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95화 (176/263)

저는 팀장님한테 그렇게 배웠습니다.

닉 해리스의 아이디어를 위해 회의에 돌입한 해외팀.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닉 해리스란 이름에 흥분에 빠져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닉 해리스가 <수면>의 마케팅 아이디어를 보냈다고? 그 사람이 왜?”

“영화관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수면>이 흥행할수록 좋으니까 그렇겠지.”

“그래도 우리도 경쟁사인데. 이렇게 막 도와줘도 되나?”

“우릴 경쟁사로 취급하지 않는거지.”

“우씨. 자존심 상하네.”

“그래도 닉 해리스랑 일하는 게 어디야.”

“그건 그래.”

마케팅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닉 해리스. 그가 <수면>을 위해 직접 메일을 보내왔다. 모두가 들떠있는 그때, 한록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닉 해리스의 마케팅 전략입니다. 화면 봐주세요.”

스크린에 유선이 만들어준 PPT를 띄우는 한록. 한록이 닉이 보낸 메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심사를 통해 상영관을 선별한다.

-또한, 상영관을 극도로 제한하여 관객들이 쉽게 영화를 볼 수 없도록 만든다.

-‘아무 곳에서나 상영하지 않는 영화’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라는 전략은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특별한 영화’라는 인식을 줄 것이다.

물건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고급화 마케팅’. 그리고, 수요에 비해 공급을 극단적으로 줄여서, 소비자가 제품을 갈망하게 만드는 ‘헝거 마케팅’. 한록이 이번에 노린 마케팅은 이 두가지였다.

[명품에 자주 사용되는 마케팅을 도입했군요.]

닉의 메일은 한록의 전략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한록의 전략에 대해 칭찬하는 닉.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마케팅은...

[CK측이 제안한 마케팅 포인트를 극대화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영화관만이 아니라, 관객들도 심사를 통해 선별하는 방안입니다.]

한 마디로, ‘관객들도 수준이 맞는 사람만 받자’는 것이었다.

“소득, 학력이 일정 수준 이상인 관객만 선별하거나, 티겟 가격을 10배 이상 책정하는 등으로 일반 관객은 <수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수면>이 특별한 영화이며, <수면>을 보지 못하는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뒤처진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게 만든다. 이는 <수면>에 대한 아주 강렬한 갈망을 가져올 것이다.”

‘아무나 볼 수 없는 영화를 만들어라’라는 닉의 전략.

“와...”

닉의 얘기를 전해들은 송과장이 작게 감탄을 흘렸다.

“구매자를 심사해서 적합한 사람한테만 판다. 롤스로이스가 쓰는 방법이네. 이걸 영화에 적용할 수도 있구나.”

“확실히 이슈는 되겠는데...관객을 학력으로 자르겠다고? 엄청 욕 먹지 않을까?”

“욕 먹는 만큼 잘 팔릴 거예요. 미국이 원래 그런 나라니까.”

“영화는 명품이 아니잖아.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영화를 보고 싶어할지 모르겠는데.”

“그 부분을 부추기기 위해 계속 기사를 내보내겠대요. <수면>의 마케팅에 대한 비판 기사랑, 그걸 옹호하는 기사 양쪽을요. 그럼 또 노이즈마케팅이 되겠죠.”

“어떻게 해서든 <수면>은 유명해지는 거구만.”

걱정하는 현차장과, 긍정적인 반응의 최대리까지.

그들은 하나같이...

“이거면 무조건 성공이네.”

닉의 마케팅이 엄청난 반응을 끌고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이거 또 교과서에 실리겠네.”

사람들은 닉의 아이디어에 평가를 하기는커녕, 감탄만 하고 있었다. ‘관객을 심사한다.’ 아무도 떠올리지 못한 발상과 그걸 뒷받침하는 전략들까지. 모두들 닉의 아이디어에 더 이상 입을 댈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한록 역시 이 마케팅이 엄청난 성과를 가져오리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욕망과 과시의 나라 미국. 사람들은 명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줄을 서는 것처럼 <수면>이 상영되는 영화관 앞에 줄을 설 것이고, 그 줄이 길어질수록 <수면>의 유명세는 커져갈 것이다.

그렇게 끝없이 길어지는 <수면>의 대기줄. 커지는 유명세. <수면>을 보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려는 사람들. SNS에 올라올 <수면>의 티켓과, 그걸 통해 자신의 과시욕을 채우려는 사람들. 어쩌면 또 영화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로 교과서에 실릴지도 모르는 닉의 아이디어.

‘그게 과연 좋은 마케팅인가?’

그리고 한록은 그게 정말로 <수면>을 위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팀장 생각은 어때?”

한록이 한참동안 말이 없자 현차장이 질문을 던져왔다. 잠시 고민하던 한록이 사람들에게 신중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확실히 이번 프로젝트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수면>과 서감독님에게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수면>의 작품성에 집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냥 <수면>을 봤냐 안 봤냐만 이슈가 될 거예요. 실제로 <수면>이 이렇게까지 해서 볼 가치가 없었다는 의견도 나오게 될 거구요.”

한록이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답하는 유선. 그 말에 현차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이건 <수면>을 마케팅 하는게 아니라, <수면>이 가진 권위를 파는 마케팅이니까.”

“지금 우리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야.”

하지만 문제는 정부장의 말처럼 지금은 CK도 한시가 급한 상황이란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느냐, 아니냐로 미국에서 CK의 입지가 결정 될 거다. 그런데 지금 영화 하나 때문에 닉 해리스의 아이디어를 거절하겠다고?”

“그건...”

“어차피 서감독 신작도 우리랑 하고 있잖아. 그때 제대로 푸쉬 넣어주기로 하고, 이번엔 우리 식대로 진행해야 해. 어차피 우리가 망하면 서감독 다음 작품도 없어.”

정부장의 아주 현실적인 말 앞에 입을 다무는 유선. 한록 역시 정부장과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영화 하나를 희생시켜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평소의 한록이라면 절대로 내리지 않았을 결정. 하지만 한록은 더 이상 대리, 과장이 아니라 팀장이었고, 한록의 판단에 해외팀이라는 팀 하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이팀장. 이대로 진행하자.”

정부장의 말에 한록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일단은 닉의 아이디어를 따르는 걸로 갑시다.”

결국 결정을 내렸다.

*

“내가 본부장님한테 보고드릴게.”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정부장.

“이팀장, 안 가?”

“잠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요.”

불이 꺼진 회의실에 혼자 남은 한록.

“...”

그리고 그런 한록을 지켜보는 유선.

*

닉의 아이디어대로, ‘관객들을 선별해서 <수면>을 관람할 자격을 주겠다’는 마케팅을 진행하기로 한 해외팀.

“팀장님. 벌써 얘기가 돌았나 봐요. 미국마케팅협회에서 닉 해리스랑 같이 인터뷰 하자는데요?”

“거절해주시고, 스튜디오 B 쪽에도 절대 먼저 인터뷰 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수면>의 마케팅과, 닉의 합류로 더욱 커진 영화계의 관심.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오늘은 이 모든 과정을 당사자인 서감독에게 알려줄 날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점심이 지난 오후. 한록의 개인사무실에서 만나게 된 서감독과 한록.

불과 몇 달전까지 <도착지>와 <수면>의 대상을 두고 다투던 두 사람이, 이제 세계에 <수면>을 알리기 위해 다시 모였다.

“제 다음 영화는 팀장님한테 맡기겠다고 했죠. 그게 사실이 됐네요.”

그 아이러니를 느낀 것인지, 서감독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감독의 실은 은은한 빛을 뿜으며 한록의 손목 옆에 놓여있었다. 한록에 대한 서감독의 신뢰와 호기심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제는 적이었던 사람이 보여주는 호기심과 호의. 그에 한록 역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진짜 다음 영화는 따로 있지 않습니까. 감독님의 신작 역시 제가 담당하고 싶습니다.”

“그건 정말 나중 얘기가 될 것 같네요.”

자신의 신작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말을 아끼는 서감독.

“제작에 문제라도 있습니까?”

“없어요.”

서감독이 피곤한 얼굴로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한록은 서감독이 최종 편집본 때문에 제작부와 논쟁을 벌이고 있단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회귀 전 지켜봐 온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감독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상 영화계에서 절대적인 갑은 제작사와 제작부서, 그리고 투자부서였다. 그들의 선택이 없다면 애초에 영화 제작이 시작되지도 못하니까.

그나마 한국은 제작사와 감독이 서로 조율을 해나가는 정도지, 미국은 사실상 제작사의 입맛에 맞게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대중적으로 진행하면 안 될까요?

CK의 계속되는 편집 요구와, 예술가로서의 고뇌.

‘요청사항은 편집에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서감독은 오만한 예술가지만 동시에 아주 현실적인 감독이었다. 결국 서감독은 CK의 요청사항을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훗날, 서감독은 이 결정을 아주 오래 후회하게 된다.

한록은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었고...

“만약 문제가 생기시면 말씀해주세요.”

“팀장님한테요?”

“네. 제가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거든요.”

이번에는 다른 결말을 만들 생각이었다.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으시다고요.”

흥미로운 눈으로 한록을 바라보는 서감독의 눈빛과, 사무실에 감도는 약간의 정적.

그리고 아주 살짝 한록의 손목을 감싸는 서감독의 실.

“다음번엔 신작에 대해서 얘기해봤으면 합니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서감독의 실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서감독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일단 오늘은 <수면>에 대한 얘기부터 하죠.”

그리고 서감독의 말에 한록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제는, 정말로 서감독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할 때였다.

“지금까지 회의 된 마케팅 전략입니다. 영화관 프로젝트에 닉 해리스가 아이디어를 보내왔습니다.”

한록은 서감독에게 닉 해리스의 마케팅 전략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서감독이 주의깊게 한록의 얘기를 들었고-

“감독님은 이 마케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싫습니다.”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

“관객들의 수준을 나눠서 영화를 보여주겠다.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서감독은 언제나 계급과 불평등에 대해 말하는 감독이었고, 특히나 이번 신작은 사회고발 요소가 강하게 들어가 있는 영화였다.

“영화는 대중 예술이에요. 특정 계급한테만 영화를 보여줄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영화감독이 되지도 않았겠죠.”

한록의 예상 그대로. 아니, 한록의 신념과 똑같은 말을 하는 서감독.

“...마케팅에 반대하시는 겁니까?”

“아뇨. 마케팅은 팀장님의 영역이죠. 제가 반대할 권리는 없습니다. 팀장님의 결정을 따를 겁니다.”

자신의 예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한록의 권한을 존중하겠다고 말하는 서감독. 하지만 한록은 그게 찬성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다만, 팀장님도 이 마케팅에 동의하시는건지 궁금하긴 하네요.”

“닉 해리스의 아이디어입니다. 이대로만 진행한다면 <수면>은 여태 CK가 맡아온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할 겁니다.”

“아, 그래요.”

한록이 그렇게 대답한 순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서감독과 한록 사이에 이어졌던 실이 끊어졌으니까.

“그렇다면 팀장님의 판단대로 진행하세요.”

서감독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그렇게 끝난 서감독과의 미팅. 한록이 서감독을 배웅하며 말했다.

“감독님. 신작에 대한 얘기도 곧 나눠봤으면 합니다.”

그러나 한록 역시 이 말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닉 해리스의 마케팅에 동의하는 이상, ‘관객들에게 급을 나누겠다’고 말한 이상...

“아뇨,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서감독이 자신을 신뢰할 일은 없을 것이다.

서감독이 인사와 함께 사무실을 떠났다.

*

그렇게 끝난 서감독과의 미팅.

미팅 후에도 한록은 한참동안이나 생각에 잠겨있었다.

모두를 위한 예술. 누군가의 일상에 위로가 되는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컨텐츠.

그게 한록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였고, 동시에 서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자.’

그리고 어느새 한록의 꿈이 된 단 하나의 목표.

그런데 지금, 한록은 자신의 철학과는 정반대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다.

팀을 위해서 내린 결정과 자신의 신념. 그 앞에서 고민하는 젊은 팀장.

그렇게 한록이 끝없는 고민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 한록을 찾아왔다.

“...팀장님. 퇴근 안하세요?”

유선이었다.

*

“해야할 일이 남아서요. 무슨 일이에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앉으세요.”

한록의 말에 의자를 가져와 한록의 책상 앞에 앉은 유선. 유선은 겁도 없이 사무실로 찾아온 것과 달리 어렵게 말을 꺼냈다.

“팀장님. 닉 해리스의 아이디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유선이 말한 ‘할 말’은 바로 한록이 고민해오던 화제였다.

“...좀 더 자세히 말해줄래요?”

“닉 해리스의 마케팅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거란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이 마케팅에 반대하지 않는 거고요. 하지만, 앞으로 서감독님 영화에 계속 안 좋은 말이 나올 것 같아요.”

유선은 한록의 우려와 똑같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서감독님은 불평등에 대해 다루시는 분이잖아요. 신작도 그런 내용이고요. 그런데 관객의 급을 나누는 마케팅을 진행하면, 앞으로 서감독님이 만드는 모든 영화에 꼬리표가 붙게 될 거예요. <수면>은 말할 것도 없고요.”

“네.”

“그리고...대중을 따돌리는 마케팅 자체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는 꿈과 희망을 줘야 하는 거잖아요.”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마케팅. 과연 그런 마케팅을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 서감독의 영화와 반대되는 마케팅과, 그로 인해 따라붙을 서감독에 대한 악평들. 한록이 걱정하는 모든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는 유선.

자신을 빼다박은 유선의 모습에, 한록이 솔직하게 속마음을 얘기했다.

“저도 그 부분이 걱정돼요, 유선씨.”

“...그럼 왜 닉 해리스의 마케팅을 따르자고 말씀하신 건가요?”

“부작용이 있을 건 알지만...그만큼 효과가 좋으니까요. 지금 CK는 가장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고요. 이 마케팅이 좋지 않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닉 해리스의 아이디어고, 이걸 넘을만한 다른 방법이 없어요.”

‘어쩔 수 없다’는 한록의 말.

그러나 한록의 말에도 유선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팀장님. 저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주 신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닉 해리스의 아이디어는 효과는 좋지만, <수면>을 망칠 수도 있는 아이디어잖아요. 그럼 굳이 그걸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되는 거잖아요. 효과도 좋고, <수면>에도 어울리는 마케팅을요.”

한록이 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묻어뒀던 패기.

“우리가 닉 해리스보다 좋은 마케팅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부심.

“실패하면 타격이 너무 커요.”

“하지만 도전해보지도 않고 물러설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도전정신을 담은 유선의 말.

그런 유선의 모습을 보며, 한록은 머릿속이 명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내가 잊고 있는 게 있었다.’

상대가 닉 해리스든, 미국이든, 헐리웃이든, 아무 상관 없다.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이 있다면 극복하면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면 뛰어넘으면 된다. 타협하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게 한록의 스타일이었고, 그게 해외팀을 여기까지 올라오게 만들어준 방법이었으며.

“저는 지금까지 팀장님한테 그렇게 배웠습니다.”

여태까지 한록이 유선에게 가르쳐준 방법이었다.

-불가능한 것에는 맞설 것.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

“팀장님. 저는 팀장님이 닉보다 더 좋은 마케팅을 만드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더 뛰어나지는 못해도, 그래도 더 좋은 마케팅이요.”

-그리고 자신과 팀을 믿을 것.

자신이 했던 말들을 되돌려주는 후배의 모습. 그 모습에 자부심과 설렘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한록이 유선의 이름을 불렀다.

“유선씨.”

자신도 잊고 있던 얘기를 해주는 아주 기특한 후배.

“고마워요. 앞으로도 이렇게 말해주세요.”

그런 유선에게, 이제는 칭찬보다는 감사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네, 알겠습니다!”

뿌듯한 표정으로 한록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나선 유선. 한록이 유선을 배웅했고, 자리로 돌아와 곧장 정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케팅 업계의 전설. 닉 해리스. 그가 제시한 마케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부장님. <수면>의 마케팅에 대해 다시 얘기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닉 해리스를 뛰어넘기 위한 방법을 찾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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