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13화 (194/263)

600억을 태운 광고가 송출되었다.

‘해외팀이 슈퍼볼 광고를 따왔다’라는 소식에 CK ENM 전체가 뒤집어졌다.

“슈퍼볼? 진짜 슈퍼볼이라고?”

슈퍼볼.

미국 미식축구 리그의 결승전을 뜻하는 말이었다.

연예인. 각계 고위층. 아니, 대통령까지 찾아오는 미국 최고의 이벤트. 원래는 2월에 개최되어야 하지만, 올해는 전세계에 퍼진 전염병 때문에 개최가 9월로 밀린 상황이었다.

슈퍼볼 중계의 시청률은 40%였고, 그 중간에 삽입되는 광고들 역시 어마어마한 단가를 자랑했다.

슈퍼볼 광고의 가격은-

“올해는 얼마래?”

“30초에 60억.”

“그러면...”

“1초에 2억.”

1초에 2억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광고. 그럼에도 전세계의 기업들이 슈퍼볼 광고를 가져가기 위해 돈을 싸들고 슈퍼볼의 문을 두드린다. 최과장은 그 와중에 슈퍼볼의 광고를 따온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가져왔대? 계약 반년 전에 끝났을 텐데?”

“얼마 전에 UI 소프트가 파산했잖아. 그거 듣자마자 가서 광고 넘기라 했대. 두 배로 사주겠다고.”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몰라. 그 놈 진짜 미친놈이야.”

“그놈도, 이한록도 미친놈이다. 광고 하나에 600억이라니.”

해외팀의 행보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영화시장 헐리웃.

“이게 바로 헐리웃이구나.”

해외팀의 무대는 그 곳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었다.

“미국에서 600억이면 소규모지.”

“아니, 아니야. 전체 마케팅 비용이면 몰라도 광고 하나면 소규모는 아니지.”

“그건 그래. 근데, 그러면 전체 마케팅 비용이 대체 얼마야?”

“다른 마케팅은 안 한 대. 그냥 광고에 전부 태운다는데.”

“미친놈...대체 무슨 광고를 만들려고.”

이제 사람들의 관심사는 광고의 내용으로 바뀌었다.

마케팅 비용의 99퍼센트를 쏟아 붓는, 600억짜리 광고.

“그게 김유선이 만든다는 거 맞지?”

그리고 광고의 캐치프라이즈를 만들어야 하는 신입사원.

“팀장님. 광고 시안 다시 짜왔습니다.”

600억이란 무게를 짊어진 유선이 스물 일곱 번째로 한록을 찾아왔고 62번째 캐치프라이즈를 내밀었다.

'울었구나.'

한록의 예상처럼 유선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유선이 이 일에 얼마나 매달렸고,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알고 있는 한록. 한록이 유선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선씨. 괜찮은거 맞죠?”

“네.”

“힘들면 말해요.”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요 몇주 늘 그랬듯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하는 유선. 하지만 유선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달리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한록이 유선을 바라보았고, 유선이 말했다.

“이번에는 통과할 것 같거든요.”

그 말에 한록이 유선이 가져온 캐치프라이즈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선씨. 잘했어요. 그리고 잘할 줄 알았어요.”

허락. 그리고 칭찬을 뜻하는 한록의 말에 유선의 눈빛에 온갖 감정이 뒤섞였다. 기쁨. 슬픔. 허탈함. 만족감. 그 모든 감정이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든 감정은. 바로.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랑스러움.

그 어느 때보다 대견한 유선의 모습에 한록 역시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유선씨.”

**

슈퍼볼 광고. 광고의 캐치프라이즈.

팀원들이 열심히 뛰어준 덕분에 <마지막 공연>을 위한 환경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한록은...

[제롬. 당신이 워너 브라더스에게 할 짓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말릴 생각인가요?>

[아뇨. 제가 원하는 건 다른 쪽입니다. CK가 요청하는 타이밍에 일을 터뜨려주시기 바랍니다.]

<대가는?>

[당신이 원하는 것.]

[앞으로 있을 폭로전에 협조하겠습니다.]

은밀한 협상을 하고 있었다.

**

시간은 흘러 9월. 해리포터가 개봉했고-

[해리포터가 돌아왔다.]

개봉 첫날. 어마어마한 성적을 냈다.

[왕의 귀환.]

[<마법사의 전투>는 하반기 영화 중 개봉 첫날 가장 많은 관객수를 달성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아직 건재하다.]

아무리 팬서비스용 작은 영화라 해도 해리포터 시리즈다. 거기에 꽤 잘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다른 영화들이 해리포터 시리즈가 두려워서 아예 개봉을 미룬 상황이었다.

[영화사들이 <마법사의 전투>를 피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반기를 든 영화가 하나 있었다.]

[<마지막 공연>은 과연 왕에게 반역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가.]

[혹은,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마법사의 전투>와 <마지막 공연>. 영화 자체보다는 그 흥행에 더 관심을 가지는 헐리웃의 전문가들. 그리고 이틀 뒤.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마지막 공연>이 개봉했다.

그 결과는...

[CK의 기대작, <마지막 공연>]

[첫날 매출 500만 달러, 역대 CK의 작품 중 최저.]

CK가 단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위기 상황이었다.

[CK의 패배.]

[아시아의 천재감독이라 불리던 서지훈. 그가 쓰디쓴 패배를 맛보았다.]

[CK는 무성영화로 해리포터 시리즈를 이기겠다고 선언했고, 자신들의 한계를 알게 되었다.]

[CK, 협의회에서 탈락 확실시.]

헐리웃은 <마지막 공연>의 패배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계속 헐리웃을 위협하며 성장하던 CK와 한국 영화. 눈에 가시나 마찬가지던 그 둘이 보란 듯이 패배했으니, 이제는 그 대가를 치를 때라는 것이었다.

[무성 영화라. 부끄럼 많은 아시안들이 좋아할만한 발상이네 XD]

[그걸로 해리포터를 이기겠다고 하다니.]

[그 건방진 남자. 미국 영화계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지? 이제 두 번 다신 미국에 못 오겠군.]

<마지막 공연>과 서감독에게 쏟아지는 조롱들. 대부분 영화는 보지도 않고, 오로지 CK와 서감독을 비난하기 위한 내용들이었다. 아마 헐리웃의 관계자들인게 분명했다.

[다들 이 영화를 보긴 한거야? 정말 좋았어. 이런 비난을 받을 영화가 아니라고.]

[그래. 분명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걸?]

반대로 <마지막 공연>을 보고 온 사람들은 오히려 영화에 매료되었고, 열심히 <마지막 공연>의 편을 들고 있었다.

[음악영화인데 무성영화? 미친 거지.]

[그래, 영화는 좋겠지. 그런데 굳이 21세기에 무성영화를 봐야 하나?]

[옆에선 해리포터가 마법을 보여주고 있다고. 그런데 서지훈 감독은 배우들 목소리도 안 들려주잖아.]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 역시 좋지 않았다.

해리포터를 이기겠다던 언론 플레이. 외국의 소규모 영화. 거의 마케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홍보 상황. 거기에, 무엇보다 무성영화.

그야말로...

[CK. 대체 어떡할 거야?]

위기였다.

**

“이제 이한록도 끝인가?”

“욕심이 너무 과했지. 무성영화로 해리포터를 어떻게 이겨.”

“근데, 이러면 서감독은 어떻게 되는거지?”

한록과 <마지막 공연>에 대해 쌓여가는 의심들.

“하정엽. 이게 뭐냐.”

신문기사를 들고 하정엽을 찾아온 하태준.

“회장님. 지켜보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약속을 지키십시오.”

-그러나 이제는 물러나지 않는 하정엽.

“자, 여기까지도 다 예상한 거니까.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광고 끝내자. 광고만 잘 끝내면 상황 바로 바뀔 거야. 알고 있지?”

“네!”

“하대리. 광고 나가면 바로 기사 띄울 준비 됐지?”

“네. 기자들이랑 연락 끝났습니다.”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현차장과, 현차장의 지휘 아래 열심히 움직이는 해외팀.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외팀을 의심하고 있지만, 한록의 주위 사람들은 모두 한록을, 그리고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성과를 믿고 있었다.

“빨리 개봉했으면 좋겠네.”

한록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해외팀. 이 곳에서 한록의 계획에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감정은 뭐지?’

한록 빼고는.

**

그날 저녁. 한록과 조용한 바에서 술을 마시던 임감독. 그가 한록의 얼굴을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 한록의 얼굴을 보자마자 들었던 의문.

“한록아. 너 무슨 일 있었어?”

“...”

바로 한록에 대한 걱정이었다.

언제나 감정표현이 적은 한록.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한록을 그 누구보다 걱정하는 임감독이라면 알 수 있는 아주 사소한 변화들이 있었다. 임감독은 그걸 눈치챈 것이었다.

임감독의 말에 한록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위스키를 한 잔 마시고 말했다.

“<마지막 공연>이 걱정 돼서.”

한록이 단 한번도 보여준적 없는 솔직한 모습. 그 모습에 임감독이 한록에게 물었다.

“잘 안 풀리는 거라도 있어?”

“아니. 없어.”

한록이 임감독의 말에 답했다. 모두가 <마지막 공연>을 의심하는 상황. 그런 건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애초에 의도한 거니까.

최과장이 슈퍼볼이라는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유선은 만족스러운 광고를 가져왔다. 모든게 잘 되고 있었고, 잘할 자신도 있었다. 잘 끝나지 못하더라도 만회할 방법들 역시 몇 개나 생각해두었다.

그런데 왜.

왜, 뭐가 걱정되는 걸까.

그건 한록 역시 가지고 있는 의문이었으며, 방금 임감독의 질문에 해소된 의문이기도 했다.

평소와 똑같은 모험. 평소와 똑같은 자신감. 평소보다 든든한 동료. 그런데, 대체 왜, 뭐가 불안하냐면...

“형이 손 댄 영화잖아.”

이 영화에 임감독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임감독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이번 영화.

이 영화가 비평가들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관객들이 외면해서. 마케팅을 잘못 해서.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겨서. 임감독이 아이디어를 얘기한 걸 후회할까봐. 자기 탓이라고 생각할까봐.

그래서 임감독이 또 영화 때문에 상처를 받을까봐.

한록은 바로 그 점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완벽하게 영화를 끝내야 한다는 압박이 한록을 짓누르고 있었다. 한록이 술을 마시다말고 답했다.

“잘 끝낼게. 걱정하지 마.”

지금 누구보다 걱정하고 있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한록. 아끼는 동생의 고맙고, 안쓰러운 모습에 임감독이 입을 열었다.

“너, 내가 왜 편집 아이디어 얘기한 줄 알아?”

“내가 네발로 기어다닐 때까지 술 먹여서.”

“...아니거든!”

한록의 말에 임감독이 발끈해서 외쳤다. 임감독의 반응에 기분이 나아진 한록이 피식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그럼 왜?”

그 말에, 임감독은 감독들의 회의를 지켜보던 날을 떠올렸다.

-감독의 꿈을 포기한 자신.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감독들이 모인 자리. 그들이 마치 아이처럼 열정적인 얼굴로, 그러나 진지하게 영화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난 여기서 뭘 하고 있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애써 미뤄두고, 괜히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밝게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저희 와이프랑 딸이 작가님 팬이에요.

-어유, 감사합니다. 보면서 욕은 안하세요?

-...조금 하긴 하는데...

그렇게 슬픔과 미련은 가슴에 묻고. 아무렇지 않은척 웃으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빨리 자리를 뜨려 했는데. 그런데.

-팀장님. 혹시 회의에 외부인이 참여하는 건 좀 그런가요?

-아뇨. 공식적인 회의가 아니니 괜찮습니다.

한록이 감독들을 지휘하고.

-역시, 우리 팀장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니까...

“네가...자랑스러웠어.”

그 순간의 한록이 너무나 빛나서.

그 어린 한록이 이렇게 잘 자랐다는게 고맙고, 또 대견해서.

“취해서가 아니라, 그래서 얘기한 거야. 그냥 너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서, 다시는 영화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결심이 조금 흔들렸다.

“내 걱정은 하지 마. 널 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어.”

임감독의 다정한 말에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한록의 마음을 위로해주려는. 언제나 널 걱정하고, 아끼고 있다는 임감독의 말. 그 말에 한록이 답했다.

“형.”

“응.”

“더 부담만 된다.”

“하...이 녀석 분명 옛날엔 귀여웠는데...”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자란거야. 임감독의 툴툴 거리는 말에 한록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한참을 웃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부담은 더 커지고. 더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 역시 커졌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잘 끝났으면 좋겠다. 그렇지.”

기대란게 생기기 시작했다.

**

그리고 며칠 뒤.

[아빠! 빨리 와요! 빨리!]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인파가 경기장에 몰려들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 함성소리. 수백개의 카메라. 그리고 전 미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 62회 슈퍼볼을 시작합니다!]

슈퍼볼이 시작되었다.

지금 시간은 아침 9시 반. 슈퍼볼이 열리는 캘리포니아 시각으로는 4시 반이었고, 곧 1부가 끝나고 하프타임이 시작되며-

“한시간만 기다리면 우리 광고가 나오겠네요.”

<마지막 공연>의 광고가 나오는 시간이었다.

광고를 보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해외팀은 심호흡을 하며 벽에 걸린 TV를 바라보았다.

“이팀장은?”

“사무실에 계세요.”

“왜? 같이 안 본대?”

“네. 광고 나오고 30분 뒤에 나오시겠대요.”

“무슨 일 있나?”

“어...통화할 일이 있다고 하시던데요.”

그리고 한록은 사무실에서 임감독과 전화를 하는 중이었다.

“형.”

[응.]

“떨린다.”

[그럴만 하지.]

“그래도 잘할게.”

긴장을 달래기 위해 임감독에게 전화를 건 한록. 한록이 수화기 너머의 임감독에게 말했다.

“우리가 만든 영화잖아.”

아주 먼 시간이 지나. 한록과 임감독이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 영화.

[헐 <마지막 공연> 성적 역대 최악이네요;;]

[이럴거면 해리포터 이긴단 말은 왜 했냐고 ㅠㅠ CK가 한국 망신 다 시킴..]

[근데 영화는 진짜 좋았어요. 그간 서지훈 감독들 영화 중 제일 좋았음.]

[아무리 좋아도 무성영화는 아니죠. 그건 서지훈 감독이 자만했다고 밖에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마지막 공연>에 대한 악담들과.

“경기 끝났어요.”

<마지막 공연>을 위한 단 한 번의 광고.

[1부 경기가 종료되었습니다. 하프타임을 시작합니다.]

사회자의 말과 함께-

[하프타임 전 광고가 있겠습니다.]

600억을 태운 <마지막 공연>의 광고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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