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14화 (195/263)

침묵은 지루하다.

한록이 유선에게 캐치프라이즈를 부탁하며 한 말이 있었다.

“<마지막 공연>은 무성영화의 대표같은 영화가 될 겁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사람들은 <마지막 공연>을 보러오지 않을거예요.”

“어...왜 그런가요?”

“요즘 같은 세상에 무성영화를 보러 올 사람은 없으니까요.”

“아...”

한록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유선. 유선이 한록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성 영화란 걸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만들어야 할까요?”

“아뇨. 무성영화란 점을 강조해주세요.”

“그럼 사람들은 더 <마지막 공연>을 보러오지 않을 텐데요.”

유선이 한록에게 합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한록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무성영화를 보고 싶어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

하프타임 공연이 끝나고 시작 된 광고들.

[오, 이번엔 애플이군.]

[페이스북 광고는 처음인 것 같네.]

슈퍼볼만큼이나 이슈가 되는 슈퍼볼의 광고들. 사람들은 집에서, 그리고 전광판으로 광고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광고가 중반쯤 진행되었을 때. 집에서 슈퍼볼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화면이 다시 중계화면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화면은 경기장의 전광판을 비추었다.

전광판에는 <마지막 공연>의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혹시 무성영화를 볼 생각이 있나요?

슈퍼볼에 입장하는 관객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시작된 <마지막 공연>의 광고. 턱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가 리포터의 질문에 답했다.

-아니.

-왜죠?

-지루하잖아. 두 시간 동안 입 다물고 있는걸 왜 봐야해?

[오, 나잖아!]

객석에 앉아있던 남자, 빅터가 전광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은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봤지? 다들 무성영화 같은 건 관심 없다고.]

[나 혼자 보러 갈 테니까 그만해.]

빅터의 말에 짜증을 내는 여자친구 캐시. 그러나 <마지막 공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빅터만이 아니었다.

-아뇨.

-굳이. 소리가 없다면 재미 없을 것 같아요.

-글쎄요. 지금은 별로 보고 싶지 않네요.

<마지막 공연>을 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반응.

[..어?]

그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캐시가 무언가를 보고 말했다. <마지막 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끝나고, 화면은 이제 다른 장면을 비추고 있었다.

그건, 바로...

[빅터. 저거 봐봐.]

[...저게 뭐지?]

<120>

<119>

<118>

<117>

.

.

.

[카운트다운이잖아.]

검은 화면에 표시된 카운트 다운.

그리고, 그 밑에 나타난 글자.

-침묵이 지루하다.

-정말 그런지 확인해볼까요?

그건 바로 무성영화가 슈퍼볼의 관중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이었다.

**

[비욘세라니. 내가 비욘세의 공연을 보다니!]

[젠장. 3점이나 뒤지고 있잖아.]

[샤키라가 날 봤어!]

[존. 혹시 술 마셨어? 운전은 어떻게 하려고?]

[우리팀 놈들은 다 멍청이야!]

경기와, 세계 최고 가수들의 공연. 그걸 보고 흥분에 가득 차서 떠들던 관중들.

[저게 뭐지?]

[폭탄이라도 설치한 건가?]

[대체 무슨 광고야?]

[왜 아무 소리도 안 나와?]

[이거 <마지막 공연> 광고 같은데.]

그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전광판으로 몰려들었다.

<100>

<99>

<98>

<97>

<96>

그리고 그 와중에도 카운트다운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다.

[...진짜 뭐지?]

캐시에게 속삭이는 빅터.

[왜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거야.]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옆자리의 남자.

<50>

<49>

<48>

<47>

<46>

<45>

.

.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흐르는 카운트다운.

아무것도 없는 검은 화면. 조금씩 흐르는 시간들. 줄어드는 카운트 다운의 숫자.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들. 그리고.

[...왜 아무도 말을 안 하는거야.]

어느새 조용해진 슈퍼볼 경기장.

‘말도 안 돼.’

경기장은 관중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전광판을 지켜보느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들려오는 것은 오로지 옆사람의 숨소리. 그러니까.

5만명이 만들어낸 침묵의 소리였다.

‘...이럴수가 있나?’

5만명의 침묵. 그 압도적인 고요함에 빅터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분명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건 침묵 뿐인데.

그런데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5>

<14>

<13>

<12>

<11>

<10>

카운트 다운은 이제 10초대로 진입해있었다.

5만명의 침묵. 그 압도적인 고요함에 빅터는 숨을 죽이고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이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이 침묵이 끝나면.

그렇다면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10>

<9>

<8>

<7>

<6>

<5>

카운트다운은 5초대로 진입했고. 빅터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으며.

<4>

<3>

<2>

<1>

[...저거, 나잖아.]

화면에 자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

화면에 나타난 것은 객석에 앉은 빅터. 한나. 라키. 관중석에 입장하며, ‘무성영화는 보고싶지 않다’고 말했던 사람들이었다.

-침묵은 지루하다. 정말 그랬나요?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천천히 관중들의 얼굴을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와 그 밑의 자막. 인터뷰에 응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5만명이 만들어낸 침묵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무성 영화]

[그리고 <마지막 공연>.]

화면에는 단 두 문장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오로지 침묵을 위해 600억을 태운 광고가 끝났다.

[이게, 대체 무슨...]

관중들은 여전히 입을 벌리고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광고를 지켜본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반응을 하고 있었다.

[루이스. 윤일입니다. 지금 기사 올려주세요.]

[CK ENM 현주훈입니다. 영상 업로드 부탁드립니다.]

“CK ENM 김유선 주임입니다. 지금부터 바이럴 진행해주세요.”

하지만 해외팀은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슈퍼볼 광고가 끝나는 것에 맞춰서 <마지막 공연>에 대한 기사와 방송을 내보낸 해외팀. 해외팀의 지시에 미국의 방송사, 그리고 기자들이 즉각 기사를 올려보내기 시작했다.

<2분 30초의 침묵. 그리고 무성 영화의 부활.>

<슈퍼볼의 그 광고. 무슨 영화인지 궁금하다고?>

<캐서린. 한국영화 ‘마지막 공연’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할 거란 말이 나오고 있는데요.>

<‘마지막 공연’이...>

<서지훈 감독의 영화가->

<이번 광고는 무성 영화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지금이다.’

그리고 한록은 사무실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30분이면 된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 광고를 지켜봤다. 과연 이 광고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걸 확인하기 위해선 30분이면 충분했다.

한록은 눈을 감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해리포터를 이길 수 있을까.’

‘광고가 효과적이었을까.’

‘메세지가 잘 전달 됐을까.’

‘사람들이 ‘침묵’을 받아들였을까.’

‘과연 이 마케팅이 성공할까.’

“팀장님!”

그리고 침묵 속에서 정확히 30분이 지나갔을 때. 유선이 한록의 사무실로 뛰어 들어와 외쳤다.

“<마지막 공연>, 미국 전 지역에서 매진입니다!”

**

[이거 영화 광고인거지? 그렇지?]

[이 영화 제목이 뭐라고?]

[대체 무슨 광고야. 끝내주잖아!]

<마지막 공연>의 광고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람들은 경기장에서, 자신의 집에서 <마지막 공연>의 광고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침묵이 끝난 순간.

“우리 저거 보러가자!”

바로 <마지막 공연>의 예매를 시작했다.

[이번 슈퍼볼의 하이라이트는 이거지.]

[경기보다 더 재밌는 광고였어.]

[ㄴ너희 팀 졌지?]

[무성영화의 장점은 엄청난 몰입감이죠. <마지막 공연>이 그걸 제대로 보여줬네요.]

[슈퍼볼에서 사람들을 침묵시킨다니. 대단한 장면이었어요. 앞으로 무성영화가 꽤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맞아요. 전 세계의 감독 꿈나무들이 이 광고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거예요.]

[나는 영화학과 학생이야. 오늘 <마지막 공연> 광고를 보고 너무 감동받았어. 내 첫 영화도 꼭 무성영화로 만들거야.]

[ㄴ안돼. 그만. 제발.]

[ㄴ벌써 이런 놈이 나오다니.]

[ㄴ오, 이런. 3년만 지나면 재미 없는 무성 영화가 잔뜩 개봉하겠구만.]

[이건 서지훈 감독이 책임져야 할 원죄야.]

[이게 그 영화야? 그 무성 영화?]

[해리포터를 이기니 어쩌니 하더니, 말도 안 되는 허세는 아니었군.]

[사실 난 <마지막 공연>이 개봉할때부터 기대하고 있었다구.]

[ㄴ나도 마찬가지야.]

[ㄴ나도. 서지훈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기대 이상이지.]

[ㄴ역시! 좋은 영화는 다들 알아보는 법이야.]

[ㄴ거짓말 좀 하지마. 너희가 다 보러갔으면 관객 수가 이 모양은 아니었을걸?]

[존. 슈퍼볼 광고 봤어요?]

[봤지. 이번 광고포럼에서 상 탈 것 같던데. 어디서 만든 광고야?]

[그거 광고사가 아니라 영화사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거래요.]

[뭐? 젠장. 이제 영화사랑도 싸워야하는 거야?]

미국의 거의 모든 사이트를 뒤덮은 <마지막 공연>에 대한 얘기들. 영화계 사람들. 일반 대중. 광고 업계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공연>과 그 광고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슈퍼볼이 끝났을 쯤엔...

<‘마지막 공연’. 이틀 연속 전석 매진.>

슈퍼볼 다음날과, 그 다음날까지 <마지막 공연>의 모든 상영관이 매진 되었다.

[<마지막 공연>이 13,14일 모든 지역에서 매진되었다. 이는 <어벤져스>시리즈 이후 5년만에 일어난 신기록이다.]

[슈퍼볼을 침묵시킨 영화, <마지막 공연>.]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영화.]

이틀 연속 전석매진. <어벤져스> 시리즈 이후로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일과 600억짜리 광고에 미친 듯이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영화, 연예계에 관련된 모든 기사가 <마지막 공연>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과연 이 영화는 <해리포터>시리즈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마지막 공연>은 정말로 해리포터의 라이벌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

그날 저녁. 미국의 한 연예계 뉴스.

<‘마지막 공연’이 슈퍼볼의 모든 광고를 이겼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정말 <해리포터>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몰라요. 여기보세요. 전부 ‘마지막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입니다. >

TV 화면 속에서 리포터가 숨가쁜 목소리로 현장 상황을 전달했다. 리포터의 뒤에는 <마지막 공연>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이고 있었다.

[과연, 제롬이 말한대로네요.]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한 사람.

[한은 정말 놀라운 사람이군요.]

닉 해리스가 제롬에게 말했다.

닉의 말에 제롬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TV를 끄더니 닉에게 말했다.

[한 시간 전에 한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슈퍼볼. 헐리웃과, 미국의 광고계까지 뒤흔든 한록의 광고. 그걸 만들어낸 장본인이 한 말을 떠올린 제롬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닉에게 말했다.

-제롬. 재밌으셨습니까.

-네. 좋은 광고였습니다.

-벌써 재밌으셨다니, 저를 너무 얕보시는군요.

[시작은 지금부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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