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24화 (124/263)

124.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봤다.

“이제 들어가자.”

최슬아와 이은솔.

“PD님. 온에어 접속자 15%입니다!”

“좋아. 시청률 3위...아니 2위도 되겠다.”

<스타의 하루>의 제작진들.

“남차장. 지금 문의글 몇 개야?”

“200개 정도 올라왔습니다.”

“200개? 20개가 아니고?”

‘더 서울’의 서양미술부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방송이 이제 막 공개되기 직전이었다.

“이렇게 다 같이 TV를 보게 될 줄은 몰랐네.”

현차장의 말과, 그 옆의 한록.

현차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연예인. 주말 인기 예능프로그램. 이번 한록의 시도는 모두 평소의 한록이 잘 활용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거기에 ‘더 서울’과의 협업. 그리고 대본도 없이 출연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방식까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될까?’

모두의 궁금증, 혹은 의심.

그런 의심과 함께,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되었다.

*

“진짜 우리 둘밖에 없네?”

불이 꺼진 복도를 둘러보던 이은솔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미술관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복도의 불은 모두 꺼져있었다. 최슬아가 이은솔에게 답했다.

“응. 1인 관람이라니까.”

“계속 이렇게 한 명씩만 관람하는 거야?”

“아니. 밤에만. 이벤트로 딱 100팀만 받는대.”

“무슨 이벤트인데?”

“영화 관람한 사람들 중에 추첨한다더라. <러빙 고흐>.”

1인 관람에 대한 최슬아와 이은솔의 대화.

“PD님. 지금 이은솔이 네이버 카페 실시간 검색어 7위예요. 8위는 저희 프로그램입니다.”

“부장님. ‘더 서울’ 검색어 10위 올라갔습니다.”

최슬아와 이은솔이 ‘더 서울’과 고흐전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검색어 순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말에 김PD와 백부장이 각자의 자리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정작 <러빙 고흐>에 대한 반응은 없었다. 노트북을 켜 인터넷을 확인하던 유선이 말했다.

“이은솔, 더 서울, 스타의 하루가 검색순위에 들어갔고...저희 얘기는 아직 없어요.”

유선의 말에 하대리가 물었다.

“<러빙고흐>랑 반 고흐 둘 다요?”

“네. 둘 다 없어요.”

[오 이은솔 진짜 오랜만이네요 은퇴한 줄 알았어요.]

[저거 어떻게 감?]

[‘더 서울’ 고흐전 12월까지~영화 봐야지 응모권 줍니다]

[이거 완전 박물관이 살아있다인데?]

[오늘 방송 재밌네]

[이은솔이랑 최슬아랑 친구였구나]

실제로 인터넷의 반응은 유선의 말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스타의 하루>, 그리고 고흐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고, <러빙 고흐>에 대한 얘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거의 초기 그림이야. <감자 먹는 사람들>.”

“아, 교과서에서 봤어.”

“이건 고흐가 동생한테 보낸 스케치. 동생한테 보내는 편지에 구상 중인 그림의 스케치를 그려서 보냈대.”

“완성본이랑 많이 다르네.”

“고흐의 그림은 색이 중요하니까.”

고흐의 초기 그림과 동생에게 보낸 스케치들이 전시된 1전시실.

[이은솔 컴백함?]

[그런 얘긴 없는데]

[전시회 예매했습니다 저는 별이 빛나는 밤에가 좋은데 아직 안 나오네요~]

최슬아와 이은솔이 1전시실을 돌아볼 때까지 여전히 <러빙 고흐>에 대한 얘기는 올라오지 않았다.

“이러다 ‘더 서울’만 좋은 일 시켜주겠는데요.”

걱정스러운 듯 말하는 하대리. 반면, 한록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유선씨, 하대리님. 인터넷 반응은 10분 뒤에 확인하세요.”

그리고 한록은 다시 TV를 보기 시작했다. 화면에선 최슬아와 이은솔이 이제 2전시실로 향하고 있었다.

*

2전시실에 들어가자 보인 그림은 고흐의 <까마귀 나는 밀밭>이었다.

“고흐가 이 지역에서 살다가 죽었어. 정확하지는 않은데, 사람들은 이게 고흐의 마지막 그림이라고 추측하더라.”

흔히 사람들에게 고흐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그렸다고 알려진 <까마귀 나는 밀밭>.

“마지막 그림이 맨 앞에 걸려있네?”

그게 바로 이번 전시회에서 ‘더 서울’이 내세운 점이었다.

*

평범한 전시와는 다르게, 고흐의 죽음부터 시작해 역순으로 배치된 전시.

-사람들은 고흐를 천재, 혹은 정신이상자라고 생각하죠. 칼로 자기 귀를 자르고, 마지막엔 총으로 자살한 화가 말이에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런 부분은 빼고 가고 싶습니다. 모두가 아는 자극적인 일화들 말고, 고흐라는 사람자체를 알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한록과의 회의 당시 백부장이 이번 전시회에 대해 한 말이었다.

‘<러빙 고흐>에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한록에게 떠오른 생각이었다.

천재. 그리고 미치광이. 그러나 그 이전에 예술을 사랑한 사람이었던 화가.

‘더 서울’이 원하는 건 <러빙 고흐>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당신은 고흐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더 서울’과 자신의 입장이 같다. 그렇다면, 한번 시도 해볼 만한 이벤트가 있었다.

-백부장님. 잠깐 말씀 좀 드려도 될까요?

*

“아직까지 고흐의 죽음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여러 추측이 있을 뿐이다.”

<까마귀 나는 밀밭> 옆의 작품해설을 읽는 이은솔.

“자살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야?”

“보통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니란 의견들이 조금씩 있어. 유서가 없었거든.”

“어떤 거?”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다, 사실 누군가 실수로 쏜 총에 맞았는데 고흐가 숨겨줬다...말은 많은데 정확한 건 없어. 고갱이 죽였다는 말도 있고.”

“고갱이?”

“완전 음모론이지.”

고흐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최슬아와 이은솔.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는 곧바로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흐 사망 원인

[고흐 타살]

[고흐 고갱]

[고흐 자살]

세계적인 거장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 사람들의 반응을 자극하기에 딱 좋은 소재였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각자의 궁금증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고흐 사망 원인 9위. 고흐 10위예요.”

고흐는 이제 드디어 검색어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 얘긴 없지만, 그래도 고흐가 올라가긴 했네요.”

하대리가 약간 안도한 표정으로 말하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최슬아와 이은솔이 더 서울에 입장한지 8분이 지난 시간.

‘10분 뒤에 확인합시다.’

한록이 말한 10분과 거의 비슷한 시간이었다. 하대리가 한록에게 물었다.

“과장님, 시간 거의 딱 맞추셨네요.”

고흐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에 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과 점점 올라가는 순위.

‘더 서울’과 한록은 원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자극적인 소재 덕분이었다.

“<러빙 고흐> 얘기는 없지만, 고흐라도 검색어에 올라갔으니 다행이네요. 사람들이 이런 걸 좋아할 거라고 예상하신 거죠?”

“아뇨.”

그러나 한록의 계획은 이제 막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아직 2분 남았습니다.”

한록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계속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선 이은솔과 최슬아가 <까마귀 나는 밀밭>을 떠나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자살했다 치기엔 총 각도가 이상하다고 들은듯]

[고갱이 죽인거란 음모론도 나름 신빙성이 있긴 해요.]

[동네 애들이 장난으로 쏜 총에 맞은 거라는 게 가장 최근 추측임.]

[학계의 정설은 걍 자살입니다...]

각종 추측으로 한층 뜨거워진 인터넷의 반응.

이은솔과 최슬아의 앞에 걸린 <피아노를 치는 마르그리트 가셰>.

그리고-

“어? 이거 움직이는 거야?”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며 피아노를 치는 그림 속 여자, 마르그리트.

2전시실의 두 번째 그림은 <러빙고흐>의 장면 중 일부였다.

‘촬영 때는 전시 중간에 <러빙 고흐>의 영상을 삽입했으면 합니다.’

한록이 <스타의 하루> 촬영을 위해 제안한 것. 촬영을 위한 특별 이벤트였고, 다행히 백부장은 한록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다.

이은솔이 그림 옆에 붙은 설명을 읽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치는 마르크리트 가셰>. <러빙 고흐>의 영상 중 일부. <러빙 고흐>는 고흐의 삶을 그린 영화이다.”

그 말과 함께, 그림 속 여자가 고개를 돌려 이은솔을 바라보았다.

“헉!”

[아씨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아니라 해리포터넼ㅋㅋ]

[고흐 귀도 고갱이 잘랐다는 얘기가 있죠. 고갱이 죽였다는 것도 완전 말도 안 되는 얘기는 아닐 듯.]

[애초에 고흐는 총을 못 쐈다고 함,]

[이은솔 수명 최소 3년 단축]

[여기 어떻게 가요 ㅠㅠ? 그냥 관람 말고 저렇게 둘이 가는 거요 여친이랑 가고 싶은데..]

인터넷은 고흐의 죽음에 대한 음모론과 움직이는 그림. 그리고 오랜만에 컴백한 이은솔 등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얘기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연예인. 미스테리. TV. 사람들의 관심.

끊임없이 얘기를 주고 받으며 화제성을 키우는 인터넷의 반응들.

‘모두가 이 방송에 집중하고 있다.’

조건은 완벽했으니, 이제 진짜 ‘더 서울’과 한록의 목적이 드러날 때가 왔다.

-고흐라는 사람 자체를 알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백부장의 그 말이 현실이 될 순간이 왔다.

‘당신들이 이 방송을 보고 끝나는게 아니라 전시회와 <러빙 고흐>를 보러 오고 싶게.’

‘고흐라는 사람의 삶과 그림에 대해 알고 싶게.’

‘궁금해서 참을 수 없게 만들어보겠다.’

한록의 생각과 함께, 최슬아가 그림 옆의 안내문을 읽어내려갔다.

“<러빙 고흐> 속 마르그리트는 고흐의 죽음을 추적하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고흐의 죽음만 궁금해 하는군요.’”

그리고 그 아래에 적힌 말.

최슬아. 이은솔. ‘더 서울’. 고흐의 죽음. 이 방송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에 대해선 뭘 알고 있죠?”

그 말에-

“유선씨. 지금 검색어 순위 어떻게 돼요?”

“어...<스타의 하루> 2위요. 그리고...”

“그리고요?”

“빈센트 반 고흐. 1위네요.”

검색어의 순위가 바뀌기 시작했다.

“10분 지났습니다.”

한록이 하대리에게 말했다.

*

‘네가 고흐에 대해 뭘 알고 있냐.’

방송과 최슬아, 이은솔이 만든 화제성을 모두 고흐에 대한 관심으로 바꿔버린 대사.

<러빙 고흐>의 대사에 ‘빈센트 반 고흐’는 각종 사이트의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이게 무슨 영화라고요?]

그리고 대사 덕분인지, <러빙 고흐>도 슬슬 사람들의 관심사에 들어오고 있었다.

‘좋아. 잘 되고 있다.’

방송의 모든 이슈를 고흐에게로 가져오는 건 성공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러빙 고흐>를 알리는 것 뿐이다.

[이제 끝이지?]

최슬아에게 말하는 이은솔. 그러자 최슬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휴게실까지 전시동선에 포함이야.]

<러빙 고흐>의 영상이 나오는, 이번 방송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할 수 있는 휴게실.

거기서 최슬아와 이은솔이 어떤 반응을 하고, 어떤 대화를 주고 받느냐에 따라 <러빙 고흐>의 흥행이 결정될 것이다.

[들어가자.]

최슬아와 이은솔이 휴게실로 향했고, 한록은 TV를 보며 생각했다.

백부장. 유권호. 최슬아. 이은솔. 광고. <스타의 하루>. 수많은 사람. 새로운 방식.

오늘 이 순간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전부 사용해 봤다.

그러니...

‘자, 시작해봐라.’

이제 그 결과를 확인해 볼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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