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28화 (251/263)

내일 일찍 오세요, 팀장님!

“최윤일을 제당으로 보내겠다고?”

“네, 맞습니다.”

이미 끝난 얘기를 다시 꺼낸 한록. 한록의 말에 하태준이 눈썹을 까딱였다. ‘한번 말해봐라’라는 것이었다.

“최윤일 과장은 통계에 강한 사람입니다. 마케팅보다 기획에 어울리는 사람이고, 이제 시장 진입 단계인 제당으로 가면 훌륭하게 제몫을 해낼 겁니다.”

“그건 너보다 내가 잘 알아. 그 녀석이 미국 CK제당 공모전 입상자였고, 내가 직접 시상을 했으니까.”

한록의 말에 하태준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회귀 전, CK제당에서 해외진출 전략 공모전을 연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의 수상자가 최과장이었고, 하태준은 그때 최과장의 아이디어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왜 이렇게 최과장님을 아끼시는지 알겠군.’

그렇다면 더욱 최과장을 보내야한다.

“쓸데없는 얘기 치우고 본론만 말해. 그 녀석이 제당에 도움이 될 건 네 놈도 알고 있었을 거 아냐. 그런데 데리고 있겠다고 말하다가, 이제 와서 다시 보내겠다고? 그 이유가 뭐야.”

“지금 해외팀의 방향성은 최과장이 원하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지금은 ENM은 마케팅에 집중할 시기지, 최과장이 원하는 데이터나 전략 수립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닙니다. 제당에서 근무하는 게 최과장의 능력을 키우는데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그건 맞는 말이지. 이한록 너도 알고 있는데 최윤일 그 놈은 모르고 있는 건가.”

“본인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해외팀에 만족하지 못하고 팀을 떠나려 할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보내는 게 맞습니다.”

“고민 좀 했군.”

한록의 말에 하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과장과 CK그룹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사실 최과장은 제당으로 향하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한록 역시 최과장이 친구였다면 당연히 이직을 권유했을 것이다.

“그걸 로는 부족해.”

하지만 그럼에도 한록이 처음에 최과장을 보내려하지 않았던 이유.

“팀장으로서, 그 녀석을 보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냐?”

바로 자신이 이 팀의 팀장이기 때문에.

“네 놈들이 내 말에 반대해도 내버려둔 이유는 해외팀이 성공하길 바라서다. 그리고 네놈은 최윤일을 잡았지. 괜찮은 선택이었어. ENM을 털어 봐도 그 녀석 만한 놈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놈을 보내겠다고 하는군. 그 이유가 최윤일을 키워주기 위해서라.”

하태준의 실이 한록에게 다가왔다. 머리 위에서 한록을 내려다보는 하태준의 실. 한록이 몇 번이나 하태준의 말을 거역할 때도 느껴지지 않았던...

“이게 팀장으로서의 결정이냐?

실망이 느껴지는 실이었다.

**

한 시간 후, 해외팀.

9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최과장은 협의회의 답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때, 최과장에게 메시지가 한통 도착했다.

[kate: 윤일. 나 CK제당에서 오퍼 들어왔어.]

[kate: 너는 오퍼 거절했다며. 그게 사실이야?]

현재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과거에 자신과 CK제당의 공모전에 함께 참여했던 대학 친구 케이트의 연락이었다.

[YUNIL: 응. 지금 있는 곳에서 끝내야 하는 일들이 있어서.]

[kate: 제당에서 제안한 조건 확인해봤어? 2년간 리더들에게 독립적으로 프로젝트를 맡길 거고, 시도해보고 싶은 건 다 지원해주겠다고 했어. 거기에 책임도 묻지 않을 거라고 했고. 윤일도 그때 해보고 싶은 게 많다고 했잖아.]

[YUNIL: 지금은 여기서 해보고 싶은 게 더 많네.]

[kate: 음...너답지 않은 결정이네. 이 정도 규모의 회사에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건 이번이 유일한 기회일 거야.]

[YUNIL: 알지. 조언 고마워.]

[kate: 그래. 난 제당으로 옮길 생각이야. 한국 들어가면 보자.]

[YUNIL: 좋아. 들어오면 연락해.]

그렇게 끝난 친구와의 대화. 최과장이 핸드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좋은 기회지. 나도 알아.’

애초부터 해외팀에서 원하는 것을 다 이룬 후에는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던 최과장. 최과장 역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아주 크게 흔들렸다.

-식품으로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 미국 진출을 꿈꾸고 있다. 거기에 회장이 전폭적으로 지원을 약속한 2년간의 독립 프로젝트. 그곳의 리더가 될 수 있다.

<삼일의 삶>. <부산열차>. <도착지>. <마지막 공연>. 한록이 보여주었던 그 환상적인 도전과 성공들을 이제 자신의 방식으로 만들어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최과장이 바라는 ‘해외팀에서 원하는 것들’. <식물>과 <오징어 서바이벌>. 빅6에 버금가는 해외팀의 활약과, 한록의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이제야 막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타이밍이 아쉽게 됐지만, 어쩔 수 없지. 해외팀은 이것들을 끝내면 떠난다.’

자신의 욕망과 처음으로 애착을 가진 팀. 최과장은 그 사이에서 스스로 떠날 시기를 결정했고, 어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kate: 잘 생각해봐, 윤일.]

‘케이트. 생각은 진작에 끝났어.’

그렇게 최과장이 친구의 메시지를 보며 생각할 때. 하태준과의 대화를 마친 한록이 사무실에나타났다.

“과장님. 잠시 얘기 좀 하시겠습니까.”

“이 시간에 대화하자는 거 불법 아닌가요?”

“지금 해야하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용건을 꺼냈다.

**

한록의 사무실로 이동한 최과장과 한록. 최과장이 한록의 맞은편 소파에 앉자 한록이 입을 열었다.

“제당에서 모집 공고 올라온 것 알고 계십니까.”

“아,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 알겠네.”

한록이 말을 꺼내자마자 최과장이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록에게 말했다.

“공고 올라온 거 봤고요. 처음 제가 제안 받은 조건보다 떨어집니다. 애초에 회장님 명령 거절했을 때부터 결정내렸어요. 저 3년 동안은 이직 안 합니다.”

최과장의 명쾌한 대답.

“아뇨. 지금 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한록의 답.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방금 전에 회장님을 뵙고 왔습니다.”

“제 얘기 하셨어요?”

“네. 과장님이 제당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해외 팀은 아직 과장님을 활용할만한 상황이 아니라고요.”

그 말에 최과장이 알겠다는 듯 한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록에게 물었다.

“91 스튜디오 때문이죠? 그때 제가 원하는 자료가 안 나와서.”

“네. 맞습니다.”

“팀장님. 그건 저도 아쉬워요. 솔직히 실망도 좀 했고요. 팀장님 말이 맞아요. 해외팀 업무들은 제가 원하는 거랑은 거리가 좀 있어요. 저는 기획 쪽. 그리고 B2B에 가깝고, 해외팀은 세일즈니까.”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최과장. 최과장이 아무리 만능이라 해도, 해외팀은 최과장의 실력을 다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그래도 그런 것 때문에 팀을 떠날 생각은 없어요.”

결국 이 곳에 남겠다는 것.

“우리 팀...내 팀이니까. 제대로 자리잡는 건 보고 가야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록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은 최과장의 실. 그 실에 한록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리고 실을 보고 있으면, 역시나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네. 우린 팀이죠.”

“그러니까 다시는 어디 보내겠단 소리 하지마세요.”

“아뇨. 과장님. 가셔야 합니다.”

“대체 왜요.”

“해외팀은 과장님의 능력을 키워줄 수 없어요. 과장님이 제대로 일을 배우시려면 제당으로 가셔야 합니다.”

“팀장님. 말씀은 감사한데요. 그건 제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죠. 저 하나 때문에 팀에 문제를 만드시면 어떡합니까.”

“제당으로 가세요, 과장님. 거기서 과장님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시고, 제대로 성장해 보세요.”

“팀장님.”

하태준과 같은 걱정을 하는 최과장과-

“그 뒤에 다시 돌아오세요.”

한록의 답.

그 말에 최과장이 놀란 얼굴로 한록을 바라보았다.

“해외팀은 지금 과장님을 제대로 키워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해외팀에는 과장님 같은 사람이 필요해요. 지금도 그렇고, 5년 후, 10년 후에는 더 그렇겠죠. 다시 한 번 돌파구가 필요할 때. 규모가 더 커지고 전략이 필요해질 때.”

해외팀의 팀장으로서 한록이 내린 결정. 그것은-

“과장님이 이 팀에 가장 필요한 순간에, 그때 돌아오세요.”

미래를 보는 것이었다.

“3년 뒤에 이직 같은 얘기는 꿈도 꾸지 마세요. 진짜 과장님이 필요한 건 그때부터일 테니까요. 제당으로 옮겨서 능력을 더 키우시고, 그때부터 해외팀에서 근무하시는 겁니다. 그때쯤이면 과장님도 승진 하셨겠죠. 그때는 아예 전략부를 만들어서 과장님께 맡길 겁니다. 마케팅이 아니라 사업 기획쪽으로요. 제당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 확실히 배우고 오시기 바랍니다.”

“...대체 어디까지 보고 계신거래?”

최과장에게 차근차근 해외팀의 청사진을 말하는 한록과, 이 상황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미소를 짓는 최과장.

최과장은 이한록이란 사람이 대체 어디까지 바라는지, 대체 어디까지 팀을 키울 생각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제가 안 돌아오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돌아올 수 밖에 없으실 겁니다.”

이 사람이 한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한록의 말에 최과장은 생각했다. 자신이 이 사람의 팀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자신이 생각하던 책임감. 호기심.

-틀렸다.

자신이 이 사람의 팀에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동안 저는 과장님이 돌아올 만한 팀을 만들어 놓을 거니까요.”

이 사람이 보여줄 미래에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제롬. 하태준. 그간 최과장이 받아온 수많은 스카웃 제의. 그리고...그 어느 때보다 매력적인 제안.

그 제안에 최과장이 눈을 감고 한숨을 한번 쉬더니 말했다.

어디든 떠날 수 있는 남자, 최과장.

“...3년. 그 안에 돌아올게요.”

그 남자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한 약속이었다.

**

같은 시간. 하태준과 최경준은 CK ENM의 사장실에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회장님. 이한록 팀장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태준에게 묻는 최경준. 한록은 하태준에게 얘기를 하러가기 전, 이미 최경준과 하정엽에게 보고를 마친 상황이었다.

“너한테 이미 말이 올라간 모양이지?”

“네. 회장님께 보고 드리기 전 먼저 허락을 구하더군요.”

“하정엽은?”

“사장님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회장 앞에서 말을 바꾸는 걸 내버려뒀다고? 하정엽 그 녀석은 무슨 생각인 거냐?”

“사장님은...”

한록이 ‘인사발령에 대해 회장님께 다시 얘기하고 싶다’며 자신의 청사진을 얘기할 때. 그때 하정엽이 했던 말.

-회장님이 좋아하시겠군요.

최경준이 약간 미소를 지으며 하정엽의 말을 전했다.

“회장님이 좋아하실 것 같다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일부러 하태준에게 하정엽의 말을 전한 최경준. 그 말에, 하태준이 방금 전 한록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게 팀장으로서의 결정이냐?

-네. 그래야지 해외팀의 전성기에 최과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최과장을 제당에 보내겠다.’

‘제당에서 성장시켜서, 가장 고급 인력이 되었을 때 해외팀으로 데려오겠다.’

-지금 내 회사에서 인력을 빼가겠다고 말하는 거냐?

-네, 맞습니다.

회장이 주도하는 신사업. 그걸 자신의 팀원을 교육시키는 용도로 활용하겠다는 전략. 거기서 최과장을 빼오겠다는 포부와, 최과장이 해외팀으로 돌아올 거란 확신. 그 모습은, 확실히...

-괜히 팀장을 단 건 아니군.

꽤 흡족한 모습이었다.

“그래. 꽤 마음에 드는 소리를 했지. 하정엽 그 놈도 보는 눈이 좀 생겼군.”

한록, 그리고 하정엽의 결정이 만족스러운 듯한 하태준. 하태준이 최경준에게 말했다.

“네 생각은 어떠냐.”

그 말에 최경준은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모두의 반응을 생각했다.

-절대 못 보낸다고 해야죠.

‘억지로라도 최윤일을 잡아둬야 한다’라고 말하던 정부장.

-...그건 최과장이 결정할 일입니다. 억지로 남아봤자 다른 회사로 떠나버릴 거예요.

‘보내주는게 맞다’던 현차장.

-억지로 붙잡을 필요는 없어. 책임감 때문에라도 이곳에 남게 될 거니까.

최과장이 팀에 남을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던 자신.

-최과장을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필요할 때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리고 한록의 결정.

‘시간이 참 빠르군.’

선배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던 한록. 그 모습에 최경준은 한록이 정말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과장과의 트러블에 전전긍긍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한록은 자신만의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상사가 되어있었다.

“제 생각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해외팀은 이한록 팀장의 팀이니까요.”

“...그래.”

그런 생각을 담은 최경준의 말. 그 말에 하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태준, 그리고 최경준. 두 사람이 한록을 팀장으로서 인정한 이 순간.

-이 일은 이한록 팀장이 알아서 하게 두세요.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한록을 알아본 사람.

그런 생각을 하며, 최경준이 하태준에게 말했다.

“회장님. 제법 잘 크지 않았습니까.”

“누가. 이한록이? 하정엽이? 아니면 해외팀이?”

“그 모든게...”

한록. 하정엽. 해외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자라나는 새싹들. 아니, 이제는...

“영화계가 말입니다.”

뒤를 맡길 수 있는 사람들.

최경준의 말에 하태준이 아무 말 없이 창문을 바라보았다. 최경준과 함께 한국 영화를 일궈오던 시절들. 그 시절들이 이제는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하태준. 그가 잠시 후...

“그럴지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최과장님이 3월에 CK제당으로 이동하십니다.”

그리고 며칠 후. 드디어 최과장의 이직이 확실시 되었다.

“3월이면...<식물> 시작 직전에 가겠는데? 어떡하지?”

문제는 예상보다 추운 겨울 날씨에 <식물>의 촬영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남은 기간이 한달이라뇨. 팀장님.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감독은 ‘한 달 안에 촬영을 끝낼 수 있겠냐’는 한록의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고개를 저었다.

“장비는 됐다 안 됐다하고, 스탭들도 8시간 이상 근무하긴 어렵고...예산이 두 배가 되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리 짧아도 6주예요.”

“팀장님. 제가 이동을 미룰까요?”

몇 번이나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는 이감독과, 심각한 얼굴로 한록에게 제안하는 최과장. 그러나 한록은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정도는 제가 해결해드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한록의 말에 최과장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한록이 명쾌하게 답했다.

세상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돈으로요.”

한록은 그걸 가져올 수 있었다.

**

“‘<식물>의 추가 예산을 세배로 설정하겠다.’라고 써있군요.”

그날, 하정엽을 찾은 한록. 하정엽이 한록이 내민 결재서류를 읽었고, 한록을 바라보았다.

“안 됩니다. 신인 감독의 영화에 이 정도 돈을 쓸 순 없습니다.”

누구나 예상했던 거절. 그리고 한록이 내민...

“...이건 또 뭡니까.”

“사장님께서 주신 계약서입니다.”

하정엽과의 백지 계약서.

“하...”

한록이 해외팀을 만들 당시, 하정엽이 제안했던 백지계약서. 그 안에는 여러개의 조건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해외팀의 전권을 이한록에게 맡긴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어.”

그렇게 말하며, 하정엽은 한록이 내민 서류에 싸인을 해주었다.

**

“...예산이 세 배요?!”

“한 달 안에 가능하시겠습니까?”

“당연하죠! 한 달, 아니, 삼주면 됩니다!”

역시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 예산이 말라가는 촬영 후반부. 갑자기 더해진 추가 예산에 <식물>의 촬영장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주가 지났을 때.

“컷! <식물> 촬영 종료합니다!”

<식물>의 촬영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다시 또 2주가 지났을 때.

“팀장님. <식물> 가편집본 나왔습니다.”

“감독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여기서 후보정만 넣고, 컷 편집은 안하실 거라고 하네요.”

“그럼 내용상으로는 이게 거의 최종본인 거죠?”

“네. 예고편도 이 버전으로 만들면 된다고 합니다.”

“그럼 거의 끝났네요.”

마케팅에 들어가기 위한 모든 절차가 종료되었다.

“협의회에서 전화왔습니다. 개봉 날짜 정확히 픽스 됐어요.”

<식물>의 가편집본이 완성된 날. 그 날도 최과장은 늦게까지 남아있다가 소식을 전했다. 최과장의 말에 한록이 가방을 챙기며 답했다.

“과장님. 내일부터 열심히 일해야 하니까 오늘은 이만 들어갑시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후보정만 남은 지금. 이제 남은 것은 마케팅이었다.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한 둘. 최과장이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인사발령 공고문을 보고 말했다.

“이게 마지막 영화네요.”

그리고 최과장의 말에 한록이 답했다.

“과장님이 돌아오시기 전의 마지막 영화죠.”

“하!”

한록의 단호한 말에 최과장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후,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최과장이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식물>. 최과장이 떠나기 전의 마지막 영화.

“내일 일찍 오세요, 팀장님!”

그 영화의 마케팅이 내일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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