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즐기는 일.
-그게 뭐가 나쁩니까?
배과장의 난입.
[무대난입? 뭐임?]
-누군가한테는 <수면>보다 좋은 영화였을 겁니다.
백감독의 말,
[잘한다!! 눌러버려요ㅠㅠ]
-좋아요.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서감독의 멋진 인정.
[헐]
[헐헐]
[와 방금 쩌네요]
[개멋있음]
-내가 옥자한테 이런 말을 하면 안 됐는데.
그리고 이연옥의 깨달음까지.
[할머니이..ㅠㅠ]
2화의 후반부는 폭풍처럼 지나갔다. 어찌나 포인트가 많은지, 장면 하나가 나올 때마다 글이 수천 개가 올라와 제대로 반응을 체크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이었다.
“유선씨. 반응 어땠어요?”
“죄송해요, 글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 정리를 못했어요...!”
“괜찮아요.”
유선의 말에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의 글이 올라왔다는 것 자제가 이미 긍정적인 반응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댓글 제일 많이 달린 글은 저장해놨어요. 이거예요.”
그리고 유선이 보내준 글의 제목은...
[이번 화는 레전드네요.(82)]
2화의 명백한 성공을 알리고 있었다.
*
[이번 화는 레전드네요.(82)]
2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한 문장으로 축약한 어느 글. 그 글에 달린 댓글들 역시 예선전에 대한 극찬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엔 영화로 어떻게 오디션을 하나 했는데 재밌네요. 관심 없던 영화에도 관심이 생깁니다. 거기에 내용도 너무 좋고...내년에도 또 보고 싶네요.]
보기만 해도 뿌듯해지는 글에 한록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글에서 가장 많은 추천수를 받은 댓글은 바로 서감독에 대한 장문의 칭찬이었다.
[저는 서감독이란 사람이 참 멋있었네요. 그냥 거만한 게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점이 좋았어요. 특히 실력이 뒷받침한다는 점이 가장-(더보기)]
‘그래. 최대리님이 고생하셨지.’
댓글을 읽고, 최대리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 한록. 한록이 바로 최대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생하셨습니다.
서감독이라는 강력한 캐릭터를 통해 2화의 뼈대를 만들어온 최대리.
최대리가 없었으면 서감독, 배과장, 그리고 백감독과 이연옥으로 이어지는 모든 스토리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댓글 확인해 보세요. 다들 서감독님을 좋아하네요.
한록은 2화의 일등공신인 최대리를 위해 장문의 댓글을 캡쳐 해서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최대리의 답장이 도착했고, 답장을 확인한 한록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수밖에 없죠.
-제가 쓴 거니까요^^ㅋㅋ
“...하!”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했을 생각.
‘이 사람도 진짜 대단하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CK 사람들처럼 인터넷 반응을 지켜보는 송PD.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재밌어 너무너무너무]
[일주일 또 어떻게 기다려ㅠ]
이번 예선전은 올 한해 KBC에서 방영했던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 반응이 좋았다.
‘...지금 우리가 이한록한테 진 거지?’
그 결과에 송PD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방송계의 엘리트.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KBC의 직원들.
‘거기서 어떻게 무대 난입을 시키냐고. 진짜, 꾼이야, 꾼.’
그런데 정작 올해의 승자는 생전 처음으로 방송을 만들어본 한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간지폭풍]
[와 진짜 너무 멋있어요!!]
[이건 싸가지 없는 게 아니라 프라이드인거지 ㅇㅇ]
특히 사람들은 서감독에 대해 엄청나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감독은 올해 TV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 될 거야. 최대리라고 했나? 그 인간도 꾼이다.’
그리고 서감독 다음으로 많이 언급되는 사람은...
[오늘 이연옥씨 얘기가 인상 깊네요. 배우의 삶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백감독도 아닌 이연옥이였다.
끝없이 올라오는 게시글. 그리고 그곳에 간간히 섞여있는 이연옥에 대한 얘기들.
그 반응들에 ‘오디션의 여왕’ 송PD의 직감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이건...’
시작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서감독. 그리고 이제 슬슬 인기가 생기고 있는, 아직 자기가 주인공인 에피소드가 방영되지 않은 사람.
이건 바로-
‘도전자의 등장이다.’
진짜 주인공의 등장이었다.
그때 송PD에게 걸려온 전화. 한록이었다.
[PD님. 무리해서 내용을 바꾸라고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PD님도 이제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번 촬영 때 말한 것처럼 앞으로 전체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얘기하는 한록.
그러나 그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지금 한록은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한록에게서 느껴지는 것. 그리고 송PD도 느끼고 있는 것.
[올해의 진짜 주인공이 누가 될 것 같으십니까.]
‘놓치면 안 된다.’
그건 한 분야 최고의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직감이었다.
“네. 제가 국장님과 얘기해보겠습니다.”
송PD가 말했다.
*
그로부터 두 시간 뒤. 송PD가 한록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5화 내용 바꿨어요. 과장님이 말한 것처럼 GV로 갑니다. 대신, 3화 시청률이 18% 이상일 것. 그 이하면 그냥 원래대로 <수면> 특집으로 가고, 겸사겸사 저도 가만 안 두겠다고 하시네요.]
송PD는 아마 예능국장과 피 튀기는 협상을 한 모양이었다.
“18%라...가능합니다.”
송PD에게 약속한 한록. 한록의 말에 송PD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요즘 15%이상 나오는 예능 없는 거 알고 계신 거죠?]
최근 예능은 아무리 인기 프로그램이라더라도 OTT와 재방송 등으로 10% 초반대 시청률을 기록하는 상황.
예선전 2화도 엄청난 반응을 불러왔지만, 경쟁사인 MBS 예능의 활약으로 시청률은 송PD의 예상보다 적은 14%가 나왔다.
[18%면, 각 방송국마다 제일 인기 많은 예능이나 찍을 수 있는 수준이에요. 지금 반응 정도면 절대 안 나와요. 국장님도 안 될 거 같아서 제안을 받아들이신 거고요.]
송PD가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한록은 송PD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단순히 자기에게 압박을 주거나, 자기를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란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연옥 선생님 유튜브 컨텐츠 계속 올려주세요.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고요. 서감독님도 최대한 많이 올려주시고. 그리고 3화는 이연옥 선생님 위주로 갈 거지만, 그래도 서감독님 분량도 있을 겁니다. 서감독님만큼 화제성을 가진 사람이 없으니까요.]
오디션의 여왕. 시청률에 미친 PD.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바로...
[올해의 주인공이요? 좋아요. 한 번 해봅시다.]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자신과 한록은 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요. 전 시청률 20% 예상합니다.”
[...]
20%. 최근 1년간 KBC에서 나온 적 없는 시청률.
방송계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들이 18%도 무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방송을 기획하는 한록은 그것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약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전혀 허세로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나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일을 제안하는. 그러나 항상 그걸 성공시키는 사람.
언제나 결과로 보여주는 한록. 그래서 그런걸까. 한록의 말을 듣다보면 어쩐지...
[좋아요. 저랑도 약속했습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뭐든 해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고는 했다.
*
“18%라. 그게 가능한 건가?”
한록의 보고를 받은 최경준이 턱을 괴고 말했다. 최근 15%를 넘는 예능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의문이 든 것이다.
“네. 가능합니다.”
“어려울 것 같으면 얘기해. 사장님께 말씀드리면 프로그램 내용 정도야 바꿀 수 있지.”
최경준은 불가능하단 말 대신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예선전은 하정엽이 직접 관리하는 프로그램. 재계 13위 후계자의 지시라면 프로그램 내용을 바꾸는 것 정도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한록 역시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록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러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저 혼자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록은 문오석이 눈에 불을 켜고 영화사업본부의 흠집을 찾으려는 상황에서 괜히 빌미를 주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한록의 말에 최경준이 다시 한 번 물었다.
“하지만 18%는 쉬운 일이 아니야. 이 바닥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인 서감독이 나온 화가 14%인 상황이지. 이건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 모두 우리 프로그램을 봐도 그 한계가 14%란 뜻이야. 그런데 자네는 어디서 새로운 시청자를 데려오겠다는 건가.”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우리 프로그램을 보게 할 겁니다.”
“어떻게?”
한록의 당당한 대답에 최경준이 물었다.
“본부장님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무슨...”
그리고 잠시 후 미소를 짓는 최경준.
“아, 그래. 우리한텐 아주 좋은 카드가 있지.”
꽤나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래도 그 소재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타겟층이 한정되어있는 이번 예선전.
하지만 곧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 예선전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올 것이었다.
바로...
“문오석 본부장이 우릴 도와주겠지.”
문오석이 터뜨릴 <실수>에 대한 기사.
“예선전에 대한 어마어마한 비판이 쏟아질 거네. 아마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관심을 받겠지.”
문오석은 <실수>를 통해 예선전을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한록은 그렇게 생긴 사람들의 부정적인 관심을 예선전의 홍보에 이용할 것이었다.
‘뛰어난 사람에게 위기는 언제나 기회가 된다.’
최경준을 이 자리로 만들어 준 방법이자, 최경준의 지론이라고 할 수 있는 말.
그리고 적의 술수를 자신의 기회로 바꿀 줄 아는 한록.
최경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문을 보며 말했다.
“곧 온 세상 사람들이 예선전에 대해 얘기하게 되겠군.”
곧 문오석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문오석은 자신의 실수로 자멸할 것이다.
“난 자네가 이런 식으로 나올 때가 가장 마음에 들어.”
최경준이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로부터 3일. GV팀은 예선전을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이연옥 선생님. CK 김유선입니다. 혹시 오늘 유튜브 촬영 가능하세요?
이연옥의 유튜브 촬영.
[과장님. 예선전 직전에 <도착지> 광고 편성하겠습니다.]
<도착지>의 2차 광고.
“이과장. 이연옥 선생님 아드님 촬영 끝났어.”
3화와 유튜브에 올라갈 이연옥과 가족의 이야기까지.
GV팀이 무언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인터넷에서 예선전에 대한 언급은 크게 늘어났다.
‘예선전이 성공했다.’
이제 회사 모두가 아는 사실.
어느 날은 하정엽이 GV팀에게 금일봉을 돌리러 직접 마케팅부서에 행차하기까지 했다.
“이과장!”
회사 어디를 가든 한록에게 말을 걸어보려는 사람이 늘어났고, 개인적으로 식사 자리를 가져보려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었다.
-이한록이 시청률 18% 약속했대.
-그 정도면 그냥 회사 때려 치고 PD로 취직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러게. 18%면 거의 올해 최고기록일텐데.
-아무리 그 이한록이래도 무리야.
-글쎄. 그 이한록인데 무릴까.
그리고 한록이 KBC에 엄청난 시청률을 약속했다는 소문까지.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한록이 생각했다.
CK 전체. 아니, 영화계와 연예계 전체가 CK 예선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아마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CK 예선전은 지금이 시청률의 전성기인 상황.
그렇다면 이제는...
‘때가 됐군.’
특별한 일이 일어날 시간이었다.
*
그리고 예선전 촬영 하루 전.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 하나.
[시청률만 높으면 땡? CK의 <실수>.]
드디어 문오석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CK는 ‘시상식 예선전’이란 명목으로 영화에 경쟁과 유머를 담고 있다. 그리고 CK의 이런 잘못된 선택은 의료사고를 다룬 영화 <실수> 역시 벗어날 수 없었다.]
[CK 내부 직원에 따르면, <실수>의 제작진과 피해자측은 <실수>가 예능에서 소비되는 것에 큰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CK측에 미리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CK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이는 CK가 영화계에서 가진 입지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입막음 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지금 가장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 그 프로그램에서 일어난 갑질 사건.
[헐 이거 뭐임 CK 예선전 얘기]
[근데 고발 영화가 예능에 나오는 게 뭐가 어때서? 홍보하면 좋지 않음?]
[글 좀 제대로 읽어보세요. 제작진과 피해자측은 원치 않는데 CK가 강압적으로 요구한 거라고 합니다.]
[헐...]
[불매 각이다]
<실수>에 대한 기사로 예선전에 대한 인터넷의 반응이 순식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영화 업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 이거 뭐야?”
당황한 CK 사람들.
“그래. 그 놈도 완벽하진 않다니까.”
신이 난 샬롯테의 직원들.
그리고...
[이제 이한록도 끝이군.]
문오석.
*
네티즌. 예선전을 뺏긴 방송국들. CK의 라이벌인 샬롯테. 그리고 CK에 부정적인 언론사까지.
예선전을 실패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두 <실수>로부터 시작된 논쟁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영화계 공룡의 ‘갑질’]
[CK에서 일어난 내부고발]
[영화는 ‘예능’이 될 수 있는가?]
거의 초단위로 인터넷에 퍼지는 기사들. 이건 KBC, 그리고 CK ENM 만으로는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화제성이었으며-
[과장님. <실수> 제작진 인터뷰 편집 끝났어요. 영상 보내드릴게요.]
바로 한록이 기다려오던 일이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예선전에 대해 얘기하겠군.
최경준의 말처럼, 이제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마저 CK 예선전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네,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잘 나왔습니까?”
[네. 음, 어느 정도냐면...]
[여론 뒤집을 수 있을 정도?]
그리고 한록은 프로그램, 인터뷰, 후일담까지 모든 걸 완벽히 준비해놓은 상황.
그렇다면-
“네. 그럼 반응 좀 더 끌다가 공개합시다.”
[바로 공개 안하고요? 왜요?]
“시청률 20% 채우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남은 건 파도를 즐기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