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게 진짜 팀이지.
“마케팅 파트, 회의실로 이동하겠습니다.”
<시험>의 마케팅을 위해 회의를 소집한 한록. 한록이 평소보다도 의욕이 넘치는 얼굴로 회의실에 PPT 화면을 띄웠다.
한록이 화면으로 보여준 것은 <부산열차>의 예고편이었다.
기차 역사를 달려오는 좀비.
달리기로 기차를 따라잡는 남자.
그리고 기차에 매달리는 좀비들까지.
대부분의 영화 예고편이 그렇듯, 하이라이트 장면이 아닌 하이라이트 직전 장면을 보여주는 <부산열차>의 예고편. 한록이 최대리에게 물었다.
“최대리님. 영화 예고편의 핵심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관객이 예고편을 보고, 영화까지 유입될 수 있도록 유인하는 거죠.”
“맞습니다. 그걸 위해서 예고편은 ‘재밌는 장면’이 아니라, ‘이 뒤에 재밌는 장면이 나올 것 같은’ 장면을 보여주죠.”
한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현차장과 사람들. 한록이 말한 것은 영화 업계에서 아주 널리 알려진 자이가르닉 효과를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시험>의 예고편은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관객이 <시험>에 관심을 가져도, 영화관에 오기까지의 장애물이 너무 많으니까요.”
미국인들은 보통 다른 나라 영화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시험>은 좀비영화와 사극이라는 특수성까지 가지고 있었다.
“<시험>의 예고편은 두 가지 기능을 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영화에 관심이 가게 만들 것. 두 번째는, 그래서 관객들이 넷플릭스가 아니라 영화관을 찾게 만들 것.”
“정확히 어떻게요?”
“하대리님이 주신 아이디어를 적용해볼 겁니다.”
한록의 말에 열심히 회의를 듣고 있던 하대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저요?”
“네.”
“제가 무슨 아이디어를...”
“비교광고요.”
한록의 말에 회의를 듣고 있던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교광고.
동종 업계의 제품이나 브랜드를 직접 언급하며, 자기 브랜드와 비교하는 유형의 광고들을 말했다. 대표적으로는 맥도날드의 마스코트 로날드가 몰래 버거킹에 가서 주문을 하는 광고 등이 있었다.
“비교광고요?”
“비교광고?”
비교광고란 말에 여기저기서 터지는 반응들.
“저 비교광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나도. 영화에 비교광고는 거의 없지 않나?”
미국에서는 애플과 마이크로 소프트, 버거킹과 맥도날드, 펩시와 코카콜라 등 다양한 라이벌 회사들이 비교광고를 진행했다. 하지만 한국은 광고 규제가 심하기 때문에 비교광고를 거의 진행하지 않았다. 특히나 영화업계에서 비교광고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유형이었다.
“비교광고를 어디랑 하는 건데요?”
“넷플릭스입니다. 우리 영화는 넷플릭스가 아니라, 영화관에서 봐야한다는 부분을 강조할 겁니다.”
“...우리가 넷플릭스랑 비교광고를 한다고요?”
한록의 말에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해외팀.
해외팀 모두가 하는 생각은...
“...이게 결재가 될까요?”
결재에 대한 우려였다.
해외팀이 미국에서 시도하는 첫 광고이자, 한국 영화업계에서 거의 최초로 시도하는 비교광고. 거기에 상대는 넷플릭스다.
하나만 해도 ‘위험하다’고 말할 상황에서, 감수해야할 위험이 너무 많은 상황.
그러나 사람들의 걱정 속에서 한록은 웃으며 말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한록과 하정엽은 ‘완전한 자율권’이라는 계약을 했다. 이제 이 회사에서 한록의 계획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제가 무조건 통과시키겠습니다.”
“...이팀장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한록의 말에 송과장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록이 괜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광고에 대한 것이다. 송과장이 한록에게 물었다.
“그래서 정확히 어떤 식으로 광고를 만들 건데요?”
“화면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송과장의 말에 한록이 다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내용 자체는 보통의 예고편과 비슷하게 진행할 겁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변주를...”
-자이가르닉 효과를 활용해서, 중요한 장면을 아예 없애버린.
-그리고 넷플릭스와의 비교를 강조하는.
그렇게 만들어진 한록의 <시험>에 대한 광고.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초안입니다.”
한록의 설명이 끝나자 현차장이 크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무 감질나. 짜증 날 정도로 보고싶어.”
현차장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현차장님 말이 맞아요. 감질나는데, 그래서 더 보고 싶어져요.”
“딱 봐도 재밌어 보이네요. 꽤 이슈가 될 것 같아요.”
“어. 광고 자체보다 사람들 바이럴 효과가 더 클 수도 있겠다.”
“우리가 넷플릭스 입장이면 진짜 짜증날 것 같고요.”
‘이래도 되나?’는 우려가 대부분이었던 사람들의 반응은 광고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조금 더 자극적인 멘트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도 생각해볼게요.”
“아니야. 그러면 영화 내용이 너무 묻히지 않을까? 어쨌든 이건 <시험>의 광고잖아. 사람들 관심사가 <시험>이 아니라 CK로 바뀔 수도 있어.”
“어떻게든 이슈가 되면 좋은 거죠.”
“그럼 결재가 안 나온다니까?”
“팀장님이 받아주신다고 하셨잖아요.”
발칙하고 무모한 도전. 미국인이라는 새로운 관객. 넷플릭스라는 너무나 강력한 상대.
“팀장님. 시안만 좋으면 무조건 결재 가능한 거죠?”
-그리고, 자신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해주는 사람들.
자신보다 더 의욕적으로 물어오는 하대리의 모습에 한록이 답했다.
“네. 제가 결재 받아올테니, 여러분은 하고 싶은건 다 해보세요.”
그 말에...
“...재밌겠다.”
모두의 얼굴에 생긴 작은 기대감이 떠올랐다.
신규사업, 그리고 신규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에너지. 그 에너지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그래, 이거다.’
자신이 바라던 팀은 바로 이런 거라고.
*
파트 회의 후 바로 최경준을 찾아간 한록.
“내 의견이라. 당연히 위험하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군.”
‘본부장님의 의견이 궁금하다’는 한록의 말에 최경준이 솔직한 속내를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자네라면 할 수 있겠지.”
흔쾌히 떨어진 최경준의 허락.
“날 곤란하게 만들려고 작정했군요.”
“그렇다면 반대하시는 겁니까.”
“계약을 했으니 취소는 없습니다. 해보세요. 책임은 본인이 지고요.”
그리고 하정엽의 허가까지.
한록이 예상했던 것처럼 한록의 상사들은 이번 마케팅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이미 한록이 낸 성과들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었다.
본부장의 총애. 사장이 약속한 완전한 자율권.
이제 이 회사에서 한록의 말에 반대할 사람은-
“팀장님. 잠깐 애기 좀 해요.”
있었다.
한록의 라이벌. 그리고 이제는 가장 든든한 동료.
최대리가 한록의 파티션을 노크하며 말했다.
*
개인 사무실과는 별개로, 해외팀 중심쪽에 마련된 한록의 업무용 책상. 그곳을 두드린 최대리.
“무슨 일이십니까?”
“<시험> 때문에 할 말이 있어서요. 따로 얘기했으면 해요.”
그 말에 한록은 최대리와 함께 해외팀 전용 회의실로 이동했다.
“이거 이대로 진행하면 문제 생깁니다.”
그리고 한록이 회의실에 들어가자 최대리가 말했다.
“마케팅에 문제가 있는 겁니까?”
“아뇨. 마케팅 아이디어는 좋았어요.”
“그럼 광고가 문제인겁니까?”
“그건 더 좋았죠. 연말에 상 하나 받을 것 같은데.”
마케팅 아이디어도 좋다. 광고는 더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케팅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최대리. 이해하기 어려운 최대리의 말에 한록이 인상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미국인들이 문제죠.”
그 말에 한록은 최대리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세계 최대, 최강국 미국. 그리고 자신들의 나라에 어마어마한 자부심을 가진 미국인들.
“외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공격한다는 거. 미국인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할 거예요.”
최대리가 걱정하는 건 미국인들의 애국심과 배타성이었다.
“비교광고는 대부분 미국 자국 기업들끼리 하는 거예요. 다른 나라 제품이 끼어있는 경우는 거의 없죠. 소비자가 싫어하니까. 미국 영화가 한국영화시장을 공격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최대리가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큼 이 광고가 가진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팀장님은 미국 문화를 잘 모르시니까 안 와닿겠지만, 이 광고가 나가면 CK에 엄청난 비난이 있을 거예요. 이거 절대로 그냥 진행하면 안 됩니다.”
이제 사장도 반대하지 않는 한록의 계획. 거기에 대해 ‘당신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라고 반기를 드는 직원이 있다. 그걸 보면서, 한록의 기분이 어땠냐면...
“팀장님이 뭐라 해도 저는 끝까지 반대할...”
“좋아요. 맞는 말이네요.”
아주 좋았다.
최대리의 말에 한록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자 최대리가 놀란 눈으로 한록을 바라보았다.
“...그게 끝이에요?”
“더 원하는 반응이 있으십니까?”
“기분 나빠하실 줄 알았는데.”
“왜 나빠해요. 맞는 말인데.”
팀장이 됐을 때. 그리고 완전한 자율권을 얻었을 때, 한록이 걱정했던 부분이 딱 하나 있었다.
그건 이제 자신이 놓치는 부분에서 조언을 해 줄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이제 윗선에서 억지로 마케팅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동료와 부하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의견을 한록에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그래, 이게 진짜 팀이지.’
한록이 바라던 이상적인 회사의 모습. 그게 벌써 만들어지고 있다.
자신이 제대로 된 사람을 골랐다는 생각.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의견을 표출할 만큼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한록이 최대리에게 말했다.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대리님.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바로 얘기해주세요.”
그 말에 최대리가 한록을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시네요. 마음에 들었어요.”
이제 상무이사가 된 상대를 보고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는 태도까지. 한록만큼이나 건방진 태도였지만. 이 역시 한록이 바라던 바였다. 최대리의 답에 한록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아셨습니까.”
“보통 사장님 말도 안 듣는 사람이 부하들 말을 들으리란 생각은 안 하죠.”
“사장님은 마케터가 아니고, 최대리님은 우리 회사에서 가장 유능한 마케터시니까요.”
한록의 말에 최대리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한록에게 내밀었다.
“그 대답도 마음에 들었어요. 이건 그 보답.”
“이게 뭡니까?”
“분명 미국에서 반발이 있을 거지만, 그래도 폐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아이디어라서요. 최대한 통과시킬 방법을 생각해봤어요.”
이번 마케팅이 가진 약점을 보완해왔다는 말. 그 말에 한록이 최대리가 건넨 파일을 열었다.
넷플릭스. 그리고 미국을 상대로 이슈를 몰아보겠다. 그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발을 억누를 방법이 대체 무엇이냐.
최대리의 방법은...
“짜고 치기요.”
아주 전통적이고 효과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