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40화 (234/263)

촬영 시작합니다!

한록의 소집으로 모인 회의.

명목은 일주일 남은 촬영을 위해 마지막 점검을 하는 것이지만, 한록의 진짜 목적은 달랐다.

‘여기서 문오석의 사람을 찾는다.’

바로 예선전을 방해하려는 인물들을 찾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정부장님.’

한록은 정부장에게 연결된 두 개의 실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실은 자신에게 연결되어 있었고, 두 번째 실은 최경준에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현차장님.’

현차장의 실 역시 한록, 그리고 현차장의 입사동기인 장과장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현차장과 정부장처럼 영화사업본부 안에서 얽히고 섥혀야할 실. 그러나 이 중에선 문오석에게 연결된 실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채과장. 그리고 박차장이 문오석쪽 사람이었다. 분명 이 두 명에서 끝이 아닐 거야.’

그렇게 판단한 한록이 회의 중 미끼를 던졌다.

“장과장님. <실수>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실수>에 대한 말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록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실수>. 그걸 통해 한록을 견제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제작진과 얘기 끝났습니다. 다들 어쩔 수 없지만 참여하겠다고 하네요.”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나 보네요.”

“네. 서감독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선전 자체가 자극적인 예능으로 보여지고 있으니까요.”

“만약 관련된 사람 중 마음을 바꾸는 사람이 있고, 언론에 제보라도 나가면...그럼 큰 문제가 생기겠군요.”

“네. 그래서 <실수>를 빼야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하지만 한록은 자신을 견제하는 모든 사람들이 문오석의 사람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중에서 가장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

그리고...

“다른 분들 의견은 어떻습니까.”

“제가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이제 와서 영화 하나를 제외할 순 없습니다.”

<실수>를 놓치는 걸 원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문오석의 첩자다.’

“네. 과장님. 말씀해보세요.”

한록이 판권부의 권과장을 보며 말했다.

*

권과장은 <관상가>를 맡은 사람이었고, <관상가>는 <스캔들>, 그리고 <실수>와 2주차의 라이벌이었다.

“이미 기획도 다 끝났고, 2주 차에 <관상가>와 <실수>, <스캔들>이 붙기로 결정된 거 아닙니까. 여기서 <실수>가 빠지면 2주차 기획을 아예 다시 짜야 합니다. 그건 너무 빠듯해요.”

<관상가>의 담당자로서 얘기하는 권과장. 권과장의 실은 위협적으로 한록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권과장. 수상하다.’

“차장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렵긴 하지.”

권과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판권부 배차장. 배차장의 실은 권과장과 달리 평온했다.

‘배차장은 아니야.’

“저도 지금 <실수>를 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낫죠.”

이번에 발언한 것은 해외팀 유과장. 그러나 유과장의 실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유과장도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오석과 관련되지 않더라도 <실수>를 빼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사람들의 말만으로 그들의 속내를 파악하는 건 어려운 상황.

하지만 한록에게는 누구에게도 없는 무기가 있었다. 바로 한록에게만 보이는 사람들의 실이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염대리.’

손을 들고 발언하는 염대리의 실. 염대리의 실 중 하나는 위협적으로 한록의 목을 감고 있었다.

“관계자들한테 촬영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권과장님 말씀처럼요.”

권과장에게로 이어져 있었다.

끈끈하게 얽힌 서로 다른 부서 사람들의 실. 그리고 자신을 위협하는 실까지.

‘이 두 사람이다.’

한록의 함정이 드디어 목표를 낚아챘다.

*

회의는 2시간 정도가 지나 끝이 났다. 한록이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일단 <실수>는 계획 변경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권과장님. 끝나고 잠깐 얘기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권과장. 그리고 염대리.’

한록은 마음 속으로 의심스러운 사람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박차장. 채과장. 그런데 두 명이나 더 있다고?’

의아한 것은, 고작 서른명이 전부인 이 회의에 문오석의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짐작으로는 안 된다. 끝까지 확인을 해봐야 해.’

그렇게 한록은 권과장과 단 둘이 회의실로 향했다.

“<실수>가 제외될 때를 대비해서, <관상가>와 <스캔들>만 붙는 컨텐츠도 준비를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한록이 다시 한번 권과장에게 미끼를 던졌다.

“<실수>랑 <스캔들>하고 붙을 때랑, <스캔들>하고만 붙을 때. 둘다 준비하란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촬영 일주일 남은 시점에 그건 어려워요. 그냥 아까 회의에 말한 것처럼 <실수>를 가져갑시다.”

한록의 말에 권과장이 반박했다. 권과장의 태도만 봐서는 이게 정말 일이 버거워서 그런 건지, 혹은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건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과장님. 지금 문오석 본부장님이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정면돌파였다.

‘문오석’이란 이름이 들리자 권과장의 실이 바로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권과장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본부장님과 문오석 본부장님이 오랜 라이벌 아니십니까.”

“네.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최경준. 그리고 문오석. 둘의 이름이 나오자 권과장의 실이 바닥을 타고 창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연결될 곳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ENM의 10층부터 20층까지를 쓰는 영화사업본부. 그리고 1층부터 10층을 사용하는 음악사업본부.

‘과연 이 실이 어디로 이어질 것인가.’

권과장의 실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그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었다.

“영화사업본부와 음악사업본부의 승부는 이번 연말 시상식에서 결정이 날 겁니다. 그러니...”

권과장의 충성심을 묻는 질문.

“저희가 본부장님이 승리하시게끔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한록은 권과장의 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권과장의 실은...

“본부장님이 승리하셔야죠.”

한록의 목을 한번 조르더니 음악사업본부로 향했다.

예선전. 최경준. 그리고 자기 자신을 노리는 영화사업본부의 배신자.

‘이 사람이군.’

한록이 눈앞의 권과장을 보며 생각했다.

*

권과장이 나간 후, 한록은 혼자 회의실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권과장이 문오석의 사람이라니. 의외군.’

회귀 전, 최경준의 오른팔까지 올라갔던 권과장. 거기에 염대리 역시 최경준 덕분에 빠른 승진을 한 사람이었다.

‘채과장. 박차장. 권과장. 염대리. 그리고 이 회의 밖에도 문오석의 사람이 있겠지.’

영화사업본부에서 문오석의 영향은 한록의 생각보다 훨씬 큰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너무나 명백했다.

‘...나 때문이겠네.’

회사 내부 최고의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한록을 향한 그들의 위협적인 실.

‘내가 있는 이상 승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야.’

-최경준이 이한록을 아주 총애하고 있다. 심지어 후계자로 생각하는 것 같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 사실이 알려진 시점부터 자신에게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단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문오석이라는 다음 줄을 잡았다.

‘아마 목표는...최경준이 물러나면 그 자리를 잡기 위해서.’

부하들이 최경준을 떠나고 있다. 어쩌면 최경준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일수도 있는 상황.

‘이번 일이 끝나면 대거 물갈이가 있겠군.’

그러나 한록은 최경준이 여기서 끝날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문오석의 계획은 전부 알고 있다.’

오늘 일을 통해 문오석의 첩자가 누구인지, 언제, 어떻게 공격을 해 올 것인지 모두 파악했다.

‘당하고 있을 순 없지.’

그렇다면 이제 방어를 할 때.

“현차장님. 잠깐 통화 가능하십니까?”

그리고 이걸 기회로 만들 때였다.

*

“권과장이 그쪽 사람이라.”

회의실에 도착한 현차장이 한록의 얘기를 듣더니 생각에 잠겼다. 현차장은 한록에게 음악사업본부와의 히스토리를 모두 전해들은 후였다.

잠시 후 현차장이 입을 열었다.

“채과장은 몰라도, 권과장은 충격적인데. 이과장 오기 전까지 본부장님한테 많이 도움 받았거든.”

“그게 문제일 겁니다. 제가 나타났고, 본부장님의 마음이 달라졌다는 거요.”

“음...그렇겠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누가 방해꾼인지도 찾았고, 본부장님 말씀처럼 <실수>를 빼고 가는 게 제일 안전하긴 하잖아.”

현차장의 말에 한록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실수>가 아닌 다른 부분을 공격할 겁니다. 저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을요.”

“그럼 <실수>를 가져가는 척 하다가 촬영 직전에 빼는 건?”

이 역시 한록이 생각했던 방법이었다.

“그건 확실히 안전한 방법이죠.”

현차장이 내놓은 것은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 예선전을 무난히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문오석 본부장에 대한 공격이 되진 못합니다.”

그러나 한록은 그냥 문오석의 방해를 피하는 것 정도로 일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일단 사건이 터져야 해요. 예선전에 위기가 오고, 사장님이 이걸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게 문오석 본부장의 짓이란 일을 아셔야 해요.”

그냥 첩자 몇 명을 제거하는 걸로 끝낼순 없다. 회사에서 문오석의 라인을 대대적으로 날려야 한다.

그러려면 하정엽에게 이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리는 게 아주 중요했다.

그래서 한록은 <실수>에 논란이 나는 걸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논란이 생기면 뒷처리는 어떻게 하려고? 이런건 사후대처를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어. 한번 터지면 끝인거 이과장도 알잖아.”

“네. 그래서 사후대처가 아니라 미리 손을 써둘 생각입니다.”

“어떤 식으로?”

“<실수>는 방송에는 나오되, 경쟁 구도에서 뺄 겁니다. 예능적 요소는 전부 빼고 그냥 <실수>라는 영화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문제가 될 부분을 아예 빼고 가겠다. 그럼 <실수>를 공격할 이유가 없을텐데?”

“사람들한텐 알리지 말아야죠. 대외적으로는 <실수>에 문제가 있지만 덮고 진행하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그게 가능해? 다른 사람들한텐 숨길 수 있겠지. 그런데 장과장은 담당자니까 모를 수가 없을 텐데.”

현차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과연 완벽한 비밀 유지가 가능하느냐.’

현차장의 타당한 의문. 그에 대해 한록이 답했다.

“차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과장님이 이 얘기에 협조해주실 것 같습니까?”

“...음...”

장과장과 현차장은 입사 동기이자,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회사에서 동고동락한 사이였다. 현차장은 자신의 친구에 대해 생각했다.

“<실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면...그럼 이제 와서 발 빼겠다고는 안 할 것 같아. 자기가 피해자들한테 영화가 TV에 나올 수 있는 기회라고 설득했으니까.”

본부장급까지 올라가는 사내정치. 거기에 자신의 프로젝트가 개입되어 있다.

누군가는 영리하게 도망갈만한 일이었지만, 장과장은 그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이 못 됐다.

“그래도 이과장이 얘기하면 경계할 것 같은데.”

문제는 장과장이 한록의 줄을 잡을 만큼 약삭빠른 사람도 아니라는 점.

현차장과 장과장의 손에는 끈끈한 실이 얽혀있었다.

이 실은 서로를 향한 신뢰를 뜻하는 것이었으며, 한록이 장과장을 <실수>의 담당자로 선정해야 한다고 밀어붙인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과장과 한록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고, 장과장은 한록을 이용하기는커녕 경계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게 바로 한록이 현차장을 이곳에 부른 이유였다.

자신에게는 없는 신뢰관계.

“네. 그래서 현차장님이 장과장님을 설득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그걸 가진 사람을 활용하면 그만이다.

현차장이 놀란 목소리로 한록에게 물었다.

“내가?”

“네. 차장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계획에서 큰 역할을 맡는다는 게 당황스러운 것처럼 보이던 현차장.

그러나 ‘도움이 필요하다’는 한록의 말에 현차장의 실이 따뜻한 온기를 품기 시작했다. ‘한록을 돕고 싶다’는 현차장의 마음이 실에 반영된 것이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음...”

한록의 질문에 현차장이 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나 한록은 이어질 답을 알 수 있었다.

현차장의 손목에 감긴 굵고 따듯한 실.

“될 것 같아.”

그건 아주 신뢰받는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실이기 때문이었다.

*

다음날. 예선전 촬영 6일 전.

[과장님. 현차장한테 상황 들었습니다.]

장과장이 한록의 계획에 합류했다.

*

3일 후. 예선전 촬영 4일 전.

[<수면>이 역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중 최단 기간 10만을 달성했습니다. 서감독님. 소감이 어떠신가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장님. 그때 GV 관객 안 받았으면 큰일날뻔 했어요. 지금 계속 <수면> GV볼 수 없냐고 문의 들어오고 있네요.”

*

그리고 일주일 후 수요일.

“김기자. 나 문오석인데, 기사 하나 내보내줘야겠어.”

누군가는 공격을 하고,

“이과장님. 피해자측이랑 연락 끝났습니다.”

누군가는 그걸 기회로 만들려는.

“촬영 시작합니다! 다 같이 로비에 모여주세요!”

CK의 예선전 촬영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