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86화 (86/263)

< 86 : 필름마켓(5) >

[<부산 열차> 영국 판권 아직 안 팔렸습니까?!]

미팅부스로 뛰어와서 묻는 피터.

[이건 이미-]

[얼마를 생각하십니까.]

피터에게 대답하려는 고부장을 한록이 막아섰다.

[<부산 열차>의 판권은 40만 달러입니다.]

"이과장. 지금 뭐하는 거야? 부산 열차는 이미 팔렸잖아."

한록을 붙잡는 고부장. 그러나 한록은 계속 피터와 대화를 이어갈 뿐이었다.

[20만이면 충분합니다.]

다짜고짜 가격을 반으로 깎는 피터. 협상은 판권 판매의 기본이라지만, 피터는 시작부터 가격을 반으로 깎고 들어왔다.

[40만이라니, 대체 한국 좀비영화에 관객이 몇이나 들어올거라고 생각합니까?]

그건 <부산 열차>에 대한 피터의 무시 때문이었다.

[그 영화가 잘 팔릴 것 같아서 구매하러 오신 것 아닙니까.]

[...아무튼 그 정도의 가격은 아닙니다. 아무도 사려하지 않을 거예요.]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저는 영화가 제 값을 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팔지 않을 생각입니다.]

[쓸데 없이 자존심을 부리네요.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적당히 조율합시다.]

[시간 낭비하는 건 그쪽입니다. 저랑 미팅을 하려는 분들이 줄을 서 있는데 당신 때문에 못하고 있어요.]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지?'

짜증이 난 채로 한록을 훑어보는 피터. 피터도 CK와 거래를 해 본 적이 몇 번 있지만, 이렇게까지 나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거래 하고 싶지 않습니다.]

[네. 그럼 돌아가시면 됩니다.]

[...]

그리고 한록이 이렇게까지 나올 수 있는 이유는 피터 역시 알고 있었다.

'이대로 돌아갈 순 없어.'

런던이 적힌 기차표를 쥐고 <부산 열차>를 봤다. 그렇게 된 이상, 회사에 빈 손으로 돌아갈 순 없다.

[40만에...구매하겠습니다.]

결국 꼬리를 내린 피터. 한록이 최대리를 한 번 바라보았다.

'지금입니다.'

대충 그런 눈빛의 한록.

한록의 의도를 파악한 최대리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록에게 말했다.

[과장님, 죄송합니다. <부산 열차>의 영국 판권은 이미 팔렸습니다.]

[뭐라구요?!]

[이런. 미리 말했어야죠. 괜히 언쟁을 했군요.]

피터에게 사기를 치는 한록과 최대리. 미리 얘기해 둔 것도 아닌데, 둘의 연기는 말을 맞춰오기라도 한 듯 잘 맞았다.

[죄송합니다.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걸 왜 지금 말합니까!]

[저도 몰랐습니다.]

[아니, 젠장...]

머리를 벅벅 긁는 피터. 피터가 문득 생각이 난 듯 한록에게 물었다.

[누구한테 팔렸습니까?]

'제발, 엘리스만은 아니길!'

학창시절부터 언제나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엘리스. 그리고 한록의 대답은-

[UK픽쳐스, 매니저 엘리스입니다.]

[젠장!]

피터가 땅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

[앞으로 CK의 영화를 구매하고 싶다면 일찍 찾아오세요.]

[알고 있습니다!]

씩씩거리며 부스를 나선 피터. 그런 피터를 보고 최대리가 말했다.

"과장님, 성격 진짜 나쁘시네요."

"가격을 너무 깎으려 들길래 한마디 한 것 뿐입니다. 앞으로는 CK 영화는 제 값을 주고 사야 된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정말 그 생각뿐이었어요? 개인 감정은 하나도 없었고?"

"그건 비밀입니다."

"역시.

CK의 부스를 보며 '한국 좀비 영화가 팔릴리 없다'고 말하던 피터. 한록이 그런 피터에게 약간의 복수심을 가지고 있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어쨌든, 피터는 이제 CK 영화를 무시하지 못하겠네요. 다음부터 잘 써먹어볼게요."

그렇게 말한 최대리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노트북을 켜는 최대리.

"뭐하시는 겁니까?"

"과장님 말이 얼마나 먹혔는지 확인해 보려구요."

그 말과 함께 피터에게 도착한 메일 하나.

[CK ENM-칸 필름마켓 참여작. <스캔들>.]

최대리는 피터에게 <스캔들>에 대한 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700만 관객이라는 높은 숫자를 기록했지만 내용이 너무 한국적이다보니 바이어들이 꺼리는 <스캔들>.

엘리스도 <스캔들>은 거절했기 때문에 아직 영국으로의 판매는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피터에게 도착한 메일.

[<지구 특공대>, <부산 열차>는 UK 픽쳐스로 판매되었지만 <스캔들>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메일의 끝에 적힌 말.

[놓치면 안 되겠죠?]

그 말에 피터는 오늘 한록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앞으로 CK의 영화를 구매하고 싶다면 일찍 찾아오세요.]

"<스캔들>은 30만 달러인데 35만 달러를 부르셨군요."

최대리의 메일을 보고 말하는 한록.

"과장님이 워낙 상황을 잘 만들어주셨으니까요. 얼마나 통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정말 그것뿐입니까?"

최대리가 한 말을 똑같이 돌려주는 한록. 한록의 말에 최대리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아뇨. 그 놈은 좀 당해봐야죠."

"최대리님도 성격이 나쁘시군요."

"과장님만 할까요."

그리고 잠시 후. 부스를 찾아온 누군가.

[<스캔들>은 아직 안 팔린 거 맞습니까?]

피터의 등장에 한록과 최대리가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

결국 원래보다 비싼 35만 달러에 판권을 사간 피터.

"와, 원래 가격보다 싸게 판 적은 있어도 비싸게 판 건 처음이네요. 저 앞으로 장사나 할까요?"

장난을 섞어서 말하는 최대리. 한록이 최대리에게 물었다.

"최대리님. <부산 열차> 판권이 얼마나 팔렸습니까?"

"구매를 확정한 건 영국, 스웨덴, 일본, 이탈리아 네 곳이에요. 나머지는 사고 싶은데 예산이 부족하니 회의를 하고 오겠다고 하네요."

40만 달러에서 조금도 가격을 내릴 생각이 없는 한록. 그러다보니 다른 국가들은 상부의 허락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가격을 내릴 필욘 없어요. 그냥 승인 과정이 필요한 거라 아마 내일이면 다시 사겠다고 올 것 같아요."

최대리는 한록이 가격을 내릴까봐 걱정하는 모양이었지만, 한록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 영화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40만 달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구매하겠다고 나서는 회사들.

그렇다면 단순히 영화를 잘 파는 걸 넘어서, 전 세계 회사에게 CK와 <부산 열차>를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필름마켓에 참여한 모두가 <부산 열차>에 대해서 얘기하게 만들겠다.'

최고의 활약을 기대하며 한록을 필름마켓에 보낸 최경준. 그의 기대에 부응할 때가 왔다.

한록이 최대리에게 말했다.

"아뇨, 가격을 올릴 생각입니다."

"네?"

"다들 40만 달러에 사겠다고 하니까요. 그 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에요?"

"그건 회사들이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다르겠죠. 가장 높게 사겠다는 회사에게 팔 생각입니다."

한록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최대리. 최대리가 잠시 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과장님. 영화로 경매를 하시겠단 말씀이세요?"

"네, 맞습니다. <부산 열차>는 더 비싼 값을 받아야하는 영화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영화의 값을 깎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알지만 필름마켓에선 절대 안 통할 방식이에요. 여긴 영화를 최대한 싸게 사가려는 곳이라구요."

"정말 안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최대리는 오늘 필름마켓을 떠올렸다. CK의 부스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내일 다시 돌아 올테니 꼭 판매를 기다려 달라던 바이어들.

그런 그들이 '가장 비싸게 부르는 곳에 팔테니, 가격을 적어두고 가라'란 말을 듣는다면...

"바이어들은 소비자 입장이니까...우리한테는 갑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경매를 도입한다고 하면 아마 엄청 짜증낼 거예요. 앞으로 CK랑 거래 안 한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 다음엔..."

바이어들 사이에선 엄청난 반발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를 써야 하나 고민하겠죠."

그들은 결국 <부산 열차>를 사기 위해 지갑을 열게 될 것이다.

"과장님. 진짜 성격 나쁘시네요."

최대리가 말했다.

*

필름마켓의 1일차가 끝이 났다. 호텔로 돌아온 한록과 유선, 그리고 최대리. 한록이 모두를 보며 말했다.

"회의합시다."

"네..."

"한국 돌아가면 이과장님 신고부터 합시다."

다소 불평을 하긴 하지만, 어쨌든 호텔의 회의실로 향한 모두.

"피곤할텐데 계속 일을 시켜서 저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산 열차>의 해외 반응을 어떻게 활용할지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해요."

어제 회의를 하다가 결론이 안 난 부분이었다.

'<부산 열차>는 분명 해외에서 반응이 좋을 거다. 다만, 그 반응을 최대한 일찍 끌어와야 한다.'

영화의 열기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짧게는 1주일, 길어야 한 달 극장에 걸리고 내려가는 영화들.

그 안에 이슈를 모으지 못하면 영화의 수명은 사실상 끝난 걸로 봐야한다.

'한달, 아니 개봉 일주일 안에 한국과 해외에서 모두 흥행해야 해. 그래야 제대로 된 시너지가 나온다.'

그 한달 안에 한국과 해외에서 <부산 열차>의 반응을 극대화 해야하는 상황.

심지어 해외 마케팅에는 개입할 수 없고, 오로지 국내 마케팅으로 해외의 반응을 끌어와야 한다.

상황이 워낙 어렵다보니 어제의 회의에선 진척이 없었다.

한록이 모두에게 물었다.

"다들 생각해보셨습니까."

"저 몇 개 생각해왔습니다!"

한록의 말에 유선이 의욕적으로 손을 들었다. 그리고 노트를 열더니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놀라서 유선을 바라보는 한록.

'...어제 바에서 돌아간 후에 이걸 생각했구나.'

어제 엘리스에 대한 얘기를 나눈 후 침울해져서 방으로 돌아간 유선.

한록은 유선이 속상한 마음에 일찍 잠들었거나, 울기라도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유선은 방에서 혼자 아이디어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과장님은 좋은 부하를 뒀네요. 부럽다."

화이트보드에 열심히 글을 적는 유선을 보고 말하는 최대리. 한록 역시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어떤가요?"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유선의 아이디어 중 쓸 만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해외 파급력이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개봉 후에 <부산 열차>를 관람한 사람 중 몇 명을 추첨해서 실제로 부산 여행을 보내주는 건 어떨까요?"

"유선씨. <퀸>때도 봤겠지만 해외 마케팅은 판권을 사간 쪽에서 전적으로 담당해요. 우리가 개입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네!"

한록의 지적에 유선이 당황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유선은 바로 다음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바이어들 반응을 보는데, 상영 부스가 기차를 연상시키는 게 좋았다고 하더라구요. 개봉 직전에 각국의 기차역에 광고를 하는 건요?"

"전 세계에 광고를 송출한단 거죠?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요. 아직 개봉도 안한 영화에 그 정도로 예산을 주진 않을 거예요."

"아...그럼, 이거는..."

"이것도 어렵겠네요."

끝없이 나오는 유선의 아이디어. 그러나 하나같이 한록이 이미 생각했다가 폐기한 것들이나, 현실성이 없는 것들이었다.

자괴감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 온 아이디어. 그런 아이디어가 하나하나 거절 당하고 있다.

점점 굳어가는 유선의 표정을 보니 한록 역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쉽게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천천히 생각해봅시다."

결국 회의를 짧게 마무리한 한록. 한록이 침울한 얼굴의 유선을 보고 말했다.

"오늘은 좀 쉬는 게 좋겠네요. 술 마시러 갑시다."

*

한록의 허락 하에 다시 바에 찾은 삼인방.  한록이 바를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부턴 자리가 없을 거라더니..."

"당연히 거짓말이었죠."

자리를 잡고 앉자 최대리가 이번엔 진짜 술을 가져왔고, 셋은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최대리가 한록에게 물었다.

"과장님. 저는 <부산 열차>에 애정이 있으니 그렇다쳐도, 과장님은 너무 열심히 하시는 거 아니에요?"

필름마켓으로 출장을 와서 매일 <부산 열차>의 마케팅 방안에 대해 생각하는 한록. 최대리는 그런 한록의 모습에 놀란 것이었다.

"저 역시 <부산 열차>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그러나 <부산 열차>에 애정이 있는 것은 최대리뿐만이 아니었다. 회귀 전, 회계부로 좌천을 당했을 때 한록이 놓쳤던 많은 영화들.

'내가 이 영화를 맡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항상 한록이 아쉬워하던 부분이었고, <부산 열차>는 그 영화들 중 가장 대표적인 영화였다.

그런 영화가 자신의 손에 떨어졌다. 그런 상황이니만큼 <부산 열차>를 최대한으로 흥행시키겠다고 다짐한 한록.

"천만 예상하시나요?"

"그건 당연한 겁니다. 천만 뿐만이 아니라  <부산 열차>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만들 겁니다."

회귀 전 <부산 열차>는 세계가 한국 좀비영화를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한록의 마케팅이 들어간다면 <부산 열차>가 얼마나 성장할지는 한록도 예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저희를 밤까지 붙들고 계시는군요."

"미안해요. 제가 욕심을 부리고 있긴 합니다."

사실 <부산 열차>는 회귀 전에도 해외에서 큰 반응을 얻었다.

한록이 손을 대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성공은 보장된 상황. 다만 더 잘할 수 있는 상황에서 포기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흠. 그치만 여기서 포기해야 할 수도 있어요. 전 세계를 상대로 마케팅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알고 있습니다."

최대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록. 이 역시 한록도 염두에 두고 있는 부분이었다.

[윤일!]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대리를 반갑게 부르는 젊은 여자. 엘리스였다.

[엘리스. 엘리스도 이 호텔에 머물러요?]

[아뇨, 여기 바가 유명하니까 한번 와 봤어요. 또 보네요, 미스터...]

[한이라고 부르세요.]

[한.]

윤일과 한록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 엘리스. 엘리스의 등장에 내내 말이 없던 유선의 얼굴이 더욱 굳어갔다. 엘리스가 유선을 보고 물었다.

[이쪽 분은 처음 뵙네요. CK분이신가요?]

[제 부하입니다. 오늘 미팅에 함께 있었어요.]

[아, 죄송해요. 그땐 <부산 열차>를 사야한단 생각밖에 없어서요.]

[아...아니에요.]

유선에게 사과를 하며 악수를 하는 엘리스.엘리스가 한록을 보고 말했다.

[한. 필름마켓은 처음이죠?]

[맞습니다.]

[어쩐지. 이번 상영 부스랑 안내방송 정말 좋았어요. 필름마켓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어요.]

한록의 마케팅에 대해 얘기하는 엘리스.

[보통 판권 판매는 그냥 회사 간의 계약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관객이 되어서 영화를 보니까...입장이 좀 달라지더라구요. 그냥 저렴한 영화, 돈이 될 영화를 찾는게 아니라 진짜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영화가 뭘지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좋은 경험이었어요, 한. 특히 마지막의 안내 방송은 최고였어요.]

엘리스는 한록의 마케팅이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한록과 얘기를 하는 엘리스.

[물론 거기엔 제 메일도 한몫했겠죠?]

[그럼요, 윤일. 아, 동료들끼리 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해요. 이제 가볼게요.]

엘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신의 일행에게 향하는 엘리스를 보고 유선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대화 한 마디도 못해봤네."

한록의 마케팅에 대해 극찬을 하는 엘리스. 엘리스와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던 윤일.

그리고 엘리스가 CK직원인지도 몰랐던 자신.

'더 열심히 해야지.'

유선은 그렇게 다짐하며 두 손을 꼭 쥐었다.

*

다음날 아침. 부스에 모인 마케팅 부서와 판권 부서. 고부장이 한록에게 말했다.

"보고해."

"<지구특공대>, <스캔들> 7개국에 판매 완료했습니다."

"..."

"<스캔들>은 예상 가격보다 5만 달러 높인 35만 달러에 판매했습니다."

첫날만에 7개국에 판매 완료. 거기에 기존에 책정된 금액보다 더 높은 금액에 판매까지.

판권부서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마케팅 부서에 의해 일어나고 있었다. 고부장이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부산 열차>는 앞으로 경매 형식으로 판권을 판매할 생각입니다."

"잠깐."

고부장이 한록의 말을 가로막았다.

"경매 형식이라고?"

"네. 40만 달러에도 구매하겠다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충분히 그 이상의 값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쓸데없는 짓 하지마. 바이어들이 얼마나 콧대가 높은지 알아? 경매? 아무도 참여 안 할거야. 일 망치기 전에 그냥 원래대로 진행해."

'괜히 일 벌리지 말라'는 고부장의 강한 반대. 그러나 이 역시 예상한 일이었다. 한록이 고부장에게 말했다.

"어제 이미 본부장님께 보고 드렸습니다."

고부장의 반대는 뻔한 것이었고, 그걸 예상한 한록이 이미 최경준에게 연락을 넣어둔 상황.

"그래서?"

"허가하셨습니다."

자신을 건너뛰고 내려온 최경준의 지시.

그 얘기에 고부장이 아무런 말없이 한록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이어진 고부장의 침묵. 부스의 모두는 고부장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한록."

긴 침묵 끝에 아무런 호칭 없이 한록의 이름을 부르는 고부장.

"너, 점점 선을 넘고 있다."

판매는 우리가. 마케팅 부서는 보조만.

고부장이 정해두었던 선을 넘고 있는 한록.

"단 한번이라도 실수한다면...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그런 한록에게 보내는 고부장의 경고.

모두가 숨을 죽이고 한록의 대답을 기다렸고, 한록은 간단하게 답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필름마켓이 시작됩니다.>

침묵이 감도는 CK의 부스. 그 사이에 들린 안내방송과 바이어들의 대화 소리.

[살롱 파리입니다. <부산 열차>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새롭게 변한 <부산 열차>의 판매 방식. 그 방식의 첫 손님이 부스에 도착했다.

"가 봐. 그러면 네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거였는지 깨닫게 되겠지."

고부장이 한록을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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