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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34화 (228/263)

134화. 저 잠시만 나갔다 와도 될까요?

“그 말은...”

“하겠다는 거죠.”

한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자, 최대리는 빠르게 한록의 제안을 수락했다.

‘역시.’

최대리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방식.

최대리는 언제나 자기 영화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고, 이익이 있을만한 일에 괜히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도울 거 있으면 말하세요. 최대한 시간 빼 볼게요.”

한록의 예상처럼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하고 떠난 최대리.

능력있고, 매력적이고, 협조적인 사람.

최대리는 같은 편일 때 정말 든든한 사람이었고, 동시에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보일만한 사람이었다.

“휴, 성공했네요.”

최대리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는 하대리.

“그러게. 최대리가 나름 의욕적으로 보여서 다행이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현차장까지.

사실, 최대리는 이번 영상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

-근데, 우리 회사 안에서 시상식을 한다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그냥 남의 회사 행사라고 볼 것 같은데. 연예인 비중을 늘려야 하는 거 아니야?

한록의 계획을 들었을 때 현차장이 내놓았던 의문.

그에 대한 한록의 답은 간단했다.

-그래서 <수면>이 중요한 겁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몇 명의 연예인 심사위원과, 일반인 참가자로 구성된다.

그중 연예인의 역할은 프로그램 초반부에 이슈를 불러오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이슈는 일반인 참가자에게로 이어지고, 후반부에 갈수록 주인공은 연예인이 아니라 참가자가 된다.

-아...<수면>으로 스타트를 한다는 거지.

그래서 최대리와 <수면>은 이번 영상에서 꼭 필요한 요소들이었다.

올해 최고의 기대작 <수면>.

한국 최고의 미남 배우 박하성. 젊은 천재 감독 서감독. 그리고 회장의 스카웃을 받은 매력적인 직원, 최대리까지.

그 셋이 <수면>을 우승시키기 위한 모습.

예선전은 <수면>에 대한 얘기로 시작할 것이었고...

-네. 그리고 <도착지>로 끝낼 겁니다.

한록은 그들의 활약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우승을 얘기할 서감독. 그리고 서감독이 우감독과 한록에게 보이는 경쟁의식까지.

<수면>이 빛나면 빛날수록, <도착지>에 대한 사람들의 연민 역시 커질 것이었다.

*

“우리 좀 비겁하다. 완전 <수면>에 묻어가겠단 거잖아.”

“알고 있습니다.”

한록의 태연한 대답. 그 답에 현차장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그래서 아주 마음에 들어.”

한록에게 양쪽 엄지를 들어 보이는 현차장과, 고개를 끄덕이는 한록.

“다행입니다. 더 비겁한 게 남아있어서요.”

“더 비겁한 거? 뭐?”

“<도착지> 마케팅이요.”

그 말과 함께 한록이 노트북을 펼쳤다.

*

<도착지>.

70세의 나이에 바리스타를 꿈꾸게 된 할머니와, 할머니의 꿈을 이뤄주려는 가족들의 얘기가 담긴 가족영화.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는 마음.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다.’

한록이 <도착지>를 보고 떠올린 생각이었고, 모두가 <도착지>가 대상을 받는 건 무리라고 해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특별하지 않은, 흔하디 흔한 얘기.

달리 말하면 그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얘기란 뜻이니까.

무난하고 좋은 영화. 이런 영화야말로 마케팅의 영향을 많이 받기 마련이었다.

“<도착지>의 마케팅에서 중요한 건, 사람들이 이 영화가 자신들의 얘기라고 느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그러니 마케팅은 이연옥 선생님을 메인으로, 광고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연옥. 이 영화의 주인공. 다시 말해-

“...그분 70세신 거 알고있지?”

할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

현차장에 이어 유선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분은 인지도가 좀...부족하지 않을까요...?”

이연옥은 말이 배우지, 사실 거의 일반인에 가까운 단역배우였다. 그런 사람의 첫 주연작. 거기에 70세 노인라는 약점까지.

영화 하나를 통째로 맡기기에 불리한 조건들인 건 사실이었다.

“<도착지>에 대배우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어느 정도 알려진 배우들도 있잖아요. 광고는 그 사람들을 위주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유선에 이어서 하대리까지. 항상 한록의 말을 잘 따라주는 사람들이었지만, 아무래도 이번 마케팅에는 여러모로 의문이 드는 모양이었다.

“아뇨. 오히려 인지도가 낮은 쪽이 좋습니다. 그래야 ‘연예인’이 아니라 내 주위 사람. 우리 가족이란 생각이 들 테니까요.”

그러나 GV팀의 우려에도 한록의 입장은 단호했다. 한록의 태도를 본 현차장이 하대리와 유선을 진정시켰다.

“잠깐만. 일단 계속 들어보자. 이연옥 선생님으로 뭘 어떻게 하려고?”

“이연옥 선생님이 진짜 사람들의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처럼 느껴질만한 광고를 찍을 겁니다.”

광고의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는 한록. 얘기를 들은 하대리가 주의 깊게 말했다.

“음, 광고 자체는 좋아 보여요. 이러면 진짜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생각날 거 같아요.”

“그러게. 선생님 국민 할머니 되시겠다.”

“근데...이게 영화랑 무슨 상관이 있죠?”

“그래서 시상식이 필요한 겁니다.”

하대리의 타당한 지적에 한록이 ‘진짜’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70대 할머니를 내세운,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광고. 그 광고를 보며 자신의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를 떠올릴 사람들.

이연옥이라는 사람에게 씌워진 ‘우리 할머니’라는 이미지.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연옥 선생님이 시상식 예선에 출연하는 겁니다.”

-어. 나 이 사람 알아.

-진짜 우리 할머니 닮으셨어.

-어? 우리 할머니도.

“사람들은 광고 속 이미지 그대로 이연옥 선생님을 바라보겠죠. 우리 할머니, 우리 어머니라는 생각으로요.”

그리고 예선전에 출연할 다른 사람들.

천재 감독 서감독. 한국 최고의 미남배우 박하성. <스캔들>의 주인공이자,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대배우 안정훈. <부산 열차>를 통해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백동석. 그들의 영화에 올라가는 투표수와...

“<도착지>는 투표에서 최하위권이 될 겁니다. 이연옥 선생님은 그걸 지켜보실 거고요.”

쟁쟁한 스타들 사이에서 우리 할머니가 꼴찌를 하는 모습.

“서감독님이 <도착지>를 의식하고 계신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서감독님이 <도착지>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실수록 좋겠네요.”

<도착지>를 무시하는 사람들과, 그 앞에서 작아지는 <도착지>의 배우들. 그리고...

-잠깐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사람들의 반응.

*

“<도착지>팀은 이연옥 선생님의 반응 위주로 촬영할 겁니다. 선생님이 혹시나 하는 기대에 기뻐했다가, 결과에 실망하는 장면 위주로요. 만약 제가 광고를 본 사람이라면...”

“절대 가만히 못 있지.”

한록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현차장. 현차장은 어쩐지...

“서감독도 참. 선생님 앞에서 그런 말은 좀 아니지 않아?”

벌써부터 예선전에 엄청나게 몰입한 듯한 상태였다.

“차장님. 그분 아직 아무 말도 안 하시지 않았나요?”

“...그러게. 상상만 해도 화가 났어.”

유선의 말에 현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진짜 스포츠 같네요.”

하대리가 한록의 마케팅 포인트를 정확히 지적했다.

승자에 대한 분노. 그리고 약자에 대한 공감과 자기이입. 언더독의 정서를 정확히 공략한 한록.

“그런데 플레이어가 우리 할머니인거죠.”

거기에 경기를 하는 사람은 내가 어머니처럼, 할머니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럼 응원을 안 할 수가 없겠죠. 진짜 비겁하다.”

“아니야. 이건 비겁한 게 아니야. 이건 비겁하기보단...”

하대리의 말에 현차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쟁쟁한 스타들과의 경기.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투표수.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우리 할머니.

“너무 악독해!”

벌써부터 느껴지는 슬픔에 현차장이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

“과장님. 시상식 때문에 할 말이 있어서요.”

그날 저녁. 예선전의 기획을 다듬고 있던 한록에게 최대리가 찾아왔다.

“<부산열차>, <스캔들>, <관상가> 맡을만한 사람을 찾아달라고 하셨죠?”

이번 시상식의 중심이 될 영화들은 <부산열차>, <스캔들>, <관상가>, <수면>. 그리고 한록이 은근슬쩍 끼워넣은 <도착지>였다.

“<관상가>는 저도 잘 모르는 영화라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셔야 할 것 같고. <스캔들>은 제작부 차과장님이 신경 많이 쓴 영화예요. 그리고 <부산 열차>는 투자부랑 얘기해보세요. 좀비 영화고, 제작비도 꽤 들어가는데 투자부에서 흥행할 수 있다고 과감하게 결정했다고 들었어요.”

오전에 한록이 부탁했던 내용을 벌써 정리해온 최대리.

최대리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제가 <부산 열차>를 제가 담당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그래도 1위를 할 가능성이 있는 건 <수면>이니까요. 그래도 <부산열차>에도 신경 써 주세요. <부산 열차>가 2위는 해야 합니다.”

“그건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니죠. 회사 사람들이 투표하는 건데요.”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수면>을 꼴찌로 만들어 버리는 수가 있어요.”

장난스럽게 말하는 최대리. 하지만 한록은 이제 최대리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파악한 후였다.

말은 이렇게 해도 최대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자신이 맡은 영화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도착지>는 과장님이 담당하실 거죠?”

“네, 맞습니다.”

한록을 이기기 위해.

그 말에 미소를 짓는 최대리. 최대리가 한록에게 말했다.

“기획안 올리신 거 봤어요. 이연옥씨를 메인으로 마케팅을 진행하신다고 했죠?”

“네, 맞습니다.”

“저는 박하성을 데려올 거예요. 섭외 비용은 이쪽으로 처리할게요.”

“그렇게 하세요.”

박하성. <수면>의 주인공이자, 한국 최고의 미남배우, 그리고 한국에서 제일 몸값이 높은 남자배우였다.

“제가 <수면>이랑 박하성을 데려오는데, 과장님은 이연옥 선생님이라.”

한록의 허락이 떨어졌는데도 여전히 할말이 남은 듯한 최대리.

“이한록이랑 붙어서 이긴 최초의 사람이 될 수도 있겠네요.”

아니, 오히려 최대리의 용건은 이쪽인 듯 했다.

“제 마케팅에 불만이 있으신가 보군요.”

“네. 이연옥씨에게 내 할머니,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보겠다. 이런 걸로 박하성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거든요.”

이연옥과 박하성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최대리.

“저야말로 영상에 박하성씨가 나온다고해서 <수면>에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반대로, 최대리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스타 마케팅에 의문을 던지는 한록.

“박하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오겠죠.”

“이연옥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도착지>를 보러 올 겁니다.”

서로의 마케팅에 의문을 던지는 최대리, 그리고 한록. 그만큼 이번 시상식은 서로의 특기로 승부하는 대결이었다.

“그래요. 누가 맞는지는 결과를 봐야 알겠죠.”

최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그리고 3일 후. 한록에게 <도착지>의 광고 초안이 도착했다.

“다같이 볼까요?”

“그래, 그러자.”

한록의 컴퓨터 앞에 모여앉은 GV팀. 한록은 가운데에 앉아 광고를 재생시켰다.

모니터 화면 속에서는 이연옥이 두부를 자르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할머니. 안 무겁겠어요?

그리고 바로 다음 화면. 두 손 한가득 짐을 든 이연옥에게 걱정스레 묻는 마트 직원.

-풀만 먹는 분이 웬일로 고기를 사가신대?

별일이라는 듯 묻는 정육점 직원.

-오늘 좋은 일 있나보네.

노인정의 친구들과...

-오늘 우리 애들 오잖아.

이연옥의 대답과 함께 완성된 김치찌개. 그리고 문밖에서 들리는 초인종 소리.

그 소리에 이연옥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우리 애 왔나보네.

*

<도착지>에 아주 잠깐 나오는 장면을 길게 제작한 광고.

한록의 요청대로, 광고는 <도착지>보다는 ‘우리 할머니’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어때요?”

“너무...강력해...”

한록의 말에 현차장이 중얼거렸다.

“좋네요.”

“저도 좋아요.”

그리고 유선과 하대리의 대답까지.

‘...뭐지?’

GV팀 모두가 이 광고가 좋다고 말한다. 그건 한록의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GV팀의 반응에는 어딘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너무 좋아요! 이 스토리면 다들 본인들 할머니를 떠올릴 거예요.’

‘악독하다!’

‘과장님, 감정을 자극하는 것도 할 줄 아시네요.’

분명 처음 광고 얘기를 했을 땐 뜨거운 반응을 보였던 GV팀.

하지만 막상 광고를 보고 나니, GV팀의 반응은 예전만큼 흥분한 반응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 잠깐만 나갔다 와도 될까요?”

“아, 나도 화장실 좀.”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네. 좀 쉬었다가 다시 얘기해요.”

한록이 고개를 끄덕이자 GV팀은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광고가 생각보다 별론가?’

갑작스러운 불안함에 자리에서 일어난 한록. 한록 역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옥상에서 하대리를 발견한 순간, 한록은 오늘 사람들의 반응이 왜 그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응. 그냥 생각나서.”

친근하게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는 하대리. 그리고...

“어. 이번 주에 내려갈게. 괜찮아. 바쁜 거 끝났어.”

“엄마.”

그 전화의 주인공.

GV팀이 다른 생각을 하는 듯했던 이유. 용건이 끝나자 모두 어디론가 후다닥 사라진 이유.

광고를 보니 자기 어머니가 생각나서.

“...효과 좋네.”

그 모습에 한록이 최대리의 말을 떠올렸다.

‘내 할머니, 내 어머니. 이런걸로 박하성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거든요.’

-과연 최대리는 이 광고를 보고 뭐라고 말할까.

“두고봅시다, 최대리님.”

최대리의 반응을 상상하며 한록이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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