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록이 드디어 미친 건가?
[010-xxxx-xxxx]
최과장이 내놓은 것은 누군가의 핸드폰 번호였다. 한록이 최과장에게 물었다.
“제 영화랑 관련이 있다면...”
“임성우 감독님 번호예요.”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놀라운 대답을 내놓는 최과장.
“그걸 최과장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2년 전인가. 제주 영화 공모전에서 비슷한 이름을 봤거든요. 영화가 좋아서 기억하고 있었죠. 여기저기 물어보니까 번호 나오던데요.”
‘임감독님. 아니. 성우형이 아직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최과장의 말에 깜짝 놀라 번호를 바라보는 한록. 임감독은 영화계를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거기에, 자기도 신경쓰지 않는 아주 소규모 영화 공모전을 최대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까지. 그러나 최대리는 자세한 내용은 설명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제주 영화 공모전은 어쩌다가 아신 겁니까?”
“으음. 그을쎄요. 그건 비밀이에요. 아무튼 번호 알려드렸으니까, 너무 늦지 않게 연락하세요.”
그리고 늘 그렇듯 상큼한 미소와 함께 사라진 최과장.
‘...성우형.’
한록은 최과장이 놓고 간 번호를 보고 생각에 빠졌다.
***
같은 시각. CK 제작부서를 방문한 서감독.
“감독님. 다시 한 번 생각해주세요. 이건...아무리 감독님이어도 너무 어려운 시도입니다.”
제작부 강정혁 부장은 이전과 똑같은 얘기를 했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대화. 사실, 서감독 입장에서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 시대에 무성 영화가 말이 됩니까.”
서감독이 원하는 방식이란게,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시도였기 때문이었다.
무성영화. 소리가 없는 영화로, 유성영화가 발명되기 이전의 영화방식이었다.
“계속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그건 감독판으로 블루레이에 담으시라니까요.”
“감독판을 찾아보는 관객들이 얼마나 된다고요. 결국 무성 영화는 포기하란 말씀 아니십니까.”
“네. 그렇지 않으면, 감독판이 아니라 이 영화 자체를 볼 사람이 없어질 테니까요.”
아주 강경하게 나오는 강정혁 부장. 아무리 CK ENM이 한국 영화계의 슈퍼갑이라고 해도, 서감독은 아시아 최고의 감독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렇게 나온다는 건, 정말 이 영화가 걱정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럼 더 이상 부장님과 얘기할 필요는 없겠군요.”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물러날 서감독이 아니었다. 서감독의 말에 강부장이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해외팀 이팀장님과 신작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아예 제작부터 해외팀에서 진행할 의향이 있으시다고 했으니, 이제부터는 그쪽과 얘기하겠습니다.”
정말로 강부장과는 여기서 끝이라는 듯한 태도의 서감독. 서감독의 태도에 발끈한 강부장이 말했다.
“네, 해외팀에 얘기해보시죠. 과연 이팀장님이 무성영화를 허용하실지 모르겠지만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얘기 끝났습니다.”
“네...네?”
“재밌는 시도고 영화를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관객들도 좋아할 거고, 기대가 된다고 하셨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장님은 이해 못하고 계시지만요.”
서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감독님!”
“부장님과는 더 할 말 없습니다.”
‘너랑은 대화가 안 통한다’를 대놓고 말하는 서감독. 서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회의실을 나갔다.
“...젠장!”
서감독이 떠난 회의실. 강부장이 책상을 내려치며 씩씩거렸다.
‘뭐? 무성 영화? 그게 말이 돼? 그것도 미국에 진출한 지금?’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의 서감독. 제작에 끼어든 한록.
하지만 상대는 이한록, 그리고 서지훈이다. 사장의 총애를 받는 상무이사와 아시아의 천재감독이라 불리는 감독. 그들이 내린 결정에 자신이 개입할 순 없었다.
‘서지훈. 진짜 자기가 세계적인 명감독이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한록 이 놈은 영화 몇 개 성공하더니 이제 자기가 제작도 할 줄 안다고 착각하고 있고. 니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라. 무성영화가 통과될 거 같아!?’
서감독에 대한 분노와 그리고 한록에 대한 시기, 질투가 강부장의 마음 속에 차오른다.
그리고...
‘그래. 맘대로 해봐라. 이제 한 번 고꾸라질 때도 됐다.’
두 천재의 몰락을 바라는 마음까지도.
*
점심 시간. 오랜만에 한국에서 맞는 점심에, 현차장이 기분 좋게 한록에게 외쳤다.
“이팀장. 오랜만에 평양옥이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요.”
“또 누구?! 이팀장 요즘 우리한테 너무 소홀한 거 아냐? 우리보다 중요한 사람이야?!”
“네.”
“누군데?”
“사장님이요.”
“...나한테 이러기야?!”
억울해 죽겠다는 듯한 눈으로 한록을 바라보는 현차장. 현차장의 반응에 한록이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현차장을 뒤로 하고, 하정엽과 식사를 하러 나온 한록. 하정엽은 CK에서 조금 떨어진 중식당으로 한록을 데려갔다. 간판도 없고, 한록은 존재도 모르던 식당이었다. 아마 하정엽 같은 재벌집 자제들만 방문하는 곳인 듯 했다.
“최근 해외팀의 성적이 나쁘지 않더군요.”
한록을 앞에 앉혀두고 말하는 하정엽. 하정엽이 오늘 한록을 데리고 나온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한록의 해외팀은 <시험>과 <수면>, 거기에 영화관 프로젝트로 어느새 헐리웃 깊숙이 파고 들어 있었다.
칭찬에 인색한 하정엽이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지, 사실 여태 한록이 만든 성과는 그 누구도 이뤄내진 못한 것들이었다.
LA씨어터 월말 상영작 선정. 넷플릭스, 유니버설과의 협조. 거기에 무엇보다 빛나는 <수면>의 성적까지. 영화계의 모두가 아시아의 한 영화사가 1년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이뤄낸 성과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이한록 팀장이 만든 것들이니, 한 번쯤은 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보답으로 주어진 사장과의 단독만찬. 여태 CK ENM에서 하정엽과 단독으로 식사를 한 사람은 최경준이 전부였다.
사실 최경준은 하정엽의 멘토나 마찬가지니, 하정엽과 식사를 한 건 CK ENM의 직원 중 한록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 사람이랑 밥 한 끼는 해야하니까요.”
한마디로, 하정엽의 ‘이뻐죽겠다’는 표현.
하정엽이 준 강남 한복판의 집보다 더 분명하게 한록에 대한 총애를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하정엽이 한록에게 물었다.
“집은 구했습니까.”
“네. 덕분에 편하게 출근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더 필요한 건 없습니까.”
“있습니다.”
“...돌려 말하는 법이 없군요. 뭡니까.”
그리고, 사장의 총애를 독차지한 한록이 사장과의 일대일 식사에서 꺼낸 얘기는 바로.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습니다.”
또 일 얘기였다.
“...지금 할 얘기가 그것뿐입니까?”
“아뇨. 서감독님 신작에 대한 얘기도 있습니다.”
“어이가 없군.”
한국 영화계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록을 세우고 있고, 그래서 수십건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 거기에 사장이 단독으로 만나서 ‘원하는게 있냐’고 물어보는 상황. 그런데 정작 당사자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일 얘기라니.
“여러 번 묻지 않겠습니다. 원하는 걸 말하세요.”
“제작에 집중할 수 있게 해외팀에도 제작파트 인원 충원을 바랍니다.”
“이한록 팀장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걸 잊고 있었군요. 유비서. 내가 가진 시계 중에 하나 골라서 이한록 팀장에게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이제 다시 해외팀에 대해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아...”
한록의 말에 하정엽이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 ‘이 놈을 대체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듯한 표정의 하정엽. 하지만 결국 하정엽은 한록의 손을 들어주었다.
“말하세요.”
“해외팀이 제작부터 참여할 수 있다면 헐리웃에서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해외팀은 마케팅 위주고 제작인원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제작파트에 인력충원이 있었으면 합니다.”
“해외팀 출범 후 인력충원만 세 번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사람이 부족하단 겁니까?”
“네.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회사에 만족할만한 수준 같은 건 없습니다. 다른 파트도 전부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하정엽의 말은 사실이었다. 총 세 번의 인력충원으로, CK의 핵심인재들을 전부 해외팀으로 데려온 상황. 여기서 더 인력충원을 하려면 사실상 채용인원을 늘려야하는 수준이었다.
“서감독의 신작에 대해 할 말은 뭡니까.”
“서감독님의 신작을 해외팀으로 옮겨주셨으면 합니다. 제작부터 해외팀과 함께하면 더 좋은 성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
웬일로 한록이 평범한 부탁을 한다는 듯한 하정엽의 표정. 그러나, 한록의 부탁은 역시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또 뭡니까.”
“서감독님의 신작은 무성영화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한록의 말에 하정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록에게 물었다.
“지금 전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시험>까지는 어쩌다 외국 영화가 좋은 결과를 냈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수면>부터는 한국영화의 존재를 알게 됐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작품이죠. 이제 우리가, 서감독이 어떤 영화를 내놓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한국 영화를 어떻게 볼지 결정하게 될 겁니다.”
<시험> 그리고 <수면>을 통해, 한국 영화의 존재를 헐리웃에 알린 해외팀. CK, 그리고 한국 영화가 전 세계에서 자리잡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걸려있는 이 상황에서...
“그런데 지금 무성영화를 내놓겠단 말입니까.”
“네.”
한록은 말도 안 되는 모험을 하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한록의 단호한 답에 하정엽이 말했다.
“나한테 너무 많은걸 요구하는군요.”
“네. 저도 쉽지 않은 결정이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정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록. 그러나 한록의 태도는 ‘알겠으니 여기서 물러나겠다’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한록이 하정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런.’
하정엽이 한록의 표정을 바라보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바랄 수 있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록은 정말로 원하는 게 있을 때. 그리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사장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하정엽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말까지.
한록의 말에 하정엽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이한록 팀장에게 너무 약하군.’
하태준이 몇 번이나 지적했지만,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부분. 이제는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몇 번이나 직접 보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한록이 저렇게 말할 때 설레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알겠습니다. <수면>을 가져가세요. 해외팀 인력충원도 곧 해주겠습니다.”
하정엽이 결국 두 손을 들었고, 한록에게 말했다.
“이한록이 팀장이 원하는 건 다 해보세요.”
*
“내일부터 서감독님 신작이 우리 팀으로 이관됩니다. 제작, 플래닝, 마케팅까지 전부 우리 팀이 담당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해외팀으로 옮겨지게 된 서감독의 신작.
영화의 이관 소식은 곧 온 회사에 퍼져나갔다.
“해외팀이 서감독 영화 가져갔다는데?”
“거기가? 왜?”
“해외팀에서 제작부터 들어간대. 편집을 해외팀에서 한다는데.”
“와씨. 제작부도 이한록한테 꺾인 거야?”
“요즘 이한록이면 날아가는 새도 꺾을만하지.”
“그래도. 이한록은 마케팅이잖아.”
또 한 번 변한 권력 구도에 놀라는 CK ENM의 사람들. 그러나 사람들이 정말 놀란 소식은 따로 있었다.
“이팀장. 나 물어볼게 있는데.”
“네, 차장님. 말씀하세요.”
“진짜 서감독님 신작 무성영화로 갈 거야?”
“네. 완전히 무성 영화는 아니고, 부분적으로 묵음으로 진행할 겁니다.”
“...이런 건 미리 말 좀 해주면 안 돼?!”
바로 부분적이지만 영화가 무성으로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이한록이 드디어 미친 건가?”
“왜. 난 무성 영화 괜찮을 거 같은데. 서지훈이랑 이한록이 만드는 건데, 계획이 있겠지.”
“누구나 처맞기 전까지 계획은 있는 거야. 너라면 소리 없는 영화 보고 싶겠냐? 그럼 만화나 보지, 영화를 왜 봐? 영화제에서 상은 탈지 몰라도, 흥행은 완전 망할 거야.”
한록의 파격적인 행보에 갈리는 의견들. 대부분 한록이 지나친 욕심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넌 안 볼 거야?”
“...아니. 보고싶긴 해.”
하지만 공통적인 반응이 있다면, 다들 그 문제의 무성영화가 대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온 회사를 또 한 번 충격에 빠드린 당사자 한록. 그러나 정작 한록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팀장님. HK스튜디오랑 얘기 끝났습니다. 편집 일정 다시 잡아줬어요.”
“가편집본은 언제까지 나온다고 합니까?”
“한달 정도면 될 것 같대요.”
“네, 알겠습니다.”
한록의 사무실을 방문한 최과장이 서류를 하나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록의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를 보고 슬쩍 미소를 지었다. 한록이 보고 있는 것은 오늘 아침 자신이 한록에게 건네준 전화번호였다.
최과장이 한록에게 물었다.
“전화 해봤어요?”
“아뇨. 아직이요.”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도 너무 늦게 하진 마세요.”
한록의 말에 의하면, 꽤 무거운 사연이 얽혀있는 것 같은 한록과 임감독의 관계. 거기에 연락이 끊긴지 아주 오래됐다. 최과장 역시 한록이 쉽게 연락을 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네. 그래야죠.”
“말만 그렇게 하지 마시고. 저랑 약속해요. 언제 전화 할 거예요?”
“오늘이요.”
“...네?”
그리고 한록은 늘 그렇듯 엄청난 실행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
-좀 망설이거나...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된다거나...그런 건 없어요?
-그럴 거면 최과장님한테 말을 안 했죠.
벙찐 최과장한테 단호하게 말한 한록.
-...그럼 언제 연락할 거예요?
-지금이요. 과장님 나가시면.
-진짜 무서운 분이시네.
최과장은 그 말과 함께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고, 한록은 혼자 남게 되었다.
“...”
손에 들린 번호를 여러번 바라보던 한록. 한록이 심호흡을 하고, 핸드폰의 자판을 눌렀다.
최과장이 했던 말. 망설여지는 마음. 두려움. 긴장. 그런게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한록이 통화 버튼을 눌렀고, 통화 연결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보세요.]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
통화를 끝내고 나온 한록.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과장과 눈이 마주치자 한록이 말했다.
"오늘 술 한잔 하시겠습니까?"
***
회사 근처 고기집에 도착한 한록과 최과장. 가장 구석의 방으로 들어간 한록이 고기가 나오기도 전 최과장에게 물었다.
"과장님. 주량이 어떻게되십니까."
"다음 날 멀쩡하려면 세 병 정도요."
"그 날 있었던 일이 기억이 안 날 정도는요?"
"글쎄요. 그랬던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요."
최과장의 말에 한록이 답했다.
"그럼 오늘 알아봅시다."
그리고 최과장의 맥주잔에 소주를 붓기 시작했다.
***
한록과 최과장 사이에 쌓인 소주병이 8병이 되었을 때. 최과장이 머리를 붙잡고 말했다.
"오늘 일 죽어도 기억 못 할테니까 이제 말해주세요. 그 분이랑 무슨 얘기 했어요?"
"아직 멀쩡하신 것 같은데요."
그 말과 함께 다시 술을 따르려는 한록. 그 모습을 본 최과장이 한록의 손을 덥썩 붙잡고 외쳤다.
"이 미친 인간아!"
"지금 상사한테 뭐 하시는 겁니까?"
"상사고 자시고 내가 죽겠는데 알 바겠어요?!"
"취하셨군요. 좋습니다. 그럼 말해드리겠습니다."
"진짜...미친 인간..."
한록의 태연한 말에 최과장이 다시 한 번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호기심은 여전한지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 번호, 임성우님 맞았어요?"
"네. 맞았습니다."
"그럼 둘이 무슨 얘기했어요?"
그 말에 한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