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59화 (140/263)

돈의 힘을 보여줄 때였다.

최경준과의 얘기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한록.

인터넷을 확인해보니, 제롬의 회사에 대한 얘기가 크게 보도되고 있었다.

[헐리웃에 떠오른 신성.]

[알렉산드로 로게즈. 제롬 대표와 손을 잡다.]

[스튜디오 B의 대규모 인력 채용.]

[스튜디오 B에는 마케팅의 대부 닉 해리스가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현지의 주목을 받았다.]

대부분 제롬이 알렉산드로와 회사를 설립했으며, 헐리웃에서 이름난 사람들을 채용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당연히 한록의 롤모델이자 마케팅계의 대부 닉 해리스에 대한 기사도 쏟아지고 있었다.

‘앞으로 정말 많은 게 변할 거다.’

한록은 방금 전 최경준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아직은 사장님과 둘이서 논의한 상황이라고 했지. 공식적인 발표는 이번 시상식에서 할 거고.’

‘네, 맞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완전히 통과되기 전까지 엄청난 방해가 있을 거라네.’

최경준은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 차분히 조언을 해주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자네와 사장님의 관계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사이가 되겠지. CK ENM이 자네 손에 들어가기 직전이란 거야. 그러니 다른 본부장들이 큰 반발을 할 거라네. 그 뒤엔 문오석이 있을 거고.’

‘네, 알고 있습니다.’

‘시상식에서 발표만 끝내면 돼. 그 뒤는 신경쓸 게 없을거야. 반응은 꽤 좋을 거고, 회사 입장에서도 이미 발표한 일을 취소할 순 없으니까. 다만 그전까지는 조심해야 하네.’

최경준의 말에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오석이 또 어떤 식으로 자신을 방해하려 할까. 그에 대해선 이미 대충 짐작이 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자네가 이제 문오석을 두려워해야 할 수준은 아니니까.’

그리고.

‘자네 뒤에는 내가 있지 않은가.’

이 역시, 아주 든든한 적임자가 있으니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스튜디오 B의 등장. 앞으로 영화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제롬에 대해 언급하는 기사를 보며, 한록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제 정말 모든 게 준비됐다.

발표만 제대로 끝난다면 한록은 하정엽과 완벽한 팀이 되고, 해외팀 역시 큰 지원을 받게 될 게 분명했다.

이 모든 일의 마지막 관문은 시상식에서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끝난다면...

[스튜디오B로 인해 시작된 영화계의 지각변동. 그에 한국 영화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역시 주요 관전 포인트이다.]

이제 모든 뉴스는 제롬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얘기하게 될 것이었다.

*

이틀 후. 예선전 촬영 때문에 계속 주말 출근을 한 한록이 하루 휴가를 내고 다시 복귀하는 날이었다.

출근을 한 한록에게 유선이 달려와 말했다.

“과장님. 챌린지 게시글 만개 올라왔어요!”

고작 하루 사이에 엄청나게 늘어난 챌린지 게시글. 이틀 전 3천개였던 것에 비해, 게시글은 거의 3배가 늘어나 있었다.

“이렇게 빨리요?”

“이연옥 선생님 혼자서 댓글 달긴 힘드실 것 같아서, <도착지> 제작진분들한테 협조를 요청했거든요. 그게 반응이 좋았어요.”

신이 나서 말하는 유선. 유선이 보여준 화면을 보니, 이연옥만이 아니라 우감독, 그리고 <도착지>의 스텝들이 사람들의 게시글에 친절하게 답변을 달아주고 있었다.

[할머니는 스물 다섯에 데뷔를 했어요. 스물이면 너무 좋은 나이네요.]

[안녕하세요. <도착지>의 우감독입니다. 영화감독이 꿈이라니 반갑네요. 궁금한게 있으면 메일로 질문 주세요.]

누구나 <도착지> 팀의 댓글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건 그냥 의무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정말 이 사람을 응원하기 때문에. 내 영화를 보고 꿈을 꾸게 된 사람들의 꿈이 이뤄지길 바라기 때문에 하는 말들.

[감사합니다, 메일 보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도착지>팀의 진심이 느껴지는 댓글에 사람들은 크게 감동하고 있었다.

‘내가 빠져도 되나 불안했는데, 내 생각보다 더 잘되고 있었군.’

어제 휴가를 내고 하루 종일 잠만 잤던 한록. 그동안 챌린지 운영은 유선에게 맡겨 두었는데, 유선은 기대 이상으로 챌린지를 잘 진행하고 있었다.

“과장님. 챌린지를 보니까, <도착지> 영화 티켓을 인증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이것도 또다른 챌린지로 만들면 어떨까요? 영화 티켓을 인증해준 사람 중에 몇 명을 추첨해서 관람권을 증정하는 걸로요. 그럼 관객수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네, 좋아요. 그렇게 해요.”

거기에, <도착지>에 도움이 될만한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만들어온 유선. 한록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유선에게 말했다.

“이대로 가면 3만 개는 언제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유명한 아이돌의 신곡 챌린지가 10만명을 달성했으니, 3만명 정도면 ‘이 정도면 유명한 챌린지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었다.

10억을 풀 만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한록. 유선이 한록에게 답했다.

“아마 5일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수면>과의 라이벌 GV까지 이제 2주가 남은 시점. 촬영이 들어가기 전, 10억 지원을 발표하고 도착지챌린지의 영향력을 최대로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록이 유선의 말을 듣고 답했다.

“시간이 너무 딱 맞네요.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아요.”

“음...”

한록의 말에 유선이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머뭇거리다가 한록에게 답했다.

“티켓 챌린지가 빨리 통과되면...그럼 시간을 좀 당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챌린지끼리 서로 홍보가 될 테니까요. 결재 빨리 받고, 바이럴 업체들한테 바로 새로 연락 돌리고요. 그럼 3일까지 가능할 것 같아요.”

‘시간이 촉박하다’라는 말에 머릿속으로 최선의 루트를 짜고 있는 듯한 유선. 유선은 어떻게든 한록의 계획을 완벽하게 만들고 싶은 게 분명했다.

‘여유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무리해야 하는 스케쥴은 아닌데.’

그렇게 생각한 한록이 유선에게 말했다.

“유선씨. 5일도 부족한 건 아니에요.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무리하지 말아요.”

“아뇨, 전 괜찮아요. 절대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유선이 늘 그렇듯 씩씩하게 말했다. 그리고 한록이 다시 한 번 만류하려 할 때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결재가 빨리 들어가야 해서요. 혹시 바로 결재가 가능할까요?”

유선의 말에 한록이 살짝 놀라 유선을 바라보았다.

평소처럼 아주 의욕적이고 씩씩한 유선의 모습. 그러나 유선의 모습은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한록을 위해서 어떻게든 해보겠다. 어떻게든 힘이 되어보겠다. 그런게 아니라, 조금 더...

“결재만 빨리 해주시면 제가 책임지고 진행해볼게요.”

자기 일에 자신감과 책임감을 가지는 모습이었다.

유선의 모습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결재 올리면 바로 사장님께 말씀드릴게요.”

“네! 그럼 3일 안에 3만명 가능해요.”

“아까도 말했지만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알았죠?”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제 특기가 SNS인 거 아시잖아요.”

“그럼요, 알죠.”

한록의 말에 유선이 답했다. 그리고 유선이 자리를 떠나기 직전. 한록이 유선에게 답했다.

“유선씨. 잘할거라고 믿어요.”

“네! 맡겨주세요.”

그러자 유선이 아주 익숙한 말을 했다.

“저 김유선입니다.”

그리고 씩씩하게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유선의 자신감 넘치는, 그리고 믿음을 주는 답.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차장이 놀란 얼굴로 한록에게 말했다.

“허, 참. 저 대사 이과장 대사 아냐?”

그리고 한록도 생각하던 말을 건넸다.

“부하 참 잘 키웠다.”

현차장의 말에 한록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중요한 순간에 뒤를 맡길 수 있는 후배가 된 유선. 그리고 자신을 믿어주는 하정엽까지.

참 많은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달라지고, 성장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네, 그렇죠.”

아주 뿌듯한 경험이었다.

*

그리고 이틀 후.

점심시간이 끝나자, 유선이 비장한 얼굴로 한록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과장님. 챌린지 4만명 달성했습니다.”

미리 약속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모아온 유선.

“수고 많았어요.”

유선은 자신의 몫을, 아니 그 이상을 해줬다.

그렇다면 이제 한록의 차례였다.

<이채영님 안녕하세요. CK ENM 마케팅부서 이한록 과장입니다. 올려주신 게시글 잘 봤습니다. 혹시 통화 가능하신가요?>

“안녕하세요, 인스타그램으로 연락드린 이한록 과장이라고 합니다.”

[어...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이채영님께 지원을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요. 필요하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현차장, 유선과 하대리. 그리고 ‘이게 대체 어떻게 되려나’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정부장까지.

그들 사이에 앉은 한록이 말했다.

“학원비요. 네.”

촬영까지 남은 시간은 10일.

이제...

“전액 지원 가능합니다.”

돈의 힘을 보여줄 때였다.

*

“안녕하세요, CK ENM 마케팅 부서 이한록 과장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CK ENM 김유선입니다. 인스타그램으로 연락드렸어요. 홍현준님 맞으시죠?”

“안녕하세요. CK ENM 현주훈 차장입니다. 통화 가능하신가요?”

도착지 챌린지에 시작된 CK의 장학금 지원.

대부분 대학 등록금이나 학원비, 혹은 생계를 위한 지원금이었다. 그러다보니 사회의 반응 역시 아주 긍정적이었다.

[CK가 나섰다...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

[도착지 챌린지가 불러온 나비효과]

[CK는 52명의 신청자에게 지원을 약속했으며, 그 액수는 4억인 것으로 공개되었다.]

[현재 CK는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은 상황이다.]

도착지 챌린지와 CK에 대해 쏟아지는 기사들.

“회장님. KBC 뉴스 나인에서 도착지 챌린지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리 없는 예선전의 방송사 KBC.

그리고...

“회장님.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이 순간만을 기다린 하정엽.

*

‘네 인지도를 높여라’던 자신의 요구. 하정엽은 그걸 불과 한달 만에 달성해 왔다.

아들의 무시무시한 성장에 하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녀와라.”

하태준의 흔쾌한 허락. 하태준이 이미 예선전과 도착지. 그리고 CK ENM의 성과에 크게 만족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하정엽은 이에 멈출 생각이 없었다.

“네가 한 일이란 걸 말하고 와. 그리고 시상식도 홍보하고 오고. 이제 한국에서 CK의 영화를 넘을 곳은 없다는 걸 제대로 보여줘.”

하태준의 말에 하정엽은 한록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상을 만들겠다면서 고작 10억이라. 예산이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15억까지 지원해주겠습니다.’

‘예산을 더 주겠다’던 하정엽의 제안. 그에 대해 한록은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도착지> 한 영화에 쓰기에는 너무 큰 금액입니다. CK ENM이 가지고 있는 영화가 <도착지>만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필요가 없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사장님.’

예산을 더 주겠다는 말에 반대하는 회사원. 그의 꿍꿍이는, 바로...

‘CK ENM이 아니라 CK그룹 차원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5억, 10억. 그 정도 수준이 필요한게 아니다.

‘CK 그룹 전체가 이 챌린지를 지원한다면 말입니다.’

CK그룹 전체의 지원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

“회장님.”

하정엽이 하태준에게 말했다.

“이 일은 이한록 과장이 진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한록 과장에게 충분한 보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는거냐’는 표정의 하태준. 그에 하정엽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렇다면 회장님이 주실 보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돌한 말에 하태준이 할 말을 잃고 하정엽을 바라보았다.

‘5억, 10억. 그 정도를 바라는 게 아니다.’

‘CK 그룹 전체의 지원을 내놓아라.’

한록의 말을 떠올리며, 하정엽이 하태준에게 말했다.

“회장님. CK가 고작 10억 가지고 유세를 떠는 그림을 원하십니까. 회장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이제 판을 키워보겠습니다.”

‘어디 한번 해봐라’는 듯한 눈빛으로 하정엽을 바라보는 하태준. 하정엽이 그 눈빛에 말을 이었다.

“CK ENM이 최고의 영화회사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그리고 CK 그룹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몇십억 정도면 아주 싼 값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성공할 거란 보장은?”

“저. 그리고 이한록 과장.”

하태준의 마지막 질문.

“더 증거가 필요합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하정엽의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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