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그리고 이틀 뒤. KBC와 하정엽의 인터뷰가 생중계로 방영되었다.
[CK ENM 하정엽입니다.]
“이야. 인사만 했는데 검색어 진입했다. 우리는 새빠지게 마케팅해도 검색어 들어가기 어려운데, 사장님은 좋겠다.”
“차장님. 방금 사장님 비서분 지나가셨습니다.”
“진짜?!”
“농담이에요.”
“이과장!”
현차장의 말처럼, 하정엽이 말을 하자마자 크게 뛰는 검색어 순위.
[네. 사장님과 도착지 챌린지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 초청드렸습니다.]
“과장님. 지금 도착지도 검색어 진입했어요.”
그리고 덩달아 효과를 보고 있는 <도착지>까지.
[CK가 도착지챌린지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제보들이 있던데요. 사실인가요?]
[네. 아직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라 공식적인 발표를 미루고 있었는데, 말씀하신게 맞습니다.]
[정확히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계신가요?]
“챌린지 게시글 5만개요!”
하정엽이 한마디, 한마디를 할때마다 업로드되는 챌린지 게시글.
“지금 도착지 예매율 30% 늘었어요. 이대로 가면 GV전에 700만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어나는 <도착지>의 관객수.
“...이게 보니까, 사장님을 부러워할 때가 아니었네. 사장님이 우리 대신 <도착지> 홍보를 뛰고 있는 거였어. 이과장이 이제 사장님까지 마케팅에 써먹고 있구나.”
뒤늦게 깨달음을 얻은 현차장.
현차장의 말처럼, 하정엽 덕분에 <도착지>와 도착지 챌린지의 인지도는 엄청나게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감독님이나 배우들로는 성이 안 차? 재벌 2세 정도는 돼야 내 마케팅에 출연할 수 있다. 뭐 이런 건가?”
“네, 그런 거죠.”
“어?! 진짜?!”
“그렇게 놀라실거면 왜 물어보십니까. 당연히 농담이에요.”
“...이과장이 말하면 진짜인 거 같다고!”
한록의 장난에 현차장이 억울한 듯 소리쳤고,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마찬가지로 유쾌하게 웃는 한록. 그러나 한록의 말은 반쯤은 진심이었다.
‘재벌 2세 정도는 돼야 내 마케팅에 출연시켜주겠다.’ 그 말은 물론 사실이 아니다.
‘대신 이런 생각은 했지.’
사장을 설득했고, 거기에 회장의 허락까지 받아왔다.
‘사장님.’
그렇다면.
‘고작 이 정도입니까?’
지금 정도 반응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더 해보세요. 그래야 다음 번에도 당신을 써먹을 수 있을지 결정하니까요.’
사장에게 ‘더 뛰어난 성과를 내놓아라’고 마음속으로 채찍질 하는 한록. 그리고 한록의 평가를 받게 된 하정엽.
갑을 관계가 완전히 뒤바뀐 상황에서, 한록은 여유롭게 하정엽의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하정엽은 괜히 CK ENM의 사장이 아니었다.
[도착지 프로젝트라고, 도착지 챌린지에 참여한 분들을 지원하는 장학재단을 설립할 예정입니다.]
[장학 재단이요?]
“...장학재단? 진짜야, 이과장?”
“네. 어젯밤에 결정된 내용입니다.”
정확히는, 어젯밤 하정엽이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걸 생각중이다’라고 한록에게 말한 정도였다.
한록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답했다.
-사장님. 이 얘기, 반드시 인터뷰에서 말하셔야 합니다. 사장님의 인지도를 지금보다 몇 배는 올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아직 회장의 허락도 받지 않은, 아니, 한록과 하정엽 외에 그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
[네. CK 그룹 최초의 장학재단입니다.]
그럼에도 하정엽은 한록의 지시대로 지금 장학재단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앞으로 제가 CK ENM과 함께 운영할 곳입니다.]
거기에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엮어서.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목표를 위해 뒤는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사장, 하정엽. 그를 보며 한록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항상 자신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 방법을 가져올 때의 당황스러움. 그 당당한 태도에 대한 불신. 그리고.
‘<도착지> 이름이 붙은 장학재단이다. 통과만 된다면...사람들이 <도착지>를 잊을리는 없을 거다.’
거기에 섞인 기대.
한록은 지금 그 감정을 하정엽에게 느끼고 있었다.
[장학재단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10년간, 1년에 200억대 규모로 소외계층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다만, 보통 장학재단들과 달리 학생들만 지원하는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년, 노년층. 새로운 시도를 하시는 분들을 위한 장학재단이 될 겁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학재단이라...저도 <도착지>를 봤는데요. 정말 영화와 비슷하네요.]
[네.]
앵커의 질문에 하정엽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한록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모두에게 전했다.
[영화를 현실로 만드는 것. 현실을 영화처럼 만드는 것. 그게 우리 CK ENM이 해야하는 일이니까요.]
“...멋있다!”
“오...”
하정엽, 아니 한록의 말에 감탄하는 현차장, 그리고 하대리. 앵커 역시 약간 놀란 얼굴로 하정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록이 그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 이렇게 나오신다면 사용료 받아야겠네요.’
그리고 그 사용료는 하정엽이 곧바로 지급해주었다.
[1년에 200억이요. 상당한 규모네요.]
[네. 특히 이번 연도는 국민 여러분께서 <도착지>에 많은 사랑을 보내주시고, 그래서 장학재단이 만들어진 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조금 더 지원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확대라면 어느정도 말인가요?]
앵커의 질문에 대한 하정엽이 답했다.
[도착지 챌린지에 참여하신 분들께는 총 500억의 장학금을 지원할 겁니다.]
500억.
“...500억?”
“500억이요?”
“챌린지에 500억이요?”
현차장, 유선, 그리고 하대리가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는 사이, 한록은 재빨리 인터넷의 반응을 확인했다.
[실시간 인기 검색어]
[1.도착지챌린지]
[2.도착지]
[3.하정엽]
[4.CK 장학재단]
[5.CK ENM]
인기 검색어를 점령한 <도착지>의 소식들.
“과장님. 지금 반응 엄청납니다.”
“500억 가지고 이 정도 홍보효과라. 이건 회장님이 우리한테 절하셔야 하는 거 아냐? 나 또 승진하나?!”
하정엽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파급효과에 환호성을 지르는 GV팀. 그 사이에서 한록이 여유롭게 답했다.
“차장님. 방금 회장님 비서분이...”
“이제 안 속아!”
“아깝네요.”
현차장을 놀리는 것은 단념한 한록. 한록이 유선에게 물었다.
“지금 챌린지 게시글 수 몇인가요?”
성공하는 챌린지의 첫 번째 요소. 스타의 등장. 예를 들어 이연옥.
그리고 두 번째 요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파격적인 내용. 예를 들어, 지금 하정엽의 500억이란 발언.
이연옥, 그리고 하정엽의 지원으로 두가지 요소가 완료된 상태.
그리고 그 결과는.
“게시글 수...”
[#도착지챌린지]
[검색결과: 게시글 79,200개]
“8만개.”
게시글 수는 방송이 나간지 한시간만에 3만개가 늘어났으며-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챌린지 신기록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케팅의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었다.
*
그렇게 <도착지>에 잔뜩 힘을 실어주고, 자신의 이미지도 챙겨간 하정엽.
한시간이 지났고, 이제 인터뷰가 마무리 되는 타이밍이었다.
[오늘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사실 하정엽 사장님을 언론에서 볼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요. 상당히 달변이시군요.]
앵커의 사탕 발린, 그러나 어느 정도의 진심과 감탄이 섞인 말.
“이제 퇴근하자! 이놈의 회사, 무슨 6시 정각에 집에 보내주는 날이 없네.”
“근데...좋지 않아요?”
“왜?”
“수당 거의 세배는 주잖아요.”
“...그건 그래. 사실, 너무 좋아. 맨날 야근하고 싶어.”
“저도요. 야근 없어져서 월급 줄어들면 눈물 날 것 같아요.”
이미 GV팀의 관심사는 하정엽에게서 떠난지 오래였다.
“이과장. 안 가?”
하지만 한록은 여전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에도 이런 좋은 소식으로 사장님과 함께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GV팀은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하정엽이 대중들 앞에 눈도장을 찍는 첫 날이었다. 그리고 이는 하정엽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날이기도 했다.
그런 하정엽이 과연 ‘또 보자’는 앵커의 말에 뭐라고 답할까.
[제가 좋은 소식을 만들고, 달변인 게 아닙니다. 직원들이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어주고, 많이 준비해 준 겁니다.]
‘좋아. 멋진 사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한록은 하정엽의 안전한 선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하정엽이 그 말을 한 이유. 그리고 정말 하정엽이 원했던 건 안전한 선택이 아니었다.
[특히, 이번 장학재단 설립에는 CK ENM의 직원들이 아주 큰 노력을 해주었습니다. 저보다는 CK ENM의 직원들이 칭찬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정엽이 그렇게 말하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 하정엽과 한록의 눈이 마주쳤다.
한록은 하정엽이 말하는게 자신이란 것을, 앞으로 할 말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란 것을 눈치챘다.
[직원 여러분. 고맙습니다.]
하정엽이, 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하려고 한 말은...
[아주 잘해주셨습니다.]
한록에 대한 칭찬을 전하는 것이었다.
‘...TV에서 칭찬이라. 이런 건 또 처음 겪어보네.’
비록 상대가 한록이란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전국민이 보는 생중계, 그것도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한록에 대한 칭찬을 보낸 하정엽.
‘이런게 사장의 스케일이군.’
생전 처음 겪어보는, 그러나 나쁘지 않은 경험에 한록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앵커가 마무리를 위해 멘트를 시작했다.
[직원분들이 감동하시겠네요. 장학재단이 정말 잘 되길 바라겠습니다.]
[네. 그리고 장학재단만이 아니라, CK ENM의 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올해 CK ENM이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고, 관객분들의 많은 사랑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하정엽 역시 미리 준비한 마지막 멘트를 시작했다.
[맞습니다. KBC에서 방영한 시상식 예선전 역시 큰 사랑을 받았죠.]
[그러니...]
앵커의 말에 하정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답했다.
-사장님. 마지막엔 이렇게 말하셔야 합니다.
한록이 자신에게 했던 말.
-그러면 무조건 CK ENM의 영화가 대상을 타게 될 겁니다.
[저는 시상식 대상 소감으로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CK ENM 사장이 영화계에 보내는 선전포고였다.
*
하정엽의 자신만만한 말로 끝난 인터뷰. 그 말을 보고 현차장이 중얼거렸다.
“나...느낌이 온다.”
“뭐가요?”
“저 말투...저 태도.”
그리고 한록을 보며 말했다.
“이과장 시즌2다!”
*
하정엽의 인터뷰가 나간 후, 도착지챌린지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과장님. 챌린지 게시글 20만개 달성했습니다!”
챌린지 참여 게시글 20만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챌린지 참여수가 10만개였으니, 그 두배에 달하는 기록이었다.
순식간에 기록을 갈아치운 도착지챌린지.
“그런데 20만개에서 게시글이 더 안 늘어나고 있어요.”
다만, 챌린지의 성장에도 한계는 있었다.
“그럴 때가 됐죠. 참여자 수가 너무 늘어났어요. 이러면 <도착지>팀도 댓글을 다 못 달아주고, 장학금에 선정될 거란 기대도 줄어드니까요.”
이제 이연옥과 <도착지>팀의 참여도, 500억 장학금에 선정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어느 정도 시든 상태.
“그럼 이제 뭘 해야 하나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다 하긴 했어요.”
유선의 질문에 한록이 솔직하게 답했다.
“아...이제 챌린지는 끝내고, GV로 넘어가나요?”
“그래야지. 게시글 20만개야. 여기서 더 늘어나는 건 말이 안 돼.”
아쉬운 듯 보이는 유선과, ‘이제 할 만큼 했다’는 현차장.
“아뇨, 끝난 건 아니에요.”
하지만 현차장의 말과는 달리, 이제야말로 진짜 결과가 드러날 때였다.
“우리가 할 건 끝났다며?”
“네. 그건 끝났죠. 이제 우리가 할 건 없어요.”
현차장의 말에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GV팀이' 할 수 있는 건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한록이 준비한 마지막 스텝이자, 챌린지가 성공하는 세 번째 요소.
바로 관객의 자발적 참여였다.
“이젠 노력을 했으니, 결과가 돌아올 때죠.”
한록이 모두에게 말했다.
*
그리고 다음날. 유튜브에 이연옥의 영상 하나가 공개되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연옥입니다. 여러분한테 챌린지에 대해 할 말이 있어서요.]
[처음 챌린지를 시작할 땐, 여러분 모두한테 댓글을 달아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게시글이 너무 많아져서 그건 힘들 것 같아요. 꼭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영상속 이연옥은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제안하고 싶은게 있어요.]
그리고 챌린지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한록이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끝났다’고 말한 이유.
500억. 스타. CK ENM의 사장. 그 모든 요소를 통해, 한록이 이루고 싶었던 챌린지의 진짜 결과.
[여러분.]
[이제 이 할머니가 아니라, 여러분이 서로를 응원해줬으면 좋겠어요.]
바로 챌린지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는 것이었다.
500억. 스타. CK ENM의 사장. 그 모든 게 사라진 뒤에, 오로지 관객들에 의해 새로 시작되는 챌린지.
스타는 내 글에 댓글을 달아주지 않는다. 내가 500억의 주인공 중 한명이 될 거란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어 상대의 게시글에 댓글을 남긴다.
“이게 성공한다면 진짜 '사회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하대리가 이연옥의 영상을 보며 말했다. 이에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관심 때문이 아니라, 정말 영화의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적 현상.
“네. 그렇게 되면 반드시 <도착지>를 이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기대.
‘이게 정말 가능할까?’
그리고 기대와 동시에 드는 궁금증.
하대리 역시 같은 궁금증이 든 것인지 한록에게 말했다.
“어떻게 끝날지 진짜 궁금해요. 솔직히 잘 안 될 것 같기도 해요.”
챌린지의 마지막 이벤트가 어떻게 끝날지 걱정하는 하대리. 그러나 사실은 그 역시 한록과 비슷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근데 잘 끝나면...우리 이름, 마케팅 교과서에 올라갈지도 몰라요.”
하대리의 얼굴에서는 감출 수 없는 설렘이 보이고 있었다.
한록 역시 하대리를 보며 기분 좋은 미래를 상상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하대리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도착지>라는 영화를 사랑했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GV팀의 마케팅에 감탄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이제 결과를 지켜봅시다.”
그 결과가 공개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