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46화 (240/263)

더 재밌는 장면이 나올 수 있겠다.

“과장님. 예고편이라뇨?”

“지금부터 이연옥 선생님 인터뷰 들어갈 겁니다. 괜찮게 나올 테니까 꼭 2차 예고편에 넣어주세요.”

오늘은 <도착지>가 아니라 <수면>의 촬영이 있는 날이다. 그런데도 한록은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송PD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직 끝이 아니구나.’

오늘 배과장을 무대 위로 올려보내며 예선전의 재미를 극대화한 한록.

한록의 선택으로 이 예선전은 단순히 ‘자극적이고 재밌는’ 예선전이 아니라 서감독의 감독으로서의 자세, 그리고 백감독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재미와 감동. 모든 컨텐츠가 바라는 두가지 장점을 한 번의 선택으로 가져온 한록.

그러나 한록의 계획은 여기서 끝이 아닌 모양이었다.

‘더 재밌는 장면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한 송PD가 카메라맨에게 소리쳤다.

“감독님, 여기요! 저기 줌인해서 잡아주세요.”

무대 위의 서감독. 그리고 촬영장 구석에서 대화를 나누는 한록과 이연옥.

‘자, 이한록씨.’

그 둘을 보며 송PD가 생각했다.

‘서감독보다 더 멋있는 장면 하나 뽑아야겠죠?‘

“선생님.”

송PD의 기대속에서, 한록이 이연옥에게 말을 걸었다.

*

“으응, 한록씨.”

“인터뷰 좀 따겠습니다.”

“그래, 그러자.”

감독들로부터 살짝 떨어진 좌석에 앉은 한록, 그리고 이연옥. 한록이 이연옥에게 물었다.

“선생님이랑 백감독님이 친분이 좀 있으시죠.”

“응, 그렇지. 백감독이 참 사람이 좋아. 사근사근하고, 씩씩하고. 꼭 우리 둘째 손자 같어.”

“그럼 오늘 GV는 감상이 좀 남다르시겠어요.”

“그렇지.”

“어떻게 보셨어요?”

한록의 말에 이연옥이 말을 멈췄다. 그녀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멋있었지. 백감독도, 서감독도.”

아마 이 방송을 본 모두가 느꼈을 감정이었다.

“그거 말고 다른 생각도 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두 감독을 지켜보는 이연옥의 눈빛은 단순히 ‘멋있다’는 마음 이상을 담고 있었다.

‘무슨 대답을 끌어내려는 거지?’

송PD가 한록을 보며 생각했다. 프로그램 전체를 봐야하는 자신은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이연옥. 그러나 한록은 자신이 이연옥에게서 발견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옛날 생각이 좀 났어.”

그리고 이연옥이 드디어 자신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명이 길었잖아. 아니, 아직도 나는 배우라고 할 수 없지.”

식당, 시장, 마지막은 동네 카페까지. 여러 일을 하며 단역배우로 활동해온 이연옥.

“나도 처음엔 주인공이 되고 싶었어.”

그러나 그녀도 분명 서감독 같은 미래를 꿈꿨을 것이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를 차지하는 사람 말이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걸 나보다 한참 어린 감독님들이 하고 있네. 멋있는 사람들이야.”

“이제부터 하면 되잖아요. <도착지>로 여우주연상 수상이요.”

“계속 그 얘길 하네.”

한록의 말에 이연옥이 못말리겠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늙었지.”

“나이가 뭐가 중요합니까.”

“그래...나이가 뭐가 중요하겠니. 문제는 나지.”

이연옥이 아주 솔직한 답을 꺼냈다.

”난 내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었거든.”

이연옥이 이제는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 이유. 그건 역시 한록이 짐작했던 대로였다.

“이 나이가 되면 말이야. 성공한 경험보다 실패한 일이 더 많아져요. 그게 사람을 참 작아지게 만들어.”

기나긴 세월을 추억하는 이연옥의 목소리.

회귀 후 한록이 많이 들어왔던 인생의 무게에 대한 얘기였다. 그러나 그 깊이는 현차장, 우감독, 윤감독,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깊었다.

수많은 직업을 거치면서도 계속 연기생활을 해온 이연옥. 한록은 감히 그녀의 삶을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느꼈다.

아무리 많은 일을 겪었어도 한록은 고작 서른다섯, 이제는 서른에 불과한 청년이었으니까.

‘선생님의 마음을 바꿀 방법을 생각해보자.’

사실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였다.

이연옥에게 변화를 주기 위해선 반드시 풀어야하는 숙제. 그러나 이건 한록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숙제이기도 했다.

한록이 이연옥에게 말했다.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겠네요.”

“이제 알겠어? 또 <도착지>로 상 받아야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한록의 말에 이연옥이 작게 웃었다. 한록이 귀엽다는 듯한 태도였다.

“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렇지.”

‘어, 뭐야. 왜 갑자기 말이 바뀌는 거예요?’

마치 이연옥에게 설득당한 듯한 한록의 태도. 그 모습에 송PD가 초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래서 설득이 가능하겠어요?’

그러나 한록은 자신이 이연옥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선생님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한록이 했던 생각.

한록은 이연옥을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

“그쵸. 불가능한 꿈은 꾸지 않는 게 좋죠.”

“한록씨는 아직 그런 말 할 나이가 아니지. 나같은 할머니가 그렇단 거야.”

“그런데 선생님.”

이연옥을 설득할 사람은...

“옥자씨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김옥자.

이연옥처럼 70이 넘은 할머니.

그러나 바리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꾸는 할머니.

바로...

“우리 주인공 말이에요.”

<도착지>의 주인공이자 이연옥이 연기한 캐릭터였다.

“어머...”

한록의 말에 이연옥이 말을 멈췄다.

김옥자는 이연옥이 연기했던 캐릭터였다.

김옥자는 60년동안 식당일을 해서 자식 다섯을 키운 사람이었다. 7명의 손주가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 삶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가져왔던 꿈을 이루기 위해 70살이 되는 해에 커피를 공부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많다고 아무 카페에서도 써주지 않아도 계속 면접을 본 사람이었다.

김옥자는 불가능하단 말은 믿지 않는 사람이었고, 목표를 위해 두려움을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연옥 자신이 아주 사랑한 캐릭터였다.

“옥자는...”

그런데 그 캐릭터를 연기한 자신은.

‘나이가 많다.’

‘욕심이 많다.’

‘불가능한 얘기를 한다.’

‘괜한 꿈을 꾼다.’

사람들이 김옥자에게 한 말들. 김옥자가 싸우던 말들.

그 사람들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옥자씨는 그런 말은 하지 않으시겠죠.”

한록의 말에 흔들리는 이연옥의 눈동자. 그리고-

‘이 인간 봐라.’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지켜보는 송PD.

“그래...내가 못할 말을 했네. 그러면 안됐어. 내가...관객들 다 보는데서 이런 말 하면 안 됐어.”

‘당신 관객들한테는 이 영화가 최고라고 말해야죠.’

오늘 백감독에게 감독으로서의 태도에 대해 말하던 서감독. 이연옥은 그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서감독은 감독이라면 언제나 자신의 영화가 최고라 믿어야 한다고 말했고, 그건 단순히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 말이 의미하는 건 자기 영화에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그래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란 말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옥자를 연기하면서, 옥자의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자신은 옥자의 말을 믿지 못했다.

‘나는 나이가 많고. 무명 배우고. 인기가 없으니까 불가능 할 거야.’란 생각들.

“내가 옥자한테 이런 말을 하면 안 됐는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이연옥.

‘됐다. 거의 다 왔어.’

숨죽이며 대본을 움켜쥔 송PD.

“그러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세요.”

이연옥에게 조용히 묻는 한록.

세명의 카메라맨. 작가. 송PD. 그리고 한록. 총 6명의 사람이 조용히 이연옥의 말을 기다렸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이연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이연옥이 김옥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도착지>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 관객도 많이 들고, 상도 많이 받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도 상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꿈이 이뤄질 거라고 믿겠다는 말.

그 말에 한록이 답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수도 있겠네요.”

“그렇겠지. 그래도 나는 이뤄질 거라 믿어.”

-설령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옥자라면 그렇게 말할 거니까.”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진 않겠다는 다짐.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연옥의 말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그렇게 종료된 이연옥의 인터뷰.

이연옥의 모습은 처음 인터뷰를 할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송PD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한록씨, 당신은 진짜 타짜야!’

두려움에 떨던 노년의 배우. 그녀가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를 위해서 변화하고자 한다.

‘이 사람 봐라. 오디션에서 영화를 찍고 있잖아?’

오디션 프로그램이 사랑받는 이유이자,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 바로 성장과 변화. 그리고 자신의 꿈에 대한 헌신.

한록은 오늘 그 변화를 두 번이나 이끌어냈다.

‘신인 감독. 그리고 할머니 배우가 우승 후보 서감독의 말에 각성한다. 그림 최고다.’

송PD의 머릿속에는 앞으로 완성될 프로그램의 모습과 사람들의 반응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한 건 송PD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곁에 있던 작가가 상기된 표정으로 송PD에게 속삭였다.

“PD님. 이과장님 말처럼 이거 2차 예고편으로 나가면 될 것 같아요.”

“좋아요. 서감독님 대사 나가고, 그 뒤에 이거 나오는 걸로. 그렇게 잡아요.”

프로그램의 진행방향을 짜는 송PD와 작가.

“우리 주인공은 서감독님입니다.”

송PD가 아주 단호하게 작가에게 말했다.

오늘 이연옥은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스토리의 중심은 바로 서감독이었다. 사람들은 오늘의 이야기를 아주 사랑할게 분명했고, 그 사랑은 서감독에게로 이어질 것이었다.

‘역시.’

그걸 미리 짐작하고 있던 한록. 한록이 송PD에게 다가가 말했다.

“PD님. 2화는 서감독님 중심으로 편집하실 겁니까?”

“네, 그렇죠.”

“3화부터는요?”

“그것도 서감독님 반응 위주로 나갈 거예요. 아, 3화에서 이연옥 선생님이랑 서감독님 대화 한번 딸 수 있을까요? 이연옥 선생님이 서감독님한테 고마워하는 걸로요.”

3화는 <도착지>와 다른 영화들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서감독 위주로 서사를 짜겠다고 말하는 송PD.

송PD는 아예 서감독을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를 생각중인 모양이었다.

송PD에게 한록이 말했다.

“3화는 <도착지>에 대한 화잖아요. 3화의 주인공은 이연옥 선생님이었으면 합니다. 3화에는 <도착지>의 게스트들도 섭외했으면 하고요.”

하지만 한록은 송PD와 반대로 이 예선전의 주인공이 이연옥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야지 앞으로의 GV와 시상식에서 <도착지>에게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한록의 말에 송PD가 단호하게 말했다.

“과장님. 이 장면이 정말 잘 나오긴 했는데, 그래도 그건 무리에요. 이번 화 나가면 사람들은 서감독님을 엄청 좋아할 거예요. 그럼 우리는 거기에 맞춰줘야죠.”

송PD가 오디션의 여왕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인기있을 만한 요소와 사람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캐치했고, 그걸 그대로 방송에 반영했다.

“오디션에서 중요한 거. 그건 매력적인 출연자예요. 우리는 무조건 서감독님으로 밀고 나가야해요. <도착지> 게스트 섭외는 없어요. 남은 3화랑 4화 전부 <수면> 위주로 갑니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정말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는 듯한 송PD. 그러나 한록은 전혀 당황한 표정이 아니었다. 한록이 송PD에게 말했다.

“그럼 이연옥 선생님이 서감독님보다 인기가 많아지면 되는 겁니까?”

“...네?”

“오디션에서 중요한 건 매력적인 출연자라면서요. 그러면 이연옥 선생님이 서감독님보다 매력적으로 나오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한록의 말에 송PD가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안 될 건 없죠.”

그 말에 한록이 잠시 앞으로의 일정을 가늠해보더니 송PD에게 말했다.

“다음 촬영까지 일주일 남았죠.”

“그렇죠.”

“그럼 그 안에 이연옥 선생님이 주인공이 될 만한 내용을 가져오겠습니다.”

자신있게 말하는 한록. 한록의 말에 송PD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좋아요.”

송PD는 아까 반대하던 것과는 달리 아주 흔쾌히 한록의 말에 동의했다.

‘이한록씨. 그게 말이 됩니까. 오늘 이렇게 멋진 장면이 나왔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한록의 말이 이뤄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럼 5일만 기다려주세요.”

그러나 한록은 정말 자신이 있는 표정이었다.

*

그리고 이틀 후.

한록의 요청에 의해 이연옥과 한록의 인터뷰가 유튜브에 선공개되었다.

[자기 캐릭터를 위해서 변화하려는 배우라...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네요.]

[저번 인터뷰에서 상 받는 건 욕심이라고 하실 때 가슴이 아팠는데ㅠㅠㅠ이거 보니까 눈물나요ㅠㅠㅠ]

[이연옥 배우를 아니 김옥자씨를 응원합니다]

[너무 멋진 인터븁니다]

자기가 연기한 캐릭터에게 당당해지기 위해 변화하고자 하는 배우.

이번 인터뷰는 사람들의 낭만과 감성을 제대로 자극했고, 인터뷰 영상은 한록의 예상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이번 인터뷰 영상의 댓글수는 100여개. 예전에 <도착지>팀의 인터뷰 영상의 댓글수가 20개였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서감독의 인기에는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

‘그것 봐요, 이한록씨. 이 인터뷰만으로 주인공이 될 순 없다니까요.’

그리고 송PD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다음날부터 CK의 유튜브에는 <도착지>의 새로운 영상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뭐지?’

한록이 보내온 링크를 확인한 송PD가 링크에 들어가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한록이 보내온 것은 <도착지>의 2차 광고.

그리고...

[안녕하세요. 배우 이연옥이라고 합니다.]

이연옥의 영상이었다.

‘아, 이런 걸 준비했구나.’

무심코 재생을 누르려던 송PD. 그러나 그녀는 무언가를 보고 손가락을 멈췄다.

‘...어?’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댓글 320개?”

서감독이 나오는 그 어느 영상보다 많은 댓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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