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19화 (119/263)

119. 회사에 필요한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회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한록은 눈앞에 앉은 백부장의 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자신에게 좀 더 가까워진 백부장의 실. 그리고 현차장의 [끝났다]는 말.

‘생각보다 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군.’

그렇게 생각한 한록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현차장이 말했다.

“회의에서 일이 좀 있었으니...이번 일은 저희가 물러나는 걸로 하겠습니다. 한 번 포스터로 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나 찾아보겠습니다.”

‘다른 회사랑 싸울 순 없다’는 명목으로 더 서울의 편을 들어주는 현차장.

하지만 잘 들어보면 결국 ‘생각은 해보겠다’ 정도의 입장이었다.

회사 간의 일이고. 한번 결정을 내리면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발을 뺄 곳을 남겨둔 것이었다.

“아까 전 언쟁은 죄송했습니다. 잘해보려는 욕심이 지나쳤습니다.”

한록 역시 남차장에게 사과를 건넸다.

“이게 사과입니까?”

조금도 굽히는 태도가 없는 사과. 남차장의 마음에 찰 리가 없었다.

“남차장. 우리도 그만하자.”

하지만 저렇게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백부장이 적당히 하자는 상황에서 사과를 안 받을 수도 없다.

“네. 알겠습니다.”

결국 남차장은 팔짱을 끼고 한록의 사과를 대충 받아들였다.

*

그렇게 ‘포스터 설치도 한 번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 다시 말해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이 끝난 회의.

회의실을 나가기 직전, 한록이 백부장에게 따로 인사를 건넸다.

“분쟁을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제 욕심이 과했습니다.”

“아니에요. 이미 끝난 얘기고, 더 잘해보려고 했다니까요.”

“감사합니다.”

“스크린 설치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전시에는 어렵지만, 다음에는 꼭 적용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남차장과 달리 처음부터 스크린 설치에 호의적이었던 백부장. 그녀의 진심에 한록이 백부장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부장님. 전 이 일에 다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말에 백부장이 말을 멈췄다.

미술관이 영화와 협업을 해서 마케팅을 한다. 그건 한국에선 거의 처음으로 있는 일이었다.

한록의 말처럼, 앞으로도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걸 할 수 있겠습니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

그렇게 백부장에게 미끼를 던진 한록.

백부장은 답이 없었으나, 그녀의 실은 망설이듯 한록에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한 한록이 백부장에게 인사를 건넸고 회의실을 나섰다.

“죄송합니다, 또 실수를 했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회의실을 떠난 한록. 그리고 한록이 사라진 곳에 혼자 남은 백부장.

백부장은 2주간 있었던 한록과의 만남을 떠올리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제안하네. ’

처음 한록을 보며 했던 생각.

그리고 오늘 회의를 마칠 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다음 번엔...다음 번엔 꼭 미디어 아트를 시도해보자.’

백부장은 첫 회의부터 한록의 말이 정답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모움’ 미술관에게 매년 뒤처지는 더 서울. 그런 더 서울에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남차장이 이렇게나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자신도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늘 한록이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걸 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

백부장이 항상 생각해오던 다음.

매번 다음을 생각하다가 ‘더 서울’은 만년 2등이 되었고, 자신은 50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변하지 않으면 그 다음은 아마...

‘그 다음이란 게 있기는 한가?’

평생 오지 않을게 분명했다.

망설이는 백부장. 그리고-

“이과장. 어떻게 됐어?”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한록의 손에 감긴 실.

*

다음날. 한록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백부장이었다.

“전시 기간 내내 스크린을 설치하는 방향으로 진행해보겠습니다. 동선도 마지막 스크린을 중심으로 짜 볼 예정입니다.”

늘 전화를 하던 실무자들이 아니라 백부장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

이건 백부장이 이 일을 직접 추진하겠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이제 남차장의 반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백부장의 제안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가수 이은솔의 소속사에 섭외 요청을 넣어보려 합니다.”

“이은솔이요?”

“네. 최슬아와 친분이 있으니 방송에 같이 나오면 더 효과가 있을 것 같네요.”

이은솔. 백부장의 말처럼 최슬아와 친분이 있고, 꽤 유명한 젊은 솔로 가수였다.

“이은솔이 이 전시회에 관심이 있다고 합니까?”

“아뇨. 그냥 저희 쪽에서 먼저 제안해보는 겁니다.”

그 말에 한록은 생각에 잠겼다.

‘<러빙 고흐>야 이은솔이 오면 좋지. 다만 더 서울측은 이은솔을 캐스팅하는 게 큰 의미가 있으려나?’

“사람들은 대부분 PPL에 거부감을 가집니다. 최슬아처럼 기존에도 고흐전에 관심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이 아니라면 오히려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어요.”

물론 이은솔이 최슬아와 함께 나온다면 방송은 더욱 큰 이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은솔은 고흐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상황.

애초에 영화는 대중예술이니 <러빙 고흐>는 연예인이 PPL을 한다고 해도 별 타격은 없을 것이다.

다만 연예계와 거리가 먼 ‘더 서울’ 측은 악효과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네. 저희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이는 백부장 역시 미리 생각한 일인 듯 했다.

그럼에도 백부장이 이 일을 추진한 이유.

-부장님. 다음이란 건 없습니다.

한록의 그 말이 가슴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예인이 전시를 홍보한다는 게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습니다. 다만, 이번 <러빙 고흐>와의 협업이 아니면 더욱 추진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번에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은 다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백부장의 말.

그 말을 듣고 있던 한록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불과 2주 전. 백부장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너무 겁이 많은. 언제나 부하의 의견에 휘둘리던 초라한 중년의 모습.

그러나 백부장은 2주만에 큰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영도. 유선. 현차장. 정부장. 백부장. 그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있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안다.

많은 사람들이 변하고 싶어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건 계기일 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 한 번의 계기로 변화할 수 있는가.

“저희도 이은솔을 제대로 써 볼 방법을 생각해보겠지만, 이런 일에 경험이 없으니 충분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이과장님이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자신은 또 어떤 기회를 만날 수 있는가.

이전 생에서는 절대 경험해보지 못했던 즐거운 경험들.

“네. 저희도 아이디어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즐거운 경험들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전시 기간 동안 스크린 설치. 거기에 모든 전시를 관람 후 <러빙 고흐> 영상으로 이어지는 전시 동선까지.

백부장의 파격적인 협조로 ‘더 서울’과의 회의는 드디어 끝이 났다.

“부장님. ‘더 서울’이 스크린 설치, 동선 재배치 끝냈다고 합니다.”

“이은솔은?”

“섭외 끝났습니다. 최슬아가 이은솔한테 고흐의 그림에 대해 해설을 하는 기획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최슬아가 더 부각 될 테니까 거부감이 덜하겠네.”

‘더 서울’은 1인 관람을 위한 준비를 마쳤고, 이제 전시회의 개막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 ‘더 서울’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오늘 회장님과 사장님께서 함께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러빙 고흐>에 관심을 보이던 하태준.

그가 약속을 지키러 온 것이다.

*

밤 10시. 원래라면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더 서울’ 역시 문을 닫은 지 오래인 시간.

그러나 더 서울의 모든 직원들은 로비에 나와 하태준과 하정엽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긴장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남차장이 백부장에게 소곤거렸다.

“부장님. 저 스크린 정말 괜찮은 겁니까?”

하태준은 예술품을 즐기는 수집가였고, 이번 고흐 전의 그림 중 두 점도 하태준이 개인적으로 소장하던 그림이었다.

하태준이 빌려준 그림이 <러빙 고흐>에 묻혀버릴까 봐 걱정하는 남차장.

“이미 설치한 건데 어떡해. 지금 와서 뗄 순 없잖아.”

백부장이 남차장을 달랬지만, 남차장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전부 ENM 때문인 겁니다.”

“그럼 이게 잘 되면. 그것도 전부 ENM 덕분인가?”

“...잘 될 리가 없죠.”

“그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지.”

“부장님. 어디 신인 화가도 아니고, 고흐전입니다. 굳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 고흐전이지. 그것도 다른 회사랑 협업하는 고흐전. 이게 아니면 뭘로 모움을 이겨보겠어?”

“회장님한테는 저희가 기획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꾸준히 남차장을 설득하려는 백부장. 그러나 남차장은 여전히 백부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백부장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남차장.”

“네.”

“남차장이 워낙 이런 걸 싫어하니까.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 알아.”

‘마음이 바뀐 건가?’

그러나 이어진 백부장의 말은 단호했다.

“그래도 이번엔 제대로 해볼 거야. 남차장이 이해하든 말든 상관없어.”

언제나 자신의 말에 휘둘리던 백부장이 보여준 결단. 그 말에 남차장이 놀라 백부장을 바라보았다.

“회장님 오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더 서울의 문이 열렸다.

*

하태준, 그리고 하정엽의 등장에 고개를 숙이는 더 서울의 직원들.

그러나 하태준은 인사도 없이 바로 전시관으로 향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이 고흐전 관람을 위해서란 걸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고흐의 초기 그림이 전시된 1실. 대표작들이 전시된 2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러빙 고흐>의 영상이 나오는 휴게실로 이어지는 전시동선.

1실과 2실을 지나는 동안 하태준이 한 말은 딱 하나였다.

“한적하니 좋군.”

전시의 기획이 아닌 1인 관람에 대한 언급.

남차장의 *큐레이션이 하태준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큐레이션: 그림을 선별하고 내용을 구성해 전시를 기획하는 일. 전시기획.

회장이 직접 방문한 전시회. 그것도 고흐의 그림이 있는 전시회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전시는 하태준의 마음에 차지 않은 상황.

백부장과 함께 하태준의 뒤를 따르던 남차장의 얼굴이 긴장으로 하얗게 질렸다.

‘역시. 남차장의 기획은 너무 평범해.’

하태준의 반응에 압박을 느낀 건 백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년째 모움 미술관에 뒤처지는 상황에서 회장이 ‘더 서울’을 방문했다. 이번 전시에도 실패하면 다음 기회는 없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게 끝인가?”

“아뇨, 휴게실까지 이어지는 동선입니다.”

‘아직 기회가 있다.’

백부장에게는 마지막 남은 한 수가 있었다.

“그래.”

휴게실로 향한 하태준. 휴게실은 평소처럼 개방된 형식이 아니라,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형식이었다.

“휴게실까지 동선이 이어지는데 문을 닫아놨다고? 왜지?”

하태준이 백부장에게 날카롭게 물었고, 그 말에 남차장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한록. 이럴 줄 알았다.’

휴게실로 이어지는 동선. 그리고 휴게실의 문을 닫아두는 방식. 이 구성은 한록이 제안한 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편이 좀 더 극적인 연출이 가능해서 그렇습니다.”

“백성연이. 그게 동선을 방해할 정도의 연출이야?”

하태준의 따끔한 질책. 그 말에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바닥만 바라봤다.

‘큰일이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건 백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백부장은 용기를 내서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30년 전, 자신이 직접 영국에서 데려온 인재. 백부장의 말에 하태준이 아무 말이 없다가 문 손잡이를 잡았다.

“백성연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보지.”

그 말과 함께 하태준이 휴게실의 문을 열었다.

*

하태준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전시실만큼이나 거대한 공간. 그리고 그 벽면에 난 창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창문처럼 꾸며진 스크린이었다.

그리고 창문에 비치는 고흐의 그림이자 <러빙 고흐>의 영상들.

창문으로 보이는 아몬드 나무에 꽃이 피었다가 지고, 밤의 카페 테라스에 사람들이 오가며 대화를 나눈다. 고흐가 죽기 직전까지 머물렀던 밀밭에서는 까마귀 떼가 모여있다가 한꺼번에 흩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고흐의 대표작인 ‘별이 빛나는 밤. 그곳의 하늘에서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별이 깜빡이는 모습들. 창문으로 바라보는 고흐의 그림.

아니, 고흐가 되어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들이었다.

한동안 말없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하태준.

하태준의 말을 기다리던 백부장이 용기를 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디어를 낸 이한록 과장이 했던 말입니다.”

흘러가는 구름과 깜빡거리는 별. 멈춰있지 않고 움직이는 고흐의 그림.

그걸 보여줘야 하는 이유. 고흐전을 보러온 관객들이 <러빙 고흐>를 봐야 하는 이유.

“문을 여는 순간, 관람객들은 고흐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겁니다.”

고흐의 그림이 아닌, 고흐의 눈으로 바라 본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한록이 스크린 설치를 주장하며 했던 말이었다. 그 말에 하태준이 백부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말했다.

“백성연이.”

“네, 회장님.”

“지금 더 서울이 그 놈 말 한마디에 전시를 홀랑 바꿨다는 거야?”

“...좋은 아이디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태준의 지적에도 백부장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하태준은...

“이번엔 괜찮게 했네.”

백부장에게 칭찬을 건넸다.

아주 짧은 칭찬.

아니-

“30년 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어.”

백부장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 온 말이었다.

*

관람을 마치고 더 서울의 사장실로 향한 하태준과 하정엽.

의자에 앉은 하태준이 하정엽에게 말했다.

“이한록 그 놈. 여기로 옮겨도 되겠군. 백성연이 관장이 되면 그 다음으로 올 만한 놈이 없거든.”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하태준.하태준은 아마 한록의 전시회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정엽이 하태준에게 말했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떤 자리를 준다고 해도 본인이 반대할 겁니다.”

“그래봤자 네 직원인데. 네가 옮기라면 옮기는 거지.”

“그런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닙니다.”

하태준의 말에 하정엽은 아주 단호하게 답했다. 하태준이 하정엽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건방지군.”

그러나 하태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있었다.

‘꽤 만족하신 거다.’

말과는 달리 흡족해하는 하태준의 태도. 그렇게 생각한 하정엽이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이번 마케팅은 전시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아직 <러빙 고흐>의 2차 광고가 남아있습니다. 2차 광고가 공개되면 전시도, <러빙 고흐>도 더 큰 주목을 받으리라 예상합니다.”

“그래서?”

“기대하셔도 좋다는 말씀입니다.”

하정엽은 아주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이었다. 하태준은 그 말에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당당하게 ‘아직 끝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하정엽.

그리고 하태준의 질책에도 평소와 달리 주눅 들지 않던 백부장.

모두 한록과의 만남 후 생긴 변화였다.

“하정엽.”

“네.”

“이한록 그놈. 괜찮은 놈이다.”

하태준의 말에 하정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을 꽤 잘하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멀었군.”

그러나 하태준은 하정엽의 대답에 혀를 차며 답했다.

“그놈의 장점은 그게 아냐.”

엄청나게 뛰어난 능력. 마치 미래를 보고 오기라도 한 것 같은 확신. 그러나 하태준이 한록을 ‘좋은 직원’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놈이 하는 일은 재밌어 보이지.”

한록의 진짜 장점. 누군가에게 기대를 주고, 설렘을 준다는 것.

그래서...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지고.”

사람들을 성장하게 만드는 것.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래서 변화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

“회사에 필요한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하태준이 바라보는 한록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

하태준이 하정엽에게 질문을 던졌다.

“<러빙 고흐> 2차 광고가 언제지?”

“일주일 뒤입니다.”

“그래. 광고 나오면 바로 보고해.”

그리고 말을 마치고 난 후 무언가 생각난 듯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러빙 고흐>와 한록의 다음 활약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

‘나도 그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군.’

변화하고 있는 건 비단 ENM의 직원들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

그리고 일주일 뒤, CK ENM의 마케팅 부서. GV팀은 오늘따라 유독 바빠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최슬아의 촬영이 시작되는 날이자-

“오늘부터 <러빙 고흐> 2차 광고 공개됩니다.”

2차 광고가 공개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몇시부터?”

“지금부터요.”

정부장에 대한 한록의 답.

그리고 한록의 말과 함께 전국에 걸려있던 <러빙 고흐>의 광고가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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