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92화 (92/263)

< 92 : 남은 시간은 단 3일(3) >

"힘든 거 알아요. 그건 유선씨가 열심히 하고 있어서 그런 거죠.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 일이에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는 한록.

구과장, 오과장과 싸우면서 어떻게든 영화를 지키려고 고생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한록 역시 유선과 비슷한 시간들을 겪었다. 아니,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유선과 같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살다보면 언제든 다른 선택이 있어요. 그리고 내가 원하지 않던 일에서 새로운 기쁨을 느낄 수도 있죠. 저도 그랬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그 뒤의 학창시절. 회사 사람들과의 트러블까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내 맘처럼 흘러가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것.

한록도 잘 아는 일이었다. 그래서 유선에게 '그냥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데 유선씨. 그러면 유선씨는 괜찮겠어요?"

한록이 정말 걱정하는 것은 이 일 이후 유선이 유선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 역시 비슷한 실수를 여러 번 했고, 그때마다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했다.

한록은 유선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길 바랐다.

"유선씨가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어요. 여기 남아있든, 다른 길을 찾든, 전 언제든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유선씨를 도울 거예요."

정말로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하지만 자신이 그걸 이뤄낼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좀 더 시도해보지 않은 것.

더 열심히 준비하지 못한 것.

안 될 걸 알면서도 도전해보지 않은 것.

실패하는 게 두려워서...

"유선씨. 정말 영화를 그만두고 싶어요?"

자신을 속인 것.

한록의 말에 유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유선이 호텔 로비를 둘러보았다.

상처만 남은 칸 영화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엘리스. 자신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는 최경준. 그들을 보면서 상처받은 이유는, 영화를 그만두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뇨. 거짓말이에요."

유선의 눈에 다시 눈물이 글썽인다.

"사실 저는 더 잘하고 싶어요."

*

"거짓말이에요. 사실 더 잘하고 싶어요. 더 좋은 아이디어도 내고 싶고, 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지 못해서 힘들어요."

드디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유선. 한록이 유선을 보고 말했다.

"그래요. 지금은 쉬어도 괜찮아요. 기회가 단 한번만 주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본인한테 거짓말을 하진 말아요."

"...네."

유선이 한록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선을 보며 생각에 잠긴 한록.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칸에 와서 힘든 시간을 보냈을 유선. 그러나 자신은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유선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주지도 못했다.

'난 정말 부족한 선배다.'

영도와 유선을 보다보면 늘 드는 생각이었다.

일에 있어서는 언제나 칼 같은 성격의 한록.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을 챙기는 건 아직도 갈 길이 먼 모양이었다.

한록이 유선에게 말했다.

"회의 중에 했던 말 좀 더 자세히 해줄래요? 사석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말해 봐요."

그 말에 유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리고, 준비도 안 됐고..."

"괜찮아요."

"..."

유선은 한록의 말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 자신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말처럼 정말로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부족하기 만한 자신. 아마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준비 된 상황.

하지만 한록은 그런 이유로 유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걸 보고싶지 않았다.

한록이 유선에게 말했다.

"그래도 유선씨, 말하고 싶지 않아요?"

한록의 말에 유선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

"네. 내일 아침까지 제대로 준비해서 가져올게요."

"그래요, 고마워요."

한록이 유선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

한록과 헤어져 방으로 돌아온 유선. 유선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까 자괴감에 빠져 노트북을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유선은 방금 전 한록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나는 과장님처럼 되고싶다.'

유선이 늘 가져오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 한록과 대화를 하고나서야 왜 자신이 그렇게 느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한록이 능력이 좋고, 일을 잘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에 능력이 좋은 사람은 많았다. 헐리웃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최대리. 한국 영화를 밑바닥부터 만들어 온 오과장. 그리고 최경준.

유선이 그들처럼 되고 싶은 게 아니라 한록이 되고 싶은 이유.

그건 한록이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알고, 그걸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유선씨는 뭘 하고 싶어요?'

한록이 물었던 질문. 그에 대한 답.

'나는...'

'내 선택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살고 싶다.'

'나도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유선이 노트북을 키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

다음날 아침.

"과장님! 말씀드린 제로아워 도입방안 준비해왔습니다."

한록이 회의실에 나타나자마자 외치는 유선.

한록이 놀란 눈으로 유선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씀하세요."

"제로아워를 하는 국가에서는 도착지 안내방송도 같이 하실 예정이시죠?"

"맞아요."

"그럼 가격을 깎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선이 그렇게 말하며 책상에 종이 여러장을 펼쳤다. 한록이 유선에게 물었다.

"이게 뭔가요?"

"<부산 열차>를 관람한 바이어들을 상대로 의견 조사를 했습니다."

유선이 펼친 것은 한록의 마케팅에 대한 바이어들의 의견이었다.

관람부스로 바이어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던 유선. 바이어들이 퇴장할 때 대화를 좀 길게 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동안 이런 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관람을 한 바이어 중 100%가 안내방송에 대해 크게 만족했습니다. 그 중 40%는 자기들도 도입하고 싶은 아이디어라고 했구요. 중국, 미국, 호주는 과장님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고 실제로 제롬은 마케팅을 구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로아워가 불만족스러워도 안내방송 때문에 설득이 될 거예요. 그러니 판권의 가격을 깎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근차근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유선. 얘기를 듣고 있던 최대리가 말했다.

"그냥 가져가라고 제안했다가 실패하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지는 건 알고 있죠? 우리가 지고 들어가는 거예요."

어제 한록과 같은 지적을 하는 최대리. 그러나 유선이 이번에는 당당하게 답했다.

"리스크가 큰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도해볼 만한 가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선의 말에 최대리가 약간 놀랐다는 듯 한록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고, 그걸 뒷받침할 근거도 가져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느껴지는-

"전 과장님을 믿고,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도 믿습니다."

강한 의지.

"좋아요. 유선씨 말대로 해봅시다."

더 이상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

먼저 회의실을 나선 유선. 유선이 사라지자 최대리가 말했다.

"유선씨 과장님이랑 정말 많이 닮았어요. 알아요?"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당연히 칭찬이죠."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한록. 최대리가 회의실을 나서며 답했다.

"멋진 사람이잖아요."

그 말에 한록이 정말로 기분 좋은 미소를 보였다.

*

부스에 도착한 마케팅 부서.

"일단 10시에는 제롬과의 미팅이 있습니다. 그 뒤는 바로 스웨덴이랑 미팅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우리가 먼저 가격을 깎자고 제안하지말고..."

한록이 제로아워에 대해 얘기하다가 유선을 바라보았다.

"제롬과의 미팅은 유선씨가 해보겠어요?"

유선이 가져온 방안이다. 유선이 스스로 이 일을 진행시켰다는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은 한록.

"...제가요?"

한록의 제안에 유선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네. 유선씨는 잘할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유선이 누구보다 이 일을 잘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록의 제안에 유선이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당히 말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

유선이 제롬과 미팅을 한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고부장은 엄청나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한록. 회사가 우스워?"

이제 아예 한록에게 막말을 하는 고부장.

"설치는 걸 봐줄 수 있는 것도 상대가 너니까 가능한 거야. 그런데 뭐, 그 여자애가 제롬을 상대한다고?"

경매. 제로아워. 지금까지 한록이 벌인 일만 해도 고부장의 입장에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부장이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그걸 실행하는 사람이 한록이기 때문이었다.

"이한록 너라면 뭔가 성과를 가져오겠지. 근데 김, 뭐, 걔. 걔한테 미팅을 맡긴다고? 너희 부서 일 아니라고 말아먹고 싶은 거냐?"

필름마켓에서 며칠을 함께 있었음에도 유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고부장.

고부장과 함께하며 유선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었다.

"제가 부장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록을 노려보는 고부장.

"그럼 나도 널 설득할 필요가 없지. 절대 안 돼. 미팅은 내가 한다."

고부장은 절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한록이 고부장에게 말했다.

"부장님이 3일동안 영화 4개를 파는 동안 저는 <부산 열차>의 가격을 두 배로 올렸고, 그 직원은 제로아워를 도입할 방법을 생각해왔습니다."

"이한록. 입 조심해."

한록의 입에서 실적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고부장.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제가 항상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록은 조금도 기죽지 않고 고부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자신이 있다면 반대하세요."

한록의 말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 고부장.

아니, 아무런 답을 할 수 없는 고부장.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냐'는 한록의 질문.

그 말에 도저히, '그렇다'고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시라면 나가보겠습니다."

한록이 부스를 나서며 말했다.

*

한록이 부스에서 나오자 불안한 얼굴로 묻는 유선.

"부장님이 뭐라고 하세요?"

"좋다네요. 유선씨가 잘 할 것 같다고 하세요."

한록은 고부장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어...? 네....네!"

한록의 말에 유선이 의아하단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롬과 미팅을 할 때, 제로아워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해요. 우리가 급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해요. 우선 마케팅이랑 가격 얘기를 하세요. 그리고 우리가 생각중인 마케팅이 있는데 협조하겠냐고 물어보는 식으로요."

"네, 알겠습니다. 우드 엔터테인먼트에서 2년 전에 제로아워를 도입한 영화가 있어요. 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정말 열정적으로 조사를 해 온 유선.

그 모습을 보니 유선의 말을 더 잘 들어주지 못한 점이 많이 후회가 됐다.

한록이 유선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유선씨. 아무리 회의가 바빴어도 유선씨 얘기를 좀 더 귀담아 들었어야 했어요."

"아니에요. 어제 새벽에 과장님 얘기 듣고 준비한 거지, 그때는 저도 확신이 없었어요. 그리고...이제 이런 일로 속상해 하지 않아요."

씩씩하게 말하는 유선을 보니 드는 감정. '기특하다'로는 부족한 감정이었다. 한록은 아까 최대리가 한 말을 떠올렸다.

"유선씨. 최대리님이 유선씨보고 멋있대요."

그 말에 유선의 뺨이 붉게 달아오른다.

"아..."

부끄럽지만, 동시에 뿌듯한 얼굴의 유선. 유선이 한록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과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록이 유선을 바라보았다.

실수하고, 후회하고, 상처 받고...

그래도 원하는 것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최대리의 말이 맞았다.

"유선씨는 멋진 사람이에요."

*

10시가 되자 CK의 부스에 제롬이 도착했다.

[오늘 미팅은 이 분이 진행합니다.]

[알겠네.]

최대리가 제롬에게 유선을 소개했다. 제롬은 불쾌해 하는 눈치는 아니었고, 미팅이 시작되었다.

[우리 회사가 미국에서 유일한 입찰자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80만 달러라는 금액은 그대로 제안하겠습니다.]

<부산 열차>와 한록의 마케팅에 대해 여전히 호의적인 제롬. 그러나 제로아워에 대한 부분은 예상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우드 엔터테인먼트에서 2년 전에 제로 아워로 영화를 개봉한 적이 있죠?]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산 열차>의 안내 방송과 함께라면...]

[우리 회사에서 진행한 제로아워 역시 관객동원은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었습니다.]

유선의 말에 날카롭게 반박하는 제롬.

[이 자료를 보시면, 다양한 국가들이 <부산 열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잘못된 자료 같군요.]

[아, 죄송합니다. 다른 파일을 드렸어요. 이걸로...]

[이것도 다른 내용이군요.]

유선 역시 관계자끼리 미팅을 여러번 해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헐리웃의 권위자 제롬이다. 거기에 제롬의 카리스마까지 더해져 계속 실수가 나오는 상황.

미팅 부스 밖에서 대화를 듣고있던 고부장이 생각했다.

'이한록. 내 말이 맞았다. 결국 저 녀석이 이한록의 발목을 잡을 거다.'

그리고 그 옆의 정대리.

'아, 어떡하냐, 이과장님이 기대가 너무 컸네.'

그렇게 모두가 유선의 실패를 점치는 상황. 제롬이 유선에게 물었다.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제롬의 단도직입적인 말. 유선이 크게 당황해서 다른 테이블에 앉은 한록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말씀하세요. 제로아워를 도입하면 영화의 흥행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하는 겁니까?]

제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록. 유선이 용기를 내서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당신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건...]

다시 한록을 바라보려는 유선에게 제롬이 말했다.

[나는 당신과 미팅을 하려고 여기에 와있습니다. 당신이 직접 대답하세요.]

유선을 압박하는 제롬의 말.

눈 앞에 헐리웃의 권위자가 앉아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네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 상황에서 '내 판단이 맞다'고 얘기해야 하는 상황.

'정말 원하는 게 있으면 물러서면 안 돼요.'

이제야 한록의 말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내가 아무리 부족해 보이더라도.

[네, 그렇습니다.]

기회가 왔다면, 아무리 무딘 칼이어도 내가 원하는 걸 위해 꺼내 들어야 한다.

유선의 말에 제롬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유선은 생각했다.

'나는 과장님의 마케팅을 믿는다.'

'그리고...'

'내 판단을 믿는다.'

그리고 잠시 후 제롬이 대답했다.

[좋습니다. 제로아워에 참여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아, 아니..."

제롬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유선. 유선이 한국어로 말하다가 얼른 영어로 말을 고쳤다.

[그럼 자세한 내용이 정해지면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한록의 말투를 빼다 박은 유선의 인사. 그 말에 상황을 지켜보던 최대리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한과 얘기를 해보고 싶군요. 둘이서 하고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제롬의 말에 최대리와 유선이 자리를 비웠다.

둘만 남은 제롬과 한록.

[스카웃에 대해선 생각해 봤습니까.]

[아직 생각중입니다. 제안이 들어온 곳이 많습니다.]

한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제롬. 제롬이 이번에는 제로아워에 대해 물었다.

[제로아워는 다양한 국가가 참여했을 때 의미를 가집니다. 미국이 아니라 다른 국가는 어떻게 설득할 예정입니까.]

[우드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제롬 앤더슨이 제로아워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어필할 예정입니다.]

대놓고 우드 엔터테인먼트의 이름값을 이용하겠다고 말하는 한록. 그러나 제롬은 전혀 기분나쁜 얼굴이 아니었다.

[좋은 방법입니다.]

제롬은 기분이 나쁘긴 커녕, 한록의 방안이 꽤나 마음에 든 것 같은 얼굴이었다.

[다른 나라와는 어느 정도 얘기를 나눴습니까.]

[우드 엔터테인먼트와 처음 미팅을 잡은 겁니다. 각 나라별로 미팅을 진행하고, 4시에 전체 회의를 소집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때 다시 방문하죠.]

간단하게 대답한 제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스를 나가기 직전 한록에게 말했다.

[나를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습니다.]

*

[제롬 앤더슨이 참여한다구요?]

제롬이 나간 후 스웨덴과의 미팅을 진행한 한록.

스웨덴의 바이어는 '제롬 앤더슨'이란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모양이었다.

[지금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4시에 전체 프레젠테이션을 할테니, 관심이 있으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회사에 보고부터 하겠습니다.]

스웨덴의 바이어가 망설이는 얼굴로 퇴장하는 것을 보고 최대리가 말했다.

"반응이 생각보다 안 좋네요."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제로아워의 성공과 실패가 걸린 상황임에도 한록은 태연한 얼굴이었다.

"자신이 있나 봐요?"

최대리의 질문에 한록은 자신이 가진 카드를 떠올렸다.

유선이 제시한 방안. 자신을 사용해도 좋다는 제롬의 허락.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은 제 특기니까요."

한록의 전매특허인 설득 프레젠테이션.

몇 시간 후면 전 세계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 명확했기에, 걱정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

그리고 시간은 흘러-

[지금부터 '제로아워'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제로아워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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