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69화 (150/263)

저는 이 자리에서 가장 능력있는 사람이니까요.

“사장님 오셨습니다.”

한록은 그 말에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과거 감독 GV허가를 받기 위해 왔던 이 곳. 숨 막히는 분위기. 임원들의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중앙에 앉은 하정엽.

그때와 모든 게 같았으나, 딱 한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다들 알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영화사업본부 이한록 팀장이 오늘부터 임원회의에 참석합니다.”

바로 이제 하정엽의 옆에는 자신이 앉아있다는 것이었다.

임원회의에 새로 등장한 한록을 탐색하는 듯 바라보는 본부장들.

‘정말 어리군.’

‘사장님의 총애를 받고 있다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온 건지 모르겠군.’

‘자.’

‘이제.’

‘이 녀석이 얼마나 하는지 볼까.’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수많은 생각이 오가는 가운데, 한록의 첫 임원회의가 시작되었다.

*

“이번 공연사업본부 가을 축제는 예상 매출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홈쇼핑 본부의 경우, 저번 분기 대비 매출이 3% 성장하였습니다.”

“콘텐츠 사업본부는 신규 IP 25% 증가, 그 중 해외 IP는 60%입니다.”

하정엽의 앞에서 이번 분기 각자의 실적을 발표하는 본부장들.

본부장들이 보고를 할때마다 하정엽의 표정이 굳어갔다. 각 본부의 실적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었다.

하정엽이 홈쇼핑 본부장에게 물었다.

“홈쇼핑 본부장님. 저번 회의 때 이번 분기가 CK ENM에게 가장 중요한 분기라고 말씀드린 것 기억하십니까.”

“네, 기억합니다.”

“아니, 기억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하정엽이 홈쇼핑 본부장의 말을 칼같이 자르며 답했다.

“그걸 기억하고 있으면 이 따위 결과를 가져오진 않았겠죠.”

언제나 차가울 정도로 거리를 지키는 하정엽. 그가 드러내는 분노.

그 앞에 본부장들이 몸을 움츠렸다.

“쉬고 갑시다.”

하정엽이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회의를 중단시켰고,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사장님이 화가 많이 나셨다.’

본부장 모두에게 떠오른 생각. 동시에, 그들에게 또다른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하필 이런 날 첫 회의라니. 이한록은 운이 없군.’

대부분의 본부가 매출이 저조하고, 이에 사장이 크게 화가 났다.

이런 상황에서 한록은 임원으로서 첫 발언을 해야하는 상황.

“본부장님.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러나 정작 한록의 반응은 태연했다.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기다려왔다는 듯한 표정의 한록.

한록은, 꼭...

“준비해야할 게 있습니다.”

모든 걸 예상한 사람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하정엽이 나간 틈을 타, 잠시 회의실 밖으로 나온 한록.

“형, 여기.”

거기선 영도가 약간 긴장한 얼굴로 한록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이 말하자마자 우리 팀 전부가 달려들어서 만든거긴 한데...그래도 시간이 너무 없어서. 예쁘게 꾸미진 못했어.”

“괜찮아, 그런 건 필요 없어. 고맙다.”

영도가 가져온 것은 한록이 부탁했던 해외팀 관련 서류.

-영도야. 해외팀 관련된 계약서 다 모아서 보고서 하나로 만들어줘라.

-응, 알았어. 언제까지?

-오늘 네시까지.

-어?!

갑작스러운 요청이었지만, 영도를 비롯한 법무팀 사람들은 훌륭하게 일처리를 끝내주었다.

“법률적인 내용을 물어볼 수도 있으니까, 너도 같이 들어가자.”

“으...알았어.”

한록의 말에 긴장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영도.

“가자.”

“형, 잠깐만.”

영도가 다시 회의실로 들어가려는 한록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한록에게 속삭였다.

“형. 이거 왜 가져오라고 한 줄 알고 있거든. 임원들이 뭐라고 하면 반박하려고 그러지?”

“어. 맞아.”

“너무 싸우지말고, 적당히 하자. 알았지? 적당히 공격하고, 적당히 칭찬도 좀 해주고. 상대가 임원들이잖아. 예쁨 받으려면 형 성격 다 보여주면 안 돼.”

“어, 알았다. 고마워.”

한록의 시큰둥한 대답에 영도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 형. 내 말 대충 듣고 있지?”

“아니야. 잘 듣고 있어.”

“그럼 잘 좀 해봐. 알았지?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임원들이잖아. 형이 이런 거 잘 못하는 건 알지만 그래도 할 땐 해야지.”

한록에 대한 걱정이 담긴. 그러나, 한록을 너무 모르는 영도의 말.

그 말에 한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영도야. 나 이런 거 잘해.”

“...어?”

놀란 얼굴로 한록을 바라보는 영도. 한록의 답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형 지금 뭐라고-”

“들어가자. 곧 회의 시작될 거야.”

그러나 영도에게 상황을 설명해줄 시간은 없었다. 한록은 영도의 등을 툭치고 회의실로 향했다.

“어, 어. 들어가자.”

그리고 영도가 놀란 얼굴로 서류를 들고 한록의 뒤를 따랐다.

*

회의실로 돌아온 한록과 영도. 영도가 사람들의 책상에 가져온 자료들을 하나씩 놓아주었다.

10분 정도 지나자, 하정엽 또한 다시 회의실로 복귀했다.

“음악사업본부.”

그리고 다시 하정엽의 처형이 시작되었다.

“이번 아시아 뮤직 어워드 매출이 전년대비 2배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오석은 다른 본부장과 달리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문오석이 추진한 아시아 뮤직 어워드가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연말 시상식 역시, 이전에 비해 키워드 점유율이 20% 증가했습니다.”

거기에 한달 남은 시상식까지 잘 진행되고 있는 상황.

“수고했습니다.”

음악사업본부의 활약에 하정엽이 오늘 처음으로 칭찬을 건넸고...

“영화사업본부. 해외팀에 대해 발표하세요.”

이제 한록의 차례가 되었다.

“네. 해외팀 설립 진행과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록이 하정엽을 보며 말했고, 이 곳에 오기 전 최경준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주지.

최경준은 회의 전 30분동안 한록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지금부터 시작될 회의는 평범한 회의가 아니라 임원회의야. 평소와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는 얘기지. 여기엔 전략이 필요하네.

‘전략’이 필요하다. 평소처럼 하면 안 된다. 최경준은 영도와 똑같은 소리를 했다.

-처음부터 제대로 물어뜯어야 해.

그리고 전혀 다른 해결책을 내놓았다.

-거기 있는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는 없어. 그저,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밟아놓는 게 최고의 방법이야. 자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공격하게.

그리고 한록은.

-할 수 있겠나.

-그게 제 특기 아닙니까.

최경준과 아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해서, 영화 사업본부는 앞으로 해외팀을 주축으로, 해외 마케팅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임원으로서 진행된 한록의 첫 발표.

“다른 본부장님들. 질문하실 것 없습니까.”

하정엽이 물었고.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문오석이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들었다.

“해외팀이 출범하면, 국내 마케팅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 중요 인력이 전부 해외팀으로 이동하는 걸로 보이는데요.”

문오석이 가식적으로 웃으며, 정말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해외에 신경을 쓰고 국내를 돌보지 못하는 동안, 샬롯테는 그 공백을 공격하려 들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국내 시장마저 샬롯테에게 뺏길 수 있습니다. 국내시장과의 병행이 좋아보입니다.”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에 똑같이 집중할 것이다’라는 답변을 유도하는 문오석의 질문.

‘여기에 ‘국내 시장도 함께 담당하겠다’ 고 나오는 순간, 해외팀에 자신이 없다고 증명하는 꼴이다. 반면에 ‘그래도 해외팀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국내시장이라는불안요소를 무시하겠다는 거고.’

해외에 집중하겠다. 혹은 국내도 병행하겠다.

그 어떤 답변도 피해갈 수 없는 함정을 설치한 문오석.

‘...이거 어떻게 하지? 형, 제발 적당히. 형.’

문오석의 치밀한 함정에 영도는 발을 동동 구르며 한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록은 생각했다.

‘정말로...’

‘한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군.’

역시 이 게임의 승자는 자신이라고.

*

문오석의 질문에 한록이 입을 열었다.

“해외팀이 최대한 단기간에 성과를 낼 테니, 국내 마케팅에 공백이 생기는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1년만 버티면 충분합니다.”

“1년으로 낼 수 있는 성과면 대단한 건 아닐텐데요. 그럼 해외팀의 의미 자체가-”

“본부장님.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한록이 문오석의 말을 자르고, 그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어떡해!’

놀라서 숨을 삼키는 영도. 그리고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문오석.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하정엽.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한록이 말했다.

“제가 이렇게 말할 땐, 누가 봐도 놀랄 결과를 가져오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어?’

그 말에 영도가 고개를 번쩍 들었고.

“...허.”

문오석이 허를 찔린 듯 탄식을 뱉었다.

사실, 한록과 한 번도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문오석.

‘이건 대체 무슨 반응이지?’

문오석은 한록의 자신감 넘치는 행동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문오석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한록에게 답했다.

“자신감 있는 건 좋은데,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1년만에 제대로 된 성과를 내려면 기반이 필요해요. 하지만 아직 영화사업본부는 미국에 기반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한록이 문오석의 지적에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2페이지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한록이 말한 것은 바로 영도가 건네준 보고서였다.

“CK ENM과 마케팅 계약을 체결한 미국 방송사. 일주일 안에 72개국과 계약을 마쳤습니다.”

“...”

“3페이지. 타임스퀘어 전광판. 내년 3월에 벌써 일정을 잡아놨습니다.”

완벽히 준비 된 자료에 할 말을 잃은 문오석. 그러나 한록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4페이지. 미국 인기 토크쇼 ‘SNL’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달 전에 고지만 한다면 언제든지 우리가 원하는 내용을 방송으로 내보내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5페이지. 미국 광고사와의 제휴목록이며, 6페이지. 대략적인 광고 단가입니다. 7, 8, 9페이지. 헐리웃 연예인이 속해있는 소속사들과 주고받은 메일입니다.”

준비한 자료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하는 한록. 한록이 잠깐 말을 멈추고 문오석을 바라보았다.

“해외팀의 출범이 결정된 지 한달만에 만든 성과입니다. 본부장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아직은 부족하다.’ 그건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나 하는 변명입니다. 그러니, 해외팀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아주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이 안에서 가장 능력있는 사람이니까요.”

한록의 말에 회의실에 정적이 감돌았다.

*

‘미친!’

상황을 지켜보던 영도가 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영도가 이렇게까지 놀란 것은 한록이 너무 공격적으로 나가서나, 처세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방금 전에, 직접 보여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무도 한록의 말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는 한록. 그리고 한록의 말에 침묵을 지키는 본부장들.

그 모습을 보고 영도는 깨달았다.

‘내가 틀렸구나.’

한록의 말이 맞았다. 한록은 처세를 못하거나, 남에게 굽히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저 한록은 누구에게라도 굽힐 필요가 없는 것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럼 반대 의견 없으신 걸로 알겠습니다.”

이 안에 자신의 상대는 없었으니까.

*

한록과 본부장들 사이에 오가는 싸늘한 기류. 그걸 깬 것은 하정엽이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나 하는 변명이다라.”

하정엽이 한록의 말을 곱씹었고, 잠시 후 말했다.

“좋은 말입니다. 변명을 하는 사람은 내 회사에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내 화가 나있던 사장을, 한록의 한마디가 웃게 했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케팅 채널이 많이 마련되어 있다고 해서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건-”

“그만.”

그리고 문오석이 필사적으로 말을 이으려 할 때. 하정엽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회의는 여기까지 진행합니다. 각 본부는 내일까지 새로운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리세요.”

하정엽의 말에는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라는 속뜻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단 한 사람만은 이 질타에 해당되지 않았다.

“해외팀은 이대로 진행합니다. 잘했습니다.”

바로 한록만큼은.

오늘 유일하게 하정엽을 웃게 한 사람.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사람.

하정엽의 말을 들은 순간, 그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본부장들은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오늘의 승자는 이한록이다.’

그리고 문오석은 생각했다.

‘아.’

하정엽의 눈빛, 그리고 한록의 미소. 그걸 보는 순간 느껴지는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불안감.

‘위험하다.’

어쩌면, 자신은...

‘내가 적수를 잘못 골랐다.’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마주친 것일지도 몰랐다.

*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자리를 나가버린 하정엽.

‘최경준이 꽤 괜찮은 카드를 가져왔다.’

‘사장님이 확실히 영화사업본부를 지켜보고 계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오늘 회의로 또다시 바뀐 CK ENM의 판도. 각 본부장들은 바삐 머리를 굴리며 앞으로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보고 있었다.

‘위험하다.’

그리고 문오석은 크게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한록이 여기서 더 성장한다면. 그러면 정말로 내가 질 수 있다.’

어느새 그런 공포를 느끼고 있는 문오석.

‘더는 시간이 없다. 빨리 끝내야 해.’

문오석이 한록을 바라보았고,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리고 한록은 별다른 반응도 없이 짧은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문오석을 남겨두고 회의실을 나가버린 한록.

한록은 임원들 중 가장 먼저 자리를 빠져나왔고, 영도가 임원들의 눈치를 보다가 한록의 뒤를 따라 뛰어 나왔다.

“형! 오늘 엄청 잘했어! 진짜 멋있더라!”

아까 한록을 걱정하던 것은 언제였냐는 듯, 신이 나서 한록에게 말하는 영도.

그리고...

“사이가 좋아보이는군.”

“...본부장님!”

바로 한록을 뒤따라나온 최경준.

“영도야. 오늘 고마웠다. 다시 얘기하자.”

“어, 어!”

최경준의 등장에 영도는 놀란 얼굴로 도망을 갔고, 복도에는 최경준과 한록, 그리고 장비서 셋만이 남았다.

“잠깐 자리를 비켜주겠나.”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최경준은 장비서를 제외하고 한록과 단 둘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마자 말했다.

“이한록.”

“네, 본부장님.”

“잘했네.”

“감사합니다.”

평소와 같은, 아니, 평소보다 훨씬 담백한 칭찬. 그러나 한록은 지금 최경준이 보통 때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최경준은 어쩐지...

“앞으로도 이렇게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그럼, 그래야지.”

감정을 숨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15층에 도착했고, 한록이 내릴 차례가 되었다. 문이 열리자 최경준이 한록에게 말했다.

“퇴근 후 내 사무실로 올라오게.”

그리고 마주친 시선에, 한록은 최경준이 숨기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오늘 자신의 스피치는 아마 완벽했음이 분명했다.

“자네가 이 정도로 해줄 수 있다면 말이야.”

그래서 최경준은.

“이제 문오석을 두고 볼 이유는 없지.”

참기 힘든 흥분을 겨우 억누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최경준이 말했다.

“사냥의 시간이야.”

그리고 한록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

최경준과 헤어진 후, 다시 마케팅 부서로 돌아온 한록.

“이과..이팀장님! 오셨습니까!”

“이러지 마세요. 불편합니다.”

한록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한록은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답변을 해주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어쩐지 한록의 자리를 피해 멀리 돌아가기 시작하는 사람들.

‘...개인 사무실이 나오기 전까지 정부장님이랑 자리를 바꿔달라 해야하나?’

한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화가 한 통 도착했다.

[지잉-]

끊임없이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소리와, 핸드폰에 떠오른 글자.

“...드디어 왔네.”

한록은 핸드폰에 표시된 상대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얼른 전화를 받고 말했다.

‘헐리웃의 유명한 영화인들이요? 그 사람들이 지금 섭외가 될까요? 한국 시상식에 관심이나 있을까요?’

오늘 오전, 송PD의 걱정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는...

[오랜만이군. 한.]

한국 영화에, 아니 <삼일의 삶>에 아주 큰 관심을 가진 사람.

[나를 시상식에 초대하고 싶다고?]

알렉산드로 감독의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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