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86화 (167/263)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지.

넷플릭스의 게시글을 클릭한 사람들. 그들이 마주한 것은 하나의 광고였다.

넷플릭스의 평상시 광고가 그렇듯, 빨간색의 넷플릭스 로고로 시작하는 <시험>의 광고.

‘넷플릭스에서 좀비영화를 만들었나 보지?’

사람들은 이 광고가 넷플릭스의 새로운 영화광고일 것이라 생각하며 광고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궁전. 그리고 모든 불이 꺼진 궁전을 배회하는 좀비 한 마리와, 벽 뒤에서 숨을 죽인채 숨어있는 세자의 모습.

[왕의 자손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좀비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거기에 상황을 설명하는 자막까지.

‘오, 신선한데?’

‘넷플릭스가 또 재밌는 걸 만들었네.’

‘배경이 어디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좀비는 천천히 세자에게 다가왔다. 세자와 코너 하나를 둔 거리에 서 있는 좀비.

좀비가 세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세자가 검을 움켜쥔다. 세자가 검을 높게 들어올린다. 좀비와 세자의 눈이 마주친다.

‘이거 제목이 뭐지?’

사람들의 기대가 극대화되고.

‘빨리 죽여!’

모든 이들이 다음 장면을 바라는 그 순간에-

<경고 :로딩이 불가능합니다.>

화면에는 로딩을 뜻하는 동그란 사인과 경고문이 나타났다.

[뭐지?]

그리고 모두가 당황할 때, 화면의 글자가 바뀌었다.

<경고 :로딩이 불가능합니다.>

<오류 원인: >

< 넷플릭스로 보기에는 너무 멋진 장면입니다 :( >

*

[여기서 끊으면 어떡해!]

[넷플릭스 광고가 아니었어?]

[그래. 넷플릭스로 보기엔 아깝다.]

[넷플릭스 너 공격당하고 있어 XD]

[가만히 있을 거야,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로고를 달고 나온 광고. 그리고, 그 광고가 넷플릭스에 내놓은 비판.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광고에 반응했고, 광고는 빠르게 인터넷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거 봐. 넷플릭스 전쟁이다.]

미국의 웹사이트에 올라오기 시작하는 <시험>의 광고.

[그래, 넷플릭스로 보는 영화는 재미 없지.]

[어느 회사가 만든 거지?]

[난 새로운 넷플릭스 영화인줄 알았어.]

사람들은 광고와 넷플릭스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게 뭐야? 영화인가? 어느 나라 영화지?]

[한국 영화인가보네.]

[유튜브 밑에 설명이 있어. 1월에 개봉이래.]

[한국 좀비영화라.]

[재밌어 보이는데?]

자연스럽게, <시험>에 대한 얘기들 역시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거 같아요?”

인터넷 반응을 살피고 있던 최대리에게 한록이 물었다. 그러자 최대리가 한록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최대리의 핸드폰에 뜬 문자는 최대리의 미국 친구들이 보낸 메시지들이었다.

[윤일! 이거 너희 나라 영화지?]

[감히 아메리카를 공격하다니!]

[그래서 개봉이 언젠데?]

최대리의 핸드폰을 꽉 채운 친구들의 메시지.

“대성공이네요.”

이미 <시험>의 광고가 인터넷을 넘어, 오프라인에서까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었다.

“좋아요.”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고, 넷플릭스를 향해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3시간 후. 넷플릭스의 트위터 계정에 다시 올라온 게시글 하나.

[@넷플릭스 : 좋아, 한국.]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지.]

그 한마디로, 넷플릭스와 CK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

<지금 미국에서 반응 좋은 한국 영화 하나.JPG>

<방금 한국한테 선전포고한 넷플릭스>

<이거 CK 광고네요??요즘 재밌는 거 많이 한다 했는데 이제 넷플릭스까지 ㅋㅋㅋ>

<와 사극 좀비 레전드네 국내 최초 아님?>

<요즘 CK 영화 좋은 거 많은 듯 국내 개봉도 당연히 하겠지?>

광고가 나간지 고작 6시간이 지났을까. 미국의 반응이 한국에 역수입되기 시작했다.

“CK ENM 김유선입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인터뷰 요청이 너무 많아서요.”

“자세한 내용은 보도자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곧 개봉하는 <시험>의 광고입니다.”

그리고 <시험>의 광고는 한국에서 역시 큰 이슈를 끌고 있었다.

끊임없이 오는 사람들의 문의 전화와, 언론의 인터뷰 요청.

그러나 <시험>의 마케팅은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제 시작이었다.

‘이제 넷플릭스도 광고를 올릴 거다,’

앞으로 넷플릭스가 올릴 <시험>과 CK에 대한 비교광고. 그리고 SNS로 이어질 넷플릭스와 CK의 싸움과, 그때마다 짧게 공개 될 <시험>의 예고편들.

이미 수많은 언론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앞으로 <시험>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었다. 해외팀, 그리고 모두가 만든 첫 영화가 훌륭한 성과를 거두는 결과가 이미 눈에 보이는 상황.

‘때가 됐다.’

그렇다면, 이제는 때가 됐다.

그렇게 생각한 한록이 개인 사무실로 이동했고,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한록이 꺼낸 파일은, 바로.

[해외팀 조직 개편도]

해외팀의 새로운 조직도였다.

김유선. 최윤일. 하선우. 그리고 정부장과 현차장이 포함된 해외팀의 최종 조직도. 해외팀으로 확실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보류해두려던 구상이었다.

‘벌써 그 결과가 나왔지.’

하지만 자랑스러운 동료들은 벌써 그 결과를 만들어주었고, 자신에게 확신을 주었다.

누구도 그들의 활약을 부정하지 않을거라는 확신을.

동료들의 이름을 보며 미소를 짓던 한록. 한록이 서류를 들고 밖으로 나왔고, 비서에게 말했다.

“본부장님께 찾아뵙겠다고 전달 부탁드립니다.”

*

본부장실을 찾은 한록. 최경준이 막 사무실에 도착한 것인지, 자켓을 벗어 옷걸이에 걸다가 한록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볼때마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많이 바쁘신 것 같습니다.”

“즐거운 일이 많이 있으니까.”

최경준이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소파에 앉은 한록의 앞에 앉아 말했다.

“내일이면 문오석 본부장의 사무실이 완전히 정리 될 거라네. 자네의 공이 컸지.”

청문회 이후 정직을 명령받은 문오석. 그가 결국 회사를 나가게 되는 것이다. 오랜 숙적을 제거한 최경준은 정말로 즐거운 듯한 얼굴이었다.

“물론 방송국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거기에 방송국의 인수까지.

지금 최경준은 문오석의 공백을 정리하고, 방송국 인수를 위해 여러 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실상 CK ENM의 개편의 중심에 서 있는 최경준.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바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사업본부의 소식을 놓치지는 않는 것인지, 최경준은 <시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넷플릭스와의 비교광고는 잘 진행되고 있더군. 잠시 자리를 비워도 든든한 부하들이 있어서 걱정할 일이 없다네.”

한록에게 칭찬의 말을 건네는 최경준. 바라오던 화제가 나오자, 한록이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최경준에게 내밀었다.

최대리의 승진과, 유선의 정규직 전환이 담겨있는 파일.

‘자네말고 마케팅 부서에 눈여겨볼한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몇 번이나 한록의 동료들에 대해 의심을 하던 최경준.

이제는, 그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새로운 자랑을 보여줄 때였다.

“해외팀 조직 구성도라.”

최경준이 한록이 건넨 파일을 받았다. 그리고 맨 앞의 조직도를 짧게 읽더니 파일을 덮고 말했다.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하게.”

“허락하시는 겁니까?”

“더 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지. 부산영화제부터 비교광고까지, 자네의 선택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걸 몇 번이나 보지 않았는가.”

한록에 대한 인정을 나타내는 최경준. 그러나 한록이 최경준에게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었다.

한록이 최경준을 바라보았고...

“본부장님의 말씀은 틀렸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부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자네가 건방지게 구는 건 또 오랜만이군. 해보게.”

오랜만에 듣는 한록의 말에 최경준이 다시 한 번 미소를 띄고 말했다. 그러자 한록이 책상 위에 파일을 내려놓고, 페이지를 넘겼다.

“부산영화제를 성공시킨게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자네지. 그리고, 이제는 없지만 오과장도.”

“네. 그리고 저와 프레젠테이션을 함께한 건 김유선 사원입니다.”

두 번째 페이지에 나타난 누군가의 프로필. 유선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파일을 넘기는 한록.

“<퀸>을 성공시킨 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 역시 자네지.”

“맞습니다. 그리고 현차장님이 <블라인드>의 결항으로 일정이 망가질뻔한 상황을 수습해주셨습니다.”

한록이 페이지를 넘긴 곳에는 현차장의 프로필이 들어있었다.

이제 한록이 뭘 말하고 싶은지 대충 눈치채게 된 최경준. 그가 조용히 한록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부산열차> 역시 제가 진행한 프로젝트입니다. 하지만 최대리님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리고 다음장. 이번에는 최대리의 프로필이 보였다.

“<시험>의 비교광고는 하대리, 최대리, 송과장, 그리고 김유선 사원과 제가 함께 만든 광고입니다.”

그리고 다음장.

그곳에는 한록이 여태까지 진행한 프로젝트와,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마케팅 부서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그들의 역할이 적혀 있었다.

<시험> 마케팅 업무 분담

김유선: 카피라이팅

하선우: 광고 기획 및 초안 구성

최윤일: 외부 업체 조율

송은주: 일정 관리 및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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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지> 마케팅 업무 분담

<수면> 마케팅 업무 분담

부산 영화제 마케팅 업무 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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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팀이 맡은 역할과, 그들이 해낸 일을 적어 내려간 한록. 그 문장 하나하나에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록이 얼마나 오래 사람들을 지켜보고, 그들의 성과를 눈여겨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는 글들이었다.

“여기까지입니다.”

한록이 자신이 쓴 보고서를 읽어내려갔고, 보고서가 끝나자 최경준이 물었다.

“이걸 내게 보여주는 이유가 뭔가.”

그에 대한 한록의 답.

최경준이 유선을 신경도 쓰지 않을 때. 현차장을 보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을 때. 그때부터 한록이 하고 싶던 말은...

“제가 모든 일을 이뤄냈다는 건 본부장님의 착각이십니다.”

바로 최경준이 틀렸다는 말이었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해외팀과 마케팅 부서 사람들이 함께 해낸 일들입니다.”

파일을 바라보던 한록이 자신감에 찬 얼굴로 말했다. 한록은 평소 최경준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처럼 확신이 넘치는, 그러나 그때보다도 더욱 뿌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제 부하들의 능력을 인정하실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확신. 그리고, 모두가 함께 이뤄낸 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

그 말을 듣고 있던 최경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굳이 나한테 그걸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는?”

“이번 승진이 제가 요청해서가 아니라, 해외팀의 업무 성과에 대한 인정으로 이뤄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세심하군.”

한록의 말에 최경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한록의 말처럼, 사실 최경준은 한록이 건넨 조직 개편안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한록이 제시했고, 이한록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승인한다. 딱 그 정도의 감흥에 미치던 조직 개편안. 최경준에게는 한록이나 최대리가 아니면 그 누구도 마음에 차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록의 말을 듣고나니, 아주 조금.

“김유선이 <시험>에서도 문구를 작성했나?”

“네.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친구입니다.”

“송과장은 어떤 일을 맡겨도 잘해내지. 조금 더 친분을 쌓아보게.”

“알겠습니다.”

“최윤일은 말이 필요 없고. 현차장은 요즘 뭘 하고 있나.”

“정부장님께 부서관리를 교육받고 계십니다.”

정말로, 조금...

“다들 열심히 하고 있군.”

꽤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한록의 조직개편안을 바라보던 최경준. 그가 한록에게서 파일을 받아들었고, 책상 위의 펜을 꺼내 들었다.

“그래, 내가 틀렸어.”

그리고 서류에 싸인을 하며 말했다.

“자네 부하들은 참 유능하군.”

*

몇 번이나 현차장, 유선에 대해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던 최경준. 그리고 드디어 그의 입에서 나온 칭찬.

그 말에...

“네, 알고 있습니다.”

한록이 아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렇게 최경준에게서 조직개편안에 대한 승인을 받은 한록. 한록이 서류를 들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최경준의 사무실을 나섰다.

자신의 부하들이 인정을 받아 날듯이 기쁜, 아주 어린 팀장.

그의 뒷모습을 보며 최경준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여전히 최경준은 한록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능력있는 사람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 들러리일 뿐이다. 자신이 한록과 최대리가 아닌 현차장, 유선에게 신경을 쓸 이유는 없다. 그들이 아니어도 한록은 뛰어난 성과를 이뤄냈을테니까.

하지만 한록과 함께한 사람들은 멋진 성장을 이뤄냈다. 그건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조금 정도는...

‘그래, 이한록.’

‘자네의 말도 틀린 건 아니군.’

생각을 바꾸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네는 좋은 상사가 될 거야, 이한록.”

최경준이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

최경준에게서 조직개편안의 승인을 받은 한록.

[김유선-정규직 전환]

[최윤일-과장으로 직위 변경]

.

.

.

흐뭇한 얼굴로 파일을 바라보던 한록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겠는지, 발을 동동 구르다가 계단으로 향했다.

‘빨리 소식을 전해주고 싶다.’

한록의 마음 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거의 뛰는 것에 가깝게 계단을 내려온 한록. 한록이 해외팀 사무실에 도착했고, 문 가까운 자리에 앉은 유선을 발견했다.

자신의 곁에서 아주 오래 고생한, 누구보다 자신을 따르는 후배.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을 믿어준 사람. 그런 유선에게 기다리던 소식을 전할 순간이 왔다.

“유선씨.”

그 생각에 한록이 유선의 이름을 크게 불렀고-

“팀장님! 잘 오셨어요!”

유선이 한록보다 더 다급하게 외쳤다.

“무슨 일이에요?”

순간 본래의 용건을 잊어버린 한록. 한록이 어리둥절해서 묻자, 유선이 들뜬 얼굴로 답했다.

“지금 넷플릭스 비교광고 올라왔어요!”

넷플릭스와 <시험>의 싸움.

“빨리 보세요!”

그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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