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08화 (108/263)

108. 이게 망할 것 같아?(1)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 광고’. 한국인이 만들었다고?]

<부산 열차>에 대한 유튜브와 인터넷의 반응.

[‘세계는 지금’ 코너입니다. 미국에서 크게 화제가 된 영상이 있는데요. 바로 어디선가 들려오는 엄마란 소리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여성이 뒤를 돌아보는 영상입니다. 곧 개봉할 영화의 광고라고 하는데요. 놀랍게도 한국에서 만들어진 광고라네요.]

거기에 TV 뉴스에서의 언급까지.

<부산 열차>에 대한 반응은 엄청났다. 게다가, <부산 열차>뿐만 아니라 그 광고까지 상당한 이슈가 되고 있었다.

한국 어디를 가든, 아니, 전 세계에서 언급이 되고 있는 <부산 열차>의 광고.

그 관심은 자연스레 한록에게까지 이어졌다.

“과장님. ‘오늘은 영화관’에서 과장님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오늘은 영화관’에서요?”

“네. <부산 열차> 관련해서 얘기하고 싶다네요.”

한록도 즐겨보던 영화 리뷰 프로그램에서의 섭외. 이건 한록마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다만 <부산 열차>와 <러빙 고흐>를 동시에 맡고 있는 지금, 방송을 위해 시간을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제 드디어 이과장을 연예계에 뺏기는 건가...”

“그런 일 없습니다. 유선씨. 시간 내기가 어렵다고 답장해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TV에서의 섭외 요청은 그렇게 작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한록 입장에서는 꽤나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 서울’에게 메일을 보내던 한록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몰랐네.’

회귀 전 <식물>을 통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진행해본 한록.

그러나 그건 베니스 영화제를 노린 마케팅이었고, 그러다보니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한록의 첫 해외마케팅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 열차>.

아직 개봉은 하지 않았다해도, 그런 <부산 열차>가 엄청나게 관심을 받고 있다.

거기에 한록으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광고 역시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재밌다.’

처음으로 가 본 필름마켓. 거기에 처음 시도해보는 해외 마케팅. 그리고 광고.

자신의 마케팅에 흥미를 보이던 바이어들과 지금 <부산 열차>의 개봉을 기다리는 관객들까지.

영화는 한록이 정말로 사랑하는 일이었고, 10년 가까이 일한 분야였다.

그런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으며 또 남부럽지 않은 결과를 냈다.

뿌듯함과 성취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감정이 있었다.

‘앞으로는 또 어떤 마케팅을 하게 될까.’

<부산 열차>. <러빙 고흐>.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맡을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과장님. 기분 좋은 일 있으세요?”

지나가던 최대리가 한록의 얼굴에 걸린 미소를 보고 물었다. 그에 대한 한록의 대답.

“일하는 게 재밌어서요.”

그걸 보고 최대리가 심각한 얼굴로 현차장에게 속삭였다.

“차장님. 과장님 병원 좀 보내세요.”

*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부산 열차>의 개봉일. 마케팅 부서는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네. ‘제로아워’로 전 세계 동시개봉 합니다. 한국시간 저녁 10시입니다.”

밀려오는 인터뷰 요청을 전화로 겨우 응대하고 있는 한록. 그런 한록에게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이과장. 또 서감독이다.”

서감독이었다.

서감독과의 미팅을 위해 회의실로 향한 한록. 회의실에선 서감독이 한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안녕하세요. 많이 바쁘시죠?”

“알고 계시는군요.”

‘바쁜 걸 아는데 또 찾아왔냐’란 말을 숨기지 않는 한록. 서감독이 어이가 없다는 듯 한록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부산 열차> 광고 반응이 아주 좋던데요.”

<부산 열차>의 광고가 공개된 날부터 상황을 지켜보던 서감독.

이제는 거리 어디를 지나가든 <부산 열차>에 대한 광고가 나왔고, 사람들이 그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상황이 되었다.

“<수면>이 <부산 열차> 때문에 개봉 몇 주 밀린 거 알고 계시죠? 이거 끝나면 이제 일정도 안 겹치겠네요.”

상황을 지켜보던 서감독이 또다시 한록을 찾아온 이유는 결국 하나.

“이제 <부산 열차> 끝나면 <수면>에 오시면 되겠어요.”

한록을 모셔가기 위해서였다.

‘또 시작이군.’

어떻게 거절해야하나 생각하는 한록.

사실 한록 역시 서감독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서감독의 영화를 위해 몇십억을 투자한 회사들.

1년간 오로지 자신의 영화를 위해 매달려준 스탭들.

거기에 한 번 영화가 망하면 다음 영화를 투자 받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감독들이 영화 흥행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은 단순히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 정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영화가 잘못되면 다음은 없다.’

라는 마음에 가까웠다.

‘감독님. 마케팅이 영화에 도움을 줄 순 있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영화입니다. 꼭 이과장이 아니더라도 <수면>은 잘 될 겁니다.’

저번에 현차장이 서감독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이쯤 되면 얘기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지금 <부산 열차>의 광고는 영화계 전체에, 아니 영화계를 넘어서 일반인들한테까지 소문이 난 상황이었다.

길거리 어디에 가도 나오는 <부산 열차>에 대한 얘기.

서감독이 다시 한록을 찾아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자존심 센 사람이 몇 번이나 찾아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지.’

하지만 한록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감독님.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맡고 있는 영화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부산 열차>는 일주일 뒤면 끝나잖아요.”

“아직 <러빙 고흐>가 남아있습니다.”

“아, 그거요.”

한록의 말에 서감독이 짜증을 냈다.

자신이 <부산 열차>면 몰라도 <러빙 고흐>에 밀린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게 대체 관객이 몇이나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내 영화를 거절할 정도예요?”

“500만정도 들어올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관객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좋은 영화고, 제가 한 번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맡은겁니다.”

“<러빙 고흐>가 500만이라.”

서감독이 대놓고 한록의 말을 비웃었다. 서감독은 계속되는 거절에 짜증이 난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네요. <러빙 고흐>는 독립 영화예요. 100만도 어렵겠죠.”

“개봉 전에는 모르는 일입니다.”

“글쎄요, 난 알겠는데. <수면> 거절해놓고 <러빙 고흐>가 망하면 타격이 꽤 크지 않겠어요?”

서감독이 어떻게든 한록을 설득하기 위해 이번엔 협박을 시도했다. 그러나 한록의 태도는 단호했다.

“제가 맡은 영화입니다. 망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건 모르는 일이죠.”

“모르는 일이면 왜 저한테 <수면>을 맡아달라 하십니까?”

“...”

한록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서감독.

‘왜 이렇게까지 거절하는 거지?’

베니스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된 5명의 한국인 감독. 그 중에 한 명인 자신.

게다가 서감독의 영화는 역대 베니스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된 한국 작품 중 가장 많은 관객수를 동원한 영화였다.

서감독이 만드는 영화의 특징. 엄청난 작품성. 그리고 동시에 대중성까지 갖췄다.

당연히 영화계의 모든 사람들이 서감독을 원했다.

언제나 사람들이 비위를 맞추고, 자신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삶.

그런데 한록은 몇 번이나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남에게 거절당한 경험은 처음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수면>이 마음에 안 듭니까? 아니면, 흥행하지 못할 거라 생각합니까? 왜 이렇게 거절하는 건지 들어나 봅시다.”

짜증을 넘어서는 호기심. 그리고 불안함. 그 때문에 서감독이 한록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답해주지 않으면 계속 찾아올 것 같군.’

그렇게 판단한 한록이 결국 입을 열었다.

한록이 개봉이 미뤄졌음에도 <수면>을 거절한 이유는 바로-

“<수면>은 좋은 영화고, 잘 될 겁니다. 올해 가장 흥행한 영화 중 하나라 될 거라 예상합니다.”

“그럼 뭐가 문제예요?”

“<부산 열차> 뒤에 맡고 싶은 영화가 있습니다.”

한록이 원하는 또 다른 영화가 있기 때문이었다.

한록의 말에 서감독이 의아한 듯 물었다.

“무슨 영화요? 지금 남은 영화 중 <수면>만큼 규모가 큰 영화는 없을텐데.”

“<도착지>입니다.”

“...<도착지>요? <우리집> 우감독님 영화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우리 집>.

10년도 전 개봉했던 영화로, 시골에 맡겨진 어린 꼬마아이와 할머니의 얘기를 그린 가족영화였다.

손주를 위해 삼계탕을 만들어주는 70대 할머니.

그리고 자기가 먹고 싶은 건 치킨이라며 난동을 피우는 어린 손주.

사람들은 이 소소하고 가슴 따뜻한 영화에 많은 사랑을 보냈고, <우리집>은 적은 제작비로 엄청난 수익을 낸 영화가 되었다.

또한 <우리집>의 우감독 역시 이 영화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이미 10년 전의 얘기였다.

“우감독님 영화 중에 최근에 성공한 게 뭐가 있죠?”

사람들은 모두 <우리집>을 잊었고, 감독인 우감독 역시 몇 년동안 흥행에 실패하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도착지>.

“아, 알겠네요. 우감독님 이거 찍고 은퇴하신다고 하셨죠.”

<도착지>는 한때는 거장이었으나 이제는 초라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의 은퇴작이었다.

‘이 영화가 망하면 다음은 없다.’

많은 감독들이 느끼는 압박. 그리고 그게 결국 사실이 되어버린 우감독.

“은퇴하는 감독이 불쌍해서 영화를 맡겠다는 겁니까?”

서감독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선배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서감독의 말. 그만큼 우감독의 명예가 추락했다는 뜻이었다.

“아닙니다.”

“그럼요?”

그리고 서감독의 질문에 한록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전 이 영화가 올해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으리라 생각합니다.”

“하.”

한록의 말에 서감독이 코웃음을 쳤다.

“<러빙 고흐>는 500만. <도착지>는 대상이라. 그래서 내 영화는 맡을 수 없다.”

한록의 말을 곱씹는 서감독.

잠시 후, 서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과연 어떻게 될지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인사도 없이 회의실을 나섰다.

*

“너 서감독한테 대체 뭐라고 한 거냐? 갑자기 너랑은 절대 일 안 한다는데?”

한시간 후. 정부장이 한록을 자신의 자리로 불러서 물었다.

“자꾸 <수면>을 맡아달라고 하셔서 솔직하게 대답해드렸습니다. 맡고 싶은 다른 영화가 있다고요. 못 할 말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못 할 말은 아닌데, 서감독이잖아. 괜히 심기 거스르지 마.”

‘아시아의 천재감독’이라 불리는 서감독. 그는 영화계에서 압도적 갑의 위치를 가진 사람이었다.

“글쎄요. 별 문제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적으로 돌려놓고 한록은 태연한 태도였다.

“이한록. 넌 그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너만큼 성격 더러운 인간이야.”

“아뇨, 잘 압니다.”

한록은 정부장의 말에 회귀 전의 일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곧 개봉할 <러빙 고흐>.

그리고...

-올해 최고의 영화입니다.

<러빙 고흐>에 대해 그렇게 평가한 아시아의 천재 영화감독. 바로-

서감독.

“...너 또 무슨 생각이냐?”

정부장이 한록의 수상한 미소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

그리고 시간은 흘러, <부산 열차> 개봉 3일 전.

마케팅부서 뿐만 아니라 판권 부서 역시 ‘제로아워’를 위해 철야를 진행하고 있었다.

[퀸 픽쳐스입니다. 제로아워 일정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호주의 윌리엄입니다. 광고 송출 완료했습니다.]

[아뇨, 잠시만요. 그쪽이랑 얘기할 내용이 아니네요. 그쪽이 아니라...]

끊임없이 울리는 판권부서의 전화기. 그리고 그들이 찾는 한 사람.

“부장님. 일본에서 우리 말고 마케팅 부서랑 얘기하고 싶다고 합니다.”

한록.

“젠장!”

고부장이 호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거칠게 끊으며 욕설을 뱉었다.

‘젠장. 그 놈이 진짜 성공하면 어떡하지?’

필름마켓에서 한록과 마케팅 부서에게 모든 공을 뺏긴 고부장. 그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제로아워가 실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는 <부산 열차>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망할 거다. 이건 망할 거야.’

그렇게 몇 번이나 속으로 되새기는 고부장.

한동안 씩씩 거리던 고부장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옥상에서 정부장을 마주쳤다.

‘그 새끼 망할거야.’

고부장이 한록에 대해 얘기하던 옥상. 그곳에서 다시 만난 둘.

“고부장.”

정부장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에 끼웠다. 그리고 아직도 씩씩거리고 있는 고부장에게 말했다.

자신의 부하에게 악담을 퍼붓던 다른 부서의 부장.

“아직도 이게 망할 거 같아?”

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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