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83화 (164/263)

왜 말을 하다가 마는 거야?!

‘정부장에게 최고의 맛집을 알려주겠다.’

‘그래서 점심시간 10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몸소 느끼게 해주겠다!’

그런 마음으로 함께 밥을 먹으러 나온 현차장과 유선, 하대리, 그리고 한록과 정부장.

“여기 작년에 생겼는데 벌써 회사 근처에서 제일 인기 많아요. 간장게장을 하루 100인분만 파는데, 조금만 늦게 가면 다 매진이더라구요. 그래도 진짜 맛있어요.”

유선이 자신감에 찬 얼굴로 안내한 곳은 회사 근처의 한식집이었으며-

“죄송합니다. 게장은 매진이에요.”

이미 유선이 말한 메뉴는 소진된지 오래였다.

“...여긴 간장게장을 먹어야 하는데...!”

“이미 늦었어. 그냥 대충 먹어.”

절망하는 유선과, 유선의 말을 칼같이 자르는 정부장. 결국 해외팀은 식당의 다른 메뉴를 시켜서 식사를 마쳤다.

“여기..간장게장 먹으러 온 건데...”

“다음에 와요, 유선씨. 유선씨 이 근처 카페 좋아하던데. 오늘은 거기나 가죠.”

여전히 좌절한 유선에게 한록이 말했고, 해외팀은 근처 카페로 향했다.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 커피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는 해외팀.

“요즘 커피 너무 비싸요.”

“그러게. 이건 법카 안 되나?”

“안 되죠. 대신 제가 사겠습니다.”

“나 이팀장이 너무 좋다!”

“그 말 30번째십니다.”

아무런 영양가가 없는 잡담들.

“요즘 메가박스가 엄청 성장하고 있더라고요.”

“아, 맞아. 해외에 지점을 늘렸다던데.”

“이러다 우리 회사보다 많아지는 거 아니에요?”

“그럴 것 같아요. 2년뒤까지 두배로 늘린다고 하더라고요.”

업계에 대한 얘기.

“음...그럼 우리 기반이 약해지는 건데.”

“이 부분도 사장님께 말씀을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또 예산 엄청 들어가겠네.”

“어쩔 수 없죠. 한국에서 1위라도 해외에서 밀리면 타격이 크니까요.”

회사의 비전에 대한 얘기.

“어, 혹시 <시험> 아이디어 이거 어때요? 아예 넷플릭스를 공격하는 거예요. 재미도 없는 영화만 있는 넷플릭스 대신 영화관에서 커피나 마시자. 이렇게요. 미국은 이런거 좋아하잖아요.”

“음...대리님. 여기서 비용 얘기가 나오면 안 될 것 같네요. 비용은 넷플릭스가 영화관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우위잖아요.”

“그건 그렇네요.”

“그래도 넷플릭스를 공격하자는 건 좋은 아이디어예요. 미국은 비교광고가 되니까. CK 인지도를 알리는 데 좋은 방식이 될 것 같네요.”

“맞아요. 비교광고가 사람들 입소문 타기엔 제일 좋잖아요.”

“버거킹이나 맥도날드처럼 재밌게 만들어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것도 체급이 맞아야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 얘기까지.

해외팀 사람들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회의때보다도 더 활기차게 의견을 교류했다. 특히 회의에서 크게 나서지 않는 하대리가 오늘은 열심히 아이디어를 내고 있었다.

‘...이러고들 다니는군.’

그리고 정부장은 아주 오랜만에 보는 부하들의 편안한 얼굴에 새삼스레 자신의 기억을 되짚었다.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빠르게 밥을 먹고, 사무실에 제일 먼저 돌아와 일에 몰두하던 자신.

그리고 자신의 눈치를 보면서 점점 사무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빨라지던 마케팅 부서 사람들.

‘그간 내가 방해를 했겠군.’

어쩌면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자신 때문에 시간에 쫓겨서 다녔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헉. 저희 늦었어요. 가야 해요!”

“뛰지는 말자. 빨리만 걷자...! 회사 때문에 뛰고 싶지 않다...!”

대화에 열중하느라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는 부하들의 모습이-

“천천히 걸어라. 미끄러진다.”

나쁘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

“이팀장. 잠깐 얘기 좀 해.”

허겁지겁 사무실로 뛰어온 한록. 한록이 양치를 하고 숨을 돌리고 오자 정부장이 한록을 불러세웠다.

해외팀이라는 신사업을 출범시킨 CK. CK 입장에서도 새로운 시도이다보니, 상무이사인 한록이 직접 실무를 뛰며 하나하나 기틀을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해외팀 마지막 채용 구성 끝났다. 공고만 나가면 돼.”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록이 마케팅과 실무에 집중하는 사이, 뒤에서 내부 안건들을 처리해주고 있는 정부장.

한록은 해외팀의 수장이자 마스코트였고, 정부장은 참모 역할이었다. 한록이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내면 정부장이 그걸 회사 사정에 맞게 조율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점심시간 말인데.”

그렇게 한참동안 일 얘기를 하던 정부장이 갑작스럽게 한록에게 말했다.

“너 처음엔 20분 당기자고 했지?”

“네. 부장님이 그건 다들 너무 해이해질 것 같아서 차차 생각해보자고 하셨고요.”

처음에는 한록의 말에 아주 강하게 반발하던 정부장. 이에 한록도 살짝 의견을 굽혔었다. 그리고 이제 정부장은-

“...지금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본부장님 허락만 받고 와.”

은근히 한록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정부장에게 점심시간을 즐기는 법을 알려주겠다’던 한록의 말이 이뤄진 것이다.

정부장의 변화에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던 한록.

‘역시. 요즘 말이 잘 통하신다니까.’

예전과는 많이 정부장의 달라진 모습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정부장에게 물었다.

“식사가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유선씨 말처럼 맛집이 맞네요.”

“게장은 먹지도 못했는데 무슨 맛집이야.”

정부장이 한록의 말에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다음에는 좀 더 일찍 가보자. 그래야 맛집인지 아닌지 알지.”

작은 긍정이 숨어있었다.

*

“유선씨. 수고했어요.”

정부장과의 대화 후, 유선에게 향한 한록.

“부장님이 다음에 또 가자고 하시나요?”

한록이 말을 꺼내자마자 유선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유선은 마치 정부장의 말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 같은 반응이었다.

“네. 어떻게 알았어요?”

“저도 거기 갔다가 게장 못 먹었을 때 똑같이 생각했거든요. 될 때까지 온다! 라고요.”

“설마 이게 다 계획이었어요? 게장이 다 팔린 것도?”

“네! 그래야 다음에 또 올 명분이 생기니까요.”

유선은 정부장에게 나름대로의 전략을 시도해본 것이었다.

“잘 통한 거 같죠?”

그리고 개구진 미소를 짓는 유선.

정부장의 질문 하나에 덜덜 떨고, 구과장의 지적에 혼자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리던 유선.

그런 유선이 이제는 한록을 위해 청문회에 참석하고, 부장을 상대로 꾀를 쓸 줄도 안다.

‘정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구나.’

부쩍 성장하고, 이제 회사생활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아가는 듯한 유선의 미소. 그 미소에 한록은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자신의 예상보다 유선이 훨씬 더 가능성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단 생각 역시도 들기 시작했다.

한록이 유선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

“유선씨.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알죠?”

“어...네! 미완성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효과 말하시는 거죠?”

자이가르닉 효과. 인간의 과제 해결에 대한 욕구를 기반으로 한 효과로, 사람들은 ‘완료하지 못한 문제’를 오래 마음속에 기억한다라는 개념을 의미했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널리 알려진 효과로 여러 마케팅에 사용되고는 했다.

애플의 한입 먹은 사과 로고. 실패한 첫사랑. 결말이 나기 직전 다음 화로 넘어가 버리는 소설들. 그래서 ‘다음’을, ‘완성’을 바라게 하는 마음.

“오늘 유선씨가 활용한 마케팅이네요.”

오늘 유선이 저도 모르게 정부장에게 시도했던 것.

“어...그렇게까지 의도한 건 아닌데...”

‘상사를 상대로 수작을 부렸다.’ 한록의 말을 그렇게 이해한 것인지, 유선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이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선씨. 우린 마케터잖아요.”

“네.”

“그러니까, 제 말은요.”

“네...”

“오늘 아주 잘했단 소리예요.”

그 말과 함께 살짝 엄지손가락을 올려보인 한록. 한록이 장난스레 덧붙였다.

“타고난 마케터네요, 유선씨.”

그 말에, 얼어있던 표정이 풀리고 씨익 미소를 짓는 유선.

유선은 이제 자신을 능력을 의심하지도, 그래서 풀이 죽지도 않았다. ‘당신은 능력있는 사람이다.’ 한록이 매번 그렇게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게 유선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뭐야. 무슨 얘기하는데 그렇게 분위기가 좋아?”

그때, 한록과 유선의 곁을 지나치다가 그 자리에 멈춘 현차장. 현차장의 물음에 한록이 입을 열었다.

정부장이 점심시간의 즐거움을 알았다. 그래서 이제 점심시간이 20분 늘어날 거다. 이 기쁜 소식을 얼른 모두에게 전해야...

“정부장님이 점심시간을...”

한다고 생각했으나, 거기까지 말하고나니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아직 본부장님한테 보고 안 드렸는데. 말해도 되려나?’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그래도 허가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판단한 한록이 말을 정정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엥? 뭔데?”

그러자 현차장이 다시 한 번 물어왔다.

“지금 말씀드리긴 좀 그렇습니다.”

“뭐야? 나쁜 소식이야?”

“아뇨. 좋은 소식입니다.”

“그럼 왜 말을 안 해 줘?”

“사정이 있어서요.”

“무슨 사정인데?!”

한록이 답을 피할수록 어리둥절한 얼굴로 캐물어오는 현차장. 그는 지금...

“왜 말을 하다가 마는 거야?!”

자이가르닉 효과를 절절하게 경험하는 중이었다.

“...이거 정말 효과가 좋네요.”

“그러게요.”

참을 수 없는 호기심, 그리고 답답함에 진저리를 치는 현차장.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록과 유선.

“이거 혹시 예고편이야? 다음주에 계속, 뭐 이런 거야?”

그리고 현차장의 말을 듣는 순간, 한록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자이가르닉 효과. 미완성본을 보고, 완성본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의 욕망을 의미하는 효과.

그리고 영화 예고편이 만들어진 이유 그 자체.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지?’

한번 발상이 떠오르자 아이디어가 마구 솟아나기 시작한다.

-집에서 TV, 혹은 컴퓨터로 <시험>의 예고편을 볼 사람들.

-그들이 느낄 자이가르닉 효과. ‘이 영화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 방법.

-그리고 그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모을 방법.

사람들이 <시험>을 보기 위해 넷플릭스가 아닌 영화관으로 달려오게 만들 방법이 드디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차장님. 마케팅 파트 회의 다시 소집해주시겠습니까.”

“왜? 무슨 일 있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무슨 아이디어?”

“사람들이 <시험>을 안 보면 미칠 것 같다고 느낄 아이디어요.”

“그게 뭔데?”

현차장의 말에 한록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자이가르닉 효과를 설명하는 아주 유명한 말이 있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방법. 거기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시험>의 예고편에서 자이가르닉 효과를 극대화시킬 겁니다.”

“정확히 어떻게?”

-첫 번째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

“그건 바로.”

그리고 두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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