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07화 (107/263)

107. 우리도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

아빠란 말에 돌아보는 남자들. 모두 자식이 있어 보이는 나이대의 사람들이었다.

“들었어? 방금 뭐야?”

“어디서 들리는 거야?”

사람들은 다들 목소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빠!]

그때 한 번 더 울리는 아빠란 말. 이번에는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모두가 목소리가 나오는 곳을 알게 되었고, 목소리의 근원인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스크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도망쳐!]

그 말과 함께 화면에 보이는 날짜.

[202X.10.23. 부산행 열차 출발.]

“뭐야. 광고야? 깜짝 놀랐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여자.

“아씨...뭐 광고를 저 따위로 해?”

크게 몰입한만큼 화를 내는 남자.

“야, 표정 뭐야. 쫄았어?”

“너도 똑같거든?”

“어우. 우리 딸내민 줄 알았잖아.”

“나도.”

서로를 보며 즐겁다는 듯 웃는 사람들.

광고를 본 사람들은 처음엔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하는 결론은 하나였다.

“저거 무슨 광고지?”

광고가 나오는 시간. 단 30초. 그러나 그 순간 쇼핑몰의 모든 사람을 돌아보게 한 광고.

그 순간을 겪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켜서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야 너 영등포 타임스퀘어 와봤냐?]

[지수엄마 지금 지수랑 같이 있지?]

[와씨 오늘 개 쫄렸네 ㅋㅋㅋ]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그리고-

[실시간 영등포 타임스퀘어.TXT]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하는 반응들.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던 한록과 최대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한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공했네요.”

*

같은 시각, 저녁 10시의 미국.

우드 엔터테인먼트의 스티브가 얼굴을 잔뜩 구기고 퇴근을 하고 있었다.

-스티브. CK랑 광고 아이디어로 문제가 있었지?

2주 전, 한록과 광고에 대해 얘기한 스티브. 그리고 바로 다음날 조세핀이 스티브를 호출했다.

-아, 네. 그쪽에서 아이디어를 보내왔어요. 그게 별로라 얘기를 좀...

-그게 별론지 아닌지는 네가 판단할 게 아니라고 했을 텐데?

스티브의 말을 자르는 조세핀. 조세핀은 원래도 무서운 상사였지만, 이렇게 말을 틀어막기까지 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건 보고할만한 내용도 아니었어요.

-제롬이 이 광고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어.

그 말에 스티브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 광고를요? 그게 정말 미국에 통할 거라구요?

-스티브. 그 광고는 나도 좋았어. 아니, 모두가 좋아할 만한 광고지.

단호하게 말하는 조세핀. 조세핀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엄격했다.

-제롬이 CK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너한테 조심하라고 충고를 해주려 한 건데, 다른 문제가 있었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스티브의 머리에 불안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 광고는 좋은 광고였고, 그 광고가 별로라 생각한다면 네가 보는 눈이 없다는 뜻이야. 그런 사람한테 마케팅을 맡겨도 되는 건지 다시 생각해봐야겠어. 네 승진 얘기는 이 일이 끝나고 다시 얘기해보지.

헐리웃.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곳.

스티브는 그런 곳에서 쓸데 없는 고집을 부렸고, 그 때문에 순식간에 승진이 위험해졌다.

눈앞에서 날아가 버리기 직전인 승진. 그리고 상사의 엄격한 시선.

‘그놈의 광고가 뭐라고!’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스티브가 괜히 바닥을 한 번 걷어찼다.

[잠깐!]

그리고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버스를 잡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아빠!>

그때 들린 어린 딸의 목소리.

‘뭐지?’

버스를 잡기 위해 달리던 스티브가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스티브의 눈 앞에 보인 것은.

[202X.10.23. 부산행 열차 출발.]

<부산 열차>의 광고였다.

[...젠장!]

자기가 그렇게 반대하던 광고에 넘어가 버린 스티브.

씩씩대며 화를 냈지만 들어줄 사람도 없고, 버스마저 이미 떠나가 버린 후였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은 모두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설마.’

설마하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켜서 인터넷에 접속한 스티브.

인터넷에선 벌써 <부산 열차>의 광고에 대한 얘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방금 세인트 스트릿에 있던 사람? 혹시 어린 여자애 목소리 들었어?]

[나 봤어. 그거 광고야.]

[그게 광고라고? 무슨 광고?]

[영화 광고 같은데? 마지막에 나온 그게 영화 제목이었어.]

[오. 무슨 영화야?]

[<부산 열차>. 한국 좀비영화.]

[좀비 영화? 한국이?]

‘그래. 한국이 좀비 영화라니, 말도 안 되지.’

<부산 열차>에 대해 스티브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신선하네!]

[나 한국 영화 좋아해.]

[이런 광고면 영화도 재밌을 것 같은데?]

전혀 다른 결론.

‘이거 진짜 잘 될 것 같은데?’

뒤늦게 스티브에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현장 반응을 확인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간 한록과 최대리.

“어, 둘이 반차 쓴 거 아니야?”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요.”

한록은 자리에 앉아 <부산 열차>의 반응을 찾기 시작했다.

오후 2시, 전국에 동시에 송출된 광고. 광고가 송출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부산 열차>에 대한 반응이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 서울역 상황.txt]

[서울역? 이거 오늘 해운대에서 봤는데?]

[저도 봤어요 여기 인천]

[아 이거보고 우리 딸내미가 부르는 줄 알고 깜짝 놀람;]

인터넷 거의 모든 사이트에서 보이는 <부산 열차>의 반응.

[지금 미국에서 난리 난 광고.JPG]

[ㄴ이 광고 한국에서도 봤어요!]

[다른 나라도 하는 중인가요?]

[아뇨 한국이랑 미국에서만 얘기 나오는 중인 듯!]

[무슨 광고일까요 내용 보니까 게임 같은데..]

[밑에 개봉날짜 아니에요? 영화인 듯? <부산 열차> 이거 곧 개봉하는데.]

거기에 미국 반응이 역수입되기까지.

“해외에서도 반응 나오고 있어요. 미국이랑, 호주, 캐나다. 일단 영어권에서는 다 언급되고 있네요.”

최대리의 말에 한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드 엔터테인먼트에도 연락해주세요. 이제 <부산 열차> 개봉 정보 노출하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스티브 반응이 궁금하네요.”

재밌다는 듯 말하는 최대리. 최대리가 바로 우드 엔터테인먼트에 전화를 걸었다.

“유선씨. 우리도 이제 바이럴 글 올립시다. 인플루언서들한테도 글 올려달라고 하세요.”

“네!”

그리고 마케팅 부서 역시 <부산 열차>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씨네 여러분!! 지금 아빠 부르는 광고 아시나요?? 그거 저번에 얘기 나온 좀비 영화 광고 같지 않아요?]

이전에 <부산 열차>의 반응을 테스트 했던 영화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유선.

“어...과장님.”

글을 올리고 반응을 살피던 유선이 놀란 얼굴로 한록을 불렀다.

“무슨 일이에요?”

“글 더 안 올려도 될 것 같아요.”

“왜요?”

한록의 질문에 유선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유선이 준비한 게시글은 10개. 10분 간격으로 하나씩 글을 올리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유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게시글을 딱 하나 올리고, 진짜 ‘바이럴’을 위한 시동을 거는 지금.

[어? 진짜 맞는 거 같네요? 한국 좀비영화고 미국에서 동시개봉 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네요 올해 좀비영화 개봉하는 게 <부산열차>밖에 없음]

[영화 도깨비님이 글 올리셨네요. <부산 열차>광고 맞대요 ㅇㅇ 다들 보고 오세요. ->]

[오...광고 재밌게 했네요. 미국에서도 꽤 이슈 되는 듯?]

“저희가 더 할 건 없어 보이지 않아요?”

사람들은 이미 <부산 열차>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었다.

그때 올라온 글 하나.

[이거 저번에 올라온 바이럴 영화네요. 이제 이 영화 얘기 금지 아니었나요?]

<부산 열차>에 딴지를 거는 글. 게다가 그 아이디가 익숙했다. 한록이 바로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최대리님ㅡㅡ.

모두가 <부산 열차>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 찬물을 끼얹는 사람. 바로 최대리였다.

잠시 후 최대리의 답장이 도착했다.

-ㅎㅎ 5분만 지켜보세요~

[아 그러네요 이 영화 얘기 금지 아니었나요?]

[영화가 얘기 금지인 게 아니고 바이럴 의심이 금지였죠...이분이 저번에도 바이럴 의심한 분이었죠? 또 이러시네;]

[영화 사이트인데 영화 얘기 안 하면 무슨 얘기 합니까 아 그냥 좀 봅시다 진짜ㅡㅡ]

[이 사람 샬롯테 직원 아님? 저번부터 계속 트집 잡는 거 같은데.]

[ㅎㅎ어그로는 무시해요~]

[지금 화제인 그 영화 예고편 가져왔습니다.ㅋㅋ 다들 영화나 봅시다!!]

저번처럼 최대리의 등장에 불타오르는 게시판.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온통 <부산 열차>에 대해 호의적인 내용이었다.

[영화 잘 되려나보네요 벌써 어그로가 붙고ㅋㅋ]

[저 분 저번부터 좀 지나쳤어요]

최대리의 게시글 때문인지 더욱 <부산 열차>를 옹호하는 사람들. 최대리가 다시 한 번 한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 잘했죠?

-잘하셨습니다. 그래도 다음부턴 상의하고 하세요.ㅡㅡ

-생각해보고요~

최대리의 뻔뻔한 대답에 피식 미소를 지은 한록.

[헐 동석님 나오네요]

[ㄴ새 신랑 역할...ㅋㅋㅋ빨리 보고 싶어요 ㅋㅋ]

[흠 전 좀비 영화는 별로예요. 일단 보긴할 건데 많이 기대하면 안 될 듯.]

[광고 때문에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는데 ㅠ]

<부산 열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다들 하루 빨리 <부산 열차>를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이었다.

“과장님. 제롬이 바꿔 달래요.”

그때 앞자리의 최대리가 한록을 불렀다. 한록을 찾는 제롬. 한록이 자신의 자리에서 전화를 당겨받았다.

<안녕하십니까, 한. [부산열차]에 대한 반응이 꽤 좋군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가 큰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벌써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는군요.>

평소의 냉정한 태도와는 다르게, 제롬의 목소리에서는 흡족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할 말이 있습니다.>

한동안 칭찬을 이어가던 제롬이 본론을 시작했다.

<이 광고는 아마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될 겁니다. 이미 북미권에서는 얘기가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곧 다른 나라에서도 이 광고를 도입하고 싶다고 연락할 겁니다. 그때 우리 우드 엔터테인먼트는 20만 달러를 지급하고 광고를 사 갔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연락이 와도 광고를 공짜로 넘겨주지 말라’는 제롬의 말.

제롬의 말에 한록이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네. 혹시 광고 논의가 들어오면 우드 엔터테인먼트와도 협의 후 진행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기 직전. 제롬이 한록에게 말했다.

<담당자와도 잘 얘기해뒀으니, 앞으로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끊긴 제롬과의 통화. 옆에서 통화를 엿듣고 있던 최대리가 말했다.

“우리 스티브. 엄청 혼났나 보네요.”

“앞으로 일하기는 편해지겠네요.”

“그러게요. 담당자 바뀌려나? 아니면 계속 스티브일까요?”

“글쎄요. 아마-”

“과장님. 호주 쪽에서 과장님 바꿔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최대리와 잠깐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한록은 하대리의 말에 곧장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한. 윌리엄입니다. [부산 열차] 광고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지금 우드 엔터테인먼트랑 진행 중인 [부산 열차] 광고 말인데요. 호주도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제롬이 얘기했던 것처럼 광고를 사고 싶다고 연락이 온 호주의 윌리엄. 그러나 이미 제롬이 선수를 친 후였다.

<페이는 당연히 지불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논의를 좀 해보고 싶은데요.>

[광고는 우드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만든 내용입니다. 우드 엔터테인먼트와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지금 대답드리긴 어렵네요.]

<이런...알겠습니다. 회의 후 연락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윌리엄은 아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끝난 후, 한록은 제롬의 선견지명에 약간 감탄했다.

‘정말 제롬의 말처럼 진행되는군.’

제롬의 반응도 그렇고, 윌리엄의 제안도 그렇고, 아무래도 북미쪽의 반응이 한록의 예상보다 더 좋은 듯 했다.

한록이 최대리에게 말했다.

“최대리님. 북미쪽 반응 어느 정도인지 조사해서 넘겨주시...”

“과장님!”

“이과장.”

그러나 이번에도 한록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 다급하게 한록을 부르는 목소리.

이번엔 유선과 현차장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리고 한록의 목소리에 둘이 동시에 답했다.

“캐나다에서 광고 문의 왔어.”

“엘리스한테서 광고 함께하고 싶다고 연락 왔습니다!”

그 말에 어깨를 으쓱이는 최대리. 최대리가 한록에게 말했다.

“반응 확인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

“야. <부산 열차> 광고 봤냐?”

“그거 언제 개봉하지? 같이 보러 가자.”

“으. 난 좀비 영화 싫어.”

며칠 뒤. <부산 열차>는 어느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영화가 되었다.

“23일이래..”

“얼마 안 남았네.”

이제 정말 코앞으로 다가온 <부산 열차>의 개봉. GV팀과 최대리는 그에 맞게 매일 야근을 하는 중이었다.

피곤한 눈으로 호주쪽에 광고 협의 메일을 보내던 최대리. 최대리가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과장님. 열 두시 지났어요.”

“먼저 들어가세요. 전 회의 끝내고 가겠습니다.”

“아니. 그 말이 아니잖아요, 과장님.”

그리고 날짜가 함께 나오는 자신의 시계를 가리키는 최대리.

10월 16일 자정. 지금은-

“개봉 딱 일주일 남았어요.”

<부산 열차>의 개봉이 불과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그러게요. 빨리 개봉 했으면 좋겠어요.”

“과장님도 지치시죠? 하긴. 사람이면 그래야지.”

최대리의 말에 한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그것보다...”

한록의 말을 기다리는 최대리.

“사람들 반응이 궁금해요.”

제로아워. 전 세계에서 동시에 상영될 <부산 열차>. 그리고 바이어들이 모두 극찬을 했던 안내방송까지.

한록은 하루빨리 그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과장님. 병원 가보세요. 이 정도로 일을 좋아하는 건 병일 수도 있어요.”

“최대리님도 기대되시잖아요.”

“아니 진짜, 이 사람이.”

장난스럽게 말한 최대리. 그러나 돌아오는 한록의 말에 최대리는 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답했다.

“네, 저도 빨리 보고싶네요.”

모두가 기다리는 <부산 열차>의 개봉.

그 날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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