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55화 (136/263)

사장님. 약속 드리겠습니다.

“대단한 걸 준비하셨나보군요.”

[그렇지.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야.]

제롬의 말에 한록이 웃으며 답했다.

“뭘 말해도 실망할텐데요. CK에선 미국 지사의 헤드를 제안받았습니다. 스튜디오B에서는 헤드를 줄 생각이 없지 않습니까.”

[헤드라. 역시 그쪽도 뺏기지 않으려 하는군.]

한록의 말에 수긍하는 제롬. 제롬은 한록이 파트장 자리를 제안 받았다는 것에 놀라지 않은 듯한 목소리였다.

[한이라면 그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제안 자체가 너무 늦었군요.]

한록이 충분히 그럴만한 실력이 되는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한국 최고의 영화 회사에서 제안한 파트장 자리. 그러나 제롬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한은 미국 활동이 처음이니 헤드를 줄 순 없습니다. 다만, 그 외는 모두 맞춰줄 수 있습니다. 페이는 3억부터 시작하고, 인센티브는 별도. 회사에서 아파트를 제공할 겁니다. 그리고 영화 제작에 참여할 권한도 주겠습니다.]

“CK에서도 이미 제안한 일입니다.”

[나를 고작 CK에 비교하지마.]

‘고작 CK’. 재벌기업을 상대로, 제롬의 자신감과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CK는 한국 최고의 대기업 중 하나인데요.”

[물론 그렇겠지.]

제롬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CK엔 닉 해리스가 없잖아.]

닉 해리스. 영화 업계에서 모두가 노리는 인물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마케팅 회사의 사장. 업계 모두가 존경하는 영화 마케터.

제롬은 지금 그 사람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롬의 말에 한록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닉 해리스가 합류합니까?”

[하하. 한이라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습니다.]

제롬이 한록의 답을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곧 회사를 정리하고 스튜디오 B에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내일 기사가 나갈겁니다.]

‘닉 해리스가 제롬에게 합류한다니.’

닉 해리스. 18살에 뉴욕 필름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업계 최고의 마케터가 된 사람.

한록도 대학에서 그의 마케팅을 보고 공부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모든 영화 마케터의 목표라고 할 수 있지.’

한록 역시 ‘언젠가 닉 해리스와 함께 일을 해 볼 수 있을까’라고 상상하던 사람. 그런데 지금 그 사람의 회사에 들어갈 기회가 온 것이었다.

[닉이 마케팅 헤드를 맡을 겁니다. 그러니 한에게 헤드를 줄 순 없죠. 다만, 한은 닉의 바로 아래에서 일을 하게 될 겁니다.]

그것도 바로 곁에서.

‘엄청난 기회다.’

-한록을 위해 준비한,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엄청난 제안.

제롬이 전화를 건 직후 했던 말이 맞았다. 한록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닉 해리스의 곁에서 배울 기회. 그의 생각, 발상, 모든 노하우를 알고, 그의 뒤를 이어 세계 최고의 마케터가 될 수 있는 기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기회 앞에서 설득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마음이 바뀌면 연락주길 바랍니다.]

한록의 말에 제롬이 웃으며 답했다.

[곧 보게 되겠군요.]

*

전화를 끊은 한록은 생각에 잠겼다.

헐리웃 진출. 거기에 팀장 자리를 제외하고는, CK에서 제안하는 모든 조건을 맞춰주겠다.

그리고 닉 해리스의 등장까지.

한록은 지금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제롬에게 가고 싶을 정도였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몇 개 있었다.

한록은 제롬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제작에 참여할 권한을 주겠다고 하셨죠. 그 제작에 한국 영화도 포함되는 겁니까.

[한. 나는 한국 영화 중 좋은 영화가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 일이지, 우리가 할 일은 아닙니다.]

-업무에 있어서 제 자율권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건 닉과 얘기할 문제입니다. 참고로, 닉은 자기 일에 간섭하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바로 제롬의 회사로 넘어간다면 지금처럼 원하는 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건은 비슷하다.’

CK와 제롬이 제시한 조건은 비슷했다. 누구나 들으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연봉과 혜택.

-그리고 헐리웃 최고가 될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주겠다는 제롬.

-반면, 재벌 기업의 지사장 자리를 주겠다는 하정엽.

‘어디로 갈 것이냐.’

한참을 고민하던 한록에게 하정엽의 문자가 한통 도착했다.

[내일 1시에 다시 찾아오세요.]

문자는 하정엽이 결단을 내렸단 게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한록은 하정엽의 요청에 미국 지사의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올려보낸 상황이었다.

과거 CK는 미국 지사를 위해 현지 직원을 대거 고용했고, 영화 사업본부의 유능한 인재들을 모두 미국으로 보내버렸다.

결과는 미국 지사는 물론이요, 한창 힘을 받고 있던 한국 본사까지 주요 인재들을 잃어 3년 정도 크게 위기를 겪게 되었다.

한록은 그때의 기억을 살려 보고서를 작성했다.

[미국 지사의 설립 목표는 ‘헐리웃 영화를 만드는 것’이며, CK ENM을 완벽한 헐리웃 영화회사로 성장시키는 것임. 그러나 해당 목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성공하기가 어려움.]

[이미 <삼일의 삶>, <부산 열차>등 한국적 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 반대로, 해외 시장을 타겟으로 제작한 영화는 큰 성과를 발휘하지 못했음.]

[현재 CK ENM은 미국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미국 지사에 힘을 주고, 현지 직원을 고용하여 미국시장을 노리겠다는 전략은 잘못 되었음.]

[지금 CK ENM이 집중해야할 것은 기존의 훌륭한 한국 영화를 해외에서 성공시키는 것이지, ‘미국 회사’로 변하는 것이 아님.]

한록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 지사 설립이 아니라, 국내에서 해외 전담 팀을 설립하고 국내 영화를 헐리웃에서 성공시키는 것에 집중해야함.]

[CK ENM을 ‘미국 회사’로 만들겠다는 것은 욕심에 불과함.]

회장과 사장이 내린 결정에 신랄하게 비판을 한 한록.

‘어떤 식으로 나올까.’

크게 화를 낼까. 그것도 아니면 저번처럼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라고 할까.

하정엽의 반응을 상상하던 한록이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내일 얘기를 들어보고 결정하자.’

하정엽은 자신의 말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CK는 과연 제롬의 스튜디오B보다 한록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은 내일 하정엽의 제안에 달려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

그리고 다음날.

[올라오세요.]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하정엽이 한록을 호출했다.

‘하정엽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서 거처를 정한다.’

한록은 어젯밤 이후로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그건 하정엽 역시 마찬가지인 듯 했다.

“보고서가 상당히 신랄하더군요.”

“그렇게 쓰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네. 잘했습니다.”

한록의 보고서에 대해 생각하는 하정엽. 하정엽이 잠시후 말했다.

“이한록 과장이 지적하는 부분은 나 역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작 과장이 사장이 내린 결정에 어마어마한 비판을 했다. 그러나 하정엽은 한록의 말을 받아들였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하정엽의 모습에 한록이 살짝 주먹을 쥐었다.

하정엽에게 자신이 제안했던 것. 미국 지사가 아닌 해외팀을 강화하는 구조로의 조직개편이 이뤄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궁극적 목표까지도.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회장님이 미국 지사에 꽤나 애착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정엽은 미국 지사에 대한 결정을 완전히 바꾼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정엽이 헐리웃 진출에 대한 하태준의 강렬한 욕망을 얘기했다.

“그러니 당분간은 회장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사장님.”

“기다리세요.”

한록이 입을 열자, 하정엽이 한록의 말을 잘랐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의견에 휘둘릴 생각은 없습니다. 2년 정도 미국 지사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세요. 회장님에게 미국 지사는 가망이 없단걸 보여줘야 합니다. 그 뒤에 이한록 과장의 말처럼 해외팀을 강화할 겁니다.”

하태준과 한록의 의견을 절충한 하정엽의 제안.

하정엽은 한록이 이 제안에 만족하지 못할 걸 알았는지, 한록을 설득할 다음 단계를 제시했다.

하정엽의 제안은, 한마디로-

“그렇게 한다면 미국 지사의 지분을 주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입사 3년차 과장. 아무리 미국 지사라고 해도, 임원도 아닌 지사장 자리. 그런 한록에게 지분을 주겠다.

한록을 영화사업본부, 아니, CK ENM과 CK그룹의 책임자 중 하나로 대우해주겠다는 뜻이었다.

CK ENM의 본부장을 비롯해 모든 임원들보다 한록을 우대해주겠다는 제안.

이건 하정엽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제안인 동시에, 많은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기도 했다. 한록에게 지분이 돌아간다는 걸 알게 되면 여태 하정엽에게 충성을 바친 다른 임원들이 크게 반발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한록 역시 그걸 알고 있는 상황.

“죄송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떤 제안을 하셔도 저는 한국에 남을 겁니다.”

그러나 고작 그 정도 제안으로 한록을 잡아둘 순 없었다.

한록의 말에 하정엽이 눈을 찌푸렸다.

“스튜디오B에서 스카웃 제안을 받은 것,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이한록 과장을 최대한 배려했습니다. 이 이상 더 조건을 맞춰줄 순 없습니다.”

“그럼 원하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한록의 말에 숨은 뜻은 분명했다.

'네 맘대로 해라.'

‘나도 내 맘대로 하겠다’. 는 뜻이었다.

“여전히 건방지군요.”

하정엽은 한록의 말에 살짝 짜증이 난 듯 답했다. 하지만 한록은 하정엽이 절대 자신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계속 같은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미국 지사는 가망이 없으니, 한국에 남겠습니다. 그리고 해외팀을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한록의 말에 하정엽은 한동안 답이 없었다.

아무리 변했다 하더라도, 하정엽은 재벌 2세였고, 동시에 이 회사에서 가장 권위적인 사람이었다. 한록이 자신의 제안을 끝까지 거절한다는 것 자체에 매우 기분이 상한 하정엽.

하정엽의 원래 성격대로라면, 이 자리에서 당장 한록을 해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한국에서 하고 싶은게 명확하다는 거겠죠.”

문제는 그 상대가 이한록이라는 것.

그리고 한록의 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미국 지사가 아니라 해외팀의 팀장을 맡기는 걸로 고려해보겠습니다. 다만, 미국 지사에도 협조하는 걸로 알고 있으세요. 조건은 지사장과 똑같이 맞춰줄 겁니다. 지분은 본사 지분을 주겠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하정엽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한록의 조건을 모두 받아주되, 회장이 지켜보고 있으니 적당히 구색을 맞추라는 정도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한록은 결단을 내렸다.

‘하정엽은 내 말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진짜 원하는 걸 말할때다.

그렇게 판단한 한록이 허리를 펴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분보다는 다른 걸 원합니다.”

“어떤 겁니까.”

“미국 지사에 협업하는 건 상부의 지시가 아니라, 가능성이 있는 영화일때만 하고 싶습니다. 또한 해외팀의 업무에 완전한 자율권을 원합니다. 누구도 제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태 한록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윗사람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한록의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느라 보낸 쓸데없는 시간들. 그리고 그들 때문에 하지 못했던 수많은 마케팅들.

“이제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한록이 가장 바라는 일이었다.

한록의 말에 하정엽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팀장이 된다면, 앞으로 이한록 과장의 말에 반대할 사람은 있을 수 없을텐데요.”

“아뇨, 있습니다.”

“누구 말입니까.”

그 말에 한록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정엽이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누굴 말하는지 알겠네요.”

아주...

“날 말하고 있군.”

차가운 목소리였다.

*

“지금 나한테 도전하는 건가.”

재벌가 둘째로 자란 하정엽의 가장 큰 콤플렉스이자, 하정엽이란 사람 자체를 대변하는 욕망. 그건 바로 강렬한 지배욕이었다. 그런데 한록은 지금 그걸 건드리고 있었다.

한록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네. 맞습니다.”

하정엽이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롬의 스튜디오B에서 스카웃 제안이 왔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스튜디오B는 차후 세계 최고의 영화 회사가 될 겁니다. 그리고 미국 지사는 절대 스튜디오B를 이기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그걸로 날 협박하겠다고.”

“아뇨.”

“그러면. 제롬의 제안이 왔으니, 이제 한국은 볼 일이 없다는 건가.”

엄청나게 화가 난 하정엽.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대체 원하는게 뭐야.”

그리고...

“우리가 헐리웃을 꺾어버리자는 말입니다.”

하정엽의 분노를 노리고 있는 한록.

어젯밤, 제롬의 제안을 듣고 한록이 한 생각이 있었다.

타임스퀘어에 걸린 <부산 열차>의 광고. 전세계 사람들이 자신이 담당한 영화의 광고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건 한록에게도 생전 처음 겪는 황홀한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한록은 다짐했었다.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오겠다.’

“만약 제가 스튜디오B에 들어간다면, 제가 맡는 모든 영화가 타임스퀘어에 오르게 될 겁니다.”

한록이 단호하게 말했다. 한록의 말은 잘난척도, 허세도 아니었다. 제롬. 스튜디오B. 그리고 닉 해리스와 함께하는 영화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영화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타임스퀘어에 걸린 자신의 영화들.

한 영화의 광고가 끝나면 두 번째 영화가 나온다. 그리고 세 번째 영화가 나온다. 모두 자신의 영화들이다. 타임스퀘어에 모인 모두가, 아니 전세계의 모두가 그 광고들을 바라본다.

상상만해도 짜릿한 광경들이자, 지금 당장이라도 스튜디오 B와, 제롬과, 닉 해리스와 일하고 싶게 만드는 상상들.

“저는 스튜디오 B에 갈 생각도, 닉 해리스와 함께 일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저는 그 사람들을 이기고 싶습니다.”

승부욕.

한록은 지금 하정엽이 왜 분노했는지 알고 있었다. 지배욕. 경쟁심. 승부욕.

‘내가 이 회사의 최고가 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건 한록 역시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할 생각은 없다. 제2의 닉 해리스가 될 생각은 없다. 한록은 그의 제자가 되는 게 아니라, 그를 이기고 싶었다.

“사장님. 약속 드리겠습니다. CK ENM은 5년 후 세계 최고의 영화회사가 될겁니다.”

한록은 자신이 그리고 있는 꿈을 하정엽에게 보여주었다.

“CK ENM의 영화가 전부 타임스퀘어에 걸리게 될 거고,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영화에 대해 얘기할 겁니다.”

한록이 목표로 하는 것. 시상식 이후 한록이 나아갈 길.

“이제 영화의 고장은 헐리웃이 아니라 CK ENM이 될 거고...”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그리고 이한록과 하정엽이라는 이름은 영화사에 남게 될 겁니다.”

영화계 전체를 선물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

“여전히 주제 파악을 못하는군.”

하정엽이 한록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는 ck의 회장이 될 거야. 고작 과장 따위가 이런 제안을 할 사람이 아니란 거지.”

권위적이고 오만하고, 세상의 권력을 다 가진 것처럼 구는 사람. 하정엽은 <퀸> 때와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한록은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이 많이 변화했음을.

“그러려면 우리 회사가 CK 그룹 중 최고의 회사가 되어야 하지. 최고의 직원. 최고의 결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미래가 필요하고.”

“알고 있습니다.”

“아니, 당신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그리고...

“나는 당신이 필요해.”

자신의 제안에 매료될 거란 사실을.

*

하정엽의 말에 한록이 물었다.

“그 말은, 제 조건을 맞춰주시겠다는 겁니까.”

미국지사가 아닌 해외팀 팀장으로의 발령. 지분.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율권.

한록이 제시한 조건을 생각하던 하정엽이 반대로 물었다.

“그럼 나도 조건을 걸겠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약속한 걸 지키세요. 5년 안에 우리 회사를 최고의 영화회사로 만들고,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우리 회사의 영화에 대해 얘기하게 만드세요.”

하정엽의 말투는 분노에서 벗어나 다시 차가운 존댓말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한록은 그 속에서 아주 뚜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리고 날 이곳의 회장으로 만들어.”

목표에 대한 강한 열망이었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정엽의 말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렬한 목표와, 그걸 위해 모든 걸 감수하겠다는 하정엽의 태도. 한록 자신과 아주 닮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물론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하정엽이란 사람이...

“회장님.”

아주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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