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02화 (183/263)

빅5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마케터이자, 한록의 우상. 그리고 관객들에게 급을 나눠서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말한 장본인.

닉 해리스와의 첫 통화는 아주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수면’에 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네요. CK가 가져온 두 번째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벌써 이런 성과라니. 대단해요.>

회사간 연락이 그렇듯 예의를 차린 말을 건네는 닉 해리스. 그러나 한록은 닉의 말에서 바로 용건을 알아냈다.

‘오늘 LA에서 전미영화협의회의 회의가 있었지.’

전미영화협의회. 세계 최고의 영화사라고 불리는 빅5 영화사들이 모인 회의였고, 스튜디오B 역시 그곳에 자주 초청받고는 했다. 그 자리에서 아마 <수면>과 CK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것이리라.

‘벌써 빅5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수면>의 사건으로 인해, CK는 어느새 세계최고의 영화사들이 지켜보는 회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영화협의회 회의에서 CK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겁니까?]

<맞아요. 다들 CK를 지켜보고 있네요.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CK는 지금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사예요.>

그리고 이어진 본격적인 용건이자, 한록의 걱정.

<그리고 실비아 로렌이 오늘 GV에 방문한대요.>

바로 실비아 로렌의 방문을 알리는 것이었다.

실비아 로렌. 헐리웃에서는 사람이 없는 유명 기자였다. 그녀가 유명해진 이유는 바로, 루머와 진실을 넘나드는 악의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들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빅5에서 우리를 공격하려한단 말입니까?]

<빅5 전체는 아니에요. 하지만, 실비아를 보낸 곳이 있긴 하죠.>

빅 5 중 누군가가 <수면>의 GV를 망치기 위해 실비아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어떤 회사입니까? 실비아를 보내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겁니까?]

<거기까지 말해줄 순 없어요. 아마 윤일이 잘 알고 있을테니 그쪽에게 물어보는게 좋겠어요.>

[...]

닉의 말을 듣고 혼란에 빠진 한록.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실비아가 온다니.’

GV를 망치기 위해 언론. 그것도 악명 높은 실비아 로렌이 온다. 어쩌면 당장 GV를 취소해야하는 상황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닉의 말이 진실일 때의 일이었다.

‘왜 나한테 이걸 말해주는 거지? 이게 사실이긴 한가? 우리를 공격하려는 사람이 바로 닉이라면?’

그리고 한록의 고민을 눈치챈 닉이 말했다.

<갑작스러운 얘기니, 믿기 어렵겠죠. 내 말을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그쪽 선택입니다. 일정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요. 잘 끝나길 바래요.>

정말 아무것도 바라는게 없는 듯 나오는 닉. 닉이 전화를 끊기 직전 한록이 물었다.

[닉. 궁금한게 있습니다.]

<네.>

[왜 저한테 이 얘기를 해 준 겁니까?]

한록의 솔직한 질문에 핸드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대체 왜 이 얘기를 한 건지. 닉의 얘기가 진심인건지, 아닌 건지. 여전한 혼란 속에서 닉이 말했다.

<그건...>

그리고 닉의 답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

닉과의 통화 이후, 곧장 회의를 소집한 한록.

“...실비아가 온다고요?”

“우리한테 아무런 말도 없이?”

실비아 로렌이란 이름에 해외팀 사람들이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한록이 바로 최과장에게 물었다.

“정말 실비아가 온다면, 어떤 식으로 우리를 공격할 것 같습니까?”

“...사실 물고 늘어질 건 많죠.”

최과장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제일 말이 많이 나올 부분이라면...아마 우리가 외국 기업이란 부분을 공격할 것 같네요. 결국 이 프로젝트는 헐리웃에 타격을 입혀서 CK가 이득을 보는 구조니까요. 외국 기업이 헐리웃에 너무 개입하는 거 아니냐는 말은 지금도 가끔 나오고 있어요.”

“그래도 별 문제 없었잖아?”

“그건 여태까지는 넷플릭스가 메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차장님. <수면>이 개봉한 이상, 이제 CK랑 <수면>도 같이 주목받게 될 거예요. 이번 GV에 오겠다는 거 자체가 <수면>이랑 서감독님을 공격하겠단 거고요.”

“...GV를 이대로 진행하는 건 문제가 있겠군요. 유니버설이 제대로 반성하고 양보하는 그림을 그리려 했으니까요.”

“그렇죠. 우리가 유니버설을 협박하는 모양새로 보일 수도 있어요.”

이번 GV에서 유니버설의 이미지 회복과, <수면>의 마케팅을 위해 작은 퍼포먼스를 계획한 해외팀.

해외팀이 계획한 것은 바로 유니버설이 CK에게 정식으로 사과와 보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퍼포먼스가 오히려 ‘외국 기업이 헐리웃을 공격하고 있다’며 실비아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아마 GV에서 서감독님한테 질문을 할 것 같네요. 빠져나가지 못할 상황에서 인터뷰를 하는거죠.”

“우리가 아니라 서감독님한테?”

“그래야 기사거리가 될 테니까요.”

“서감독님은 아무런 준비도 안 되셨을텐데. 그냥 질문을 거절하면 안 되나?”

“질문을 거절한 것 자체로도 기사를 낼 거예요.”

“...그렇지. 기자들은 늘 그렇지.”

최과장의 말에 현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GV를 몇 시간 앞둔 상황에서, 악의적인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유명한 기자가 찾아온다. 그 기자가 아무 잘못 없는 감독에게 질문을 퍼부을게 예상이 가는 상황.

이 상황에서 CK가 할 수 있는 결정은...

“...GV를 취소해야 하나?”

GV를 취소하는 것 뿐이었다.

‘...아니. 여기서 그만두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다.’

그러나 한록의 생각은 달랐다.

빅5가 GV를 망치기 위해 실비아를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GV에 대한 영화계의 관심이 뜨겁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영화관 프로젝트. 넷플릭스와 유니버설의 협력. 거기에 첫 주 무료 상영까지.

<수면>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스포트 라이트를 몰아준 상황에서, 갑자기 GV와 이벤트를 취소한다. 그 사실이 너무나 아까웠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시만요. 아직 취소 얘기를 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팀장님. 미국인들은 상상이상으로 배타적이에요. CK가 헐리웃을 쥐고 흔든단 얘기가 나오면 <수면>도 타격을 받을 수 있어요.”

“아뇨, 그렇진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이라는 배타적인 국가. 빅5의 계략과, GV를 망치기 위해 달려오는 중인 악의적인 기자. 그 모든 걸 이길 수 있는 무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바로-

<‘수면’은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거야.>

<난 이 GV를 보려고 아침 8시부터 줄을 서 있었다고.>

영화관 앞에 모여서 <수면>에 대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 그들의 손에 묶인 실.

그리고 그 실이 향하는 <수면>의 포스터.

‘사람들은 <수면>을 좋아하고 있다.’

바로 <수면>이라는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빅5도, 헐리웃에서 가장 악명 높은 기자도 두렵지 않게 만드는 <수면>이라는 영화. <수면>이 고작 실비아의 방해공작에 밀릴 것 같지는 않았다.

“GV를 취소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취소하면 취소한다고 또 기사를 내보낼 테니까요. 차라리 제대로 준비를 해서 대응하는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래요. 그런데 문제는 서감독님이네요.”

한록의 말에 최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제로 GV에 나서고, 실비아의 질문에 대답해야할 것은 결국 서감독이기 때문이었다.

“이건 서감독님의 결정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한록이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서감독을 만나고,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한 한록. 한록의 말을 들은 서감독이 짧게 물었다.

“그래서, 팀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리고 한록의 답은-

“솔직히 저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실비아의 공격을 잘 돌파한다면, 이건 오히려 <수면>을 알리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건 GV가 잘 끝났을 때의 얘기 아닙니까.”

“잘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요.”

서감독의 말에 한록이 입을 다물었다. 다른 모든 사람과는 다르게, 한록이 이렇게까지 GV를 밀어붙이는 이유. 그건 바로 지금 서감독의 주위를 맴도는 수많은 실 때문이었다.

서감독의 주위를 탐색하는 끊어질 듯이 가는, 밧줄처럼 굵은, 반짝반짝 빛을 뿜는, 셀 수 없이 많은 실들. <수면>과 서감독을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의 실이었다.

‘영화 때문에 실이 연결되다니.’

수많은 영화를 담당해온 한록도 처음 보는 광경.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면>이라는 영화에 큰 관심과, 호의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빅5의 장난질이나, 실비아의 악의적인 기사 같은 건 통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수면>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수면>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은 기사 몇 개 따위로 <수면>한테서 돌아서지 않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아시죠?”

그러나 이 사실은 오로지 한록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지금 LA씨어터에서 외국 영화 중 최초로 매진 기록을 세웠습니다. 거기에, 서감독님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고요. 한국 영화 중 어떤 영화도 세우지 못한 기록입니다. 물론, 이런 말이 감독님을 안심시킬 수 없단 것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한록의 차분하지만, 자신감이 느껴지는 말.

“사람들은 이제 쓸데없는 가십이 아니라, <수면>이라는 영화 자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에 서감독은 얼마 전 한록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저도 제 일에 프라이드가 있거든요.

자신.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팀장님은 GV가 좋게 끝날 거라고 예상하시는 겁니까.”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던 서감독이 한록에게 물었다.

“네. 실비아의 공격은 통하지 않을거고, 사람들은 감독님의 편을 들 겁니다.”

“그렇다면 팀장님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전과 같은 서감독의 말에 한록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록에게는 명확한 확신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서감독이 자신의 말을 억지로 따르는 건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한록의 말에 서감독이 답했다.

“아뇨. 따르겠습니다. 마케팅은 팀장님의 영역이니까요.”

이전과 같은 답.

그러나...

“팀장님의 프라이드, 한 번 믿어보겠다는 소리입니다.”

그때와는 다른 이유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 말과 함께, 다시 한록의 손목에 다가온 서감독의 실.

‘진심이다. 정말로 나를 믿고 있는 거야.’

그 실을 바라보며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감독에게 말했다.

*

결국 예정대로 진행되는 GV. 동시에 UP씨어터 뉴욕의 <수면> 무료 상영이 시작되었다.

[마가렛. 윤일이에요. 잠시 회의가 필요해요.]

“감독님. 바뀐 대본입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렸어요. 더 이상 대기는 불가능하다고 공지 올려주세요.]

[7번 상영관 입장 통제해주세요!]

[10분 뒤 <수면>의 상영이 시작합니다.]

[지금 상영관으로 입장을 진행해주세요.]

“팀장님!”

“상영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 회차도 예매하고 싶어요.]

[죄송합니다. 모든 객석이 매진입니다.]

[유료여도 상관없는데, 그래도 없나요?]

[네. 유료 상영관 역시 매진입니다.]

한록의 예상 그대로였다.

[GV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GV 신청은 오전에 마감되었습니다.]

[이거 정말 재밌네!]

[그렇지? 내가 꼭 봐야 한다 했잖아.]

[혹시 디렉터 서와 인터뷰 가능할까요?]

[죄송합니다. 먼저 들어온 인터뷰가 아직 안 끝나서요.]

점점 서감독에게 몰려드는 관객들의 실과, 기자들의 끝없는 인터뷰 요청. 초대형 영화관 안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수면>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최과장. 이거 있잖아.”

“네.”

“진짜 한번 해볼만 하겠는데?”

그렇게 현장의 뜨거운 분위기에, 해외팀의 여론도 바뀔 때 쯤.

[이어서 <수면>의 GV가 시작됩니다. 관객 여러분은 모두 상영관으로 입장해주세요.]

수면의 GV가 시작되었다.

상영관에 모습을 드러낸 서감독과, 통역을 위해 무대에 올라간 최과장. 그런 서감독에게 관객들이 보내는 환호와 박수소리.

[감사합니다. GV에 앞서, 여러분이 기다리고 있는 결과를 보여드려야겠군요. 2022년 최악의 영화관 1위. 바로 이곳, UP씨어터 뉴욕입니다.]

최대리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 영화관 프로젝트의 결말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CK와 유니버설이 마지막으로 준비한 퍼포먼스였다.

[UP씨어터 뉴욕은 UP씨어터에서 가장 큰 영화관인 동시에, 가장 수수료를 많이 받는 곳이고, 또 지난 5년간 가장 많은 계약을 파기한 곳이기도 합니다. UP씨어터 뉴욕은 5년 동안 73건의 영화와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평균의 3배에 달하는 기록이네요. 그 73건의 영화 중에는 <수면> 역시 포함되어있습니다. UP 씨어터측의 얘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

최대리의 말에 객석에서 있던 마가렛이 일어나 앞으로 향했다.

마가렛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가렛은 사과와 함께 본격적인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간 UP씨어터의 행동이 영화계, 그리고 관객들에게 큰 불편을 끼쳤음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달 간 UP씨어터 뉴욕에서 무료 상영 이벤트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렛의 말.

[저게 무슨 소리지?]

[뭐야? 앞으로 영화를 공짜로 보여주겠다는 건가?]

[무슨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거야?]

그 말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들.

[지금 바로 기사 보내!]

[빅터, 이거 영상으로 찍어!]

기사거리를 찾은 기자들과...

<조셉. 당신 말이 맞았어요. UP씨어터에서 무료상영을 카드로 꺼냈네요.>

이 상황을 미리 알고 있던 실비아 로렌스.

-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앞으로 한 달 동안 CK의 영화를 무료 상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실비아에게 전달한 유니버설의 이전 담당자, 조셉.

-다른 어느 영화사한테도 제시한 적 없는 조건이에요. 지금 한국 회사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흔들고 있는 겁니다.

조셉의 문자를 본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더 선의 실비아 로렌스입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그리고 디렉터 서에게 질문할 게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의 앞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

[누구지?]

[실비아 로렌스?]

실비아의 등장에 놀란 것은 관객들만이 아니었다. GV를 촬영하기 위해 모인 기자들 역시 놀란 눈으로 실비아를 바라보았고, 곧 떠오르는 생각에 얼른 카메라를 붙잡았다.

‘실비아가 사고를 치러 온 거다!’

그리고 실비아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발언을 이어갔다.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제보를 받았습니다. CK가 영화관 프로젝트란 명목으로 미국 영화관들의 결정에 간섭을 하고 있다는 제보였습니다. 그런데 방금 발표를 들어보니, 그 제보가 사실이란 생각이 드네요.]

[실비아. 인터뷰는 정식 요청 후...]

[아뇨. 여기서 대답을 들어야겠습니다. UP스튜디오측, 대답해주세요. 앞으로 한달 간 무료 상영한다는 영화가 설마 CK의 영화들인가요? 그렇다면 CK에게 영화관을 뺏긴 거나 마찬가지인데요. 한달 동안 뉴욕 한복판에서 한국영화를 무료로 상영해야 하다니. 그게 UP씨어터의 단독 결정인가요? 아니면 CK에게서 요구받은 건가요? CK의 개입이 완전히 없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마가렛을 몰아가는 실비아. CK가 유니버설을 협박하고 있다는 듯한 실비아의 말에 객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CK측과 논의한 내용입니다. 정확히는, 디렉터 서의 제안이었죠.]

마가렛의 대답에 객석이 한층 더 시끄러워졌다.

[그러니까, 지금 저 사람이 UP씨어터를 협박했단 건가?]

[그게 가능해?]

어느새 GV는 잊고 실비아의 얘기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 실비아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이번엔 서감독에게 질문을 던졌다.

[디렉터 서. 이게 무슨 말이죠? 디렉터 서의 의견이었다면, 설마 UP 씨어터에게 <수면>을 한달이나 무료 상영하라고 강요한 건가요? 이게 UP씨어터가 한 일과 뭐가 다르죠? 대체 무슨 권리로 미국의 기업에게 그런 일을 강요한거죠?]

기회를 잡았다는 듯 질문을 퍼붓는 실비아. 미친 듯이 셔터를 누르는 기자들.

-그리고 상영관 구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해외팀.

“우리랑 UP씨어터 사이의 일인데. 실비아가 저걸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UP씨어터에서 유출이 있었던 거예요.”

“대체 어떤 놈이야?”

한 달간 UP씨어터 뉴욕에서 CK의 영화를 무료 상영하겠다. 유니버설이 제안한 사실이었고, CK 역시 흔쾌히 받아들인 일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두 회사 사이에서 확실시 되던 계약.

“팀장님 말대로 여기부터 시작하네요. 미리 얘기를 해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해외팀이 닉의 연락 후 가장 먼저 대비를 한 부분이었다.

[디렉터 서. 당장 대답해주세요.]

태연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해외팀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의기양양하게 서감독을 재촉하는 실비아. 서감독 대신 마가렛이 입을 열었다.

[디렉터 서가 UP씨어터의 결정에 개입을 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방금 질문한 것처럼 자신의 영화를 상영해달라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 개입을 했죠? 디렉터 서. 본인이 대답해야하지 않나요?]

실비아는 서감독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때 서감독과 한록의 눈이 마주쳤고,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세요.’

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서감독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시작했다.

“여기는 인터뷰장이 아니라 GV를 하는 곳입니다. 굳이 이 자리에서 답을 듣고 싶은 겁니까?”

[네. 들어야겠어요.]

“그럼 답변 드리죠. 제가 UP씨어터의 결정에 개입을 한 게 맞습니다.”

[어떤 개입을 했죠?]

그 말에 서감독이 답했다. 몇시간 전, 한록이 서감독에게 해준 말이었다.

-감독님. UP 씨어터와 합의 끝났습니다. 실비아가 질문을 하면 이렇게 말하세요.

“UP씨어터가 한 달 동안 <수면>을 상영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거절했죠.”

-<수면>의 무료상영은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그 대신, 다른 영화를 상영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수면>말고 다른 영화를 상영해달라 요청했다.

[그게 어떤 영화죠? 아, 이번에 새로 개봉한다는 디렉터 서의...]

“아니요. CK의 영화도, 제 영화도 아닙니다.”

-CK의 영화와, 수면, 내 새로운 작품. 다 필요 없다.

[그럼 대체 어떤...]

도저히 답을 알 수 없는. 그리고 자신의 함정을 몇 번이나 피해가는 서감독의 대답. 그 말에 실비아가 인상을 찌푸렸고...

“저는 그간 UP씨어터가 거절한 73건의 영화를 상영해달라고 했습니다.”

[이거지!]

객석의 누군가가 탄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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