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88화 (169/263)

이제 우릴 좀 믿어보라고.

“이팀장이 사람을 자극하는 면이 있지. 열심히 살게 만든단 말이야.”

이어진 현차장의 말. 그 말에 한록이 물었다.

“저 때문에 압박을 받고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내 이럴 줄 알았어. 난 좋은 뜻으로 말한 거야. 정확히 어떤 의미냐면...”

현차장은 한록의 말을 예상이라도 한 것인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이팀장은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란 뜻이야.”

그 말에 눈을 크게 뜬 한록. 현차장의 말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고, 마음에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그리고 정말 멋진 말이기도 했다.

새파랗게 어린 후배의 부하가 된 상황. 그런 상황에서, 후배한테 ‘닮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대단한 분이다.’

역시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이 이 사람을 선택한 게 틀리지 않았단 생각이 든다.

“차장님.”

“응?”

“차장님도 그렇습니다.”

“뭐가?”

“저도 차장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한록의 말에 현차장이 아까 전 한록과 똑같은 눈으로 한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웃으며 말했다.

“이거 안 되겠네. 오늘은 내가 산다!”

*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한록. 2호선의 야경을 바라보며 한록은 생각에 잠겼다.

‘괜한 걱정을 했네.’

한국영화를 전 세계에 알리겠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영화. 그 영화를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 그런 목적으로 출범된 해외팀.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만들어졌지만, 한록이라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팀을 잘 이끌 수 있을까. 팀원들은 이 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팀원들을 실망시키거나, 너무 혹사시키는 건 아닐까.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에게 보답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 현차장은 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한록은 오늘 현차장이 한 말을 떠올렸다.

‘이팀장. 이제 혼자 걱정하는 건 그만해. 이제는 말이야.’

그에 이어진 현차장의 말.

‘우리를 좀 믿어봐도 괜찮아.’

현차장의 말처럼 며칠 전의 최대리. 그리고 오늘의 유선과 현차장은 한록의 생각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언제나 자신보다 더 자신을 믿어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멤버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성장해오는 사람들.

‘그래.’

야경을 바라보던 한록이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 팀과 함께라면, 자신의 생각보다도 더...

‘잘할 수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우리팀 조직 개편도입니다. 곧 회사 전체에 공지 올라갈 겁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사람들에게 조직 개편도를 알리는 한록.

“유선씨. 이제 오래 보겠네요.”

“유선씨가 우리 회사 최초 정규직 전환이래!”

유선을 축하하는 사람들 덕분에 사무실은 축제 분위기였다. 다들 유선이 얼마나 오래 고생을 해왔는지 알고 있는 것이었다.

‘...현차장은 어떻게 되는 거지?’

반대로 현차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담겨있었다. 한록이 그랬던 것처럼, 최대리와 함께 파트장이 된 것에 대해 사람들이 우려를 하는 것이었다.

‘현차장이 몇 년 차인데. 최대리랑 똑같이 파트장이라니 자존심 좀 상하겠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려나.’

‘와. 이제 현차장이랑 최대리가 라이벌인건가?’

회사 생활에서 늘 겪는 후배의 승진과, 애매해지는 자신의 위치. 모두가 현차장을 보며 자신이 겪은, 혹은 겪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떠올렸다.

“팀장님.”

그리고 그 모든 분위기를 모르는 척,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는 듯 밝은 얼굴로 한록을 부르는 최대리.

“<나이트앤데이>에 기사 올라왔어요.”

최대리가 그 말과 함께 보여준 것은 넷플릭스와 <시험>의 비교광고에 대한 해외 신문의 기사였다. 최대리가 비교광고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미리 아는 기사에게 소스를 보내준 것이다.

<한국의 기업, 넷플릭스에 도전하다.>

<최근 ck라는 한국기업이 헐리웃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크린 max를 통해 해외진출을 알린 ck가 타겟으로 설정한 라이벌은 바로 넷플릭스였다.>

<하지만, 결국 이 광고를 본 모두가 가지는 의문은 이것일 것이다.>

<그래서 누가 이길까?>

비교광고에 대한 해외 언론의 첫 보도. 최대리의 인맥을 통해 내보낸 것인만큼, 기사는 상당히 ck에게 호의적인 내용이었다.

“기사가 상당히 잘 나왔네요. 다른 언론들이 이 얘기를 물어가나 기다려봅시다.”

최대리에게 말하는 한록.

<나이트앤데이>는 꽤 영향력이 큰 연예신문이었고, 비교광고가 제대로 이목을 끌었다면 아마 <나이트앤데이>의 기사에 대한 반응들이 꽤 올라올 것이었다.

지금은 비교광고에 대한 미국 현지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가까워지자, <나이트앤데이>의 기사를 접한 다른 언론과 영화인들의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CK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이던 <나이트앤데이>의 기사. 그리고, 지금 올라오는 기사들은...

[넷플릭스를 이길 수 있다는 한국의 착각.]

[승패가 뻔히 보이는 싸움, 한국의 헛된 시도.]

모두 CK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톰슨 리퍼러: 그래서 한국이 대체 어디죠?]

CK를 비웃고 있었다.

“자. 헐리웃 모두가 우리를 비웃고 있습니다.”

한록에게 해외반응을 알려주던 최대리. 최대리가 한록을 보고 물었다.

“기분이 어때요?”

그리고 그 말에 한록이 답했다.

“바라던 바입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CK와 <시험>을 무시하는 기사.

[그래서 저게 대체 무슨 영환데?]

그리고, 딱 그 기사들만큼 <시험>에 대해 올라가는 관심들.

어차피 승부는 언론의 반응이 아닌, 관객수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미국 언론들이 지금 CK에게 가하는 공격은 오히려 <시험>의 무대를 만들어줄 뿐이었다.

모든 언론이 CK가 실패할 거고, <시험>이 실패할 거라고 말하는 이때.

지금이 바로 2차전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비교광고 들어갑시다.”

한록이 최대리에게 말했다.

*

[@CKENM: 2차전이 남아있다고 했지?]

그로부터 며칠 후 CK의 트위터에 올라온 영상 두가지.

<시험>의 세자가 도포를 휘날리며 말을 타고 좀비떼를 돌파하는 모습과, <저주의 새벽>의 여자주인공을 닮은 사람이 소파에서 감자칩을 먹다가 잠에 든 모습이었다.

[@CKENM:이번 주말에 보고 싶은 영화는?]

그리고 다시 며칠 뒤, 이번에는 넷플릭스의 반격.

<저주의 새벽>의 캐릭터 중 한명이 <시험>의 세계관 속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한복을 입고,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젠장. 여기도 좀비인가?]

영어가 아닌 영화에 굉장히 배타적인 미국 사람들을 공략한 광고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CK와 넷플릭스의 비교광고.

[말을 탄 좀비물이라니! 내 인생에 이런 건 처음 봤어!]

[자막을 깔고 봐야하는 좀비물도 처음이야. 넷플릭스. 그냥 <시험>을 수입해서 더빙해줘.]

[<시험>이 영어로 나오기만 했어도 봤을 텐데.]

[이번 광고는 <저주의 새벽>이 더 재밌었어.]

[<시험>은 볼수록 궁금해지네.]

[나는 처음부터 <시험>의 팬이었다고. 넷플릭스한테 도전장을 내민 외국 기업. 멋있지 않아?]

[네가 그러고도 미국인이야?]

광고 하나가 올라올 때마다 <시험>과 <저주의 새벽>으로 나뉘어 져서 편을 드는 사람들.

[만약 둘이 동시에 개봉해서 한 영화만 봐야한다면 난 <시험>을 보러 갈거야.]

[그럴 일은 없어. <저주의 새벽>은 언제든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거든.]

그렇게 2주 쯤 이어진 <시험>과 <저주의 새벽>의 비교광고가 미국 영화계에서 최고의 이슈가 됐을 때.

[오늘이면 드디어 결판이 나겠군.]

<저주의 새벽>이 넷플릭스에 업로드 되었다.

그 반응은...

[넷플릭스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영화야.]

[넷플릭스라서 만들 수 있는 영화지. 넷플릭스가 아니면 어느 회사가 B급 좀비영화에 이 정도 예산을 써주겠어?]

[역대 최고의 좀비영화야.]

엄청나게 뜨거웠다.

*

“지금 <저주의 새벽>이 넷플릭스 시청 1위래요.”

<저주의 새벽> 공개 후 현차장, 최대리와 함께 파트장 회의를 하고 있는 한록. 한록이 최대리가 보고한 <저주의 새벽>의 반응을 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로 인기를 끌 줄은 몰랐는데.’

과거에도 <저주의 새벽>은 씨네필들에게 꽤 인기를 끈 영화였다. 하지만 좀비물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대중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영화가 되진 못했다.

그러나 지금 <저주의 새벽>은 미국의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도 인터넷에서 떠들어대길래 봤는데 말이야. 꽤 재밌잖아?]

‘...비교광고 효과가 너무 좋았다.’

요 몇주 간 <시험>과 <저주의 새벽>이 너무 큰 관심을 받은 덕분이었다.

비교광고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저주의 새벽>.

그건 <시험> 역시 <저주의 새벽>만큼 관심을 받을 수 있단 얘기였으니, CK에게도 호재에 가까웠다.

“미국 토크쇼에서 <시험>에 대해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어요. 코믹콘 참여 요청도 들어왔고요.”

실제로 <저주의 새벽>이 흥행하자, 미국 언론에서 비교광고에 보내는 관심 역시 더욱 커진 상황.

“우리도 외부 활동을 늘리면 좋을 것 같아요. 외국 영화에 이런 섭외 요청이 들어오는 것 자체가 큰 기회거든요.”

“네, 알고 있습니다.”

최대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록.

광고, 예고편을 넘어서 여러 행사에 참여해서 영화를 알리는 것.

이건 최대리의 말처럼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었고, 이미 <저주의 새벽>팀은 여러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시험>과의 싸움 얘기를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러나 CK의 이제 막 출범한 해외팀으로는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없는 상황. 사실 CK는 지금 비교광고를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특히 모든 일을 총괄하고, 실무까지 뛰고 있는 한록은 거의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최대리에게 일을 맡길수도 없다. 최대리 역시 언론 대응을 통째로 담당하다보니 본인이 맡고 있는 업무가 지나치게 많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록과 최대리 외에는 각종 행사를 담당할만한 실력자가 부재한 상황.

“이 부분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록에게 깊은 고민을 남긴채, 파트장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

‘이걸 다 해낼 수 있을까?’

<시험>에 들어온 요청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 한록.

‘내가 언론 대응이랑 인터뷰를 동시에 담당하면...아니. 그러면 둘다 이도저도 아니게 될 거야.’

마찬가지로 한록과 똑같은 고민에 잠긴 최대리.

그리고...

“우리 파트. 잠깐 회의 좀 합시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을 보이는 현차장.

*

자신이 담당한 파트의 구성원들을 소집한 현차장. 현차장이 유선, 하대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다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건 아는데 말이야, 우리 손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 혹시 여기서 조금 더 시간을 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저요!”

“저도 괜찮습니다.”

그 말에 번쩍 손을 드는 유선과 하대리, 그리고 몇몇 사람들. 현차장이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이팀장이랑 회의해 보고 다시 업무분장 진행할게.”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라는 좋은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갑작스레 회의를 소집한 현차장. 그리고 새롭게 업무분장을 하겠다는 말까지. 눈치 빠른 몇은 현차장의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현차장이 인터뷰를 가져오려고 하는구나.’

현차장이 인터뷰라는 큰 프로젝트를 가져오려는 것 같다는 추측이었다.

‘현차장이 해외 인터뷰를 해본 적이 있나? 너무 욕심내는 거 아냐?’

‘이건 최대리가 진행하는 게 맞을 텐데.’

현차장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현차장의 속마음은 알지 못한 채, 모두 각자의 생각으로 현차장을 판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똑같이 떠올리고 있는 생각이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해보자.”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현차장의 얼굴.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까지.

현차장은, 정말로...

‘한번 해보려는 거구나.’

이 일을 제대로 끝내보려는 생각 같았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거지?’

‘최대리랑 제대로 붙는건가?’

그리고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할 때. 현차장이 최대리에게 말했다.

“최대리. 잠깐 파트장끼리 얘기 좀 할까?”

*

그리고 다음 날. 정부장과 회의를 하는 한록.

“현차장이 인터뷰 가져가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나는 반대다. 현차장은 외신 인터뷰 경험이 전혀 없어. 지금 인터뷰 가져간다는 건 현주훈 욕심이야.”

그렇게 말한 정부장이 자신의 방안을 제시했다.

“현차장이 맡으면 제대로 된 효과는 못보고 그냥 일만 늘리는 게 될 거야. 그냥 최대리한테 넘기고, 최대리 업무를 현차장이 가져가라고 해.”

“최대리님 업무를 현차장님이 이어 맡는 것도 쉽진 않을텐데요.”

“중요한 거 말고, 손 많이 가는 잡다한 것들 있잖아. 최윤일한테 서브로 현차장을 붙이자는 거지.”

‘본인이 노리고 있던 프로젝트를 최대리에게 넘겨라.’

‘그리고 최대리의 일을 가져가서, 두배로 일 해라.’

현차장에게는 최악의 상황. 아니, 그 누구라도 반감을 가지고 실망할만한 상황이었다.

“현차장님이 많이 힘드실 겁니다. 일도 너무 많고, 감정도 많이 상할 거예요. 인터뷰가 추가되면 다른 팀원들도 지금보다 두 배로 일해야 할 거고요.”

“현차장이 힘들어하겠지. 다른 녀석들도 불만을 가질 거고. 그렇지만 넌 팀장이다. 그런 녀석들 채찍질해서 데려가고, 못 따라오는 녀석은 자르고. 그것도 리더가 해야할 일이야. 감정에 휘둘리지 마라.”

한록의 말에 정부장이 냉정하게 답했다.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조직원들을 푸쉬하는 것. 그것이 여태까지 그가 진행해온 업무방식이었다.

정부장의 말에 한록은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만족할만한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팀원들을 압박할 것인가.’

‘혹은, 팀원들을 위해 조금의 손해를 감수할 것인가.’

‘과연 어디까지 부하들을 압박할 것인가.’ ‘어디까지 욕심을 낼 것인가.’ 직장에서 책임자들이 흔히 가지게 되는 고민이었으며, 이제 막 리더가 된 한록 역시 피할 수 없는 고민이었다.

한록이 대답이 없자 정부장이 다시 한번 말했다.

“그렇게 고민할 일 아니다. 이한록이 아니고, 리더로서 결정해. 그럼 답이 나올거다.”

‘리더로서 결정하라.’

그리고 그 말에 한록은...

‘그래. 내가 해야할 건 정해져있다.’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

“인터뷰는 생락하겠습니다.”

한록의 결정은 인터뷰를 포기하는 것. 한록의 말에 정부장이 얼굴을 찌푸리고 물었다.

“이유는?”

“지금도 업무가 너무 많습니다. 여기서 일이 더 추가되면 팀원들의 반발이 클 겁니다. 이미 <시험>의 성과는 충분하니, 여기서 만족하겠습니다.”

“네가 고작 그것 때문에 인터뷰를 포기한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묻는 정부장. 정부장의 말에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장의 말이 맞았다. 평소의 한록이라면, 아니 과거의 한록이라면 어떻게든 인터뷰를 추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팀장이 되기 전까지는 제 맘대로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과장 때까지는 혼자서 무리하는 게 가능했다. 혼자서 열심히 하고, 혼자서 힘들어하면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팀장이 된 이상 이제 한록의 결정은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었다.

“인터뷰까지 진행하면 모두가 힘들어할 겁니다. 하지만 아무도 제 말에 반대하지 못하겠죠. 제가 팀장이니까요.”

조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여야 하는 리더. 그러나, 그런 리더의 결정에 불만을 가지고도 이를 표출하지도 못하는 조직원들. 명령과 복종으로만 유지되는 팀.

“그건 제대로 된 팀이 아닙니다. 오래 유지되지 못할 관계예요.”

한록이 원하는 건 그런 팀이 아니었다.

한록의 말을 들은 정부장이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후회할 거다.”

그리고 한록은...

“네, 그렇겠죠.”

정부장의 말에 완전히 동의했다.

해외팀의 누구보다 인터뷰와 코믹콘을 가져오고 싶은 사람이 바로 한록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더라면 해야 할 결정입니다.”

그러나 한록은 팀을 선택했다.

눈앞에 나타난 너무나 잡고 싶은 성과. 그것보단 팀원들을 생각하는 리더가 되기로 결정한 한록. 한록의 선택에 정부장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팀원들을 희생해가며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 정부장에게도 한록과 같은 일이 몇 번이나 있었고, 그때마다 정부장은 업무를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정부장의 팀으로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 많이 변했다.”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 한록. 그런 한록을 보며 정부장은 생각했다.

“좀 팀장답네.”

어쩌면 한록의 팀은 좀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

정부장과의 회의 후, 한록은 파트장 회의를 소집했다.

“인터뷰와 코믹콘은 생략하겠습니다. 지금 전부 진행하기엔 인력이 부족해요.”

한록의 말에 고개를 젓는 현차장.

“아니야. 인터뷰도 같이 진행하자. 이팀장은 비교광고에 집중하고, 인터뷰는 우리한테 맡겨.”

현차장은 사람들의 예상처럼 인터뷰를 가져오자고 말하고 있었다.

‘차장님은 인터뷰 경험이 없으셔. 이 일의 적임자가 아니다.’

그렇게 판단한 한록은 거절을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고-

‘...우리?’

머리를 스치는 현차장의 말에 입을 멈췄다.

“놓치기 아까운 기회잖아.”

그 말과 함께 한록에게 무언가를 내미는 현차장. 그가 내민 것은 마케팅 파트의 새로운 업무분장이었다. 정확히는, 해외 인터뷰에 대한 업무분장을 적은 것이었다.

[최윤일: 해외 인터뷰 총괄]

그리고 그곳엔 현차장이 아닌 최대리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해외 인터뷰라는 알짜배기 프로젝트에 자신이 아닌 최대리의 이름을 적은 현차장.

[현주훈: 최윤일 직무대리]

거기에, 현차장은 최대리의 업무를 이어받는 것으로 서류가 정리되어 있었다.

한록이 당황해서 현차장에게 물었다.

“차장님. 이렇게 되면 차장님 업무가 너무 많아집니다.”

“알고 있어. 그래서 우리 파트 사람들한테도 좀 도와달라고 했고. 유선씨랑 하대리. 강대리, 유과장이 다 같이 나눠서 맡을거야.”

현차장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한록에게 말했다.

정부장이 말한 ‘현차장에게 있어서의 최악의 상황’을 택한 현차장.

현차장은 인터뷰를 욕심낸게 아니었다. 현차장이 욕심을 내서라도 하고싶었던 것. 끝장을 보고 싶었던 것. 그건 바로.

“말했잖아. 이제 우릴 믿어보라고.”

한록에게 동료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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