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필요한 건 명령이 아닙니다.
다른 본부, 다른 회사를 넘어 모든 회사가 자신의 계획에 따라주길 바란다는 한록의 말.
‘항상 느끼지만...지나치게 자신만만하군.’
아무리 사장과 본부장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라는 위치에서 제안할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하지만 최경준은 거절하는 대신 한록의 답을 기다렸다.
한록이 이렇게나 자신만만할 수 있는 이유.
그건 누군가의 총애를 받아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능력 때문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시상식에 ‘예선’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한록의 제안은 이랬다.
연말의 시상식.
어느 영화, 노래, 인물이 올해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느냐를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지표.
미국은 ‘아카데미 레이스’라고, 시상식에서 상을 타기 위해 로비를 하거나 마케팅을 하는 기간을 명시하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한국에서도 시상식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미국만큼의 인지도를 가지지는 못하죠.”
그러나 업계 사람들이 시상식에 가지고 있는 엄청난 기대와 압박에 비해, 대중들이 시상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은 그저 ‘재밌는 연말의 이벤트’ 정도였다.
그리고 한록은 그 점에 대해서 늘 아쉬워하고 있었다.
경쟁, 그리고 승리. 그건 언제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 중 하나였으니까.
회귀 전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던 한록에게 문득 떠올랐던 생각.
‘영화 시상식은 왜 저런 분위기가 안 나는 거지?’
오디션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사람이 우승하기 위해 투표를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팬이 된다.
우승자를 발표할 때 보이는 팬들의 모습. 기도하거나, 눈을 꼭 감고 있는 모습. 좋아하는 사람이 꼭 이 곳에서 우승하길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출연자를 홍보하고, 프로그램의 인기는 더욱 커져간다.
반면 영화 시상식을 보는 사람들은 배우의 팬이 아닌 이상 ‘이번엔 누가 상을 탈까?’라는 정도의 생각에서 그치는 게 현실이었다.
‘저 간절함을 영화계에도 가져올 순 없을까? 그럼 분명 마케팅에 도움이 될 텐데.’
회귀 전에는 그저 상상에 그쳤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상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순간이 왔다.
“예선을 만든다니?”
“사람들이 영화 시상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건, ‘승부의 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록이 생각한 영화 시상식의 문제점. 그건 바로 시상식이 ‘대회’가 아니란 점이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멋진 경쟁을 한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패배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잠자코 한록의 말을 기다리는 최경준.
“사람들이 자기가 응원하는 대상에게 몰입할 이유를 준다는 겁니다.”
멋진 승부. 승부를 준비하는 모습.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진 사연.
단순히 승패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결과까지 도달하기 위한 과정들.
사람들이 누군가를 응원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영화 시상식에는 없는 요소였다.
“지금 영화 시상식은 경기는 보여주지 않고 승패만 가리는 상황이죠. 시상식에도 ‘승부’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응원할 상대를 정하기 위해서요.”
“맞는 말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닌가.”
한록의 말에 최경준이 답했다.
영화는 스포츠도 아니고,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더욱 아니다. 애초에 승부가 이뤄지는 상황을 보여준다는 게 불가능한 형식.
“영화를 가지고 어떻게 승부를 보여주겠단 건가. 출연진끼리 나와서 싸움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
그렇게 말하던 최경준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영화를 가지고 승부를 보여주겠다. 출연진끼리 나와서 싸움을 하겠다. 그런 말을 하니 생각나는 것.
“이래서 <도착지>와 <수면>의 공동 GV를 기획한 거군.”
바로 이번에 한록이 마련한 공동 GV였다.
“네, 맞습니다. 경쟁자가 있고,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두 영화에 몰입할 겁니다.”
“더 얘기해 보게.”
최경준이 살짝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시상식에 몰입감을 불러일으키겠다.
스포츠나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관객들이 꼭 승리하길 바라는 영화를 만들겠다.
처음엔 한록이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미 공동 GV라는 형식으로 어느 정도의 ‘승부’의 규칙을 만들어 온 한록.
그렇다면, 시상식에서 승부를 만들겠다는 것 역시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상식이 있기 전, CK에서 자체적으로 연말 시상식의 예선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겁니다. 영상으로 만들어서 2주 정도 업로드하면 좋겠습니다. 방송으로 나갈 수 있으면 더 좋겠죠.”
그 말과 함께 옆에 둔 보고서를 건네는 한록. 최경준이 한록의 보고서를 받아가 펼쳐보았다. 보고서에는 한록이 만든 ‘경기의 규칙’이 쓰여있었다.
“첫 번째로 필요한 건 캐릭터.”
[영화를 상징하는 사람. 감독이나 출연배우.]
“두 번째는 심사위원.”
[그리고 CK 내부 직원들이 영화에 투표한다.]
출연자. 그리고 영상이 공개되는 동안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투표수까지.
전형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스템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세 번째는 플레이어입니다.”
[영상의 내용은 CK 직원들이 각자가 담당한 영화가 승리하기 위해 활동하는 내용을 담는다.]
한록이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직원들의 협조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
한록의 말에 최경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시상식의 예선을 컨텐츠로 만들겠다라.”
그 효과가 얼마나 대단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리스크가 없다는 점에서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좋아. 한번 진행해보게.”
최경준이 드디어 허락을 내놓았다.
“이번주 내로 협조가 필요한 부서들과 회의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해당 부서와 참여하는 직원들의 동의가 가장 먼저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내가 허락했는데 무슨 동의가 필요하지? 그냥 진행하게.”
연말 시상식을 위해 내려온 새로운 업무. 게다가 본부장이 허가한 프로젝트.
최경준의 말처럼, 사실상 이 일에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한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번 일은 직원들의 역할이 중요한 일입니다. 영상의 스토리 자체가 직원들이 자신의 영화를 위해서 움직이는 내용이니까요. 단순히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본인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있어야 동기부여가 될 겁니다.”
“자네가 그렇게 하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어. 다만 기간이 너무 빠듯할 텐데.”
시상식은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 최경준의 말도 물론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한록의 입장은 확고했다.
“본부장님.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면서 몰입할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본인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겠지. 배우나, 감독들.”
“아뇨. 사람들은 CK 직원에게 이입할 겁니다.”
이번 예선의 진짜 주인공.
그건 영화도, 출연진도 아니었다.
이 영화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손으로 만든 영화가 잘 되길 바라는 사람들.
바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청자, 그리고 관객.
그들을 입장을 대변하는 CK ENM의 직원들이었다.
“이 영상의 주인공은 우리 직원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왜 이일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 더 잘 할 수 있는지...그렇게 고민할수록 좋은 결과가 나올겁니다.”
단순히 일을 시킨다고 끝나는게 아니다.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야한다고 말하는 한록.
한록의 말에 최경준은 답이 없었다.
‘...말을 잘못했나?’
최경준의 침묵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한록은 긴장해서 최경준을 바라보았다.
그냥 ‘본부장 지시다’라고 일을 시키고 싶진 않다. 그 사람들이 왜 이 일을 하는지 알려주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다.
‘실도 문제는 없는데.’
게다가 최경준의 실도 여전히 자신의 손목에 이어져있었다. 그런데도 계속 이어지는 최경준의 침묵.
그리고 최경준의 얼굴에 떠있는...
“내가 중요한 걸 잊고 있었군.”
조금의 놀라움.
최경준이 말이 없었던 이유는 한록의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라. 그래. 그걸 모르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기 마련이지.”
좋은 리더, 그리고 관리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그러나 자신은 잊은 지 오래인 얘기.
한록이 그걸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지적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럼...”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하게. 회의를 소집해. 그리고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 사람들에게 설득해 보게. 자네 말처럼 명령이 아닌 설득 말이야.”
최경준이 이번엔 완전한 허락을 내려주었다.
“하지만 그게 쉽진 않을 거라네. 리더의 자리가 그렇게 쉬운 자리가 아니거든.”
그리고 이어진 최경준의 경고. 그 말에 한록이 자신있게 답했다.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면 말씀드리지도 않았습니다.”
“하하. 어디 한 번 해보게.”
한록의 말에 낮게 웃은 최경준. 웃음을 멈춘 최경준이 한동안 한록을 바라보았고, 지나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와 얘기하다 보면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이 생각나는군.”
어쩐지...
“아마 이 자리에 너무 오래 있었던 모양이지.”
반성이 담긴 목소리였다.
*
“들어가보게.”
“네, 감사합니다.”
한록이 인사를 하고 나간 본부장실. 최경준은 의자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한록을 본부장에 올리는 것에 망설이던 하정엽의 모습. 그리고 오늘, 직원들에게 필요한 건 명령이 아니라 동기부여라고 말하던 한록.
“사장님. 걱정하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 모습에 자신의 생각보다 더 한록이 좋은 리더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본부장실에서 나온 한록. 한록은 곧장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선 GV팀이 한록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부장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오, 좋아.”
회의실에 있던 현차장이 고개를 끄덕였고, 한록은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반짝이는 손목의 실.
‘왜 자꾸 실이 빛나는거지?’
며칠 전 우감독과의 대화 이후 가끔씩 손목의 실이 반짝거리곤 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
‘보통 이럴 땐...레벨업을 하던데.’
마치 레벨 업 직전 반짝이는 경험치창을 보는 듯한 기분에 한록이 찬찬히 실을 살폈다.
‘레벨업이면 고맙겠네. 앞으로는 이 능력이 더 필요할 거니까.’
이제 한록이 해야하는 프로젝트. 그건 모든 회사 사람들이 일정 부분 참여해야하는 프로젝트였다.
심지어 중심이 될 인물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자신이 맡은 영화에 몰입해야 한다.
일이기 때문에 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정말 원해서 프로젝트에 함께 한다. 그것도 마치 누군가의 팬이 된 것처럼 간절한 마음이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한록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그만큼의 의욕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필요한 건 그저 몇 명의 사람들. 그들을 설득하는 것.
그리고 그 중 가장 먼저 해야할 건...
“과장님. 부르셨어요?”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 최대리였다.
*
“영상에 나올만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구요?”
한록이 최대리를 부른 이유. 바로 영화의 응원단이 될 사람을 선정하기 위해서였다.
“네. 최대리님이 여러 부서를 다녀보셨으니,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 같아서요.”
최대리는 순환근무를 한 만큼 각각의 부서 내부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기왕이면 영화에 참여한 비중이 크거나, 영화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생각해서 보내드릴게요.”
한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최대리. 그리고 최대리가 떠나기 전, 한록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대리님도 <수면>의 담당으로 출연해주셨으면 합니다.”
“아...”
이번 일을 위해 섭외해야할 중요한 사람 중 하나.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의지로 영화의 승리를 위해 움직여줄 사람들.
최대리는 그 사람들 중 대표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다.
한록의 말에 최대리가 미소를 지었고-
“전 하고 싶지 않은데요.”
곧바로 거절을 내놓았다.
*
“어...최대리?”
최대리의 말에 깜짝 놀란 듯한 현차장. 그리고 한록의 눈치를 보는 유선과 하대리. 셋은 모두 최대리의 거절에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정작 한록은 최대리의 반응을 예상한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우리 과장님이 이걸 남 좋은 일로 끝낼 리가 없고...이거 결국 <도착지>를 위한 마케팅일 거잖아요?”
“헉.”
최대리의 말에 유선이 깜짝 놀라 입을 가렸다.
최대리가 오기 직전, GV팀이 나누고 있던 얘기들을 떠올린 것이다.
‘<도착지>를 담당할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건 시상식을 위한 예선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소규모 영화인 <도착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요.’
‘우감독님 은퇴작이란 얘기도 많이 넣어요. 오디션은 감성팔이 장면이 제일 인기가 많잖아요.’
‘아예 배우말고 우감독님을 출연시키자. 우감독님이 인지도가 좀 있는 편이잖아.’
GV팀은 이 예선전을 어떻게 <도착지>에 활용할 것인지 열심히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최대리는 예선전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이 모든 상황을 파악한 것이었다.
시상식을 위한 예선.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도착지>의 인지도를 올리기 위한 발판. 그걸 눈치챈 최대리가 한록에게 말했다.
“<도착지>가 예선에서 1위를 하게 만들 거죠? 그럼 싫어요. 시상식 전에 <수면>이 패배했다는 인식을 주고 싶진 않거든요.”
빠른 상황판단. 그리고-
“대상을 노리는 건 과장님만이 아니잖아요?”
호승심.
거의 처음으로 보는 최대리의 비협조적인 모습에 한록이 미소를 지었다.
“어라. 전 진심인데. 왜 웃으시지?”
한록이 웃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째는 최대리의 반대를 이미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이 편이 더 재밌잖아요.”
한록 역시 승부와 경쟁을 즐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간만에 느껴지는 즐거운 승부욕에 한록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 이 사람이 원하는 게 뭘까.’
최대리가 좋아하던 한록의 모습. 열정. 매력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벌이는 담대함.
‘어떻게 이 사람을 설득할까.’
자신의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 그 사람을 설득하고, 함께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
그러나 결국 승리하는 것.
“아뇨. 예선의 우승자는 <수면>이 될 겁니다.”
이제는, 이런 일이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도착지>가 우승을 하면 사람들은 결과에 신뢰를 가지지 않을 겁니다. 투표에는 손을 대지 않을 겁니다.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수면>이 우승자가 될 겁니다.”
“그럼 <도착지>가 얻어가는 건 뭔데요? <도착지>는 순위권에도 못 들어갈 거예요. 그럼 당연히 GV에도 영향이 갈 텐데.”
최대리의 지적은 정확했다. 예선전의 결과는 GV 전에 공개될 것이었고, 그렇다면 분명 GV에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그러나 한록이 바라는 것은 ‘<도착지>가 <수면>을 이길만한 영화다’라는 인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패배자라는 이미지요.”
“...”
“이 영화가 이 정도 대접을 받을 영화는 아니다. 나라도 이 영화에 투표해야겠다.”
꼴찌. 언더독. 패배자를 보면 사람들이 하는 생각.
“이 영화도 한 번쯤은 이겨봤으면 좋겠다는 이미지를 원합니다.”
바로 역전을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도착지>가 예선에서 우승하도록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럼 <도착지>는 CK 최고의 기대작이란 이미지가 생기겠죠. 그걸 가지고 어떻게 마케팅할지는 최대리님의 선택입니다.”
최대리에게 딜을 거는 한록.
‘명령이 아니라, 직원들 스스로 왜 이 일에 참여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이 일을 통해서 뭘 할 수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같이 해봅시다, 대리님.”
한록이 최경준에게 말했던 설득의 첫 번째 시도였고-
“아, 난 정말 과장님한테 못 당하겠어요.”
최대리는 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