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왔다.
한록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아니, 영화를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영화.
“무슨 비밀을 말해주실 겁니까?”
“글쎄요. 궁금한 건 뭐든?”
정말로 한록의 속마음이 궁금한 것 같은 최대리. 최대리의 말에 한록은 과거를 떠올렸다.
아무도 없는 텅빈 영화관에서, 올라가는 엔딩 스크롤을 보며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던 학창시절의 한록. 그리고 그 순간 깨닫게 된 사실.
어떤 영화는 사람의 삶을 바꾸고,
어떤 순간은 사람이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기억을 만들어준다.
-한록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준 영화가 대체 어떤 영화였냐면.
“아직은 비밀이에요.”
너무 간절해서, 아직은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영화였다.
“왜요?”
“아직 준비가 다 안 됐어요.”
“그럼 언제 알려줄 건데요?”
“다음 분기 LA 센트럴 영화관 상영관 따오면 알려드릴게요. <수면>이랑 서감독님 신작을 거기서 상영하고 싶거든요.”
LA 센트럴 영화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관으로, 매 달의 마지막 날 그 달의 최고 인기작을 하루종일 상영하는 이벤트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다보니 LA센트럴은 굉장히 엄격하게 영화를 선택했고, LA 센트럴에 영화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화는 큰 입소문을 타곤 했다.
그러다보니, 미국의 모든 영화제작사들이 영화를 집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곳. 그런 곳의 상영관을 가져오라는 한록의 말은...
“안 알려주겠단 거죠?”
“그렇죠.”
사실상 말해주지 않겠다는 것과 동일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한록의 대답에 최대리가 살짝 미소를 짓더니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최대리는 화가 났다기보단...
“좋네요.”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때, 야경 앞에서 사진을 찍던 하대리와 유선이 둘에게 다가왔다.
“어...최대리님 주무시나요?”
“아뇨. 잠깐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그럼 저희 사진 찍어요.”
핸드폰을 들고 말하는 유선. 최대리와 한록은 둘의 손에 이끌려 창문으로 다가갔다.
얼떨결에 창문 앞으로 다가간 한록은 눈앞에서 보이는 눈부신 야경을 바라보았다.
높은 빌딩의 아래로 보이는 반짝이는 뉴욕의 야경.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자동차.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상영되고 있을 <시험>.
그리고, 창문에 비치는 자신의 팀원들.
가슴을 충만하게 채우는 기쁨에 한록이 미소를 지었으며-
“어, 팀장님 웃으신다!”
유선이 그 말과 함께 핸드폰의 셔터를 눌렀다.
*
그날 밤. 술을 잔뜩 마시고 호텔방으로 돌아온 한록.
한록은 침대에 누워 오늘 도착한 연락들을 확인했다. 그 중, 단연코 눈에 띄는 사람의 메시지가 있었다.
[재밌게 봤습니다.]
제롬의 메시지였다.
짧고 간결한, 그러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게 드러나는 제롬의 메시지.
제롬의 메시지를 바라보던 한록이 핸드폰을 가슴에 내려놓았다. 자신이 정말로 존경하는 사람의 담백한 인정. 그 사실에 마음이 뿌듯하게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되지.’
그리고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한 한록은 바로 다음 스텝을 생각했다.
‘일단 미국에서 CK의 입지를 넓히자. 고정 상영관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고...그러려면 일단 서감독님 영화가 크게 성공해야해. 정말 LA 센트럴에 영화를 넣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앞으로 한록에게 주어진 또 다른 임무들. 대부분이 사람들이 ‘그건 불가능하다’고 할 만한 일들이었다.
‘할 수 있을까?’
한록에게 든 생각. 그리고-
‘할 수 있다.’
바로 이어진 대답.
해외팀의 팀장이라는 위치. 제작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오늘의 성과까지.
최대리에게 말했던 ‘준비’. 그게 사실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곧 말해드릴게요.’
‘아니다.’
‘곧 보여드릴게요, 최대리님.’
그런 생각을 하며 한록은 눈을 감았다.
*
그리고 며칠 후. 뉴욕으로 출장을 갔던 사람들이 다시 복귀를 하는 날. 최경준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해외팀의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흐음.’
최경준이 읽고 있는 것은 이번 <시험>의 성과에 대한 보고서였다.
<시험>의 반응은 정말로 좋았다. 개봉 첫 주임에도 이미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에서 <시험>에 대한 반응이 나오는 상황. <시험>이 영화관에서 내려갈 때면, 아마 전 세계의 시네필들이 <시험>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 분명했다.
엄청난 관객수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시네필들에게는 큰 어필을 한 <시험>. 특히, 이번 퍼포먼스에 대한 관심은 <시험>에 대한 관심보다도 컸다. 어쩌면 정말로 코믹콘에서 <저주의 새벽>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시험>으로 인해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 이한록이군.’
해외팀의 출범 때부터 한록이 좋은 성과를 내리란 것을 예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록에게 팀장 자리를 맡기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한록은 기대보다도 더 좋은 성과를 내주었다. 그리고 그 성과보다도 더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팀이 꽤 잘 돌아가고 있군.’
아직 제대로 된 인원 충원도 안 됐는데 해외팀 업무가 무척 잘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최대리, 정부장. 최경준이 주시하는 해외팀의 기대주들. 그러나 그들 외에도 대부분의 구성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현주훈...’
그리고 그 구심점은 현차장이었다.
사무실에 남은 사람들에 대한 업무 분배. 현장에 나간 사람들을 요청 처리. 예산 사용과, 거래처들과의 계약까지. 그 모든 것에 현차장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사실상 현차장이 현장에 나간 사람들을 위해 모든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전혀 신경쓰지 않던 인물의 활약에 최경준은 며칠 전 한록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팀원들 덕분입니다.’
자신의 팀원들을 인정해달라던 한록의 말. 그리고 지금. 그들이 보인 결과.
‘그래. 그 말이 맞군.’
그때의 한록을 생각하던 최경준이 피식 미소를 지었고, 책상의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장비서에게 말했다.
“자네가 할 일이 있네. 인사팀에 다녀와.”
*
같은 시간. 오랜만에 회사로 출근을 하는 한록. 한록은 반차를 내고 점심시간이 지난 후 출근을 하는 중이었다.
[실시간 한복 코스프레 하는 미국인들.JPG]
< <시험>에 나오는 멋진 모자는 대체 어디서 사야 하는 거야? >
[최근 미국에서 <시험>과 한복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지고 있습니다.]
차에서 내린 한록은 핸드폰의 기사를 확인하고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 해외팀에 도착했을 때는-
“이한록 팀장.”
최경준이 해외팀 사무실 한복판에 서 있었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해외팀에 나타난 최경준. 그리고, 한록과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표정의 팀원들. 팀원들의 표정을 눈치챈 한록이 대표로 최경준에게 물었다.
“본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전달해줄게 있어서.”
최경준이 말하자, 최경준의 뒤에 서 있던 장비서가 앞으로 나섰다. 장비서가 상자에 담아 들고 온 것은...
“곧 해외팀 정식 개편 아닌가. 전달해주고 싶어서 왔네.”
승진을 하는 해외팀 사람들의 새 명함.
“아무래도 직접 전해주는게 기분이 좋지 않겠나.”
그리고 금일봉이었다.
본부장이 직접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행차했다. 그 짜릿한 사실에 눈을 빛내는 해외팀 사람들이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최경준이 최대리의 이름을 불렀다.
“최윤일 대리. 이제 일주일 후면 과장이 되겠군. 자네 실력에 비해 승진이 늦어졌어.”
“네, 저도 좀 늦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다음이 빠르면 되지 않겠나.”
최경준과 넉살좋게 얘기를 나누는 최대리.
‘이야. 역시 최대리가 대표로 받는구나.’
‘본부장님한테 저렇게 편하게 얘기하다니...’
사람들은 부러움에 가득 찬 눈으로 최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최경준이 누군가를 보며 말했다.
“강석원 과장. 이직한지 얼마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 꽤나 적응이 빠르군. 송윤아 과장은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고.”
최대리만이 아니라 사람들 하나하나를 불러 명함과 금일봉, 그리고 칭찬을 건네는 최경준.
“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사람들은 최경준의 모습에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최경준에게 이렇게 직접 칭찬을 받은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김유선 사원. 열심히 하고 있더군.”
“네, 네...!”
“그리고 잘하고 있어.”
그리고, ‘열심히 하는 것보단 잘해봐라’라고 말했던 유선에 대한 격려까지.
그간 유선의 고생을 알고 있는 현차장이 마치 유선의 부모라도 된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최경준이 마지막으로 현차장의 이름을 불렀다.
“현주훈 차장.”
“네, 본부장님.”
‘난 현차장에게 기대가 없어.’
‘회사는 뛰어난 20명이 평범한 80명을 이끌어 가는거지.’
늘 현차장을 무시하던, 아니, 현차장에 대해선 신경도 쓰지 않던 최경준. 한록은 조용히 현차장과 최경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최경준은...
“정부장이 곧 바빠질 거야. 그럼 자네가 정부장 대신 이팀장을 잘 도와주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해외팀이 정리되면 정부장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게 이미 확정이 된 상황. 지금 같은 상황에서 최경준이 ‘정부장 대신’이란 말을 한다. 차장급들이 빠르게 눈을 굴렸고, 상황을 파악했다.
-최경준이 현차장을 정부장의 후계자로 삼고 있다.
모두가 놀라고, 현차장 역시 깜짝 놀라 아무런 답도 못하는 상황.
그때 누군가 현차장 대신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차장님.”
한록이었다.
“그때가 되면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차장님.”
그리고 현차장을 바라보며 말하는 한록. 한록과 현차장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한록에 눈에 담긴 뿌듯함. 즐거움. 그리고 현차장에 대한 기대와...
믿음.
그 눈빛에 현차장의 마음속에 무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내게도 기회가 왔다.
설렘.
-놓쳐선 안 된다.
간절함.
-나는 할 수 있다.
-해내고 말 것이다.
강한 다짐.
그때 한록이 현차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현차장이 마치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맡겨주십시오, 본부장님.”
아주 단호한 목소리였다.
*
[현차장 본부장님 눈에 든 거 맞지?]
[이제 정부장님 가시면 현차장이 부장 되는 건가?]
[우와, 대박. 난 최대리가 될 줄 알았는데.]
오늘 최경준의 등장으로 한바탕 뒤집어진 해외팀. 사람들의 메신저가 불타는 동안, 현차장은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자네가 정부장 대신 이팀장을 도와주게.’
15년의 회사생활. ‘과연 정년을 다 채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제 더 이상 아무런 꿈도, 미래도 없을 때 그때 찾아온 기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
“좋으시겠습니다, 차장님.”
그때 누군가 현차장을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한록이 담배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담배 끊으셔야죠, 차장님.”
“이팀장도 피잖아.”
“전 자식이 없잖아요.”
“한서는?”
“...그건 그렇네요.”
현차장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한록. 그 말에 현차장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담배를 몇 모금 들이마신 현차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자꾸 한숨을 쉬세요.”
“그냥. 어깨가 무겁네.”
한록의 질문에 현차장이 솔직하게 말했다.
마흔 살. 아직 너무나 젊은데, 회사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많은 것을 증명해야 하는 나이. 그리고 그동안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던 현차장.
그런 현차장의 앞에 새로운 기회가 나타났다. 너무나 기쁘고, 해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두려움이 드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정부장님처럼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계속 드네.”
‘정부장 대신’이라고 말하던 최경준. 하지만 현차장에게는 정부장만큼의 카리스마도, 냉철한 판단력도, 실적을 위해 모든 걸 감수할 무자비함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말 최경준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란 걱정을 하는 현차장.
“차장님.”
그리고-
“전 부장님보다 차장님이 좋은데요.”
모든 걱정을 끝내주는 한록의 다정하고 장난스러운 말.
한록의 말을 들으니, 현차장의 머리 속에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부장만큼의 카리스마가 없는.
하지만 그만큼 친근한.
-냉철한 판단력도 없는.
그래서 남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
-실적을 위해 모든 걸 감수하는 무자비함도 없는.
그래서, 부하들을 더욱 신경쓰는.
정부장이 아닌 현차장의 모습.
자신의 장점들.
그동안 외면해오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현차장이 한록에게 말했다.
“...이팀장. 나도 말이야...목표란 게 생겼는데.”
“네.”
“단호할 땐 단호하고, 혼낼 땐 무섭고...그래도 회사에서 힘든 일 있으면 제일 먼저 얘기할 수 있는 상사. 그런 상사가 되고 싶어. 멋진 상사 말이야.”
자신의 목표를 말하는 현차장.
“네, 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현차장을 믿어주는 한록.
그 말에 현차장이 한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온 진심을 얘기했다.
“고마워, 이팀장.”
“뭐가요.”
현차장, 그리고 아마 모든 사람이 한록에게 가장 고마워하는 점.
한록은 남을 믿어주고,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이었다. 장점을 알아봐주고, 실수는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끌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걸 통해서.
“이팀장이랑 있으면 꿈을 꾸게 되거든.”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이팀장. 나는 이제 곧 끝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봐.”
현차장이 한록을 보며 말했다.
마흔살의 현차장. 그의 눈앞에 남은 것은.
“내가 멋진 상사가 되나 안 되나 지켜봐야 해. 알았지.”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럼요.”
그 말에 한록이 눈부시게 웃으며 말했다.
*
그리고 다음날. AM씨어터와의 미팅을 위해 7시에 회사로 출근을 한 한록.
원래라면 아무도 없어야 할 해외팀의 사무실에는...
“현차장님,”
현차장이 앉아있었다.
“이팀장. 무슨 일이야?”
“AM 씨어터랑 미팅 때문에요. 차장님이야말로 무슨 일이십니까?”
“아침에 막히는 게 싫어서 일찍 나왔어. 회사에서 노는 것도 나쁘지 않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현차장의 책상에는 <시험>과 서감독의 신작에 대한 서류들이 잔뜩 펼쳐져 있었다.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어라.”
역시 AM씨어터 때문에 일찍 출근을 한 최대리. 최대리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현차장을 보고 한록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차장님. 무슨 일이세요?”
“그냥, 일찍 일어나서.”
현차장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짓는 최대리와, 그 모습에 미소를 짓는 한록.
불과 일 년 전까지 회사에서 주식창을 들여다보던 현차장과 그 모습을 싫어하던 최대리.
“...그러셨구나.”
그런 둘 사이에도 이제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
해외팀에서 서류를 챙겨온 한록은 개인 사무실로 향했다.
<시험>은 이제 이벤트가 제대로 진행되기만 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끝을 낼 수 있었다. 아니, 이미 <시험>은 외국 영화로서 초유의 기록을 달성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시험>이 만들어 준 발판을 활용할 때.
‘이제는 서감독님의 영화다.’
아시아 최고 기대주의 영화를 선보일 때였다.
‘서감독님 영화를 LA센트럴에 넣을 수 있다면...그럼 정말 제대로 홍보가 될 텐데. 방법이 없으려나.’
그렇게 한록이 고민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 사무실을 방문했다.
“팀장님. 시간 되시죠?”
최대리였다.
AM 씨어터와의 미팅은 8시 반이고, 최대리는 8시에 사무실을 방문하기로 한 상황. 그러나 최대리는 예상보다 30분이나 일찍 한록을 찾았다. 그리고-
“저희 할 얘기가 좀 있을 거예요.”
아주 의기양양한 태도로 한록에게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좋은 소식이 있거든요.”
한록이 묻자, 최대리가 한록의 책상에 서류하나를 올려두었다. 서류 맨 위에 달린 제목은 ‘LA 센트럴 씨어터측 계약 조건.’
한록이 ‘상영관을 따오면 비밀에 대해 얘기해주겠다’고 내건 조건. 최대리는 그걸 위해 정말로 LA 센트럴 씨어터의 상영관을 따 온 것이었다,
한국 최고의 감독과, 개봉만 하면 전 세계가 주목할 상영관. <수면>과 신작을 위한 완벽한 준비를 마친 최대리가 한록에게 말했다.
“한 번 달려봅시다,”
그리고 한록의 계약을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 전에 빨리 무슨 영환지 말씀해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