광고 찍으라고 칼 들고 협박한거 아님? 아니면 어떻게 이런 라인업이 나오는 거?]

한록 말처럼 정말 모든 사람들이 <삼일의 삶>의 광고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건 <마지막 공연>때도, <식물>때도 본 적이 없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들이 하루에 한번씩 등장해서 영화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모두 <삼일의 삶>의 다음 광고를 지켜보았고 또 같은 생각을 했다.

<점점 유명해지는거 같지?>

<그러게. 처음엔 막 거장 반열에 올라오는 감독에서, 이제는 칸 영화제 수상 감독이군.>

<베니스, 칸, 아카데미...그럼 이제 남은 건 한사람이지.>

<그래, 그렇겠지.>

<분명 알렉산드로일 거야.>

바로 현재 세계최고의 감독이라 불리는 알렉산드로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로 감독으로 대체 무슨 광고를 할까?>

이미 사람들은 <삼일의 삶>이란 영화보다 세계최고의 감독이라 불리는 알렉산드로의 등장을 더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이 영화가 그렇게 대단함?]

[ㄴ영화 좋음. 몇 년 전에 대박 났음. 근데...솔직히 이 정도로 광고할만큼 인지는 모르겠음]

[광고는 개 쩔긴 하는데 영화보고 싶다는 마음은 안 드는 듯?]

[이건 걍 광고를 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 거 아니냐]

[ㄴㅇㅇ 그런 느낌인게, 이거 마케팅한 사람이 엄청 유명한 사람이라고 함. 광고는 좋았지.]

[아 이건 마케팅이 너무 대단해서 오히려 영화가 가려졌네여 ㅠㅠㅋㅋㅋ]

[광고만 기억나고 영화는 기억 안 날 듯....]

이제 <삼일의 삶>이 가진 숙제는...

[영화보다 유명한 영화광고,JPG]

바로 ‘<삼일의 삶>의 광고’를 뛰어넘는 것이 된 상황.

그렇게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서...

<‘삼일의 삶’ 새 광고 떴다!!!!!!>

[<삼일의 삶>. 그리고 열두번째 만남.]

마지막으로 알렉산드로 감독의 광고가 공개되었다.

**

영화관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영화관에 들어온 사람은 누가 뭐래도 현재 세계 최고의 감독이라 불리는 알렉산드로.

CK의 유튜브에 업로드 된 광고에,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알렉산드로 감독의 말을 기다렸다.

사람들의 기대 속에 스포트 라이트가 쏟아지는 영화관 앞에 선 알렉산드로 감독. 모든 빛이 알렉산드로 감독을 비추고, 영화관엔 정적이 감돈다.

‘알렉산드로 감독이 대체 무슨 말을 할까.’

‘얼마나 멋진 말을 할까.’

‘얼마나 대단한 장면을 보여줄까.’

그리고 사람들이 영화가 아니라, 알렉산드로 감독을 기다릴 때...

<어? 뭐야?>

알렉산드로 감독은 객석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슨 말 안해?>

<왜 저기 앉는 거야?>

객석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앉은 알렉산드로 감독. 그는 이제 수많은 관객중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게 끝이야?>

<이 뒤에 나오나?>

광고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알렉산드로 감독은 다시 영화관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관객들 사이에서 조용히 영화를 관람할 뿐이었다. 그렇게 영화는 끝났고, 관객들은 하나 둘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알렉산드로 감독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모두가 떠난 영화관. 그 곳에서 홀로 침묵을 지키는 세계적인 거장.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광고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알렉산드로 감독이 계속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알렉산드로 감독마저 자리를 떠났고, 영화관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광고는 텅빈 영화관을 보여주며 마지막 나레이션을 내보냈다.

[이 광고는 아무런 대본 없이 촬영되었습니다.]

-세계최고의 감독.

-그 감독을 그저 관객 한명으로 만들어버리는 영화.

마지막으로 공개된 <삼일의 삶>의 광고에, 사람들은....

<...혹시 이 영화 본 사람 있어?>

드디어 광고가 아닌 <삼일의 삶>이란 영화 자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

알렉산드로 감독의 광고. 그리고...

[CK가 그동안 헐리웃에서 보여준 발자취들.]

[모든 사람이 <삼일의 삶>에 출연한 감독들을 보고 놀라움을 표했다. 그러나 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이 감독들이 전부 무보수로 광고에 출연했다는 것이다. CK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한 것은 하나 뿐이다. 감독들에게 영화를 보여준 것.]

[영화를 본 감독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좋아요. 광고에 출연하겠어요.’]

[CK는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그들의 방식은 이것뿐이다. ‘좋은 영화를 가져오는 것.’]

케이트가 약속한 ‘CK 특집 기사’까지.

[CK ENM, 또 한번의 흥행 예고]

[2023년 올해의 마케팅 후보 2. 영화 <삼일의 삶>]

[<삼일의 삶>과 <인듀어런스>가 박스오피스 1,2위를 다투고 있다.]

그 두 가지가 합쳐지니, <삼일의 삶>의 흥행은 예정된 것처럼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미국의 일반인 관객마저 CK란 이름을 알더군.”

그리고 이 일을 누구보다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최경준이었다.

공포 영화가 아니어도. 서지훈 감독 정도의 대단한 스타가 없어도. 한 영화를 3부작 동시에 개봉하지 않아도. CK와 한국영화는 헐리웃에 통할 수 있다. <삼일의 삶>은 바로 그걸 증명한 것이었다.

“잘했네, 이한록 팀장. 나는 꼭 자네를 헐리웃에 보여주고 싶었어.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군.”

아주 흡족한 얼굴로 한록에게 말하는 최경준. 최경준이 쉽게 보여주지 않는 칭찬이었지만, 한록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본부장님. 올해 해외팀의 성과와, 앞으로 과제에 대해 보고하겠습니다.”

“그래, 해보게.”

“유선씨. 들어오세요.”

바로 최경준처럼 자신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부하가 있다는 것이었다.

한록의 말에 최경준의 사무실로 들어온 유선.

“안녕하십니까, 김유선 주임이라고 합니다.”

“그래.”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언제나 무서운 상사인 최경준의 앞에서 유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삼일의 삶>의 성과를 말하기 시작했다.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2위. 1위는 하지 못했지만. <인듀어런스>가 내려가면 곧 1위를 차지할 걸로 보입니다. 또한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후보작으로 초청이 왔습니다. <식물> 역시 후보작으로 초청을 받아서, 둘 중에 하나는 수상을 할 수 있을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오징어 서바이벌> 역시 잘 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 그리고 자네는 협의회 회의에서 한 건 했고.”

유선의 얘기를 듣다가 협의회 회의 때 얘기를 하는 최경준. 회의에서 유선의 활약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최경준이 평소와 달리 만족스러운 얼굴로 유선에게 말했다.

“이번엔 열심히 한 모양이야. 수고했네.”

그리고 이어진 최경준의 칭찬.

그 말에 최경준의 옆에 서 있던 장비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최경준이 한록 외의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록은 전혀 놀라지 않았고, 유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선은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틀 전. 한록이 유선을 불러서 한 말.

-유선씨. 본부장님께 해외팀 활동에 대해 보고할 겁니다. 준비하세요.

-...제가요?

-네. 꼭 유선씨가 했으면 해요.

그리고 오늘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했던 말까지.

-유선씨.

-네.

-본부장님한테 저처럼 행동하세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본부장님한테 하고싶은 말이 있잖아요. 그거, 참지 말고 그냥 하라고요.

늘 유선을 얕잡아보는 최경준. 그리고 그런 최경준에게 ‘할 말을 해라’고 말하는 한록. 그 말에 유선은 벌써부터 겁을 먹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유선의 말에 한록이 작게 웃었다. 유선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한 태도였다.

-괜찮아요. 이제는 해도 돼요.

그리고 한록은 언제나 그렇듯, 유선에게 가장 용기가 되는 말을 해주었다.

-충분히 잘했으니까.

충분히 잘했으니까.

언제나 용기가 되는, 누구보다 의지하는 상사의 말.

‘...그래. 얘기하자.’

그 말에 유선이 눈을 감고 손을 꼭 쥐었다.

“수고했네. 나가보게.”

“본부장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최경준의 말에 유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을 인정해준 적 없는 상사. 그에게 유선이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이번만이 아니라 언제나 열심히 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노력에 대한 인정이었다.

“나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자리를 벗어난 유선.

“...”

유선의 말에 최경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게 이해가 됐다는 듯 한록을 보고 말했다.

“...자네가 시켰나?”

“네.”

“왜 그랬지?”

“아직도 제 부하들이 얼마나 뛰어난지 모르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하.”

한록의 말에 최경준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표정을 바꾸고 한록에게 말했다.

“기분이 좋지는 않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한록의 팀을 무시하는 CK의 사람들과, 그들의 대표주자인 최경준. 오늘 한록은 그에게 정면으로 ‘당신이 틀렸다’고 말했다.

눈앞에서 실수를 지적당한 셈이니 최경준 역시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한록은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해도 될만한 사람이니까요.”

그 말에 최경준이 한록을 빤히 쳐다보았다.

둘 사이에는 침묵과 함께 약간의 긴장이 흘렀다. 잠시 후. 최경준이 한록에게 말했다.

“자네는 건방져.”

“알고 있습니다.”

“방금 나간 그 녀석도 마찬가지고. 감히 내 앞에서 말대꾸를 하다니.”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 왜 그렇게 구나.”

“이 정도 능력이 있다면 할 수 있는 말이니까요.”

“자네 말고 그 녀석도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네.”

그리고 한록의 말에...

“그래, 이번엔 그럴만했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자신의 실수를 깔끔히 인정한 최경준.

“김유선을 불러와. 여태 못해준 말을 해줘야겠군.”

그가 장비서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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