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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31화 (129/263)

131화. 매력적인 분이시네요.

한록의 말에 연결된 우감독의 실. 그 실을 보고 한록은 생각했다.

‘통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는 우감독.

우감독은 한록의 제안이 아니라, 이한록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계속 자신을 설득하는 눈앞의 젊은 남자.

우감독 역시 이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CK ENM 최연소 과장. 영화 업계에서 소문이 자자한 천재. 해외에서 스카웃을 받았다는 얘기들까지. 우감독 역시 한록에 대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무슨 영화든 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던데.

그러나 우감독은 한록에 대한 말을 믿지 않았다. 대신, 다른 생각을 했다.

‘영화 보는 눈이 정말 좋구나.’

어떤 영화든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생각.

그런데 그런 사람이 <수면>이 아닌 자신의 영화를 원한다. 우감독은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한록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고마움은 고마움일 뿐이다.

업계 천재가 자신의 영화를 담당한다고 해서, 우감독의 마음 속에 숨은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CK ENM 과장. 그리고 <도착지>의 담당자.  누구나 아는 천재.

“제가 좋아하는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이한록이 하는 말.

“그게 제가 이 일을 하게 된 이유니까요.”

자신의 영화를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

한록의 말에 우감독은 아득히 먼 과거를 떠올렸다.

처음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첫 작품을 보였을 때. 첫 인터뷰를 했을 때.

아무것도 두려울게 없고, 그저 기대로만 부풀어 있던 날들.

‘그래,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그때를 떠올리게 해주는 한록의 말.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마음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한참동안 망설이던 우감독이 한록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은 답을 드리기 어렵네요. 좀 생각해보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우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록. 그러나 한록은 잠시 생각하다가 재빨리 뒷말을 덧붙였다.

“이번 주 내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갑작스러운 고백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들 땐 언제고, 이제는 절대 놔주지 않겠다는 듯 기한을 명시하는 한록의 모습. 어찌보면 간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그모습에 우감독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사람이네.'

업계 누구나 아는 천재. 수려한 외모에 사람을 설득할 줄 아는 화법. 그리고 그 모든 장점보다 눈에 띄는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과 간절함.

그 모든 게 이 사람을 빛나게 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에 우감독이 무심코 한록에게 말했다.

“과장님은 참 매력적인 분이시네요.”

한록의 고백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우감독의 말.

우감독의 말에 한록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 말이 단순히 외모에 대한 얘기가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자기 자신은 더 믿지 못하는 한록. 회귀 전이라면 분명 이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감사합니다.”

그 말이 거짓말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쑥쓰러움과 고마움이 담긴 한록의 말. 그 말에 우감독이 웃으며 답했다.

“그래요.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

한시간 후 <스타의 하루> 촬영이 끝났고, 모든 사람이 각자의 목적지로 돌아갔다.

한록은 혼자 상영관에 남아 마지막 정리를 마쳤고, 마지막으로 상영관의 문을 닫으며 생각했다.

자신의 손목에서 반짝이는 우감독의 실.

‘과장님은 참 매력적인 분이시네요.’

그리고 오늘 우감독의 말.

‘잘 될 거다.’

우감독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이미 알 것 같다는 생각.

그 즐거운 예감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한록은 씻고 곧장 침대로 향했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우감독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아직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시군.’

이미 예상했던 반응에 한록이 답장을 보냈다.

[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우감독의 마음도 확인했겠다, 이제 우감독을 놓아줄 생각 따윈 없는 한록.

‘내일도 연락해야지.’

될 때까지 설득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록에게 문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우감독님? 벌써 결정하셨나?’

한록은 기대감에 바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러나 문자를 보낸 건 우감독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과장님.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우감독과 비슷한 내용의 문자. 그러나 발신인은 다른 사람이었다. 이번 문자를 보낸 사람은...

[이은솔.]

이은솔이었다.

짧지만 많은 말이 담겨있는 이은솔의 문자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은솔씨도 수고하셨습니다. 활동 기다리겠습니다.]

답장을 보낸 한록은 잠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핸드폰에는 우감독과 이은솔의 문자가 상단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두 사람. 그리고 손목에 연결된 실들.

‘그래. 나도 이제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언제나 누군가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오던 한록.

하지만 이제는 자기 일을 할 뿐인데 누군가에게 감사를 듣고, 또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이제 그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도 많이 성장했나.’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손목에 묶인 실이 잠깐 반짝거렸다.

“...뭐지?”

갑자기 반짝이는 손목의 실. 한록은 침대에서 일어나 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실은 언제 반짝거렸냐는 듯, 다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간 후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빛을 내지 않는 실. 한록이 다시 침대에 누우며 생각했다.

‘실이 이럴 때면 분명 무슨 일이 생겼는데.’

영도의 말에 처음으로 실이 생겨났을 때. 유선의 손목에 실이 묶였을 때.

실에 변화가 생길 때면 꼭 한록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고는 했다.

‘이번엔 무슨 일이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기대감과 약간의 두려움에 실을 관찰했지만, 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으며-

‘...’

‘......’

‘...........’

한록은 어느새 잠에 빠져있었다.

“...헉.”

침대에서 굴러떨어지기 직전 간신히 잠에서 깨어난 한록. 한록이 손목의 실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실에 왜 변화가 생긴 것일까.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너무나 기대되고, 궁금하다. 하지만.

‘내일 생각하자.’

일단 지금은 자야 했다.

*

그리고 다음 날. 회사에 도착한 한록.

“안녕하십니까.”

한록의 밝은 인사에 현차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출근을 하면서 웃고 있지...?”

기분 좋은 얼굴로 출근을 하는 동료라니. 오늘 한록은 직장인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얼굴에 의아함을 가득 담은 현차장을 뒤로하고 컴퓨터를 켠 한록. 한록은 바로 <도착지>의 기대평 이벤트를 확인했다.

[할머니랑 보러갈거예요><]

[이분 영화 좋아하는데 은퇴하신다니 너무 아쉽습니다 ㅠㅠ마지막으로 좋은 영화 기대합니다.]

[아버지랑 같이 <우리집>을 보러갔었는데...이제 아들이랑 보러 가고 싶네요.]

우감독의 긴 경력과, 그만큼 우감독을 지켜봐온 사람들의 기대평. 이보다 우감독의 마음을 자극할 만한 내용은 없을 것이다.

한록은 사람들의 기대평 중 몇 개를 골라 우감독에게 문자로 보냈다.

[연락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독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촉하는 문자까지.

‘언제쯤 연락이 오려나. 오늘? 내일?’

우감독의 연락을 기다리며, 5분에 한번 꼴로 핸드폰을 확인하는 모습.

계속 한록을 지켜보던 현차장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과장. 오늘 무슨 일 있어? 왜 이리 기분이 좋아 보여?”

“기다리는 연락이 있어서요.”

“어...아.”

한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현차장. 현차장은 ‘이제야 알았다’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과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우감독의 문자.

“차장님. 연락 왔습니다.”

한록의 말과...

“그래. 그쪽도 좋대?”

“우감독님 이대로 진행하신다고 합니다.”

“엥?”

“예?”

엇갈린 대화.

“이과장. 여자친구 생긴 거 아니었어?”

현차장이 정말 이해할 수 없단 얼굴로 물었다.

*

그리고 금요일. <스타의 하루> 방영날.

GV팀은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라운지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고, 한록은 영화관에 나가 있었다.

“아, 이은솔 또 나오네?”

“저거 우리 회사 아냐?”

화면에서 나오는 ENM의 모습에 TV 앞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잠시 후 누군가가 TV를 보며 말했다.

“와, 이한록 과장님이다.”

“거의 연예인이네.”

“잘생기긴 했다.”

“여자친구 있나?”

“흐흐. 빨리 여자친구를 만들어줘야지, 원.”

사람들의 반응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현차장.

잠시 후 이은솔이 vincent를 부르는 모습이 화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이은솔의 실수와 도망치듯 무대를 빠져나가는 모습. 그리고 다시 무대로 돌아온 이은솔에게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까지.

“...”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던 사람 중 누군가가 이은솔의 파트가 끝나자 말했다.

“오늘 영화보러 갈까?”

그 모습을 보며, 현차장이 재빨리 한록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반응 굿. 퇴근합시다.]

*

[반응 굿.]

영화관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던 한록에게 도착한 현차장의 메시지.

한록은 그 말에 예매 페이지를 확인했다.

<러빙 고흐>의 예매율은 두 배로 올라있었고, 이은솔의 vincent가 음원차트 순위권에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 됐다.’

<스타의 하루> 덕분에 이제 한국에서 <러빙 고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스타의 하루>를 보고 온 사람들이 <러빙 고흐>에 대해 만족하는 것 뿐.

‘이 뒤는 사람들 반응으로 결정 될 거다. 사람들이 <러빙 고흐>에 만족하면 앞으로는 알아서 마케팅이 될 거야.’

처음 한록의 목표. <러빙 고흐>가 500만 관객을 달성하는 것.

그게 이뤄질지, 아닐지는 오늘 <스타의 하루>를 보고 온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달라질 것이었다.

[저는 반응까지 확인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 마지막을 지켜보기 위해 한록은 영화관에 더 남아있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은솔이 이거 보고 울더라.”

“응. 근데 슬픈 영화는 아니래.”

“이거 보면 <스타의 하루>에 나왔던 전시회 관람권 준대.”

“난 그거 재미없어 보이던데.”

“오늘 유권호도 이거 보러 온다던데.”

<스타의 하루>를 보고 온 사람들이 영화관에 도착했고, 하나같이 <러빙 고흐>를 예매하기 시작했다.

<스타의 하루>. 유권호. 더 서울.

한록의 마케팅이 사람들에게 잘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현장의 반응들.

그러나 한록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왜 이렇게 시선이 느껴지지?’

왠지 모르게,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

‘그럴 리가 없지.’

한록은 그 기분을 착각이라 생각하며 영화관에 입장했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야. 전시회도 보러갈까?”

“아깐 재미 없어 보인다며?”

“이은솔이 왜 울었는지 알겠더라.”

“그러게. 다음주에 한번 더 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관에서 나온 직후까지. 사람들은 모두 <러빙 고흐>에 크게 만족한 듯한 모습이었다.

‘...착각이 아닌 거 같은데?’

“야, 저 사람...”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더 이상 착각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한록을 향하고 있었다.

‘차장님께 보고를 드려야...’

한록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영화관의 구석으로 향했고, 현차장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핸드폰을 켜자마자 보인 영도의 메시지.

[형! 이거 형이야??<스타의 하루>!!!]

메시지를 보낸 것은 영도만이 아니었다.

[오빠 티비 나오면 말을 해야지!]

[한록씨. 오랜만이에요~ 혹시 이번주 스타의 하루 나오셨나요?]

[한록 선배 오랜만이에요 ㅎㅎ; 저 기억하시나요?]

[이과장님. 저 회계부 정은혁입니다!]

평소 조용하던 한록의 핸드폰이 사람들의 메시지로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스타의 하루> 출연 때문.

그 메시지들을 보는 순간 한록은 직감할 수 있었다.

“올해 최고의 영화. 난 이거.”

“음. 나는 <부산 열차> 다음으로 이거.”

“오. 이거 지금 예매율 1위다.”

<스타의 하루>의 효과는 대단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스타의 하루>를 봤고, 그 덕분에 <러빙 고흐>는 500만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과장님ㅋㅋ앞으로 도시락 싸서 다니셔야겠네요.]

그 대가를 받게 될 것이었다.

*

그리고 일주일 후. CK ENM의 사장실.

"사장님."

최경준이 하정엽을 찾아왔다.

"네, 본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좋은 소식이 있어서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최경준의 용건.

"이한록 과장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러빙 고흐>에 대한 기쁜 소식.

"또한 연말 시상식과 관해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리고 <도착지>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최경준의 말에 하정엽이 고개를 끄덕이는 하정엽. 시작해보라는 뜻이었다.

하정엽의 사인에 최경준은 손 안에 들린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오늘 한록이 자신에게 올린 보고서.

그 보고서에는 <도착지>. <부산 열차>. <삼일의 삶> 등 한록이 담당한 모든 영화가 담겨있었으며, 시상식을 점령하겠다는 원대한 포부 또한 적혀있었다.

"사장님. 만약 이번 시상식에서 CK의 영화가 대상을 받는다면. 그리고 압도적으로 승리한다면..."

그리고 최경준은-

"방송국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이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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