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88화 (88/263)

< 88 : 너 말고도 살 사람 많다.(2) >

*

다음날 아침. 오늘도 <부산 열차>의 국내 마케팅 회의를 위해 회의실에 모인 한록과 유선, 그리고 최대리.

"해외 마케팅 방안은 아직 아이디어가 없으니 나중에 얘기하고, 지금은 국내 마케팅 얘기부터 합시다."

한록이 자신이 계획한 <부산 열차>의 국내 마케팅 방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대리는 한록의 설명을 흥미롭게 듣기 시작했다.

'이번엔 SNS마케팅을 쓰는구나. 거기에 체험 마케팅도 들어가고. 이한록씨, 못하는 분야가 없네.'

한록에 대해 새삼 감탄한 최대리.

한록이 제안하는 마케팅은 언제나 그렇듯 듣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보고 싶어지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이번 필름마켓에서 느꼈듯이, 한록의 마케팅은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점점 진화했다.

아마 본격적으로 국내 마케팅에 돌입하면 지금보다 더욱 흥미로운 방안들이 계속 나올 것이 분명했다.

'이러면...정말 천만은 쉽게 넘을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그걸 한록과 함께  마케팅할 수 있다. 그 생각에 점점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최대리의 마음에 어렴풋이 드는 예감.

'올해 사람들은 전부 <부산 열차>에 대해 얘기할거다.'

그건 한 해를 휩쓸어갈 영화가 자신들의 손에서 탄생하리란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 한켠에 드는 의문이 있었다.

"자, 질문 있습니까."

"네."

한록이 설명을 마치고 유선과 최대리에게 물었다. 한록의 말이 끝나자 최대리가 바로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전 이 마케팅이면 해외에서 이슈를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걸 노리고 짠 마케팅이니까요."

"그럼 굳이 해외 마케팅에 더 신경 쓸 필요 없지 않나요?"

최대리가 가진 의문은 바로 이것.

"지금도 완벽한데, 이 이상 뭐가 더 필요하죠?"

한록이 최대리에게 단호하게 답했다.

"아직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어지간히 완벽주의군.'

그렇게 생각한 최대리가 한록에게 말했다.

"해외 마케팅은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문제잖아요. 집중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게 나아요."

"해외 반응을 바로 끌어올 수 있다면 관객이 최소 100만명은 더 들어올 겁니다. 이걸 놓치기엔 아까워요."

'효율적으로 행동하자'는 최대리와 '완벽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는 한록의 의견 충돌.

"국내 마케팅에서 만족할 정도였으면 <부산 열차>를 고르진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한록은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내 마케팅으로 <부산 열차>가 회귀 전보다 몇 배는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작 마케팅에서 타협을 할 수는 없어.'

이미 필름마켓에서 <부산 열차>의 반응을 확인한 이상, 한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마케팅을 진행하고 싶었다.

<부산 열차>에 대한 애정. 자신이 놓친 영화를 이번에야말로 완벽하게 마케팅하겠다는 집착.

"과장님, 현실적으로 생각하세요. 어제 과장님이 말씀하셨죠. 이게 과장님 욕심일수도 있다고요."

그리고 그건 최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산 열차>는 욕심을 부릴만한 영화입니다."

"그러다가 이미 나와 있는 국내마케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해외 마케팅은 나중에 생각해요."

절대 물러서지 않는 한록과, 마찬가지로 의견을 굽히지 않는 최대리.

회의실은 팽팽한 대치상태에 놓였다.

"저기, 이제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그때 들린 유선의 조심스러운 목소리. 시계를 보니, 어느새 필름마켓이 열릴 10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네. 오늘 밤에 다시 얘기합시다."

한록이 말했다.

*

필름마켓으로 향한 마케팅 부서.

CK의 미팅부스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30분 후 미국의 우드 엔터테인먼트와 <부산 열차> 미팅이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북미 지역과의 판권 협상이 시작되는 날. 다시 말해, 세일즈 상대가 이제 헐리웃으로 바뀐 것이었다.

모든 영화의 정점이라 말할 수 있는 헐리웃.

최대리가 헐리웃에 <부산 열차> 구매 권유 메일을 보낸다고 했을 때, 모두가 같은 말을 했다.

'헐리웃을 상대로는 가격 조정을 해서 보내. 그게 아니면 보러오지도 않을 걸.'

전 세계의 모든 영화가 모이는 곳, 헐리웃. 그만큼 헐리웃의 눈에 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사람들은 모두 <부산 열차>가 팔리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모두와 다른 의견을 가진 유일한 사람, 한록.

'아뇨, 최대리님. 이대로 갑니다. 우리 메일을 봤으면 헐리웃에서도 반드시 <부산 열차>를 사고 싶어 할 겁니다.'

자신의 마케팅에 대한 어마어마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 한록의 능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신뢰할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결국 최대리는 한록의 말대로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 도착한 메일.

[우드 엔터테인먼트-<부산 열차> 관람 요청.]

'와씨, 우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온다고?'

규모는 작지만 명작 영화들로 헐리웃에서 꽤나 큰 입지를 가지고 있는 배급사 우드 엔터테인먼트. 그곳에서 관람 요청이 왔다는 사실에 CK의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오늘. 우드 엔터테인먼트가 관람을 하는 날.

헐리웃은 웬만한 영화로는 눈에 들기 어려운 곳이다. 반면 가능성이 있는 영화는 가장 비싼 가격에 사주는 시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부스의 모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과연 얼마에 팔릴까?'

'50만도 가능하다.'

한록의 예상.

'50만이 넘으면....그럼 정말 내 10년의 커리어가 위험해진다.'

고부장의 걱정.

그 와중에 태연하게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는 최대리.

한록이 우드 엔터테인먼트의 최근 영화를 살펴보는 중인 최대리에게 물었다.

"우드 엔터테인먼트에 메일을 보낸 이유가 있죠?"

"네. 제가 여길 좀 아는데, 이런 영화 좋아하거든요."

"그러시겠죠. 최대리님이 근무하셨던 곳이니까요."

"들켰네요."

한록의 말에 최대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드 엔터테인먼트는 최대리가 헐리웃에서 근무했던 곳. 아마 우드 엔터테인먼트에서 <부산 열차>를 관람하러 오는 이유 중 하나는 최대리의 존재 자체 때문일 것이었다.

"얼마에 팔릴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거기 스타일을 보면..60만 정도?"

"그렇게 많이요?"

"사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반드시 가져가거든요. 근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안 사겠다고 할 수도 있어요."

처음부터 가격을 세게 부르던가, 아니면 아예 구매를 하지 않던가. 우드 엔터테인먼트의 스타일을 대충 파악한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님, 우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오셨는데..."

그때 한록을 부르는 유선의 목소리. 유선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네, 나가겠습니다."

부스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한 한록. 한록은 부스 밖에 나가자마자 유선이 놀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부스에 방문한 사람을 보고 그 자리에서 굳은 한록과 최대리.

[우드 엔터테인먼트 제롬 앤더슨입니다. <부산 열차> 관람을 위해 방문했습니다.]

제롬 앤더슨이 최대리를 보더니 말했다.

[오랜만이군, 윤일.]

그에 대한 최대리의 답.

[네, 오랜만입니다.]

[보스.]

우드 엔터테인먼트의 사장 제롬 앤더슨이 방문한 것이다.

*

제롬 앤더슨. 우드 엔터테인먼트의 사장.

그러나 한록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렉산드로 감독과 배급사를 차리는 사람이다.'

제롬 앤더슨은 몇 년 후 우드 엔터테인먼트를 나가 알렉산드로 감독과 새로운 배급사를 차린다.

한록이 <삼일의 삶>을 가장 팔고 싶어하는 사람. 그가 지금 필름마켓에서 한록의 부스를 찾아와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관람을 했으면 합니다.]

[네, 이쪽으로 오십시오.]

한록이 제롬을 상영 부스로 안내했다.

'제롬 앤더슨 아냐?'

제롬의 모습이 보이자 강과장과 정대리의 얼굴에 스쳐지나가는 당황과 경악.

'제롬 앤더슨이 왜 여기있어?'

'칸 영화제니까 방문했겠죠?'

'아니, 그거 말고. 왜 우리 부스에 왔냐고.'

그에 대한 의문은 한록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롬에게 티켓을 내민 한록.

[종착지는 *로스앤젤레스라.]

*헐리웃이 있는 미국의 지역.

티켓을 보며 말하는 제롬. 그러나 제롬이 이 티켓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아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한록이 제롬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직접 방문하신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한록을 바라보는 제롬. 제롬은 표정이 전혀 읽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판매를 경매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직원들을 보내면 어차피 나와 회의를 해야할테니 직접 찾아왔습니다.]

제롬이 오늘 필름마켓에 직접 찾아온 이유는 헛수고를 덜기 위해. 그리고-

[누가 이런 식으로 판매를 하나 궁금했는데, 당신인 것 같군요.]

한록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전 세계 배급사가 당신 장난에 장단을 맞추고 있죠.]

제롬의 말은 사실이었다. 필름마켓 어디에 가든 <부산 열차>의 경매 얘기가 나오는 상황.

<부산 열차>의 마케팅은 한록의 생각보다도 더 큰 파급력을 끼치고 있었다.

'왜 우리가 영화를 사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대체 얼마나 대단한 영화를 가져 왔길래?'

한록이 도입한 새로운 방식과, <부산 열차>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쌓여가는 부정적 반응.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겠습니다.]

그 방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오늘 제롬의 반응에서 결정이 날 게 분명했다.

그리고 한록은-

[네.]

[보면 아실 겁니다.]

늘 그렇듯 자신이 있었다.

*

30분 후. 상영 부스에서 나온 제롬. 그가 곧장 한록을 찾았다.

[영화는 재밌으셨습니까?]

[가격이 얼마입니까.]

한록의 말을 자르고 묻는 제롬. 한록이 말했다.

[40만 달러입니다.]

제롬이 무표정한 얼굴로 한록을 바라보았다. <부산 열차>가 재밌었는지, 아니었는지, 한록의 마케팅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는 얼굴.

[구매하겠습니다.]

그러나 제롬은 구매를 요청했다. 한록이 구매 요청서를 내밀었고, 제롬이 구매 요청서에 가격을 적었다.

제롬은 영화에 대한 어떠한 감상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스. 영화는 재밌으셨나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제롬에게 묻는 최대리. 제롬은 최대리에게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당신이 왜 이곳으로 옮겼는지 알겠군요.]

그리고 부스를 나서는 제롬.

"과장님!"

제롬이 완전히 사라지자 순식간에 한록의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록을 둘러싼 정대리, 유선, 최대리. 그들이 동시에 똑같은 말을 했다.

"얼마 썼어요?!"

최대리의 이전 상사. 헐리웃의 사장. 그가 과연 <부산 열차>를 얼마라고 판단 했을까.

한록은 종이를 들고 천천히 제롬의 메모를 읽어갔다.

"60만 달러."

"60만달러요?!"

60만 달러. 제롬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금액을 제시했다. 그러나 제롬의 제안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케팅을 함께 판매할시 80만 달러."

한록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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