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죠.
[여러분, 이거 아시나요? 해바라기는 생각 하지 마.]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진하성의 저녁 산책]. 유권호는 그 곳의 목요일 게스트였다.
유권호의 말에 진하성이 답했다.
[어! 저 그거 봤어요. 오늘 점심 먹는데 TV에 나오더라구요. 그거 대체 뭐예요? 광고인가? 무슨 광고죠?]
[그게 문제예요. 광고인 거 같긴 한데, 이게 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러빙 고흐>의 광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유권호.
[TV만이 아니에요. 길 가다보면 여기저기 이 광고가 걸려있거든요. 그리고 그 광고 주위에는 꼭 해바라기가 들어간 다른 브랜드 광고들이 걸려 있어요. 옷이나 게임 같은 광고요.]
[그래요? 전 못 봤는데. 아, 피디님은 보셨다네요.]
[근데 웃긴 게 있어요.]
[뭔데요?]
[이 브랜드 광고들이 말이에요. 사실은...]
[어. 작가님. 이 긴장감 뭐죠? 이 연출 뭐야?]
[잊었어요? 저 추리소설 작가예요.]
[아, 그랬죠. 아무튼 이 브랜드 광고들이?]
[다 실제로 없는 브랜드들이에요.]
[어?]
“어?”
핸드폰을 하기도 어려울 만큼 꽉 찬 퇴근길 버스.
그 버스에서 무료하게 라디오를 듣고 있던 승객들이 진하성과 함께 놀라서 중얼거렸다.
버스에서 동시에 들린 소리에 몇몇 사람들은 피식 미소를 지었고, 몇몇 사람들은 어색하게 목덜미를 만졌다.
어쨌든 라디오에 집중하고 있던 승객들. 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브랜드가 없는 광고라고? 진짠가?’
그때 버스가 쇼핑몰 앞에서 빨간불에 걸려 잠시 멈추었다. 쇼핑몰 벽면에는 <러빙 고흐>의 광고와 다른 광고들이 걸려있었다.
커다랗게 걸린 [해바라기는 생각하지 마세요.] 라는 말. 그리고 그 옆에 걸린 해바라기 정원을 배경으로 한 신발 광고.
그 장면을 보고 음악사업본부의 주과장은 생각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잖아?’
쇼핑몰 벽면에 걸린 광고는 지금 보니 정말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였다.
‘진짜 없는 브랜드인가?’
그런 호기심에 버스에 가득 찬 사람들 사이에서 기어코 핸드폰을 꺼낸 주과장. 주과장은 인터넷 검색창에 광고에 나온 브랜드를 검색했다.
<보테인>
<검색결과: 없음.>
‘어. 진짜네?’
결과는 유권호의 말대로였다.
[와, 진짜네요. 아무것도 안 걸려요.]
진하성 역시 유권호의 말대로 검색을 해 본 모양이었다. 유권호가 신이 난 말투로 말했다.
[그렇다니까요. 이건 누가 오로지 해바라기를 인식시키려고 한 광고에요. 재밌지 않아요?]
[그러게요. 꼭 추리 소설 도입부 같아요. 작가님 책 광고 아니죠?]
[제 책 광고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전 이게 무슨 광고인지 감도 안 잡혀요. 아는 사람 계시면 제보 좀 해주세요.]
[그래요. 오늘은 이 얘기가 좀 궁금하네요. 우리 청취자분들, 혹시 아는 거 있으면 사연 보내주세요. 그럼 첫 곡은 이매진 드래곤즈의 warriors입니다. ]
그 말을 끝으로 라디오에선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버스 역시 신호가 바뀌었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러빙 고흐>의 광고와 신발광고. 그리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
멍하니 라디오를 듣고 있던 주과장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홀린 듯 무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해바라기]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하는 주고장.
[이 광고 아시는 분?]
그리고 주과장의 옆. 자신이 자주 가는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한 남자.
[야 너 이거 봄?]
버스의 맨 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까지.
[이게 뭔데?]
[몰라. 무슨 광고래.]
[근데 왜?]
[무슨 광고인지 아무도 모른대.]
[그게 뭔소리야?]
버스 안의 사람들은 본인도 자각하지 못한채로...
[지금 진하성 라디오 틀어봐. 그 얘기 하는 중.]
<러빙 고흐>에 대해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
한편 CK ENM의 마케팅 부서.
한록은 기자들과 전화를 하고 있었다.
“네, 기자님. 지금 기사 올려주시면 됩니다.”
인터넷에 <러빙 고흐>의 광고에 대한 반응이 조금 올라온 것을 확인한 한록. 한록은 기자들에게 미리 작성해둔 보도 자료를 돌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로부터 10분 후. 포털 사이트에선 이제 <러빙 고흐>에 대한 내용이 뉴스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울 한복판에 정체불명의 해바라기?]
[가수 진하성, 유권호에게 ‘광고하지 마세요’라고 독설.]
[해바라기는 생각하지마세요...이색 광고에 누리꾼들 시선 집중.]
기사들은 업로드 되는 즉시 포털사이트 메인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보도자료를 그대로 복사해가는 *어뷰징기사까지.
*어뷰징 기사: 클릭 유도를 위한 질 낮은 기사.
지금 최소한 수 만명의 사람들이 해바라기 광고에 대해 검색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정부장이 한록을 보며 생각했다.
‘...전부 이 녀석 말대로 됐군.’
한록의 말처럼 7시가 되자 갑자기 대폭 상승한 반응. 그 시작엔 유권호와 라디오가 있었다.
정부장은 이제야 한록의 계획을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애초부터 유권호가 이 광고를 언급할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구나.’
추리 소설 작가의 흥미를 자극하는 광고. 거기에 대중들도 이 광고에 호기심을 가진다.
“유권호가 라디오에서 이 얘기를 할 줄 알고 있었던 거냐? 그래서 광고 송출을 오늘로 잡은 거고?”
한록은 유권호가 라디오에서 <러빙 고흐>의 광고에 대해 얘기하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네, 맞습니다. 유권호 작가가 예전에도 라디오에서 해외에서 진행한 이런 마케팅을 언급한 적이 있거든요.”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거야? 그럼 왜 말을 안했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는 너무 허황된 소리로 들리니까요.”
“그래도 해야지.”
정부장의 말에 한록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제가 거기까지 말했으면 믿으셨을 겁니까?”
“일부러 말을 안했단 거냐?”
“네. 그랬으면 부장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다른 방식을 가져오라고 하셨을 거니까요.”
한록의 말에 정부장은 답이 없었다.
왜냐면, 한록의 말이...
“그랬겠지.”
사실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러빙 고흐>의 광고가 이슈가 될 거다.
유권호는 이 광고에 관심을 가질 거다.
그래서 라디오에서 광고에 대해 얘기할거다.
한록이 이 사실을 모두 말했다면, 자신은 과연 한록의 말을 믿을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니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란 결론만 나올 뿐이었다.
[지금까지 이매진 드래곤즈의 warriors였습니다. 노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데...해바라기 제보가 계속 들어오네요.]
노래가 났고, 이제 컴퓨터에선 진하성의 멘트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 해바라기 얘기가 트위터랑 포털 카페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갔대요.]
[역시, 진하성 파워.]
[아니죠, 작가님. 이건 유작가님 파워 아니에요?]
[그럼 우리 <진하성의 저녁산책> 파워인 걸로 합시다. 청취자 여러분, 기왕이면 검색어 1위로 만들어주세요.]
[욕심도 많으셔라. 여러분, 1위래요, 1위. 2위 안 됩니다. 1위여야 해요.]
[하하하.]
“부장님. 카페에 글 올라오고 있고, 트위터 반응도 좋습니다. 이제 퇴근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라디오를 듣고 있던 한록이 인터넷의 반응을 체크했다. 진하성의 말처럼 <러빙 고흐>의 얘기는 정말 인터넷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었다.
[아이디 joo0815님. 홍제3동에서도 이 광고를 보셨다고 하네요.]
[네. 아이디 2610sss님. 제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글을 보셨다고 하네요. ‘작가님, 이 광고 엄청 궁금해 하시는 거 같아요’ 라고 하시는데...맞아요. 꼭 답을 알고 싶거든요.]
여전히 <러빙 고흐>에 대한 얘기를 주고 받는 유권호와 진하성. 진하성의 얘기를 듣고 있던 정부장이 의아한 얼굴로 한록에게 물었다.
“유권호는 이게 고흐와 관련이 있단 걸 알고 있는거지?”
“네. ‘더 서울’ 이름으로 보낸 편지를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의도적으로 자신이 편지를 받은 사실을 숨기고 있는 유권호. 이건 한록 역시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었다.
“음...”
한록이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마 더 서울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의 흥미가 떨어질 거란 점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광고의 정체가 어느 정도 알려지는 거니까요.”
한록이 짐작하기에, 유권호는 한록이 만든 이 추리 게임이 최대한 널리 알려지길 원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 편이 얘기 거리가 되니까.”
그 이유는 자기가 가져온 얘기가 더 흥미로운 얘기로 받아들여지길 원하기 때문에.
그리고-
[전 이 광고가 너무 좋아요. 추리를 해야지 그 안에 숨은 사실을 알 수 있는 광고라니.대체 누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광고를 한 걸까요?]
자신의 마음에 든 광고가 조금 더 이슈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정말 즐거워 보이는 듯한 유권호의 목소리에 정부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은 믿지 못했던 팬덤 마케팅.
팬들이 스스로 영화를 홍보하고, 흥행을 이끈다. 정부장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공개되기도 전에 유권호는 이미 한록의 마케팅의 팬이 되어있었다.
‘만약 내가 이한록을 믿지 못하고 이걸 거절했으면...그랬으면 이런 결과는 없었겠지.’
믿음직한 부하. 일 잘하는 부하. 그런 사람은 많이 봐왔고, 눈앞의 한록 역시 든든한 부하였다.
하지만 정부장이 한록에게서 가장 좋아하는 면은 다른 점이었다.
‘그래. 이런 방식도 있는 거구나.’
바로 자신의 생각을 바꿔주는 점.
그래서 새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람이란 점이었다.
그리고 그건 여태 어떤 부하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부장님. 안 가십니까.”
한록이 정부장에게 말했다. 정부장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그리고 짐을 챙기는 정부장. 한록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았는지 계속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또 다른 일을 벌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한록.”
“네, 부장님.”
“다음부턴 보고 제대로 해라.”
아까 전 ‘부장님이 거절할 게 뻔하니 유권호에 대한 예상을 말하지 않았다’는 한록의 말에 대한 지적이었다.
‘혼나겠군.’
그렇게 생각한 한록.
그러나 정부장의 답은 한록의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다음부턴 안 믿어도 하게 해줄 테니까.”
그 말과 함께 정부장이 사무실을 나섰다.
*
다음날 마케팅 부서.
“현차장. 어제 <진하성의 저녁 산책> 들었어? <러빙 고흐> 얘기 나오던데?”
“아, 당연히 들었지. 어제만 기다렸다고.”
마케팅 부서는 아침부터 유권호에 대한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박과장이 현차장에게 물었다.
“그거 유권호 섭외한 거지?”
“박과장. 회의 때 뭐 들었어? 유권호가 알아서 말한 거야. 우린 아무 것도 안했어.”
“그게 말이 되나? 유권호가 알아서 인스타그램도 올리고, 알아서 라디오에서 홍보도 해줬다고?”
“그래. 유권호가 알아서 인스타도 올렸고, 알아서 홍보도 했어. 이게 팬덤 마케팅이란 거야.”
자랑스럽다는 듯 말하는 현차장.
“허, 참나...”
현차장의 말을 들은 박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과장 그놈, 진짜 뭐하는 놈이지? 진짜 무당 아냐?”
한록에 대한 감탄과 의문이 담긴 말.
“아닙니다.”
“아, 깜짝이야!”
그때 사무실에 도착한 한록이 대답을 했고, 박과장은 깜짝 놀라 고함을 질렀다.
“이과장이 왜 거기서 나와?”
민망한지 기침을 몇 번 한 박과장. 그러나 지금은 놀라움이나, 민망함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었다.
“광고 잘 된 거 축하해. 근데 이 뒤엔 어떻게 할 거야?”
바로 이 광고가 대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그래. 나도 궁금해 죽겠다. 이 회사 다니면서 이런 광고는 처음이야.”
그 말에 근처에 있던 송과장이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송과장뿐만 아니라 하대리와 최대리, 그리고 유선 역시 한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궁금해 하는 이 광고의 결말. 소설처럼 ‘다음’을 원하게 하는 마케팅의 도착지.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죠. 두 번째 광고가 나갈 겁니다.”
그 결말을 위한 다음 단계가 곧 시작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