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못할게 뭐 있나.
“지금 광고 올라왔어요!”
유선의 말에 유선의 컴퓨터 앞으로 모여든 사람들. 유선이 재생 버튼을 눌렀고, 유튜브에서 넷플릭스의 광고가 시작되었다.
“어?”
그리고 광고가 시작되자마자 깜짝 놀란 현차장.
“우리 영화잖아?”
광고의 시작부터 <시험>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뉴욕 거리를 걷던 한 남자가 <시험>의 포스터를 보는 것으로 시작되는 광고.
“<시험>을 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보더니, 잘 만들어줬네요.”
“그러게요.”
최대리의 말에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넷플릭스의 광고에 언급된 이상, <시험>의 인지도가 대폭 상승할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비교광고가 가져올 수 있는 최고의 윈윈 효과였다.
화면 속 남자는 <킹덤>을 보러가기로 마음 먹은 듯, 발걸음을 돌려 가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너를 돈 순간, 남자의 앞에 좀비떼가 나타났다.
좀비떼를 보고 깜짝 놀란 남자.
그러나 남자는 벽에 붙은 <시험>의 포스터를 보고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 좀비 떼를 피해 열심히 뛰기 시작한다.
아슬아슬하게 좀비를 피해 뛰는 남자. 남자는 넘어지고, 좀비에게 물릴 뻔하고, 다른 사람을 대신 제물로 바치며 겨우 영화관에 도착한다.
[<시험> 한 장이요.]
그리고 남자가 카운터에 말하는 순간-
[죄송합니다. 예매율이 저조해서 <시험>은 <저주의 새벽>으로 교체되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뒤따라온 좀비에게 물려버리는 남자.
그리고 화면이 바뀌고, 또 다른 여자가 소파에 누워있는 장면이 나온다. 넷플릭스에서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저주의 새벽>의 여자주인공이었다.
여자는 소파에 누워서 감자칩을 먹으며 TV를 본다. 그리고 여자가 바라보는 TV속 화면에선 아까의 남자가 좀비에게 물리는 장면이 나오고...
[오늘은 집에서 넷플릭스나 볼까?]
여자가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장면, 그리고 넷플릭스의 로고로 광고는 끝이 난다.
*
‘집밖에 나가서 영화를 봐야하는’ 번거로움을 좀비떼로 표현한 넷플릭스의 비교광고.
그 광고를 본 현차장의 반응은...
“...젠장! 너무 재밌다!”
감탄이었다.
현차장만이 아니었다. 유튜브의 댓글이나, 인터넷 사이트들의 반응도 온통 넷플릭스에 호의적이었다.
[그래. 뉴욕의 길거리는 좀비떼보다 무섭다고.]
[넷플릭스가 제대로 한 건 했네!]
[이걸 보고 오늘 약속을 취소했어. 좀비한테 물리면 어떡해?]
“...이러다 저희가 밀리면 어떡하죠?”
유선의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록에게 물었다. 그러나 불안한 얼굴의 유선과는 달리 한록은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우리가 밀려도 상관없어요. 넷플릭스 광고가 이슈가 될수록, 그 상대방인 <시험>에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더 많아질테니까.”
비교광고는 승패와는 별개로, 양쪽 회사의 인지도 상승이라는 효과를 가져온다.
한록의 말처럼, 넷플릭스의 광고가 사람들에게 알려질수록 <시험> 역시 그 덕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싸우지 마. 난 <시험>과 <저주의 새벽> 둘 다 볼 거라고.]
[말리지마. 난 싸우는 게 재밌다고.]
[<시험>. 가만히 있을 거야?]
한록의 말처럼, 넷플릭스 광고의 아래에 달리고 있는 <시험>에 대한 댓글.
이 광고가 <시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한 번 불러왔다는 뜻이었다.
‘<시험>은 이미 성공이다.’
그런 생각에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인터넷의 반응을 확인하던 유선이 한록에게 말했다.
“팀장님. 넷플릭스 트위터에 반응 올라왔어요.”
넷플릭스가 CK, 그리고 한록에게 남긴 말.
[@넷플릭스:어때, 코리아?]
그 말에 한록이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더 뛰어난 넷플릭스의 광고. 그리고, 넷플릭스의 도발. 그걸 보는 기분이 어땠냐면.
‘재밌다.’
새로운 일과 새로운 경험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한국이라면 아예 만들 수 없는 비교광고. 거기에, 여태 한국 영화계에선 본 적 없는 참신하고 재밌는 넷플릭스의 광고까지.
지금 일어나는 일은 자본주의의 본고장이자, 세계 최고의 광고와 마케팅이 진행되는 미국에서만 겪을 수 있는 새로운 일이었다.
‘아직도 이렇게 새로운 일이 남아있다니.’
10년을 일한 업계에서 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겪는 것. 그것이 바로 마케팅이 주는 재미였다. 새삼스레 느껴지는 설레임과 즐거움에 한록이 유선의 핸드폰을 받아갔다.
[@CKENM: 좋아, 이번 건 인정.]
[@CKENM: 2라운드 시작해볼까?]
그리고 CK의 계정으로 넷플릭스에게 글을 남겼다.
*
“팀장님, 저희도 당장 다음 광고 올리겠습니다!”
“<시험>과 <저주의 새벽> 광고 중 어느 광고가 좋았는지 투표 올려볼까?”
“지금 올리면 <저주의 새벽>에 너무 몰릴 것 같아요. <시험> 2차 광고 나간 후에 올리는게 낫겠네요.”
이 싸움에 재미를 느낀 건 한록만이 아니었는지, 한록이 글을 남기자 사람들이 바로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한록이 무언가를 지시하기도 전에, 각자의 위치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의견을 내는 팀원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록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최경준에게 자랑할만한 자신의 팀이었다.
“유선씨, 잠시 얘기 좀 할까요?”
컴퓨터 앞에서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유선을 부른 한록.
“네, 말씀하...앗, 죄송합니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하던 유선이 곧 정신을 차리고 깜짝 놀라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을 부른 사람이 한록이란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크게 놀랐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너무 집중해서 실례를 했습니다!”
“괜찮아요. 급한거면 끝나고 얘기해요.”
“아니에요! 급한 거 아닙니다!”
“그럼 잠깐 사무실로 이동할까요?”
“네!”
그렇게 사무실로 이동한 유선과 한록. 유선이 소파에 앉자, 한록이 바로 용건을 꺼냈다.
“유선씨.”
“네.”
“축하해요.”
그리고 조직개편도가 든 파일을 건네준 한록. 유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파일을 받아들었고,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더니...
“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조직 개편도 맨 끝에 들어있는 자신의 이름. 그리고...
[김유선 주임]
그 옆의 직위.
“팀장님, 이거...”
유선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몇 번이나 한록의 얼굴과 조직개편도를 바라보았다.
“정규직 전환하자마자 승진한 건 유선씨가 처음일 거예요. 저보다도 빠르네요.”
그리고 한록이 장난스럽게 말하고 나서야 사실을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팀장님...”
유선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있었다.
“유선씨가 해낸 거예요. 나한테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본인한테 수고했다고 말해야죠.”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팀장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한록의 말에도 유선은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유선의 눈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저는 사무실에 있을테니까 진정되면 돌아와요.”
한록은 유선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유선의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눈치챈 것이었다.
한록이 유선을 두고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
그리고 사무실과, 사무실 너머 비서의 책상이 있는 공간을 벗어나자마자-
“...핸드폰.”
자신이 핸드폰을 사무실에 두고 나왔다는 걸 깨달은 한록.
‘...미안합니다, 유선씨. 오늘 인터뷰 요청이 있어서요.’
한록이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첫 번째 문을 열었다.
“응, 엄마...”
그리고 문 너머로 들려오는 유선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부모님한테 전화했구나.’
유선은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는 듯했다. 차마 그 상황에서 문을 열 수가 없어, 한록은 비서의 책상이 있는 공간에서 걸음을 멈춰섰다.
‘그래. 통화 끝나면 들어가자.’
그런 생각을 하며 벽에 기댄 한록. 문 너머에선 계속 유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냐...좋은 일 있어서 전화한 거야.”
유선의 어머니는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유선은 구과장, 그리고 부족한 자신 때문에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으니까.
불과 일년 전만 해도, 구과장에게 혼이 나고 화장실에 숨어 혼자 울던 유선. 하지만 이제 그때의 유선은 없다.
“나 승진했대.”
이제 모두가 그녀의 노력과 성과를 알아주고 있었으니까.
“응. 팀장님 덕분이야. 그분이 많이 도와주셔서...”
‘내 덕분이 아니라 본인이 잘한 건데.’
그리고, 한록이 걱정하는 부분에서 또한-
“나도 꽤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많이 성장했으니까.
유선의 대답에 눈을 크게 뜬 한록. 유선의 대답은 한록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더 잘 할 거야. 더 열심히 할 거고. 팀장님한테 더 도움이 되고 싶어.”
유선이 자랑스러웠다.
*
그렇게, 핸드폰을 챙기는 것은 포기하고 해외팀으로 내려온 한록. 이 소식을 가장 알려주고 싶던 유선에게 얘기를 전달하는 것은 끝났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현차장님,’
이 소식을 가장 알리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현차장은 이번 조직개편으로 인한 승진에 포함되지 않았다. 불과 몇 달 전에 차장으로 승진을 했기 때문이었다.
‘차장님도 이 부분은 이해한다고 하셨어.’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번 조직개편으로 인해 현차장과 최대리가 각각 마케팅파트 1,2의 파트장이 된다는 것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후배와 똑같은 위치에 오르게 된다. 현차장의 입장에서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현차장 때문에 리더십도 좋고 마케팅파트의 핵심인물인 최대리를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얘기는 내가 전달할테니까 이한록 너는 가만히 있어라. 너한테 이 얘기 전달받는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냐.’
그래서 조직 개편안을 짤 때, 현차장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건 정부장이 맡기로 한 상황.
하지만 오늘 유선의 모습을 보니 그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 믿고 따라온 사람들이야. 내가 전하는게 맞다.’
그렇게 판단한 한록이 현차장의 자리로 다가갔고, 현차장에게 말을 건넸다.
“차장님. 오늘 끝나고 술 한잔 하시겠습니까.”
*
그날 저녁. 근무가 끝나고, 회사 근처 고기집으로 향한 한록과 현차장.
“이것도 법인카드야?”
“제가 사겠습니다.”
“이팀장 돈 벌어서 우리 밥 사주다가 끝나겠네.”
현차장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한록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 여태 자신과 함께한 현차장에게 ‘최대리와 같이 파트장을 맡게 될 거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나 이팀장이 무슨 말 할지 알아. 오늘 유선씨 얼굴 보니까 조직개편안 나온 것 같더라. 아마 저번에 말한 것처럼 최대리랑 내가 파트장이 되는 거겠지?”
그런 한록을 바라보던 현차장이 입을 열었다. 한록이 놀란 얼굴로 현차장을 바라보았다. 현차장은 이미 정부장에게 대강의 소식을 전해들은 것 같았다.
“이팀장. 내가 이팀장이랑 일을 너무 많이 했나 봐. 처음에는 그 소식 듣고 내가 이 젊은 친구랑 경쟁을 해야하나, 내가 최윤일을 이길 수 있나, 엄청 불안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
조직개편안에 대해 말하는 현차장. 그러나 현차장의 말투는 한록을 나무라는 내용은 아니었다.
“지금은 말이야.”
현차장은, 오히려...
“이렇게 된 거, 한 번 해보자. 나라고 못할게 뭐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
미소를 띄고 있었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나도 이팀장을 닮아가나 봐.”
마치 한록이 새로운 영화에 돌입할 때와 같은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