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62화 (143/263)

GV가 시작되었다.

‘문오석의 라인을 전부 쓸어버리자.’

‘그리고 CK ENM과 영화사업본부에 방해가 될 사람을 전부 물갈이하자.’

한록과 최경준이 새로운 계획을 짜고 있을 때, 하태준 역시 CK ENM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래. 이한록 그 놈을 견제하려는 시도가 있다는거지.”

“네. 본부장 중 절반 정도가 영화관 건설에 반대한다고 합니다.”

한록의 회의에 참석했었던 오대리가 하태준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조금 있으면 서열정리가 되겠군.”

지금 영화사업본부는 최고의 전력을 갖춘 상황이었다.

최경준이라는 막강한 본부장. 거기에 500억이라는 지원, 사장의 총애, 회장의 관심을 받고 있는 한록까지.

‘지금 실세는 영화사업본부다.’

모두가 그걸 알고 있는 상황.

이 상황에서 누군가는 최경준과 한록의 아래로 들어가려 할 것이고, 누군가는 둘을 끌어내리려 할 것이다.

그리고 하태준은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나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느냐. 그것도 리더의 중요한 역량이지.”

바로 최경준과 한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지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최경준. 많은 부분에서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을 포용할 줄 모른다. 아마 최경준 혼자서는 이 일을 해쳐나갈 수 없을 거야.’

하태준은 최경준을 크게 아꼈지만, 최경준이 본부장 이상으로 갈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이한록이 있다.’

그런데 그런 최경준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긴 상황. 그것도...

‘그 녀석은 좀 다르지.’

아직 경험은 부족하지만, 어쩌면 최경준보다도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하태준이 오대리에게 물었다.

“넌 이한록이 일하는 걸 본 적이 있지. 어떤 사람으로 보이던가.”

그 말에 오대리는 예선전 회의를 떠올렸다. 사람들을 제압하는 한록의 모습. 그건 확실히 최경준을 닮아있었다.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록은 최경준에게는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

오대리의 말에 하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서 500억을 가져간 놈이야. 그 정도 평가는 받아야지.”

장학재단. 그리고 해외팀까지. 앞으로 회사의 중심 프로젝트가 될 일을 모두 맡고 있는 한록.

“그 놈의 그릇이 어디까지인지 이번에 알게 될 거야.”

하태준은 그런 한록을 시험해보고 싶었고, 또...

“그걸 알고 나면 그 놈한테 맞는 자리를 줄 수 있겠지.”

한록의 그릇을 채워주고 싶었다.

*

점심시간.

“소고기 먹으러 갑시다. 지금. 당장.”

한록이 GV팀에게 말했다.

“네...네!”

그리고 한록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에 현차장이 저도 모르게 답했다.

“왜 존댓말을 하십니까.”

“너무 멋있어서 그만...”

“소고기 사주는 사람한테는 존댓말 해야죠. 소고기 사주는 멋진 이과장님.”

“하대리님. 호칭이 너무 긴데요.”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회사 근처 한우집에 도착한 GV팀.

“이과장. 근데 왜 갑자기 한우야?”

현차장의 말에 한록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한록이 꺼낸 것은 검은색으로 반짝이는 카드.

“그거 설마...”

“법인카드입니다.”

회사원들의 희망, 법인카드였다.

“부장님이 주신거야? 인터뷰 때문에? 이야, 이과장 덕분에 호강하네.”

“아뇨. 본부장님이 주셨습니다.”

“본부장님이?!”

“본부장님이요?”

최경준이란 말에 깜짝 놀라는 GV팀.

GV팀은 예전에도 <지구 특공대> GV때 최경준의 법인카드를 받아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매우 희귀한 경험이었고, 보통 직원들은 최경준과 말 한 번 해보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예전엔 얼굴 뵙기도 어려운 일이었는데...과장님 덕분에 두 번이나 본부장님한테 밥을 얻어먹네요.”

놀랍고, 뿌듯한 얼굴의 하대리. 그러나 하대리의 말엔 틀린 부분이 있었다. 한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본부장님 카드가 아닙니다.”

“네? 아까 본부장님이 주셨다고 하셨잖아요.”

“네. 하지만 본부장님은 그냥 전해주신거고, 소유자는 다른 사람이에요.”

“누구요?”

“저요.”

한록의 말에 GV팀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네?!”

현차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몇 시간 전, CK ENM을 새롭게 바꿀 대화를 나누던 한록과 최경준.

대화가 끝나자, 최경준이 한록에게 카드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이제 이건 자네가 사용하게.

-...제가 말입니까?

-그래.

-법인카드를 받기엔 제 직위가 너무 낮은 것 같습니다.

-그건 상관없어. 사장님이 보내신 거니까.

최경준이 한록에게 웃으며 답했다.

-모레까지 출장이셔서, 어제 나한테 자네에게 전달해달라고 하셨네. 아마 출장에서 돌아오시면 이것 말고도 자네에게 주어지는 게 많을 거야.

과거 차장일 때도 받아본 적 없는 법인카드. 한록이 신기한 듯 카드를 살펴보는 걸 보고 최경준이 말했다.

-받고 싶은 게 있다면 미리 생각해두게.

그 말에 장바구니를 떠올리는 한록.

그러나 불과 얼마 전에 하정엽에게 회사 소유의 차를 받았고, 월급도 넘치도록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딱히 떠오르는게 없었다.

한록의 표정을 보더니 최경준이 ‘짐작이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 고향이 강원도라고 했나.

-맞습니다.

-서울에 집은 있고?

-아뇨. 광명에서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살고 싶은 곳을 생각해두게.

한록의 말에 최경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 일이 잘 끝나면, 아마 사장님이 집을 얻어주실 테니까.

*

“사장님이 이번 <도착지> 마케팅을 꽤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GV팀도 곧 보상이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사장이 집을 얻어준다고 했다’는 사실은 빼고, 적당한 선에서 오늘 있었던 내용을 전달한 한록.

사장이 한록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건, 곧 GV팀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GV팀이 좋아하리라 생각해서 한 말이었고, 실제로 하대리와 유선은 꽤나 기분이 좋아보이는 얼굴이었다.

“과장님이랑 일하면 별 일이 다 생기네요. 그때 GV팀 안 들어왔으면 큰일 났겠다.”

“과장님. 저 카드 좀 봐도 돼요? 우와...이게 법인카드구나.”

“새로 발급받은 거 같죠? 반짝거리네.”

“너무 반짝거려서 눈이 부셔요.”

“이과장님도요.”

경외감이 담긴 눈으로 한록과 법인카드를 번갈아바라보는 하대리, 그리고 유선.

“이...이럴수가...”

그러나 현차장은 가만히 앉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차장님이 아니라 내가 카드를 받아서 화가 나신건가?’

그러나 한록의 걱정도 잠시. 현차장이 한록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과장.”

“네.”

“앞으로 밥 누구랑 먹을거야? 본부장님? 사장님? 우리는 잊을 거야?”

“그럴 리가 없죠.”

“계속 우리랑 먹는거야?”

“가끔은 영도랑...”

“아무튼 주기적으로 우리랑 먹는 거야?”

“그렇죠.”

“가끔 소고기 사줄거야?”

“자주 사드리죠.”

그 말에 현차장이 다시 한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한록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나 이과장이 너무 좋다!”

현차장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는 유선과 하대리. 잠시 후, 하대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도요.”

아직은 어색한 사이라고 생각하던 하대리. 그의 속마음을 잠시 들은 날.

현차장의 품에서 간신히 벗어난 한록이 생각했다.

자신을 아껴주는 팀. 동료들의 감사. 상사의 인정. 어쩌면 직장인들에게 법인카드보다 더욱 필요한 것들.

‘...기분 좋네.’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자신의 손 안에 있었다.

*

다음날.

라이벌 GV까지 D-6일.

“과장님! 다녀왔습니다.”

외근을 다녀온 유선이 한록에게 무언가를 내밀며 말했다.

[도착지 장학재단 홍보 모델 선정]

이라는 글에 찍힌 홍보팀의 직인.

“장학재단 홍보 모델 우리가 정해도 된다고 하십니다!”

장학재단 얘기가 나온 이후, 한록이 요청했던 일이 드디어 결론이 난 것이다.

[<도착지 장학재단>의 1기 모델은 도착치 챌린지를 통해 선정함.]

[장학재단, 그리고 챌린지의 취지는 서로의 꿈을 응원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는 것. 이러한 취지에 맞게 가장 많은 댓글을 받은 게시물의 작성자를 모델로 선정하도록 함.]

이번 모델 선정은 한록이 GV를 위해 준비한 두가지 카드 중 하나였다.

“고마워요. GV 끝날 때까지 계속 데이터 수집해서 모델 선정해주세요.”

한록의 말에 유선이 망설이다 답했다.

“그런데, 과장님. 지금 댓글 가장 많은게 인스타 인플루언서들이거든요. 이런 사람들이 뽑히면 장학재단 이미지가 안 좋아질 것 같아요.”

“아뇨, 지금 댓글 가장 많은 분은 이 분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유선에게 핸드폰을 보여주는 한록.

한록의 핸드폰에 떠 있는 사람을 보고 유선이 깜짝 놀라 말했다.

“어, 그러네요? 왜 몰랐지?...아!”

그리고 잠시 후 한록은 알고, 자신은 모르는 ‘비밀’을 보고 외쳤다.

“과장님, 이거 그대로 내버려두는 거 어때요? 그리고 GV에서 공개하는 거예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자신과 똑같은 유선의 반응에 한록이 뿌듯함과 대견함을 느끼며 말했다.

“이게 제 비장의 카드예요. 어때요? <수면> 이길 수 있겠어요?”

“<수면>이요?”

한록의 질문에 유선이 씩 웃으며 답했다. 장난기 어린, 씩씩한. 그리고....

“상대도 안 되죠!”

한록같은 말이었다.

*

그 다음날. GV D-5일.

최대리가 숨겨오던 <수면>의 마케팅이 공개되었다.

[타임지 선정 올해의 영화인: <수면>의 서감독.]

바로 미국 유명 신문사에서 서감독을 올해의 영화인으로 선정한 것이었다.

[타임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영화인에 <수면>의 서감독이 선정되었다.]

[서감독은 타임지 특별판의 표지에 얼굴을 올리는 영광을 누렸다.]

[또한 <수면>은 내년 칸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의 유력한 수상 후보로 추측 된다.]

[유진 벤 하이머 감독은 서감독에게 ‘21세기 최고의 천재 감독’ 이라는 감상을 남겼다.]

서감독. 그리고 <수면>에 대한 외국의 반응이 한국에 역수입 되는 상황.

[올해 한국 영화의 희망, <수면>.]

미국에서의 인정으로, 사람들이 다시 <수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네.”

점심시간. 식사를 위해 밖으로 향하던 GV팀. 현차장이 어딘가를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현차장의 시선이 향한 곳은 CK 로비 한 가운데, 그 분기 대표작의 포스터를 걸어주는 벽면이었다. 원래 <도착지>의 포스터가 걸려있던 곳. 그곳에서 <도착지>의 포스터가 철거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걸린 것은 서감독의 타임지 표지사진이었다.

“진짜...저 쪽도 대단하다. 여기서 타임지를 들고 올 줄이야.”

영화를 위해 해외 반응을 역수입해오겠다. 그리고 그걸 위한 방법은 미국 유명 신문사의 표지에 선정되는 것이다.

오직 최대리만이 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담당하는 감독이 서감독이어야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현차장이 정말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이길 수 있겠지? 우리나라 사람들 국뽕에 약한데.”

“그럼요. 열심히 했잖아요.”

“이과장. 지금 여유 부릴 때가 아니지 않아? 긴장도 안 돼?”

압도적인 인지도의 작품. 해외 유명 신문사에서의 수상. 평단의 호평. 그리고 서감독이라는 상징적인 존재까지.

“네. 안 돼요.”

“그치만 상대가 <수면>이잖아. 거기에 타임지. 그리고 서감독이고.”

“우리는 10만명의 챌린지 참여자가 있잖아요. 500억짜리 장학금도 있고.”

GV팀이 상대해야하는 막강한 존재 앞에서 한록이 답했다.

“그리고 전 이한록이고요.”

*

다음날. GV D-4일.

GV직전, 마지막 회의였다.

GV에 외국의 유명한 평론가, 철학자, 감독을 총동원하겠다는 최대리.

“그리고 타임지의 국장이 올 예정입니다.”

거기에 아주 막강한 게스트까지. 최대리의 말을 들은 한록이 답했다.

“우리 GV의 특징은 감독에게 집중하는 GV인데, 게스트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감독에게 집중하는 GV가 아니라, 감독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GV죠.”

“정말 서감독님이 이런 걸 원하셨습니까?”

“네. 이런 걸 해달라고 말씀하셨어요.”

최대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과장님 이겨야 한다고.”

정보전달과 도발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최대리의 말. 그 말에 한록 역시 웃으며 답했다.

“이길 자신이 있으십니까.”

그러자 창문을 가리키는 최대리. CK 건물 창문으로 보이는 건물 전광판에는 <수면>의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며칠 전까지 <도착지>의 포스터가 걸려있던 곳이었다.

“이 정도면 증명되지 않았을까요?”

최대리의 여유로운 태도에 현차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분명 뭔가를 더 준비했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건 한록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단한 걸 준비하셨나보군요.”

그리고 한록은...

“하지만 안 통할 겁니다.”

최대리가 준비한 마지막 카드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떻게 확신하세요?”

왜냐면.

“저도 대단한 걸 준비했거든요.”

자신의 카드가 그보다 뛰어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

D-3.

“유선씨. 홍보 모델 어떻게 되고 있어요?”

“연예인들이 챌린지에 참여하긴 했는데요. 그래도 저희가 생각하는 그분이 될 것 같습니다!”

한록의 첫 번째 카드. <도착지>의 홍보모델 선정은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홍보 영상은요?”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어요.”

<도착지>의 홍보영상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긴장된 표정의 유선이 한록에게 말했다.

“과장님. 영상은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타임지의 인정을 받아온 서감독. 한록은 그에 맞게 아주 특별한 사람에게서 <도착지>의홍보 영상을 받아왔다.

한록의 마지막 카드이자, GV의 핵심. 홍보영상이 도착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그 홍보영상이 없다면 <수면>을 이길 수 없다.

“아뇨.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한록이 유선에게 말했다.

*

D-1. GV 전날, 저녁 8시.

한록에게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도착지 영상입니다.]

누군가가 보낸 <도착지>의 홍보영상이 CK에게 도착했다.

한록이 홍보영상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퇴근합시다.”

“어...GV 좀 더 준비해야하지 않을까요? 홍보영상 멘트도...”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걱정하는 유선에게 한록이 말했다.

“우리가 이겼으니까.”

*

다음 날.

누가 올해 시상식의 승자가가 될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

그리고 한록이 한국에서 이룰 수 있는 마지막 성취인-

[CK 예선전 마지막화 촬영 시작합니다!]

라이벌 GV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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