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90화 (171/263)

뛰어요.

원래 예상보다 훨씬 많이 모여든 사람들.

[이게 뭐야?]

[<시험> 개봉 이벤트라는데?]

[아, 나 그 영화 알아.]

거기에, 현장에서 궁금증 때문에 걸음을 멈춘 사람들까지.

영화관 앞에 모인 사람들을 보던 최대리가 한록에게 말했다.

“이미 성공했네요.”

최대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록. 수많은 사람들이 <시험>의 개봉 이벤트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오늘 한록은 이 사람들이 만족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잘 준비했다. 그리고 잘 끝날 거고.’

그러나 일은 언제나 예상처럼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모든게 완벽하게 준비된 이 순간, 한록에게 찾아온 돌발 상황 두 가지.

[미스터 한. 혹시 잠깐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십니까?]

[본사 측에서 <시험>의 이벤트를 전국으로 확대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디렉터 존이 오늘 한을 만나보고 싶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시험>의 이벤트가 열리는 영화관에서 아주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는 것이었다.

미국 최대의 영화관 체인인 AM 시어터에서 온 제안. CK에게는 엄청나게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반면 두 번째 소식은 비보에 가까웠다.

“팀장님. JC로펌에서 도로 사용권에 대한 허가증을 안 보내줬어요.”

바로 이번 이벤트를 위해 가장 필요한 서류가 누락된 것이었다.

2주라는 짧은 시간동안 도로 사용을 위해 주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CK.

외국회사인 CK를 위해 AM 씨어터에서 미리 도로 사용권을 받아두었고, CK는 당일까지 ‘CK가 AM시어터를 대신해 도로를 사용한다’는 허가증을 제출하기로 한 상황.

그런데 정작 도착한 서류 중 허가증이 빠져있는 것이었다.

“본인들도 왜 누락된 지 모르겠대요. 당장 보내준다는데, 지금 JC로펌에서 현장으로 보내줘도 3시간은 넘게 걸려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록에게 상황을 전하는 유선. 유선이 이렇게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허가증은 어딨죠?]

바로 유선의 뒤에서 엄격한 얼굴로 묻는 AM시어터의 직원, 피터 때문이었다.

‘만약 도로 사용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이벤트를 취소하겠습니다.’

AM시어터가 계약 당시 내걸었던 조건. AM 시어터는 주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하는 도로 사용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런데 이벤트를 앞둔 지금, 정작 허가증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미스터 한. 허가증을 제출해야합니다.]

다시 한 번 한록을 재촉하는 피터. 그때 한록과 최대리의 눈이 마주쳤고, 최대리가 스스로를 가리켰다. 자기가 나서보겠다는 것이었다. 한록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대리가 밝은 목소리로 피터에게 말했다.

[아, 그거요. 제 차에 있어요. 지금 당장 필요한가요?]

한치의 진실도 담겨있지 않은 거짓말이었다.

[차를 좀 먼 곳에 대놔서요. 10분 정도 기다려줄 수 있나요?]

[음...네, 그래요. 더 늦으면 안 돼요. 퍼포먼스가 시작되기 전에 경찰이 확인할 거라서요.]

[그럼요. 바로 가져다줄게요.]

그렇게 상큼한 미소로 상황을 무마한 최대리.

피터가 자리를 떠나자, 한록이 최대리에게 물었다.

“왜 거짓말을 하신 겁니까? 솔직히 말하고 기다려 달라고 하는게 나을텐데요.”

“절대 안 돼요. 계약서에 이벤트 전까지 허가증 제출하라고 적었잖아요. 지금 허가증이 없는 걸 알면 어떤 트집을 잡을지 몰라요.”

“트집이라면...”

“이벤트 잘 끝내놓고 위약금 청구하겠죠. AM이 원래 그래요.”

허가증이 없지만, 없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되는 상황.

“큰일이네요.”

“말투는 안 그렇게 들리는데요?”

그러나 한록은 다급한 상황에 비해 상당히 침착해보였다. 최대리의 말에 한록이 차분하게 답했다.

“해결할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한록은 유선과 최대리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JC한테 여기 근처 로펌으로 팩스를 보내라고 하세요. 그리고 우리가 직접 가지러 가면 30분 안에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유선씨. 지금 당장 출발해주세요. 최대리님. 퍼포먼스는 뒤로 밀고, 경품이벤트를 먼저 진행해주세요.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빠르게 브리핑을 마친 한록. 한록이 유선과 최대리를 보고 물었다.

“유선씨. 최대리님. 할 수 있죠?”

그 말에...

“...네!”

유선이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시간을 벌고 있겠습니다.”

유선의 대답에 근처 책상에 놓여있던 서류봉투를 집어든 한록. 한록이 유선을 스쳐지나가며 말했다.

“유선씨.”

“뛰어요.”

*

[12번가로 가주세요!]

택시에 올라탄 유선.

“지금 당장 근처 로펌으로 팩스 보내세요. 아니, 그건 그쪽 사정이고. 그쪽이 서류를 누락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지금 당장 보내세요!”

한국에서 JC로펌과 실랑이를 하는 현차장.

[아직 게스트 준비가 안 돼서, 경품 이벤트를 먼저 해야 합니다. 가능할까요?]

AM직원들과 일정을 조율하는 하대리.

[존. <시험>의 이벤트에 대한 논의를 했으면 하는데요.]

AM의 마케팅 디렉터 존을 찾은 한록.

그리고...

[윤일. 허가증은요?]

[어, 그거. 미스터 한이 가져갔어요. 그런데 지금 존이랑 대화중일텐데.]

다시 상큼한 미소로 거짓말을 하는 최대리.

[아, 그래요.]

최대리의 거짓말에 피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존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존은 한록과 함께 영화관 바로 옆 카페에서 대화를 하고 있었고, 한록은 존에게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넨 상황이었다.

[음...대화가 끝나면 제가 받으러 갈게요.]

그리고 존이 돌아선 순간, 최대리에게 도착한 유선의 문자.

<팩스 받았어요! 2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유선의 문자를 받은 건 한록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시간을 끌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한록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AM 씨어터 측에서 이번 이벤트를 전국으로 확대할 의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CK쪽 의견은 어떻습니까?]

[저희 역시 환영입니다. 다만, 비용 부분에서는 의견 조율이 필요하겠네요. 우리 측이 비용을 100퍼센트 부담하는 건 어렵습니다.]

시작부터 가장 민감한 부분인 돈 얘기를 꺼내는 한록. 한록의 말에 존이 약간 얼굴을 찌푸렸다.

[CK의 영화니 CK가 비용을 부담하는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리고 팔짱을 끼고, 의자에 몸을 기대는 존. ‘어디 한번 실컷 얘기해보자’라는 태도의 존을 보고 한록은 생각했다.

‘좋아. 됐다.’

20분.

아니, 한 시간도 충분하겠다고.

*

[보통 이벤트는 영화관도 함께 비용을 지불할텐데요.]

[그건 우리도 홍보효과가 있을 때 얘깁니다. <시험>이 그 정도의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글쎄요. 동의하기 어렵군요. AM씨어터 측도 홍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니 확대를 제안한 것 아니십니까?]

존과 대화를 주고받는 한록.

[빨리 좀 가주세요! 급한 일이에요!]

[동양인 아가씨. 뉴욕은 처음이야? 이 시간엔 내려서 뛰는 게 더 빨라.]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유선.

[하대리님. 경품 나중에 한꺼번에 전달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바로 전달하는 걸로 하세요. 그 편이 더 시간을 끌 수 있을 거예요.]

이벤트를 진행하는 최대리와 하대리.

[존. 잠깐 미스터 한에게 할 말이...]

[잠시만. 아직 대화가 안 끝나서.]

허가증을 찾으러 온 피터를 돌려보낸 존.

[여기서 내려주세요!]

[어? 정말이야?]

[네!]

택시에서 내려 뛰기 시작한 유선.

[AM씨어터 측이 비용을 나눠서 부담할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다른 파트너를 찾아보겠습니다.]

[다른 파트너 어디 말입니까? AM씨어터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영화관을 보유한 곳입니다. 우리 이상의 파트너는 어디에도 없을텐데요.]

[그건 모르는 일이죠. CK의 첫 파트너는 넷플릭스였으니까요.]

[...]

한록의 말에 입술을 씹는 존.

[윤일. 경찰이 허가증을 달라고 해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어요. 정말 허가증 있는 거 맞죠?]

[그럼요. 제가 피터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다시 한 번 거짓말을 하는 최대리.

[존. 이번 이벤트는 CK와 AM씨어터 양측에게 도움이 되는 일 일거라고 확신합니다.]

[아직 이벤트가 성공할지,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지금 하기엔 너무 이른 말이군요.]

[지금 모인 관객들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것 아닙니까.]

[이 관객들이 만족을 해야 진짜 성공이죠.]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리고 계속되는 존과 한록의 신경전에서-

[그럼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얘기합시다.]

한록이 깔끔하게 대화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태도가 변했어.’

놀란 얼굴로 한록을 바라보는 존. 그때 근처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피터가 존에게로 뛰어왔다.

[존. 경찰에게 허가증을 제출해야 해요.]

[아, 잠시만.]

피터의 말에 존이 한록이 준 서류봉투를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존이 피터에게 말했다.

[여긴 허가증이 없는데.]

[미스터 한이 허가증을 가져갔다고 들었는데요.]

[아니야. 여긴 없어.]

존의 말에 피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고하나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허가증의 모습. 피터가 의심에 가득 찬 얼굴로 한록에게 말했다.

[...설마 허가증이 없는 겁니까?]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한록이 여유롭게 말했다.

[아뇨. 있습니다. 반드시 제출하겠습니다.]

[있으면 지금 제출하세요. 허가증이 없으면 이벤트를 취소해야 합니다.]

[잠시만 기다리면 제 부하가 가져올 겁니다.]

[대체 언제까지 그 말을-]

그리고 피터가 되물은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가 카페로 뛰어 들어왔다.

“팀장님, 허가증 받아왔습니다!”

유선이었다.

*

한록의 테이블에 서류 한 장을 올려둔 유선.

한록이 서류를 확인하고, 곧장 피터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

이벤트가 취소되기 직전, 정말 가까스로 도착한 허가증.

[한. 정말 허가증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있었습니다. 이제 퍼포먼스 시작하겠습니다.]

[네, 진행해주세요.]

드디어 모두가 뛰어다니면서 지킨 퍼포먼스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게스트 입장하겠습니다.]

퍼포먼스의 진행을 지시하는 최대리.

“허가증 받았대!”

한국에서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현차장.

‘미스터 한은 자신만만하던데. 과연 그만큼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군.’

허가증 얘기는 꿈에도 모른 채, 팔짱을 끼고 관객들을 지켜보는 존.

‘모두가 노력한 일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해.’

‘아니.’

‘반드시 성공할 거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찬 한록.

각자의 생각들 가운데 이번 이벤트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

[뭐야? 이벤트 끝난거야?]

[아니야. 사인회 남았을텐데?]

[그런데 왜 부스를 철거하는 거야?]

도로 위 부스를 철거하는 AM의 직원들과 어리둥절해하는 관객들. 그리고, 그 중 누군가가 외친 소리.

[저기 좀 봐!]

그 말에 사람들 모두가 반대편을 돌아보았다. 돌아본 곳에는 텅 빈 도로 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몸을 기괴하게 꺾으며 도로 위를 걷는 사람들. 그들은 하나같이 한복을 입고 상투를 틀고 있었다. <시험>의 좀비들이 뉴욕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한 남자가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남자는 좀비들 사이로 뛰어들었고, 좀비들의 공격을 피하며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말을 타는 남자.

-남자의 칼에 맥없이 쓰러지는 좀비들.

-뉴욕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한복을 입은 좀비들의 추격전.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시험>이잖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험>의 장면이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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