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57화 (138/263)

총 소요금액: 10억

이번 시상식에서 ‘누구도 내지 못한 성과’를 가져오겠다고 말하는 한록. 한록에게 하정엽이 물었다.

“이미 생각해둔 게 있나 보군요. 말해보세요.”

그러자 한록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번 연말 시상식에서 우리 CK의 영화가 대상을 타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말입니다.”

한록의 말에 하정엽이 바로 답했다.

“CK의 영화가 상을 타야 한다. 그게 <도착지>라고 말하지는 않는군요.”

“<도착지>는 제 목표지, 사장님의 목표는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하정엽의 입장에서는, <도착지>와 <수면> 중 어느 영화가 대상을 타든 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둘 모두 CK의 영화였으니까. 그리고 한록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당신의 이런 점을 좋아하지.”

무모할 정도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추진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언제나 냉정한 판단이 깔려 있다.

다시 한번 한록의 강점을 깨달은 하정엽. 하정엽이 조금 더 온화해진 얼굴로 한록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대상’을 만들 겁니까.”

“거기엔 사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말해보세요.”

“<도착지>와 <수면>에 예산을 10억씩 추가해주셨으면 합니다.”

<도착지>와 <수면> 모두 예선전 때문에 이미 예산이 최대치로 들어간 상황. 한록은 거기서 20억을 더 쓰라고 하정엽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액수만 들어도 겁을 먹을 규모다.’

한록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20억이면 한록에게는 큰 돈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래요.”

CK ENM의 후계자에게는 더욱 그랬다.

‘역시.’

순간 달아오른 기분을 겨우 억누른 한록. 한록이 이번엔 두 번째로 자신이 준비한 것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지> 외에도 시상식에서 발표할 청사진이 필요합니다. 회장님께 앞으로 CK ENM이 어떤 길을 갈 건지, 미국지사가 아닌 해외 팀이 어떤 길을 걸을지 비전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한록은 회귀 전의 일을 떠올렸다.

과거 한록은 유니버셜 스튜디오, 지브리 스튜디오와 비슷한 한국형 영화 테마파크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한록이 가장 통과시키고 싶었던 것.

“사장님. 오로지 CK만 만들 수 있는 영화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영화관이었다.

한록이 가장 좋아하는 마케팅 방식은 바로 영화와 똑같은 현장을 만들고, 그걸 관객에게 공유하는 것이었다.

“<삼일의 삶>, 그리고 <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상영 당시 영화 속 현장을 똑같이 재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바닷가에서 직접 <삼일의 삶>을 목격했던 하정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일의 삶>, <퀸>처럼 영화 속 현장과 똑같이 꾸며진 곳에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다면. 그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른 파급력을 가지게 될 겁니다.”

확신에 찬 한록의 답. 하정엽 역시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영화마다 장소를 섭외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모든 영화가 바다에서, 그리고 락페스티벌에서 상영될 순 없다는 것.

한록 역시 고민하던 문제였고, 회귀 직전 마지막에야 결론을 내린 문제였다. 한록이 하정엽에게 답했다.

“그래서 영화관을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한록이 바라는 영화관의 모습.

“단 하나의 영화만을 상영하는 영화관.”

한 번에 단 하나의 영화만을 상영하는.

“그리고 상영 기간 동안, 영화관을 해당 영화에 맞게 꾸미는 겁니다.”

조명. 복도. 티켓부스. 매점. 인테리어 소품. 그 모든 게 단 하나의 영화만을 위해 꾸며진 영화관이었다.

“테마파크를 그대로 영화관에 옮겨오자는 말이군요.”

하정엽이 한록의 의도를 바로 파악해서 답했다.

“네, 맞습니다.”

“한 번에 단 하나의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라.”

한록의 말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는 하정엽.

사실, 한록의 의견은 회사 입장에서는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제안이었다.

-한 영화관에서 일정 기간 동안 하나의 영화만 상영한다.

그렇게 된다면 여러 영화를 상영할 때보다 영화관에 찾아오는 관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영화가 바뀔 때마다 인테리어를 전부 갈아엎어야 하니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었다.

하지만 한록의 제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영화관을 미국에도 만들어야 합니다.”

“영화관을 대여해주는 대신, 인테리어 비용은 헐리웃 제작사들에게 감당하게 만들자는 뜻입니까.”

“아뇨. 미국에 건설하는 영화관 역시 비용은 전부 CK가 부담해야 합니다.”

하정엽의 말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 상영관에서는 CK의 영화만 상영하게 될 테니까요.”

미국에 만드는 영화관. 그러나 오로지 CK의 영화만 상영하겠다.

한록의 말뜻은, 그러니까...

“헐리웃과 대놓고 싸우겠다는 거군요.”

헐리웃에게 선전포고를 하자는 것이었다.

‘미국 지사처럼 헐리웃의 입맛에 맞추진 않겠다.’

‘너희들 사이에 끼워달라고 하진 않겠다.’

‘우리는 우리의 영화를 만들고.’

‘우리 방식으로 승부하겠다.’

헐리웃을 따라가는 미국 지사가 아니라, ‘한국 영화’ 그리고 ‘CK의 정체성’을 드러내자는 한록의 제안.

지금 한록이 말하는 것은 하태준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영화계 모두가 한번쯤은 주목할만한 행보였다.

그리고 그렇기에 쉽지 않은 제안이기도 했다.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에도 똑같이 상영관을 만든다. 미국 변두리에 만들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을테니, 뉴욕이나 헐리웃에 만들어야겠죠. 그렇게 된다면 최소 몇천억이 들어갈 겁니다.”

수십억을 넘어 이제 수천억대의 예산이 들어가게 될 한록의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다면 회장님께선 미국 진출의 꿈을 접으실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CK의 미국 진출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건 회사 전체의 운명을 건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하정엽이 한록에게 오너의 입장에서 분석한 프로젝트의 리스크를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록은 알고 있었다. ‘위험이 크다.’ 그 말은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더 큰 보상이 돌아온다는 말이기도 했다.

“사장님. 이 상영관에서 처음으로 상영되는 영화는 <삼일의 삶>이 될 겁니다.”

한록은 하정엽에게 영화관의 구체적인 디자인을 말하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세워진 영화관.

그곳의 1층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어디선가 들리는 파도소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바닥에 비춰지는 파도의 모양.

그리고 상영관에 들어가 의자에 앉는 순간, 보이는...

벽면 전체에 걸린 스크린으로 보여지는 바다, 석양.

그리고 바다의 냄새.

과거 부산영화제에서 느꼈던 감각들을 떠올리는 하정엽. 추억에 잠긴 하정엽에게 한록이 말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오로지 영화관을 방문하기 위해 한국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길 겁니다.”

하정엽은 한록의 말이 과장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있었다. 자신은 이미 <삼일의 삶>과 부산 영화제를 통해 그 경험을 겪어 본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한록의 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에 잠긴 하정엽에게 한록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사장님.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을 해볼 때입니다.”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 회귀 전 자신도 추진하려 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던 일.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꿈꿔오던.

“영화를 현실로 만들고, 삶을 영화처럼 만드는 것.”

그리고...

“사장님과 제가 아니라면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이뤄볼 수 있을 것 같은 꿈.

*

한동안 말이 없던 하정엽. 하정엽이 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나한테 처음으로 요청한 게 수천억대 규모의 프로젝트라.”

하정엽은 오늘 처음으로 한록에게 ‘내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그에 대한 한록의 반응은 CK ENM의 최대 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해 달란 것이었다.

그리고, 하정엽의 답변은...

“내 사람한테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아주 명쾌한 허락이었다.

*

하정엽의 허락. 그리고, 한록의 손목에 살짝 감긴 그의 실.

‘이제 예전과는 다르다.’

돈 한푼에 전전긍긍하던 때와는 다르게, 자신의 말 한마디에 수천억대의 예산이 오가고, 프로젝트의 행보가 결정된다.

순간 한록의 손에 맺히는 식은땀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아찔한 감각. 한록은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았다. 바로.

‘앞으로, 그 누구도, 내 말에 반대하지 못할 거다.’

통쾌함이었다.

*

하정엽에게 <도착지>의 예산 추가. 그리고 영화관 건설을 허가받은 한록.

그러나 아이디어를 내긴 했지만, 영화관 건설을 추진하는 건 한록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록은 이 일의 ‘적임자’와, 그를 어떻게 활용해야할지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집중해야할 건 <도착지>다.’

그렇다면 지금 한록에게 남은 건 <도착지>의 GV와 시상식.

다음날 아침, 한록은 출근 직후 곧바로 GV팀의 회의를 소집했다.

“이제 마지막 단계입니다. 도착지가 수면을 이길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수면은 완성도, 파급력, 메시지, 그 모든게 완벽한 영화였다. 영화 자체로만 본다면 올해, 아니 최근 5년간의 영화 중 수면을 이길 영화는 없었다.

“우리는 도착지에 영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한록이 제안한 것은 ‘영화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자’는 것.

“<도착지>와 이연옥 선생님을 보고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화. 그리고 그 후.

영화의 목적지이자, 도착지인...

“우리는 이 부분을 GV와 시상식에서 보여줘야 합니다.”

‘관객들’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회현상을 만들자’고 한 거구만.”

“네, 맞습니다.”

영화 내적으로는 <도착지>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완벽한 영화. 그리고 관객의 삶을 변화시키는 영화.

과연 더 훌륭한 영화는 무엇인가.

이번 GV에서 그런 철학의 대립을 보여주겠다는 한록의 전략.

“좋아. <도착지>만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란 점도 알겠고, 이 소재 자체가 사람들의 흥미를 끌 것 같기도 해. 그런데 문제가... 이걸 어떻게 사회현상으로 만들고, 어떻게 GV에서 우리가 만든 결과를 가시화할 건데?”

현차장의 논리적인 지적에 한록이 답했다.

“최대리님께 <수면>의 GV 얘기를 들었습니다. <수면>은 영화에 인용된 철학, 예술의 전문가들을 GV에 초청할 거라고 합니다.”

“어, 그렇지. 라인업 장난 아니더라.”

“그럼 저희도 게스트를 데려오면 됩니다.”

“게스트? 누구?”

지금 한록이 짜고 있는 구도는 <수면>과 <도착지>의 대립. 그리고 영화에 대한 철학의 대립이었다.

천재가 만든 엄청난 작품 <수면>. 그만큼 전문가들을 통해 자신의 완성도를 증명하겠다는 서감독. 그리고...

“저희는 <도착지>로 인해 변한 사람을 GV에 데려올 겁니다.”

관객들의 영화, <도착지>.

“그래서 오늘부터 우리가 할 건...”

그걸 위한 첫 단계.

“챌린지입니다.”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 위한 시도가 시작되었다.

*

챌린지.

주로 SNS상에서 태그 하나를 만들어서 지시된 행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있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기부와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챌린지였고, 사람들은 이에 크게 반응했다.

유명인들이 긴장한 얼굴로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들을 지목하는 엔딩까지. 챌린지는 영상에 참여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가진 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는 마케팅이었고, 그래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챌린지...그거 좋네요. 사람들 참여를 끄는 제일 쉬운 방법이에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유선이 한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챌린지는 사람들이 단순히 <도착지>를 관람하는 것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관련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GV전까지 <도착지> 챌린지를 바이럴 할 겁니다. 내용은 <도착지>를 보고 자신이 꾸게 된 새로운 꿈을 SNS에 종이로 써서 공유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챌린지가 파급력을 가지긴 어려울 거예요. 챌린지는 보통 유명인이 진행하거나, 내용이 파격적이어야 하거든요. 얼음물 뒤집어 쓰기 처럼요.”

“네. 맞아요. 챌린지가 성공하려면 세가지 요소가 필요해요. 첫 번째는 유명인. 두 번째는 파격적인 내용. 그리고 세 번째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관심.”

“음...그걸 지금부터 만들어가야겠네요. 일단 챌린지를 홍보해줄 사람부터 섭외해야...”

“아뇨.”

유선의 말에 한록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답했다.

“우리한테는 이미 유명인이 있잖아요.”

한록의 자신있는 말에 GV팀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명인. 어쩌면 이번주,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대스타.

“이연옥 선생님!”

<도착지>의 여주인공이었다.

*

이틀 후, 바로 시작된 <도착지>의 챌린지.

[이렇게, 종이에 자기 꿈을 적어서 올려주세요. 그리고 그걸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건지도요.]

<도착지>의 출연진들이 CK의 유튜브에 나와서 도착지 챌린지를 설명했고, 사람들은 그에 대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도착지챌린지. 재수성공! 올해는 반드시 인서울하겠습니다!]

[#도착지챌린지 항상 발레를 배워보고 싶었는데 미뤄두기만 했어요. 이번에 학원을 신청했습니다.]

[#도착지챌린지. 할머니 대신 올림^_^ 울할매 검정고시 도전한다!]

SNS에 하나씩 올라오는 도착지 챌린지.

“지금 인스타그램 게시물 몇 개예요?”

“340개요!”

도착지 챌린지의 반응은 유명한 아이돌, 혹은 가수가 진행하는 챌린지들에 비해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네. 잘 되고 있네요.”

그러나 GV팀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학생의 꿈을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할머니도 계속 지켜볼게요. -이연옥.]

그들에게는 스타가 있었으니까.

*

도착지 챌린지 시작 3일 후. 이연옥이 사람들이 올린 도착지 챌린지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선씨. 지금 게시물 몇 개예요?”

“어...”

인스타그램을 확인한 유선이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3000개요.”

‘스타’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과 하루만에 10배나 커진 도착지 챌린지. 그렇다면, 이제-

“좋아요. 다음 단계로 넘어갑시다.”

챌린지 성공의 두 번째 조건. ‘파격적인 내용’을 보여줄 때였다.

*

그날 밤, 하정엽에게 보고서 하나가 올라왔다.

[<도착지>예산 사용안]

[용도: 챌린지 보상]

[사용 방법: 도착지챌린지에 참여한 사람 중 10명을 선정하여 상금을 수여.]

[총 소요금액:]

[1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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