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25화 (248/263)

...메리 크리스마스?

**

크리스마스 이브. 퇴근 후, 춘천으로 향한 한록.

[8시쯤 도착할 것 같아요.]

춘천에 도착했을 때. 한록은 오늘 가족들에게 오기로 한게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오빠!”

“한록아.”

어머니랑 한서가 아파트 앞에서 한록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왜 내려와 계세요. 날도 추운데.”

“이한록씨 얼굴 빨리 보고 싶어서 그랬다!”

한록이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후 정말 오랜만에 다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 그 사실에 어머니와 한서가 잔뜩 들떠서 한록을 기다리고 있다.

‘현차장님한테 감사하다고 해야겠다.’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올라가며, 한록은 다시 한 번 팀원들에 대한 고마움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음날. 크리스마스 당일.

한록은 10시가 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엄마. 오빠도 딸기 먹으라고 깨울까?”

“냅둬. 피곤할 거야.”

거실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말소리와 커피냄새. 점심의 햇살과 따뜻한 이불에서 즐기는 기분 좋은 나른함까지.

‘연휴가 이런 거군.’

‘...좋네.’

한록은 오랜만에 즐기는 여유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두시간 뒤. 한록과 가족들은 강원도의 유명한 중식당으로 향했다.

“많이 드세요.”

“그래. 너희도 얼른 먹...”

“안 돼! 사진 찍어야 해.”

“이제 됐어?”

“안 돼! 이제 나 찍어줘.”

“이제 먹어도 돼?”

“안 돼! 엄마. 엄마도 찍어. 오빠가 사준 스카프 해. 그리고 성수 아줌마한테 자랑해!”

“그래, 자랑해야겠다. 다같이 한 장 찍자.”

사이좋게 사진을 찍는 한서와 어머니. 그리고 어색한 얼굴로 미소를 짓는 자신.

“성수한테 한록이 왔다고 자랑해야지. 그 집 애들은 이번에 집에 안 왔다더라.”

아마 어머니는 비싼 밥과 선물들보다는 두 자식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더 자랑스럽고 뿌듯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한록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끼에 20만원이 넘는 코스요리. 그보다도 더 즐거운, 모든 가족이 행복한 시간.

‘그래.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

한록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

“이제 이한록의 시대는 끝났다. 이한서의 시대가 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이한서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특별 이벤트가 남았단 뜻이지!”

식사를 마친 후, 아주 비장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하는 한서. 그러고보니 한서가 며칠 전 ‘3시부터 6시까지는 비워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 따라와!”

“어디 가는 거야. 예약 안 해도 되는 곳이야?”

“내가 이미 했어!”

그렇게 한서가 자랑스럽게 가족들을 끌고 간 곳은...

[<시험> 4dx관]

[15: 25~17:30]

바로 <시험>이 재개봉중인 영화관이었다.

“어머니. 이거 안 보셨어요?”

“당연히 개봉하자마자 봤지.”

“그런데 또 봐도 괜찮으세요?”

“응. 이건 너랑 보는 거잖니.”

그 말에 한록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다.

하루 종일 영화 얘기를 하고, 일 년에 몇 개씩 영화를 개봉하는 이 직업. 하지만 정작 가족들과 영화를 같이 본 건 너무나 오랜만의 일이었다.

자신이 담당한 영화들이 걸려있는 영화관. 그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 아주 오랜만에 겪는 일에 한록은 어색한 기분으로 영화관에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담당한 영화에 흠뻑 빠진 가족들을 보며 쑥쓰러움과 뭉클함, 그리고...

“오빠아! 너무 재밌어!”

그 어느 때보다 큰 뿌듯함을 느꼈다.

“오빠. <시험> 포스터 앞에 서 봐.”

“왜?”

“친구들한테 오빠가 만든 거라고 자랑하게.”

“어머. 나도 성수한테 보내야겠다.”

자신의 영화. 그리고 자신을 자랑스러워 해주는 가족들의 모습. 그 모습에 한록은 생각했다.

“이한서. 내 크리스마스 선물 뭐야.”

“...내가 오빠한테 줘야 해?! 오빠 서른 한 살인데?!”

“나이가 뭐가 중요해. 나도 줘.”

“뭘 원하는데? 근데 나 용돈 별로 안 남았어...”

“농담이야. 안 줘도 돼.”

“진짜...? 뭐 안 사줘도 돼?”

“응.”

“진짜로?”

“응. 이미 많이 받았어.”

“내가 뭐 줬는데...?”

“그런게 있어.”

이보다 더 행복한 크리스마스는 없을 거라고.

**

같은 시각.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현차장.

[이한록: <사진>]

[이한록: 춘천에 있는 시험 재개봉관입니다. 재개봉도 잘 끝날 것 같네요.]

“어? 이팀장도 영화 보러갔네.”

영화계에 일하는 사람의 본능인 것일까. 그 역시 크리스마스를 영화관에서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현차장을 오늘 영화관으로 부른 영화는 CK의 영화가 아니었다.

“은서야. 이거 봐, 이거. 이거 아빠네 회사에서 만든...”

“뭐야. 징그러워.”

“...그럼 이거 봐봐! 이거, 피아노 있는 거. 이것도 아빠가...”

“아빠. 빨리 미니언즈 인형 사줘.”

“은서야. 여기 영화들 중 대부분이 아빠네 회사에서...”

“아빠네 회사는 미니언즈 같은 거 안 만들어?”

“어어...없어.”

“그럼 됐어. 나 이거 사줘.”

단호한 말과 함께, 가판대의 미니언즈 인형을 끌어안는 은서. <시험>이 얼마나 명작이든. <마지막 공연>이 해리포터를 이겼든, 말든. 오로지 미니언즈 얘기만 하는 은서의 모습을 보고 현차장의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여보. 다음엔 미니언즈 하나 만들어야겠네.”

그리고 그 말에 현차장은 굳은 다짐을 했고, 해외팀의 단체 대화방에 글을 하나 남겼다.

[현주훈: 내년엔 미니언즈다!]

**

[현주훈: 우리도 온 가족이 다 함께 볼 수 있는 영화 하나 만들자! 미니언즈 같은 거!]

[이한록: 확실히 해외팀 영화 중에 크게 대중적인 영화는 없었죠. <도착지>가 그나마 그런 쪽이었죠.]

[현주훈: 그러니까! 다음엔 <도착지> 같은 거 하나 가자! <도착지> 미니언즈 버젼!]

[이한록: 왜 미니언즈에 집착하시는 거죠?]

[김유선: 차장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현주훈: ...미니언즈 아니어도 돼. 암튼 애니메이션!]

[이한록: 애니메이션 좋죠. 그런데 헐리웃이랑 한국 감성을 동시에 맞출 수 있으려나 걱정되네요.]

크리스마스.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휴가를 보내면서, 동시에 일 생각을 놓지 못하는 해외팀의 사람들.

[최윤일: 저기요. 두 분 휴가가 아니라 현장 조사 나가셨나요?]

“유선씨. 이 분들 왜 이러신대요?”

현차장과 한록의 메시지에 최과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리틀 한록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근데...맞는 말이지 않나요? 우리도 온가족이 다 함께 볼 연말 대박작 같은 거 하나쯤 있으면 좋을텐데.”

“이 팀에는 이팀장님 바이러스가 돌고 있는 게 분명해요. 전염병이다.”

한록과 너무 닮은 유선의 대답에 최과장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유선에게 말했다.

“그런 거 하나 있으면 재밌긴 하겠네요. 저도 그런 영화는 맡아본 적이 없어서.”

“그쵸? <식물>이랑 <오징어 서바이벌>까지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그래도 다들 만들고 싶어하시잖아요. 언젠가는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요.”

“음...”

유선의 말에 최과장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임원코스를 밟느라 전사를 돌아다니고 있는 최과장. 최과장은 2년 이상 근무를 한 곳이 ENM이 처음일 정도로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유선이 말하는 ‘언젠가’와 ‘다들’에 자신이 들어갈지, 아닐지를 확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러세요, 과장님? 이런 영화는 별로신가요?”

“아니에요.”

하지만, 어쩐지...

“저도 꼭 만들고 싶네요.”

유선이 말하는 그 미래에 자신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리고 연휴가 모두 지난 월요일.

“좋은 아침입니다, 차장님.”

“아니야. 회사원에게 좋은 아침이란 건 존재할 수 없어...”

한록의 인사에 현차장이 우울한 얼굴로 답했다.

“왜 오늘이 월요일인거지...? 왜 대체공휴일이 아닌 거야...?”

“오늘 날씨 너무 춥더라. 진짜 일어나기 힘들었어.”

“어제 가족분들이랑 뭐하셨어요?”

아직 연휴의 들뜬 분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해외팀 사람들. 해외팀 사람들은 서로 크리스마스를 보낸 얘기를 하며 잡담에 빠져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의외의 얼굴올 보고 놀라서 말했다.

“어...!”

“이한록 팀장님. 본부장님이 찾으십니다.”

최경준의 비서인 장비서가 사무실에 방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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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이 식품사업 확장을 결정하셨네. 앞으로 5년간 미국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할 거라고 하시는군.”

“회장님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그래. ENM의 영화들이 미국에서 성공하는 걸 보고 자극을 받으신 것 같아. 식품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신 거지.”

회귀 전보다 조금 이르게 식품 사업 확장을 얘기하는 최경준. 한록은 최경준의 이어질 말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최윤일 과장이 CK 제당으로 발령받았네.”

드디어 이별의 순간이 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CK제당으로 보내란 말은 아니셨네. 지금 해외팀이 아주 중요한 시기란 건 회장님도 알고 계시니까. 발령 시기는 자네와 얘기를 해보겠다고 하시더군.”

한록과 직접 얘기를 하겠다는 하태준의 말. 회장이 일개 임원의 의견을 인사에 반영한다고 말한다. 엄청나게 이례적인 제안이었다. 지금 한록, 그리고 해외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말이었다.

“최윤일 과장에게도 얘기가 들어갔을 거야. 그쪽과 먼저 얘기해보게.”

“네, 알겠습니다.”

한록이 최경준에게 답했다.

**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한 한록. 한록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예상했던 일이야. 오히려 내 생각보다 늦게 발령이 났군.’

회귀 전, 최과장 이보다 훨씬 이전에 하정진의 CK기획으로 발령이 났다. 그러나 지금은 CK기획이 아닌 회장의 CK제당으로, 그것도 한참 늦은 시기에 발령이 났다. 최경준의 말처럼 하태준이 해외팀을 위해 상당히 편의를 봐준 것이었다.

‘그래. 해외팀도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

이제는 팀의 주요 인력이 빠진다고 해도 수습이 가능한 상황. 한록 역시 언젠가 최과장이 떠날 걸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대비책을 세워둔 후였다.

‘...이 정도면 보내줄 수 있다.’

아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최과장이 떠나도 해외팀은 곧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팀장님.”

그때 누군가 한록의 사무실을 찾았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사람은-

“네, 과장님.”

바로 오늘 사건의 주인공 최과장이었다.

“팀장님. 인사 발령 얘기가 들으셨습니까?”

“네. 들었습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남아준 게 고마운 거야.’

지금 제작중인 <식물>과 <오징어 서바이벌>이 걱정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최과장을 잡아둘 수는 없다. 이게 어차피 정해진 미래라면 한록은 최과장이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방식으로 최과장을 보내줄 생각이었다.

“과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최대한 의견을 맞춰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팀장님.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 드릴까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여기 남고 싶단 말입니다.”

최과장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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