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30화 (253/263)

우리의 슈퍼스타!

<식물>의 개봉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모든 것을 <식물>에 쏟아부어야 하는 시기였지만...

“<오징어 서바이벌> 대본 작업 완료되었습니다. 섭외 시작하겠습니다.”

원래 회사란게 하나의 일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형. 염두에 두고 있는 배우는 있어?”

“주인공은 무조건 김정재 배우. 그리고 탈북자 캐릭터는 여기, 이 사람. 배우는 아니고 모델인데, 마스크가 좋아.”

한록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는 임감독. 아무래도 드라마 <오징어 서바이벌>의 캐스팅 아이디어는 임감독에게서 나온 모양인지, 임감독은 캐스팅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임감독이 걱정을 하는 것은 캐스팅이 아닌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김정재 배우가 이걸 하겠다고 할지 모르겠네. 나는 완전 초짜감독이잖아.”

“그건 걱정마. 나 영화계에서 꽤 유명하거든. 내가 캐스팅 해올게.”

임감독의 말에 한록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이한록이 맡은 영화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학계의 정설. 거기에 21세기 최고의 히트작 시나리오와 어마어마한 제작비. 아무리 감독이 신인이라 해도 이 정도 조건을 거절할 배우는 드물었다.

[네, 이팀장님.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한록의 예상은 역시나 적중했다. 김정재. 정우연. 박희수. <오징어 서바이벌>의 성공을 이끌었던 배우 대부분이 한록의 전화에 흔쾌히 출연을 승낙했다.

“김정재가 바로 출연한다고 말했다고? 정말? 진짜로? 지금 박진욱 감독 차기작 들어갈지 말지 고민중이라 들었는데?”

“나 유명하다니까.”

“이 정도일줄은 몰랐지. 그래서, 다른 배역들은 생각해봤어?”

어쩌면 회귀 전보다도 더 빠르게 이뤄진 캐스팅 과정. 이제 주연배우 중 남은 자리는 딱 한명 뿐이었다.

“아니. 이 할머니 캐릭터는 도저히 모르겠어.”

바로 <오징어 서바이벌>의 두 번째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할머니 캐릭터였다.

“나약해보이면서 에너지가 넘치고. 선량해보이면서 악독하고. 불쌍해보이면서 위압적이어야 해.”

<오징어 서바이벌>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캐릭터인 할머니 캐릭터. 원래 드라마에서는 연기력으로 유명한 원로 배우를 고용했지만, 사람들에게 너무 잘 알려진 배우라 아무리 열연을 펼쳐도 ‘이미지가 안 맞는다’라는 말을 들었다.

엄청난 연기력. 그러나 이미지 소비가 크지 않은 노년의 여배우.

“연기는 잘 하는데, 작품은 별로 없어야 해. 이런 배우가 있긴 한가?

“응. 있어.”

그리고 한록은 이 역할을 아주 잘 소화할 사람을 알고 있었다.

“걱정 마. 이미 내가 연락 넣었어.”

“그게 누군데?”

임감독의 질문에 한록은 대답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문자를 보고 임감독에게 말했다.

[이팀장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영광이지.]

[-이연옥]

“우리의 슈퍼스타.”

**

김정재. 정우연. 박희수. 그리고-

“이연옥씨? 그래, 이거야! 완벽해!”

이연옥까지.

그렇게 <오징어 서바이벌>의 캐스팅까지 완료하고 나니, 이제 <식물>의 개봉까지 남은 시간은 4일이었다.

“보스턴에 세트 설치 시작 됐습니다.”

“LA 센트럴 측에서 이벤트 날짜 당길 수 없냐고 물어보네요.”

“오늘 THE SUN과 통화했습니다.”

“모든 극장에 세트 설치 완료됐습니다.”

하나, 둘 끝나가는 마지막 이벤트 작업.

“최과장 요즘 집에 들어가긴 하는 거야?”

“아닌 것 같아요. 근데, 그냥 냅두는게 나을 것 같아요.”

“왜?”

“지금 거기 장난 아니에요.”

“하긴. 마지막 영화니까 그럴만하지.”

“아뇨, 그 정도가 아니에요. 얼마 전에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 뭐라고 했는데?”

“‘내 커리어 전부를 여기에 걸었다. 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누구보다 큰 건을 준비중인 최과장.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팀장님. 이제 내일이면 개봉이네요.”

개봉이 하루 남은 이 시점.

“방금 미팅 끝났습니다.”

최과장이 한록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잘 끝났죠?”

“그럼요.”

한록에게 웃으며 답하는 최과장. 최과장은 한록에게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거기에는 최과장이 <식물>을 위해 자신의 인맥을 백방으로 활용해 만든 기회들이 담겨 있었다. 한록이 서류를 넘겨보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식물>. 이벤트. 최과장. 최과장이 만들어온 것들...

서로의 마지막을 기념하기엔 충분했다.

“내일이 오길 기다립시다.”

한록이 최과장에게 말했다.

**

그리고 다음날.

<식물> 삼부작이 전세계에서 동시개봉을 진행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한국 시간으로 5시가 되었을 때. 미국 전 지역의 개봉 첫날과 이틀차 스코어가 현차장에게 전해졌다.

“차장님! 뭐래요? 어떻대요?”

“몇만이래요?”

현차장의 주위로 몰려드는 해외팀 사람들과 최과장.

“잠시만!”

그러나 현차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짧은 대답을 남기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잠시 후. 한록의 사무실에 도착한 현차장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외쳤다.

“이팀장!”

오늘 미국에서 전해진 소식은-

“<식물>, 망한 것 같다.”

<식물>의 흥행부진이었다.

**

“1편은 반응 괜찮아. 입소문도 나고 있는 것 같고. 그런데 관객이 2,3편까지 유입이 안 되고 있어.”

‘아무리 재밌어도, 관객들이 영화 세 개를 연달아 봐줄까?’

모두가 우려했던 그 고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삼부작 동시개봉이라던 <식물> 현상황.JPG]

[아..이번엔 CK가 무리수를 뒀네요 ㅠ;]

[영화 재밌던데. 괜히 동시개봉해서 좋은 영화 망침.]

“이한록도 완벽한건 아니구만.”

“최윤일이 이번에 좀 무리했다고 하던데. 이렇게 돼서 어쩌냐.”

“사장님은 별 말씀 없으신 건가?”

“시간차 두고 개봉만 했으면 좋았을 거 같은데.”

“팀장님. 지금이라도 세트 판매를 할인해볼까요?”

“아니면 최과장님이 준비중이신 걸 당겨볼까요?”

“개봉 일주일이 가장 중요해요. 이때를 놓치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합니다.”

<식물>의 동시개봉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과, ENM에 도는 소문들. 거기에 불안해하는 해외팀까지. 한록의 귀에도 수 백명의 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한록의 대답은 단 하나였다.

“일정에 아무런 변경 없습니다. 이대로 진행합니다.”

바로 자신의 마케팅을 믿고 기다리는 것.

왜냐면, 아직 마케팅은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김유선.”

“네, 부장님.”

“<식물>, 제대로 진행 안 될 때 대비해서 뭐라도 생각해놔. 이한록한텐 말하지 말고.”

“...네.”

그렇게 모두의 의심이 쌓여갈 때...

[AM씨어터 보스턴 하버드 지점: <식물> 관람 이벤트 노선입니다.]

<식물>의 진짜 마케팅이 시작되었다.

**

<식물> 개봉 5일차.

미국의 보스턴에선 한 학생이 AM씨어터 보스턴 지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학생의 이름은 니아 바인스. 20대의, 정치적으로 리버럴 성향. 한국 문화와 영화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서감독의 팬인 하버드 학생이었다.

그녀가 오늘 AM씨어터 보스턴지점으로 가는 이유는 <식물>을 관람하기 위해서.

[<식물> 관람 이벤트-영화관에서 탈출하라.]

그리고 <식물>의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식물>의 상영이 끝나면, 영화 내용으로 퀴즈가 시작됩니다.]

[관람객들은 영화관이 있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퀴즈에 참여합니다.]

[퀴즈를 모두 풀고 영화관 탈출에 성공할시 첫 탈출자에게 1000달러가 지급됩니다.]

세자가 말을 타고 뉴욕 거리를 질주하던 <시험>에 이어, 슈퍼볼을 점령했던 <마지막 공연>의 광고까지. 영화보다 더 재밌는 마케팅을 하기로 유명한 CK에서 기획한 탈출게임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었다.

<무슨 퀴즈일까?>

<1000달러나 준다는 거 보면 꽤 어려운 퀴즈 같은데.>

<아무도 없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퀴즈를 풀라는 거지? 으. 무서워.>

아니나 다를까. 영화관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는 다들 <식물>과 탈출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근데 이거, 3편까지 다 봐야 풀 수 있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던데. 이벤트 페이지에서 1편만 봐도 참여할 수 있다고 했어.>

<다행이다. 엔딩만 차이가 있다던데 3편까지 보기는 좀 그래.>

‘그건 그래. 왜 굳이 비슷한 내용을 3개나 제작한 거지?’

사람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니아. <식물> 삼부작은 초반과 중반부는 비슷한 내용이며, 후반부가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영화를 세 번이나 볼 생각이 없었고, 그게 <식물>의 2,3편이 1편과 달리 부진을 겪는 이유였다.

[이건 세 편을 모두 봐야하는 영화입니다. 한 편만 봐도 완성된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세 편을 전부 보면 감상이 달라질 겁니다. 전부 보고 나면 제 말을 이해하게 될 거예요.]

니아가 좋아하는 한국영화의 정점이자 아시아의 희망이며 영화계의 샛별인 서지훈 감독이 했던 말.

하지만 니아는 냉철한 소비자이자 바쁜 하버드의 대학생이었고, 아무리 한국영화의 정점이자 아시아의 희망이며 영화계의 샛별이고 니아의 우상인 서지훈이 했던 말이라도 곧이 곧대로 따를 생각은 없었다.

‘좋아. 1편만 봐도 완성된 영화라 이거지?’

<‘식물’ 1편이요.>

그렇게 누구나 그렇듯 <식물>의 1편만을 선택한 니아. 니아와 관객들이 객석에 앉았고, <식물>의 1편이 시작되었다.

어느날 한국의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정체불명의 괴사건들과, 귀신들린 딸아이를 구하려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담은 공포영화 <식물>.

<식물>에는 세 명의 수상한 인물이 나온다.

-난 네 딸을 구하려는 거야.

주인공의 주변을 맴도는 젊은 여자.

-저 여자가 귀신이고 모든 사건의 범인이야.

주인공의 가족이 딸을 위해 부른 박수무당.

-나를 뭐라고 생각하지?

모든 일의 원흉이라 의심받는 일본인.

영화는 이 세명 중 누구도 믿지 못하게 흘러가고, 주인공은 이 세 명 모두를 의심하고, 믿고, 또 다시 의심한다.

‘그래! 저 여자가 신이구나!’

‘잠깐. 왜 여자가 딸을 죽이려는 거야?!’

‘정말 저 무당 말이 진실인가?’

‘저 일본인은 또 뭐지?’

‘뭐야. 아무도 못 믿겠어!’

그렇게 주인공과 관객이 모두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가면 안 돼!

결국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박수무당의 말을 믿는 것을 선택한 주인공.

그러나 결말은 사실 모든 일의 범인이 무당인 것처럼 진행되고, 결국 귀신에 쓰인 딸은 가족을 모두 죽인다.

영화에 대한 리액션이 좋기로 유명한 미국이지만, <식물>이 끝났을 때 극장의 반응은 아주 조용했다.

‘...너무 재밌잖아!’

바로 영화에 대한 엄청난 몰입감 때문이었다.

<...끝내주네!>

<그러니까, 여자가 한 말이 전부 진짜란 거지? 범인은 무당이고?>

<아냐. 확실히 그렇게 나온 건 아니었어.>

<젠장. 오늘 어떻게 혼자 자지?>

<2편은 무슨 내용인거야?>

<여자가 범인인 내용이라는데? 3편은 일본인이 범인인 내용이고. 결말만 다르대.>

<그것도 볼까?>

<결말만 다른 걸 굳이 보고싶지는 않은데...>

영화에 대한 얘기로 웅성거리는 사람들. 그렇게 사람들에게 아직 <식물>의 1편에 대한 여운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 그때...

<어?>

극장의 불이 모두 꺼지고.

<영화 다시 시작하는데?>

화면이 꺼진 스크린에 다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만해!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영화의 중반부. 여자의 말을 믿고 따르던 주인공이 여자가 자신의 딸의 목을 조르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 부분이었다.

주인공이 여자를 의심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장면.

-난 네 딸을 구하려는 거야.

그리고 여자의 대사.

여자의 대사가 끝나자 화면에 문제가 하나 나타났다.

[첫 번째 문제.]

한록이 제시한 <식물>의 이벤트. 영화관 탈출 대작전. 그리고...

[여자의 말을 믿어야 할까?]

관객을 주인공에게 완전히 동화시킬 방법.

[당신의 선택은?]

[믿는다-앞쪽 출구]

[믿지 않는다-뒷쪽 출구]

바로 관객들에게 주인공과 똑같은 선택의 순간들을 겪게 하는 것이었다.

[제한 시간 안에 선택을 완료해주세요.]

[10]

[9]

[8]

[7]

[6]

[5]

선택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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