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16화 (116/263)

116. 이제 이런 일은 전문가지.

“두 번째 광고?”

“네. 이제 이게 고흐와 관련 있는 광고란 걸 알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 관심이 그냥 광고에 대한 관심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러빙 고흐>의 관람까지 이어지길 유도해야 하구요.”

영화 마케팅의 목적은 언제나 사람들이 영화관에 앉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따라서 지금 광고가 화제를 얻었다고 해서 마케팅은 끝난 게 아니었다.

이 광고가 바로 <러빙 고흐>의 광고란 걸 알리는 내용의 광고가 하나 더 필요했다.

“그건 언제부터 나가는데?”

“3일 뒤부터 송출합니다.”

“허. 아직 끝이 아니라 이거지.”

한록의 말에 박과장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이 뒤에는 1인 관람도 있다며? 그거는?”

“광고가 끝나면 이벤트가 공개됩니다.”

“광고도 하고, 이벤트도 하고?”

“네, 맞습니다.”

광고가 끝나면 바로 최슬아를 섭외한 1인 관람 이벤트를 공개할 예정인 한록.

한록의 마케팅은 단순히 화제를 몰고 끝나는게 아니라, 이 관심이 <러빙 고흐>로 이어지기까지 위해 한 단계 한 단계 치밀한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대체 어디까지 계획을 세워둔 거야?”

“<러빙 고흐>가 500만이 될 때까지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바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관객수였다.

“회사 놀러왔어? 9시 지났어.”

그때 정부장이 호통을 쳤고, 마케팅 부서 사람들은 후다닥 자리에 앉았다.

‘부장님 화나셨나...?’

아침부터 시작 된 정부장의 호통.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슬쩍 정부장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정부장은 크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부장은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듯한 얼굴이었다.

정부장 역시 <러빙고흐>와 팬덤 마케팅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예상대로 풀려서 다행이야.’

그 모습을 보며 한록 역시 작게 안도했다.

사람들 앞에서 <러빙고흐>로 500만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긴 했지만, 팬덤 마케팅을 활용해보는 건 한록 또한 처음이었다.

잘 될 거란 자신은 있다. 하지만 정확히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한록 역시 확신할 수 없는 상황.

다행히 지금까지는 모두 한록이 예상한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자, 남은 건...’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하는 한록.

‘해바라기 광고의 반응이 더 올라오길 기다려야 해. 3일 정도면 화제성이 식겠지. 그러면 그때 2차 광고를 공개한다. 그리고 1인 관람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이게 <러빙 고흐>의 마케팅이란 걸 알리는 거야.’

2차 광고와 1인관람. 유권호. 그리고 최슬아.

최슬아는 이미 섭외까지 완료해 둔 상황이니 더 이상 걱정할 거리는 없었다.

‘전부 예상대로 진행 될 거다.’

한록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이어리를 덮었다.

“이과장. 이거 봤어?”

그러나 어딘가에는 한록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도 있는 법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광고 좀 더 해도 되겠는데?”

그것도 즐거운 쪽으로.

*

한록이 ‘더 서울’과의 미팅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상황. 현차장은 <러빙 고흐>의 광고 반응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대황: 광고하는 형아들. 해바라기 광고 그거 대체 누가 한 거임?]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러빙 고흐>에 대한 글.

현차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글을 클릭했다.

게시글에선 광고업계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쎔: 일단 저흰 아님. 부장님이 저런 광고 좀 만들어오라고 쪼는 중^^

흐사드: 여기도 아님

이모션: 여기도 아닌디? 다 아니면 어디가 한 거임?

에쎔: 외국에서 한 건가? CK빼고 웬만한 회사 다 나온 거 같은데

CK 기획: ㅎㅎ..

흐사드: CK형 뭐 아는 거 같은데? 거기 거임?

에쎔: 그럴 줄 알았다 CK네

ㄴCK 기획: 우리 아님 ㅋㅋㅋ근데 들은 게 있는데 말은 못함. 유명한 사람이 한 거예요.

에쎔: 엥 유명한 사람인데 왜 우린 모르지..

흐사드: 역시 CK일 거 같았음 형 광고 좋더라~

대황: ㅇㅇ 좋더라 연말에 상 하나 받을 듯?

CK 기획: 우리 광고는 아니라니까 ㅋㅋ

한국 최고의 광고회사 사람들이 한록의 광고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모습.

그것도 그냥 얘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다들 광고에 대해 꽤나 좋은 평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현차장의 미소가 더욱 커졌다.

‘흐흐. 우리가 한 거다, 이 녀석들아.’

전문 분야도 아닌 곳에서,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비록 모든 아이디어는 한록이 낸 것이었지만, 발을 살짝 담갔다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으쓱 해질 정도의 기쁨이었다.

[대황: 어. 이거 해바라기 광고 얘기인 듯. 링크 여기.]

댓글은 대화를 나누던 사람 중 한명이 유튜브 링크를 가져온 걸로 끝이 났다. 아마 다들 유튜브 영상을 보러 간 모양이었다.

‘뭐지?’

링크를 클릭한 현차장.

화면에서 나온 익숙한 얼굴에 현차장이 심각한 얼굴로 영상을 지켜보았다.

*

그리고 잠시 후. 더 서울과의 미팅에서 돌아온 한록.

“이과장. 이거 봤어?”

현차장이 한록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외쳤다.

“무슨 일이십니까?”

“<러빙 고흐> 말이야. 광고 좀 더 해도 되겠는데?”

현차장이 손짓을 하며 한록을 자신의 자리로 불렀다. 현차장은 꽤 놀란 표정이었다. 분명 <러빙 고흐>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유권호가 글 올렸어.”

그리고 그 문제는 다행히도 좋은 쪽으로 벌어진 것 같았다.

현차장이 보여준 것은 유튜브 화면이었다.

[해바라기 광고...결국 이거였네요.]

[업계 종사자 아무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는 광고.]

[어느 날 서울 하늘에 뜬 해바라기?]

유튜브에서 역시 꽤 이슈가 된 <러빙 고흐>의 광고.

마케팅 채널들과 이슈를 업로드하는 채널들에서는 이미 <러빙 고흐>에 대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채널들 밑. 가장 구독자수가 높은 채널이 있었다.

범죄 사건이나, 추리 소설을 리뷰하는 채널. 바로...

[해바라기 광고의 정체. 과연 유권호의 작가의 추리는?]

유권호의 채널이었다.

<안녕하세요. 크라임 헌터 유권호입니다. 오늘 할 얘기는 실화이긴 한데 범죄 사건은 아니에요. 여러분도 다 아시는 ‘해바라기 광고’에 대한 얘기입니다. 간만에 꽤 재밌는 화제가 나왔네요.>

영상은 유권호가 어디서 해바라기 광고를 발견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으로 이 광고가 아무런 실체가 없는 광고인지 알아냈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때 깨달았죠. 아,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그걸 추리소설 작가, 그리고 유튜버답게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편집한 유권호.

유권호의 영상은 한록마저 ‘내가 이런 마케팅을 했다고?’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영상이었다.

<전 이 광고에 대해서 계속 조사해 볼 생각입니다.

다음주에는 게스트와 함께 2편이 올라올 테니 ‘해바라기 광고’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으신 분들은 잊지 말고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세요.

여러분한테만 말씀드리는 건데, 사실 실마리를 잡은 부분도 있습니다. >

영상 끝에 나오는 유권호의 멘트. 그 말에 한록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러려고 더 서울 측이 한 광고라는 걸 숨겼군.’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인터넷 네티즌들 사이에서 미스테리한 광고로 화제가 된 <러빙 고흐>의 광고.

유권호는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인 듯 했다.

“이거 좋아요 수 봐. 평소 유권호 채널의 두배야.”

현차장의 말처럼, 댓글 창에는 유권호의 영상에 대한 호평이 가득했다.

[작가 유권호가 ‘일주일만 기다려라’라고 한 이유.]

[해바라기 광고. 김탐정이 파헤쳐 보았습니다.]

거기에 이미 유권호의 영상을 리뷰하는 채널과, 유권호처럼 <러빙 고흐>에 대해 추리하는 영상까지 올라오는 상황이었다.

“지금 영상 올라온 게 이 정도면...앞으로 반응이 더 커지겠네요.”

“어, 그렇지. 영상 만드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럼 차장님 말씀대로 2차 광고는 미뤄야겠습니다. 반응이 좀 더 오래 갈 것 같아요.”

“응. 그게 좋겠어.”

결국 한록은 2차 광고의 일정을 조절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네. 유권호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도 몰랐고.’

한록의 예상보다 몇 배는 더 뜨거운 <러빙고흐>의 광고에 대한 관심. 이 광고는 이미 한록의 손을 떠나 스스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만든 사람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마케팅.

한록은 자신이 최경준과 하정엽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 혼자가 아니라, 이 영화의 팬들이 영화를 마케팅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 한 명이 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성과가 나올 거다.’

아직 영화가 공개되지도 않았는데, 그 말이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었다.

‘잘 돼서 다행이다.’

이번 마케팅은 정부장만이 아니라 한록에게도 일종의 도전이었다.

<삼일의 삶>. <퀸>.

언제나 관객들을 완벽하게 조성된 환경에 집어넣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한록.

그러나 이번 팬덤 마케팅은 이전과는 정반대의 방식이었고,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결과를 가져와 주었다.

‘그래. 마케팅에 변수를 넣는 게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구나.’

업계 10년차에 이르는 한록. 거기에 모두가 천재라고 부르는 화려한 경력까지.

그런데도 여전히 새로운 게 있고, 도전해볼 영화가 있고, 성장할 부분이 있다.

한록은 그 사실이...

‘재밌다.’

너무나 즐거웠다.

새로운 영화. 새로운 관객. 새로운 시대. 새로운 마케팅.

그걸 만날 때마다 느끼는 감정.

‘그래서 이 일이 좋은 거야.’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과 즐거움이었다.

*

“2차 광고는 일주일 미루고, 최슬아랑 큰 텀 없이 내보내는 게 좋겠네요.”

한록의 두 번째 타겟. 최슬아.

최슬아는 연예인 못지 않은 외모와 입담으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작곡가였다.

그런 최슬아가 관찰예능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한록.

한록이 생각하는 두 번째 마케팅은 최슬아가 출연하는 관찰 예능에 *PPL로 1인 관람이 나오는 것이었다.

*PPL : 간접광고

“그래. 방송국이랑 최슬아 쪽에 연락할 건 없고?”

“네. 이건 그냥 저희가 광고 일정만 변경하면 되는 거니까요.”

이미 방송국, 그리고 최슬아의 소속사와는 협의가 완료된 상황.

“더 서울이 뭐래?”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더 서울이었다.

한록은 고흐 전시전의 이벤트 공간에 <러빙 고흐>의 장면이 나오는 스크린을 설치하길 원했다.

그러나 ‘더 서울’이 격렬하게 반대를 하는 상황.

‘이번 전시회는 고흐의 원작 그림으로만 진행합니다. 그림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될 만한 요소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더 서울측이 CK ENM에 전달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이 뒤에 숨은 진짜 본심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어디까지 너희의 편의를 봐줘야 하는 거냐?’

고흐의 그림을 부각하려는 더 서울. 그리고 <러빙 고흐>에 대해 더 언급하려는 한록.

‘누가 이 일의 스포트 라이트를 가져갈 것이냐.’

다른 회사, 다른 부서와 협업을 할 때면 늘 문제가 되는 부분이었다.

‘<러빙 고흐>가 흥행한다면 이건 고흐 전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건 <러빙 고흐>가 흥행한 다음의 얘기죠.’

2주째 똑같은 내용이 오가는 회의.

그러나 지금은 촬영이 당장 다음 주인 상황이었다. 이제는 정말 ‘더 서울’과 결단을 내야했다.

걱정스러운 얼굴의 현차장이 한록에게 물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는데. 본부장님한테 넘겨보지 그래?”

그리고 한록은...

“아뇨. 이번주 안이면 끝날 겁니다.”

이제 설득과 협박에는 전문가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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