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그래서 해보고 싶은 것 아니겠습니까.
<부산 열차>의 개봉 직전. 영화관 맨 뒷자리에 앉은 최대리와 한록.
둘은 객석에 앉은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중학생. 나이 지긋한 중년.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사람. 온 가족이 함께 온 사람.
다양한 연령과 집단의 사람들이 객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평일 저녁 10시라는 늦은 시각. 다음날 출근과 등교를 위해 모두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온 가족이 손을 잡고 좀비영화를 보러 왔다.
이제 막 개봉하는 영화를 위해 시간을 내서 극장에 온 사람들.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
“과장님.”
“네.”
“광고 성공했네요.”
‘궁금하다.’
‘보고싶다.’
‘주말까지 못 기다리겠다.’
‘지금 당장 보러가야겠다.
한록의 마케팅이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준 것이었다.
최대리의 말에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광고가 끝이 아니잖아요. 다른 것도 성공했는지 지켜봅시다.”
*
한록과 최대리가 있는 한국 최대 규모의 아이맥스 상영관, 용산 아이맥스.
그 곳에 사람들이 하나 둘 입장하기 시작했다.
용산 아이맥스의 ‘로열석’이라 할 수 있는 j열 정중앙에 앉은 젊은 여성, 서윤정.
‘기차에서 좀비라니! 너무 재밌겠다!’
윤정은 영화 매니아였고, 인터넷에서 필름마켓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부터 <부산열차>를 기다린 사람이었다.
“공포 영화 오랜만이다. 그치?”
“이게 공포영환가?”
“좀비 영화면 공포영화지.”
상영관 맨 뒤에 앉은 커플 둘.
데이트를 위해 영화관을 찾았고, 지금 가장 인기가 많은 영화를 고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한록의 곁에 앉은 40대 남자.
“언제 시작하는 거야...”
“아빠! 핸드폰 꺼야지.”
“전화 올 것 같은데.”
“그럼 더 꺼야지!”
<부산 열차>의 광고를 보고, ‘저건 꼭 봐야한다’는 딸의 성화에 가족이 다 같이 영화관에 온 타입이었다.
<부산 열차>를 보러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
[엄마!]
“어! 아빠, 그 광고다!”
<부산 열차>의 광고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인데 대화를 멈추고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저 광고 재밌더라.”
“응. 저거 이름 버전도 있는 거 알아?”
광고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커플들.
“아빠. 이것 봐. 표가 기차표 모양이야.”
“요즘은 신기한 걸 하네.”
기차표 모양의 티켓을 보고 사진을 찍는 부녀.
잠시 후, 광고가 모두 끝나고 상영관의 불이 꺼졌다. 그리고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부산 열차>의 상영이 시작됩니다.]
‘원래 안내방송을 하던가?’
누군가의 의문. 그리고 이어진-
[열차 출발합니다. 안전을 위해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열차의 목적지는 용산. 용산입니다.]
지금 자신이 앉아있는 곳의 지명.
그 방송을 듣는 순간 윤정은 생각했다.
영화 매니아. 개봉하는 영화는 무조건 첫 주에 보고 오는 시네필. 안내방송을 듣는 순간 그녀에게 느껴지는 직감.
‘그래.’
‘올해는 이거다.’
*
[용산행 열차 운행 종료되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부산. 부산입니다.]
2시간 후. 영화의 종료와 함께 또다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야, 끝났나 봐.”
“일어나.”
사람들은 안내방송을 듣고 최면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두 시간 동안 영화를 봤다. 그리고 그 중 단 한명도 중간에 나가거나,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다.
사람들이 얼마나 <부산 열차>에 몰입했는지 보여주는 사실이었다.
“이제 가자.”
한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로 향하는 사람들.
“이런 게 왜 좋니? 아빤 징그럽더라.”
“아빠. 좀비영화는 그런 맛에 보는 거야.”
사람들은 객석을 나서며 <부산 열차>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꼭 <부산 열차>에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너무 신파더라.”
“그치. 좀 잔인하고.”
“기대 이하인데?”
신파다. 잔인하다. 평범하다. 다른 영화들이 그렇듯, <부산 열차> 역시 부정적인 감상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와. 저 이런 건 처음 봐요.”
문 옆에 서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최대리.
최대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록에게 말했다.
두 시간 동안 6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영화관에 가둬놨다.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손에 땀을 쥐고 영화를 관람했다.
그러나 영화는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었고, 사람들은 이제 일상으로 복귀할 시간이었다.
당장 집에 갈 방법, 저녁 메뉴, 그리고 내일 출근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
그래서 상영이 끝나는 순간 영화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마지막 씬은 너무 오바였어.”
“그래? 난 좋았는데.”
“재밌다. 보길 잘했지?”
“내일 또 볼까?”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오로지 <부산 열차>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었다.
“좀비 영화 재밌네. 액션 좋더라.”
“근데 이런 거 잘 없어. 이게 잘 만든...야, 막차 끊긴다!”
“어?”
“뛰라고!”
차가 끊기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부산 열차>에 몰입한 사람들.
사람들을 지켜보던 최대리가 한록에게 물었다.
“사람들한테 대체 무슨 마법을 건 거예요?”
*
좀비 영화에 한 획을 그은 <부산 열차>. 그리고 사람들이 <부산 열차>에 몰입하도록 만든 한록의 마케팅.
<부산 열차>는 회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빠른 속도로 관객수를 채우기 시작했다.
[LA 열차]
[일본 열차]
[뉴욕 열차]
유튜브에 개봉 3일 만에 전 세계에서 <부산 열차>의 패러디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상황.
[한국 영화 <부산 열차>가 크게 흥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 시작 전 안내방송과 광고를 소재로 한 영상들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인데요.]
마치 내가 영화 속 기차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몰입감을 느끼게 한 <부산 열차>의 안내방송.
한록의 마케팅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냈고, 이는 여러 방송국에서 중요한 얘기로 다뤄졌다.
그리고 <부산 열차> 개봉 일주일 후, 미국에선 비평가 협회 간담회가 개최되었다.
시상식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미국 비평가 협회 시상식.
수많은 영화인들이 올해 최고의 영화를 뽑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리고 간담회에서의 최고 이슈는 역시-
[빌. 올해 최고의 영화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로마>죠. 다만 제가 좋아한 건 <부산 열차>였어요.]
[가장 최근에 본 영화가 뭔가요, 올리비아?]
[후보에 있는 영화는 아니에요. <부산 열차>죠.]
<부산 열차>였다.
비록 개봉이 늦어서 시상식 후보에 오르진 못했으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부산 열차>.
[...<부산 열차>가 저 정도야?]
더 필름의 사람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놈의 <부산 열차>. 디렉터가 필름마켓에서 왜 안 사왔냐고 난리야.]
[80만 달러였다며. 그걸 어떻게 사 와.]
[개봉 일주일 수익이 그거의 20배래.]
[젠장. 제롬은 대체 어떻게 그걸 미리 안 거지?]
[조셉. <보디가드> 10억 달러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어려울 것 같은데. 화제가 완전히 <부산 열차>로 넘어갔잖아.]
<부산 열차> 때문에 영화 흥행에 제동이 걸린 더 필름.
[<보디가드>가 문제가 아니야. <레터> 얘긴 나오지도 않고 있어.]
그리고 그 타격을 가장 직격으로 맞은 건 김준이었다.
[...아직 모르는 거야. 반짝 인기 있다가 끝날 수도 있지.]
<부산 열차>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김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나 김준 역시 현실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반응이 좋은 영화는 오랜만이었고, <부산 열차>의 인기는 절대 쉽게 식지 않을 것이었다.
<레터>와 <보디가드>. 아니 어쩌면 그 이후에 개봉하는 소규모 영화들마저 위험해진 상황.
대화를 나누던 누군가가 인터뷰를 위해 무대에 오른 제롬을 보고 말했다.
[이건 제롬이 대단한 거야. 한국 좀비 영화가 잘 될 줄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자신들이 놓친 영화. 그리고 자신들이 무시했던 영화가 이제 본인을 위협하고 있다.
그 사실을 부정하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더 필름의 직원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솔직히 광고가 없었으면 이만큼 흥행하지 못했어.]
[맞아. 그냥 매니악한 한국 영화로 끝났겠지.]
[제롬이 이 영화를 살린 거야.]
차마 한국영화를 인정할 수 없는 자존심 센 헐리웃 직원들.
[<부산 열차>가 대단한 게 아니라 제롬이 대단한 거라고.]
그들은 <부산 열차>와 CK 가 아니라 제롬을 칭찬하는 것으로 상황을 외면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자들과 제롬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제롬. 이번 <부산 열차>의 흥행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가장 큰 이유는 영화가 좋았기 때문이죠. 필름마켓에서 제가 직접 사 온 영화입니다.]
기자의 첫 질문을 듣자마자 더 필름의 바이어가 한숨을 쉬었다.
[젠장. 디렉터가 또 난리를 치겠군.]
그러나 제롬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케팅도 큰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맞아요. 광고와 안내방송이 큰 화제를 가져왔죠. 어떻게 나오게 된 마케팅인가요?]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한국에서 제안한 마케팅입니다. 우린 그걸 적용한 것 뿐입니다.]
[그걸 미국에 적용하려고 결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아뇨, 쉬운 일이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른 나라에서 제안한 방법이라고 무시하는 게 멍청한 일이죠.]
‘<부산 열차>가 대단한 게 아니라 제롬이 대단한 거다.’
제롬은 더 필름 직원들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뜨렸다.
[최근 헐리웃은 지나치게 폐쇄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죠. <부산 열차>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헐리웃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마케팅 덕분입니다. ]
[<부산 열차>의 흥행은 사실상 한국 마케팅의 승리란 말씀이시군요.]
[네, 맞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제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아주 뛰어난 사람이 좋은 마케팅을 펼쳐주었습니다. 그 덕분입니다.]
제롬의 말에 더 필름 직원들 모두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리고 김준은 책상을 내려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준. 어디가?]
[화장실!]
동료의 질문에 짧게 답한 김준이 도망치듯 간담회장을 빠져나왔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한록에 대한 칭찬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간담회가 열리는 회의실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친 김준.
[맞아요. <부산 열차>의 마케팅은 올해 가장 인상 깊은 마케팅이었죠.]
[올해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기억되는 마케팅이 될 겁니다.]
그러나 이젠 건물 복도에 설치된 TV에서 제롬의 인터뷰가 나오기 시작했다.
끝없이 어이지는 한록에 대한 칭찬. TV를 보던 김준이 속으로 소리쳤다.
‘왜 여기서 까지 이한록 얘기가 나오는 거야. 여긴 헐리웃이라고!’
[헐리웃 영화냐, 아니냐. 이제 그런 게 중요한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런 김준을 비웃기라도 하듯 화면 속의 제롬이 답했다.
*
같은 시간. 한국.
한록은 최경준의 호출에 본부장실로 향했다.
“<부산 열차>가 미국에서 1억 달러를 넘겼다고 하는군. 자네에게 가장 먼저 말해주고 싶어서 불렀네.”
<부산 열차>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는 최경준.
최경준은 <부산 열차>의 개봉 이후로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일 본부장 회의가 있을 거야. 자네 덕분에 할 말이 많겠군.”
“감사합니다.”
개봉 일주일 만에 벌써 천만 영화의 조짐을 보이는 <부산 열차>.
“아니, 내가 자네에게 고마워해야지. 이번에 일본의 도쿄 프로덕션과 샬롯테의 배급 계약이 종료 되네. 당연히 자동 연장되리라 생각했는데, 우리 쪽에도 미팅 제안이 왔어. <부산 열차> 마케팅을 인상 깊게 봤다더군.”
그러나 관객 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전 세계에서 CK란 기업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자네는 앞으로 더 바빠질 거야.”
<부산 열차>로 전 세계에 자신의 마케팅을 선보인 한록.
이제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한록의 마케팅을 원하고 있었다.
“그 전에 좀 쉬고 오는 게 좋겠군.”
최경준은 그렇게 말하며 한록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최경준이 내민 것은 하얀 종이봉투였다.
하얀 종이봉투. 그 속에 담긴 빳빳한 5만원짜리 지폐들.
“사장님이 자네에게 전달하라고 하셨네.”
하정엽이 직접 내린 금일봉이었다.
“사장님께선 <부산 열차>에 대해 크게 만족하고 계시네. 일주일 정도 휴가도 다녀오라고 하셨어.”
한록을 예쁘게 여긴 하정엽의 금일봉. 그리고 특별 휴가.
평소라면 일에 지친 한록 역시 흔들렸을 제안이었다.
그러나 아직 <도착지>와 연말 시상식이 남아있었다. 한록이 금일봉을 받고 고개를 숙인 후 답했다.
“감사합니다. 다만 휴가는 <도착지>가 끝난 후 다녀오겠습니다.”
한록의 말에 최경준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는 말이군. 대체 왜 <수면>이 아니라 <도착지>인가?”
서감독의 <수면>을 몇 번이나 거절하고 한록이 택한 영화, <도착지>.
한록의 선택은 CK직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그 이유가 궁금한 건 최경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는 <도착지>가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게 만들고 싶습니다.”
“<수면>이 있는데 <도착지>로 대상이라.”
한록의 포부에 최경준이 의아한 듯 물었다.
“확신이 있나보군.”
그리고 한록의 답은 단호했다.
“아뇨.”
그 말에 최경준이 놀란 눈으로 한록을 바라보았다.
‘확신은 없다’라는 한록의 말. 평소와는 너무 다른 태도였다.
하지만 한록은...
“그래서 해보고 싶은 것 아니겠습니까.”
아주 즐거워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