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04화 (185/263)

다음엔 영화로 만납시다.

“팀장님. 배우셨던 거죠? 역시. 괜히 잘생긴 게 아니라니까.”

한록의 말에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최과장. 한록이 최과장의 말을 정정했다.

“아니에요. 연기를 한 게 아니라...제 얘기가 영화에 들어갔습니다.”

“팀장님 얘기로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네.”

“어떻게요?”

“감독님이랑 친한 사이였거든요.”

“어떤 감독님인데요?”

“임성우 감독님이요.”

한록의 말에 최과장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록이 말한 상대가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임성우. 최과장은 알지 못하는 사람.

하지만 한록에게는 그 어느 감독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다.

-한록아. 이거 어때?

-이번에 개봉한 영화 봤어?

-나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

-내가 쓴 시나리오 볼래?

한록이 하루종일 영화관에서 살던 고등학생 시절 만난 사람이었고, 영화에 대해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눈 사람이었다. 지금 한록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전부 임감독에게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이 얘기 영화로 만들어도 돼?

자신의 얘기가 담긴 영화를 만들어주었다.

“임성우 감독님이라. 전혀 모르겠는데요.”

“네, 그러실 겁니다. 그 작품 이후로 작품이 없으시거든요.”

“아, 어쩐지. 그래서 그 영화 이름이 대체 뭐예요?”

“<영화관 가는 날>이요.”

“음...그것도 들어본 적 없어요. 제가 모르는 영화는 거의 없는데. 이상하네요.”

“제대로 개봉을 못 했거든요. 관이 거의 없었어요. 사실 개봉을 못한 거나 마찬가지죠.”

그리고 록의 얘기가 담긴 영화는 사람들 앞에 제대로 선보이지도 못하고 잊혀져 버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촬영이 거의 완료 되었을 때...그때 급하게 내용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완성본은 제대로 된 영화가 아니었죠.”

“왜 내용이 바뀌었는데요? 아. 제작사가 개입을 했구나.”

최과장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대부분의 영화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바로 제작사의 개입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아뇨. 저 때문이었어요.”

<영화관 가는 날>에 문제가 생긴 이유는, 바로 한록 자신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

최대리의 질문에 말을 잇는 대신 술을 마시는 한록. 한록은 이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자신을 소재로 한, 그리고 자신 때문에 망가진 영화. 쏟아지는 혹평 속 임성우 감독이 한록에게 했던 말.

-미안하다. 내가 부족했어.

-네 얘기로 이런 평가를 받아선 안 됐는데.

-더 좋은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임감독이 한록에게 했던 말.

-한번만 더 기회가 있으면 좋을텐데.

그리고 한록 역시 했던 생각이었다.

과거를 바꾸고 싶다. 다시 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 사람과 함께 만든 영화를 세상에 내놓고 싶다. 한록이 늘 해온 생각이었고, 회귀 전에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한록을 지켜보던 최과장이 입을 열었다.

“그 영화를 다시 만드는 거. 그게 팀장님 최종목표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 영화 얘기만 나오면 팀장님 눈빛이 아련해지거든요. 그러면서 말은 피하고.”

“죄송합니다. 저한테 너무 중요한 일이라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알아요. 간절한 꿈일수록 얘기하기 힘들죠.”

한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최과장. 최과장의 말에 숨은 의미에 이번엔 한록이 질문을 던졌다.

“과장님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봅니다.”

“네. 팀장님도 오래 얘기 안 해주셨으니까, 저도 비밀이에요.”

“네. 괜찮습니다. 언젠가는 말해주세요.”

“말하면 뭐해줄 거예요? 저 la씨어터 따오느라 진짜 고생했어요.”

“글쎄요. 그냥 말해주시면 안 되나요?”

“맨입으로요?”

“네.”

“제가 왜요?”

장난스레 묻는 최과장과.

“우리 팀이잖아요.”

그 말에 웃으며 답하는 한록.

한록의 말에 최과장은 한동안 답이 없었다. 한록이 말하는 팀이란게 단순히 회사 조직을 의미하는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최과장이 한록에게 말했다.

“그래요. 언젠가는 말해줄게요.”

최과장의 말에 한록이 미소를 지었다.

“임감독님과는 이제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뭘 하고 사시는지도 모르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영화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위치가 되면 반드시 찾아가겠다고 생각했죠. 그때까진 아무한테도 말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팀장님이 지금 이 얘기를 한다는 건...”

“네.”

최과장이 부러워하는. 그리고 한록이 말하는 팀.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 그 사람 앞에서 꿈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제는...때가 된 것 같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하지만 항상 마음 속에 품어왔던 꿈.

“팀장님이 처음부터 만든 영화라.”

“어떨 것 같습니까. 잘 될까요?”

“글쎄요, 모르죠. 팀장님은 마케팅 천재지 제작 천재가 아니니까.”

처음으로 그 꿈을 들은 상대는...

“하지만 전 좋아할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네. 우린 팀이니까.”

역시나, 자신을 믿어주었다.

*

“들어가 보세요. 내일부턴 진짜 열심히 놀아야죠.”

“네, 과장님도 주무세요.”

최과장과의 대화를 마치고 호텔방으로 돌아온 한록. 한록은 침대에 누워 <수면>에 대한 반응을 확인했다.

[아시아 감독이 헐리웃의 기자에게 응답하다.]

[유니버설의 일방적 취소를 겪었던 <수면>이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수면>에 대해 실시간으로 작성되는 기사들. 그러나, <수면>과 서감독의 유명세는 이제 시작일뿐이다. 아침이 되면 <수면>에 대한 얘기는 더욱 더 널리 퍼져나갈 것이 분명했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이제 인터뷰를 통해 이 열기를 이어나갈 것은 미국 지사의 일. 한록은 지난 석달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지난 석달은 해외팀이 설립된 이후 가장 다사다난한 일이 벌어졌던 시간이었다. 넷플릭스, 유니버설과 함께 일을 했다. 사람들이 서지훈이란 이름을 알게 되었다.

-저는 좋아할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응원하는 사람이 생겼다.

자신이 이뤄낸 수많은 성과와, 끝없이 일어나는 기분 좋은 일들.

그 모든 것을 떠올리며, 한록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잘했다. 이한록.’

어쩐지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

그리고 다음날. 한록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팀장님. LA씨어터에서 <수면>을 월말 영화로 선정하겠대요.”

LA씨어터에서 이 달의 영화로 <수면>을 선정한 것이었다.

[<수면>. 외국 영화 중 최초로 LA씨어터의 월말 영화 선정.]

[디렉터 서의 헐리웃에 대한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편, <수면>은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관객수 10위를 기록하였다.]

<수면>에 대한 기사들.

-나는 영화로 장난치는 사람과는 얘기하지 않아.

그리고 서감독에 대한 끊임없는 사람들의 반응까지.

“<수면>이 올해 관객수 10위래요. 외국 영화 중에선 <수면>이 유일하게 순위권에 들었어요.”

해외팀은 폐쇄적이기 그지 없는 헐리웃에서 엄청낸 성과를 이뤄내는 중이었다.

엄청난 성과.

그리고-

“하대리.”

“네, 현차장님.”

“혹시 나만 이 생각하고 있나 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 말이야.”

“이거 돈 얼마나 들어오려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엄청난 인센.

“연봉의 50퍼센트는 나오지 않을까요?”

“...술 마시자. 지금. 당장. 내가 산다!”

그렇다면 이젠 기쁨을 누릴 때였다. 감격에 겨워 지금 당장이라도 골든벨을 울리려는 현차장. 하지만 한록이 현차장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오늘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팀장이 빠지면 어떡해? 왜? 무슨 약속 있어?”

“네.”

“...약속이 있어도! <수면>이 헐리웃 10위라잖아. 이것보다 중요한 일이야?!”

“네.”

“...뭔데?”

“닉 해리스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닉 해리스가 한록에게 답장을 보내온 것이었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녁.

방금 산 500만원짜리 정장. 그리고 멋지게 만진 머리를 하고, 한록은 한 카페에서 닉 해리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장님. 저 머리 어떻습니까?

-잘생겼어.

-얼굴 말고 머리요.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머리는 눈에 안 들어와.

-...옷은요?

-참나, 이팀장. 누가 보면 소개팅하는 줄 알겠다.

-그러게요. 이러다 닉 해리스랑 결혼하겠어요.

긴장과 설렘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한록을 놀리는 해외팀. 하지만, 오랫동안 한록의 우상이었던 사람을 만나는 자리였다.

거기에 닉은 최근 3년간 교수 활동을 하느라 아주 오랜만에 필드에 복귀한 상황. 회귀 전에도, 후에도, 닉이랑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신을 만나러 오겠다고 말한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관객들의 급을 나누자고 말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케터, 그와 만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록은 떨리는 마음으로 계속 식당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록이 물잔을 7번째 비웠을 때. 누군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훤칠한 키에 깔끔한 셔츠를 입은 30대 중반의 남자.

[축하해요, 한. ]

우상과의 첫 만남이었다.

*

세계 최고의 마케터, 닉 해리스.

‘제롬처럼 냉철한 타입일까?’

‘아니면, 알렉산드로 감독처럼 괴팍한 천재?’

[<수면>이 정말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네요. 나도 재밌게 봤습니다. 마케팅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는 한록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아주 차분하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일정이 있어서, 시간을 오래내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못 다한 얘기는 끝내야죠.]

닉이 말하는 못 다한 얘기. 그건 어제 통화 중 나온 얘기에 대한 것이었다.

-왜 이 얘기를 저한테 말해주는 겁니까?

마케팅 아이디어를 보내주고, 실비아에 대한 정보까지 알려준 닉. 한록의 질문에 닉은 이렇게 답했다.

-그건 이 일이 잘 끝나면 따로 얘기하죠.

그렇게, 지금 닉과 한록의 자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다.

[내가 실비아에 대한 얘기를 말해준 이유가 궁금하겠죠?]

[네. 아마 제롬이 엮여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록 역시 짐작하고 있는 부분은 있었다.

얼마 전, 스튜디오 B라는 신생회사를 만든 제롬. 회귀 전 제롬은 이 회사를 헐리웃 최고의 영화사로 만들었고, 헐리웃을 장악하고 있던 빅5를 무너뜨렸다.

[곧 스튜디오 B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스튜디오B도 신생 회사니, 다른 회사의 도움이 필요한 일들이 있겠죠.]

한록은 제롬이 그 일환으로 CK ENM에게 바라는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CK ENM에게 바라는 건 없어요. 우리는 모든게 완벽하게 준비 됐거든요. 남의 도움은 필요 없어요.]

하지만, 한록의 예상은 보기좋게 틀려버렸다. 닉의 여유를 볼 때, ‘모든게 완벽하게 준비됐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게 분명했다.

[...그럼 왜 CK를 도와주신 겁니까?]

[여기서 무너지기엔 아깝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설프지만, 꽤 매력적인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CK ENM이 말입니까? 아직 해외 진출을 한지 얼마 안 돼서, 미흡한 부분이 많이...]

[아뇨.]

한록의 말에 닉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록을 보며 말했다.

[내가 말한 건 당신이에요.]

*

[교수로 있는 동안 당신 마케팅을 지켜봤어요. <삼일의 삶>을 바닷가에서 개봉한 건 조금 아쉬움이 있네요. 그 곳에서는 좋은 반응이 나왔겠지만, 평범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접하는 관객들은 느낄 수 없는 감각이었을 테니까요. <퀸> 역시 마찬가지고요. 싱어롱 관객이 관객의 대부분을 채웠을 거예요. 싱어롱을 즐긴 사람과, 아닌 사람과의 마케팅 효과에 대한 차이가 컸다는 거죠. 전반적으로 아이디어는 좋지만, 너무 현장성에 치중한 마케팅을 하네요. 이런 아이디어는 다수의 대중에게 고르게 전달되기 어렵죠.]

한록의 마케팅에 대해 얘기하는 닉. 닉은 교수답게 한록의 마케팅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여태 아무도 한록에게 말해주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하지만 재밌었어요.]

아주 담백한 칭찬을 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재밌는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이 사람이 미국에서는 어떤 마케팅을 할지 궁금했죠. 그래서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닉이 한록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의 마케팅을 더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

[이만 가봐야겠네요. 곧 스튜디오 B에서도 영화가 개봉해서요.]

[아, 네. 알겠습니다.]

한록과의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닉. 한록이 닉을 따라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닉이 자신의 마케팅을 알고 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엄청난 일이었지만, 너무 놀라운 일이어서 그런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록은 사실 아직도 자신이 닉을 만나고 있단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의 냉철한 모습과 달리, 겨우 입을 열어 감사를 전하는 한록. 그 모습에 닉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다음엔 영화로 만납시다.]

롤모델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인사였다.

*

‘닉 해리스가 나를 알고 있다. 내 마케팅을 기대하고 있어.’

닉이 나간 후, 카페에서 넋이 나가 방금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한록.

‘나 정말 잘했구나.’

대화 중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쁨과 설렘. 그리고 뿌듯함이 이제야 차오르기 시작했다.

‘닉이 내 마케팅을 기다리겠다고 말했어. 필드에서 보자고 했다고.’

진정되지 않는 마음에 또 다시 물을 마시기 시작하는 한록.

[손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 아닙니다.]

한록이 하도 물을 마셔대니, 종업원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질문을 해올 정도였다.

<팀장님.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기쁨에 젖어있는 것도 잠시. 한록은 또 만나야할 사람이 있었다.

*

카페에서 나가 또다시 어디론가 향한 한록. 한록이 향한 곳은 바로 타임스퀘어였다.

그 곳에서 한록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디렉터 서. 맞죠?]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을까요?]

한록의 말처럼, 어느새 유명인이 된 서감독.

[저기요. 거기 잘생긴 분.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나요?]

[네. 알겠습니다.]

[거기 말고요. <수면>의 광고를 배경으로 찍어주세요!]

그리고 타임스퀘어에 걸린 <수면>의 광고였다.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당장 타임스퀘어에 광고 거세요.

<수면>이 LA씨어터의 월말 영화로 상영될 수 있다는 소식에 바로 지시를 내린 하정엽. 하정엽의 발빠른 지시에 LA씨어터 선정과 함께 타임스퀘어에 <수면>의 포스터가 걸리게 된 것이었다.

-이곳으로 돌아오겠다.

일년 전, 한록이 타임스퀘어에서 <부산열차>의 광고를 보면서 했던 생각. 한록은 그때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다음에는 반드시 내 영화를 가져오겠다.’

이제 한록에게는 또 다른 다짐이 생겨났다.

<수면>과 서감독에게 몰려든 사람들. 타임 스퀘어 한복판에 걸린 <수면>의 포스터. 이 모든 것을 임감독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지켜보고 싶었다.

[오, 사진 좋네요. 고마워요.]

[네. <수면> 많이 봐주세요.]

[잠깐만요. 저도 부탁해도 될까요?]

그렇게, 새로운 다짐을 하며 사람들과 서감독의 사진을 찍어주는 한록. 한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간 후에야 서감독과 한록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지친 표정의 서감독에게 한록이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감독님. 유명해진 기분이 어떠십니까.”

“피곤해요. 짜증도 나네요.”

“이제 익숙해지셔야 할텐데요.”

“어차피 3개월이면 아무도 기억 못할 겁니다.”

한록의 말에 서감독이 시니컬하게 말했다. 아무리 <수면>과 자신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도, 결국 서감독은 아시아의 여러 감독들 중 한명일 뿐이다. 이 유명세가 오래 가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둘 순 없죠.”

하지만 한록은 이 일을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아무도 감독님을 잊지 못하게 만들 겁니다. 감독님도, 감독님의 영화도,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유명해져야 합니다. 귀국하면 바로 신작에 대한 논의를 시작합시다.”

한록의 각오와 자신감이 보이는 말.

“굳이 귀국까지 기다릴 필요 없겠군요. 뉴욕에서도 할 수 있는 얘기 아닙니까.”

그리고, 한록 못지 않게 의욕을 가진 서감독.

서감독의 말에 한록이 씩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 지금 시간 되십니까?”

“그러려고 나온 겁니다. 카페로 가서 얘기하죠.”

자신의 영화가 아시아 영화 최초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서감독에게 낭비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서감독이 먼저 걷기 시작했고, 한록은 그 뒤를 따랐다.

*

그리고 일주일 후. 한국으로 복귀한 한록과 해외팀.

“제작부서와 미팅을 하고 싶습니다. 서감독님의 신작 때문에요.”

한록은 곧장 서감독의 신작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전에...

“팀장님. 그 전에 여기 한 번 연락해보세요.”

“...누구 번호입니까? 서감독님과 연결된 사람입니까?”

“아뇨.”

“팀장님 꿈의 영화랑 관련된 사람이요.”

더 중요한 일이 시작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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