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 우리는 칸으로 갑니다.(2) >
"카...칸이요?"
칸. 모든 영화인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 칸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유선이 놀라서 입을 막고 묻는다.
"네. 이번에 필름마켓에 출장을 가는데, 유선씨랑 제가 같이 가게 됐어요."
"제가 어떻게..."
"제가 추천했어요."
한록의 말에 유선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한록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유선.
"과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뭐부터 할까요? 지금 비행기 예매할까요?"
"그건 회사에서 알아서 해줄 거예요."
"아, 어떡해. 칸이라니!"
손을 꼭 모으고 발을 동동 구르는 유선.
유선이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록 역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방방 뛰던 유선이 정신을 차린 듯 한록에게 물었다.
"과장님, 그런데 정말 제가 가도 되나요? 현차장님이나 하대리님도 계신데..."
"절 도와주러 가는 거잖아요. 그럼 유선씨가 제일 나아요."
유선을 키워주려는 의도가 크지만, 사실 한록 입장에서도 많은 걸 생각한 선택이었다.
현차장이 아무리 협조적이라도 상사다. 그리고 하대리는 아직 유선만큼 손발이 완벽하게 맞지 않는다.
자신을 보조해줄 어시스트. 그 역할엔 유선이 딱 맞았다.
그럼에도 유선은 크게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저 진짜 열심히 할게요. 정말로요."
한록에게 진지하게 말하는 유선.
"과장님이 주신 기회인 거 알고 있어요. 절대 놓치지 않을게요. 그리고 꼭 도움이 될게요."
평소 유선처럼 의욕적인, 그러나 거기에 책임감이 더해진 말.
'많은 게 변했구나.'
한록은 유선과 자신의 손목에 이어진 실을 보며 새삼스레 생각했다.
유선은 처음으로 자신을 믿어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잘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유선은 이제 그냥 잘됐으면 좋겠다거나, 미래가 기대된다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꼭 도움이 될게요.'
유선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느낀 안도감. 자신도 처음 맡아보는 분야지만, 유선이 이렇게 말한다면 정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든 이유.
유선은 이제 한록이 믿고 뒤를 맡길 수 있는 든든한 후배가 되어있었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변화한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구나.'
유선의 성장이 고맙고, 또 고마운 한록.
"그래요. 우리 잘 해봐요."
한록이 유선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
유선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온 한록.
자리에 앉자 최대리의 메신저가 도착했다.
[과장님. 우리 대화 좀 할까요?^^ 이제 같은 팀인데 시간 좀 내줘요.]
'벌써 최경준에게 연락을 받았나 보군.'
최대리는 아마 필름마켓과 관련해서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한록이 대답을 보냈고, 둘은 함께 1층 카페로 향했다.
"부장님이랑 현차장님한테 과장님 오래 빌려간다고 했어요. 느긋하게 얘기하다 올라갑시다."
언제나 그렇듯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최대리. 한록은 최대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부산영화제부터 오과장, 제임스와의 인터뷰까지. 여태 최대리를 지켜본 한록의 결론.
'뭐 하는 인간인지 모르겠다.'
일에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을 꽤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반면 속에 꿍꿍이가 가득한 것 같기도 한 최대리.
'확실한 건 만만한 녀석은 아니란 거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과장도 물리치고 여기까지 온 한록이다. 오과장에 비하면 최대리는 쉬운 상대였다.
'나는 내 식대로 하면 된다.'
최대리가 어떤 태도로 나오든 상관없다는 한록의 태도.
"자, 제가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불렀냐면 말이죠."
최대리가 한록에게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과장님, 판권 판매 경험이 없으시죠?"
"네. 없습니다. 보통 판권 부서가 하니까요."
"그럴 줄 알았어요."
한록은 경험이 없고, 자신은 전문가 수준인 분야. 그에 대해서 최대리가 어떤 방식으로 나올까.
'과연 무슨 얘기를 하려나.'
한록은 약간 긴장해서 최대리를 바라보았다.
한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지고 온 다이어리를 펼친 최대리.
최대리가 한록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지금부터 최대리표 판권 강의 들어갑니다."
*
"과장님 말씀이 맞아요. 판권은 판권부서에서 담당하죠. 그런데 가끔 그 영화의 제작이나, 마케팅에 참여한 사람을 같이 붙여주는 경우가 있어요. 아무래도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 붙어서 강점을 설명해주면 가격을 올리기 좋으니까요."
"대리님이 그런 경우군요."
"맞아요. 저는 영어가 되고, 해외에서 오래 있었죠. 그래서 판권 쪽에 자주 불려가는 거예요. 그래도 메인은 판권 부서예요."
생각외로 꽤나 성실하게 강의를 해주는 최대리.
열심히 상황을 설명해주던 최대리가 잠깐 한록을 바라보았다.
"문제는 거기랑 마케팅 쪽이랑 말이 잘 안 통한다는 거예요. 마케팅 쪽에서 의견을 주면 잘 안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그래서 제가 과장님한테 헬프를 요청한 건데...이건 나중에."
그리고 최대리는 한록에게 종이를 하나 건네주었다.
최대리가 넘겨준 것은 현재 판권이 팔리지 않은 작품들과, 그 중 필름마켓에 내놓을 영화의 목록이었다. 족히 20개는 되는 후보작들.
"저희 둘이 이 영화들을 전부 마크할 순 없어요. 판권 부서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고요. 중요하지 않은 건 판권 부서에 넘기고, 우리가 가져갈 건 확실하게 가져갑시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한록.
-줄 건 주고 가져갈 건 가져간다.
'대충 어떤 스타일인지 알겠군.'
한록이 계획한 일을 무자비하게 끌고 가서 완벽한 결과를 내놓는 타입이라면, 최대리는 효율적으로 가장 필요한 부분만 가져가는 타입인 듯 했다.
"저는 제가 마케팅 했던 <스캔들>에 집중할 거예요. 과장님은 원하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한록에게 묻는 최대리. 한록은 영화 리스트를 바라보았다.
[도둑]
[지구 특공대]
[지옥]
[멧돼지]
.
.
.
'일단 지구특공대는 반드시 내 의견이 들어가야 한다.'
sf에 사회고발 영화인 지구 특공대. 회귀 전에도 외국에서 꽤나 반응이 좋았으니,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하면 한 번 더 큰 반응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록의 시선이 멈춘 곳은 <삼일의 삶>.
'삼일의 삶은 지금 팔면 안 된다.'
한록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삼일의 삶이었다.
지금 삼일의 삶은 부산영화제의 성공으로 업계의 관심이 모인 상황. 판권 부서는 아마 이 틈을 타 삼일의 삶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지금 팔기에는 아까워.'
그러나 회귀 전 삼일의 삶이 얼마나 유명했는지 알고 있는 한록에게는 시기상조일 뿐이었다.
'곧 알렉산드로 감독과 업계 사람들이 모여서 배급사를 만든다. 삼일의 삶은 그 곳에 팔아야 해.'
삼일의 삶에 엄청나게 호평을 보인 알렉산드로 감독. 알렉산드로 감독이 만들 배급사에 삼일의 삶을 맡기는 게 최적의 선택이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는 거야.'
오로지 한록만 가지고 있는 정보.
'너 미쳤냐'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듣고, 그런 소리를 들은 방법으로 영화를 성공시켜온 한록이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달랐다.
한록이 전문가가 아닌 분야에서 의견을 어필해야 하는 상황이다.
거기에 삼일의 삶이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지 직접 보고 온 건 회귀 전 한록뿐이다. 그러니 설득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해야 한다.'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다. 한록이 최대리에게 말했다.
"제가 지구 특공대를 맡겠습니다. 그리고 삼일의 삶은 판매작에서 제외하는 게 좋겠습니다."
"음, 지금이 팔기에 적기일 텐데요. 관심이 식으면 값이 떨어질 거예요."
한록이 걱정한 것처럼 역시나 삼일의 삶을 팔아야 한다고 말하는 최대리.
'여기부터 시작이군.'
회사에서 자신과 라이벌로 보는 동시에, 한록과 마케팅 스타일이 꽤 다른 최대리.
그 최대리를 설득하는 것 부터가 시작인 듯했다.
한록이 최대리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삼일의 삶이 어떻게 극장 개봉까지 갔는지 아실 겁니다. 신비주의로 사람들의 기대감을 극대화했고, 극장개봉이 성공해서 그 기대감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삼일의 삶은 잊혀지는 게 아니라 더 보고싶은 영화가 될 겁니다."
"그건 누군가 꾸준히 삼일의 삶을 언급했을 때 얘기죠."
"좋은 영화니까 언급은 계속 나올 겁니다. 이미 제임스가 삼일의 삶을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습니까. 부산 영화제를 방문한 해외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거기에 알렉산드로 감독도 극찬을 했죠. 그쪽에서도 조만간 언급이 나올 겁니다."
"앞에 두 개는 맞는 말이긴 한데요. 알렉산드로 감독이 언급하리란 보장이 없어요."
"곧 알렉산드로 감독이 머물렀던 바닷가 마을에서 알렉산드로 감독을 기념하는 행사를 연다고 합니다. 거기서 반드시 언급이 나올 겁니다."
"과장님."
최대리가 한록의 말을 잘랐다.
'역시, 의견 충돌이-'
"그거 좋네요.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생각과는 다른 말을 했다.
"좋아요. 행사가 열리면 분명 삼일의 삶에 대한 언급이 있을 거예요. 없으면 뭐, 저희가 인터뷰라도 해서 반응을 유도하면 되죠."
한록의 말에 반대하던 게 언제냐는 듯 바로 한록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최대리.
'이렇게 빨리?'
한록은 놀란 얼굴로 최대리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반대하던 일. 그런데 상대방이 제안하는 게 더 좋아보인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존심 때문에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 볼 상황.
그러나 최대리는 아주 빠르게 한록의 말을 수긍했다. 최대리는 상당히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인 듯 했다.
'이런 부분은 마음에 드는 군.'
최대리에 대해 아주 약간의 호감이 생긴 한록. 이제는 최대리가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판권 부서가 어떻게 나오냐가 되겠네요. 거기는 알렉산드로 감독의 반응을 못 봤으니까요."
"판권 부서는 어떤 식으로 나올 것 같습니까?"
"분명 지금 판권을 팔겠다고 하겠죠. 일단 지금 당장 매출을 올려야 하니까요."
"그럼 다른 영화를 더 부각해야겠군요. 삼일의 삶 하나 정도는 안 팔아도 충분하다는 식으로요."
"맞아요. 어려울 것 같긴 한데...지금부터 전략을 만들어 봐야죠. <스캔들>이랑 <지구 특공대> 외에도 몇 개 더 준비해 가야겠네요."
생각 외로 손발이 착착 맞아가는 최대리와 한록.
여태 보여왔던 꿍꿍이가 가득한 모습과는 다르게, 최대리는 한록에게 상당히 협조적인 모습이었다.
한록이 제안을 하면 빠르게 받아들이고, 그에 대해 바로 아이디어를 낸다.
비록 짧은 시간 대화를 했지만 이쯤되면 느껴지는 게 있다.
'일 가지고 지저분하게 굴 녀석은 아니다.'
최대리가 어떤 인간이든 최소한 일에서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한록의 마음 속에 싹트기 시작했다.
"확실히 과장님이랑은 말이 통하네요. 과장님을 붙여달라고 하길 잘했어요."
그리고 그 생각은 최대리 역시 마찬가지인 듯 했다. 다이어리에 회의 내용을 정리하던 최대리가 감탄한 듯 말했다.
"사람들이 왜 과장님을 따르는지 알겠네요. 초보 맞아요? 이대로 가고, 자세한 내용은 판권 부서에서 나오는 걸 보고 조율하면 되겠어요."
최대리는 한록의 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듯 보였다. 최대리가 한록에게 물었다.
"삼일의 삶 외에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최대리는 생각보다 너무 순순하게 한록의 말을 따랐고, 이제 일의 주도권은 한록에게 넘어온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록은 마지막 의문을 해결하고 싶었다.
'이쯤에서 확실히 게 해두는 게 낫겠군.'
최대리의 질문에 한록이 답했다.
"대리님이랑 저랑 마케팅 스타일이 상당히 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말이 잘 통하네요. 원래 다른 사람들 의견을 잘 반영하는 타입이십니까?"
"제가 사사건건 반대할 줄 알았는데 말을 너무 잘 듣는다 이거죠?"
한록의 말을 정확하게 요약한 최대리.
"네. 이러다가 중간에 말이 바뀌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요."
'이러다 뒤통수 치는 거 아냐?' 란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한록. 한록의 말에 최대리가 웃으며 답했다.
"엄청 솔직하시네. 좋아요, 이래야 과장님이지. 그럼 저도 솔직하게 답해드려야죠."
"네, 그 편이 낫습니다."
"물론 사사건건 반대할 생각도 있었어요. 여긴 제 분야니까. 그런데 들어보니까 내용이 좋잖아요? 그럼 굳이 반대할 이유 없죠."
그렇게 말하며 다이어리를 정리하는 최대리.
"싸움을 만들어서 성과를 떨어뜨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거야 나중에 하면 되는 거고, 이건 제가 맡은 일이잖아요."
최대리의 말은 간단했다. '내 일에 방해 될 행동은 하지 않겠다.'
생각해보면, 최대리는 가장 수상했던 부산영화제에서도 일에서만큼은 언제나 협조적이었다.
최대리의 말을 들은 한록은 생각했다.
'이거...'
언제나 수상하고 재수 없는 최대리와 항상 싸움을 몰고 다니는 한록. 하지만 일에는 누구보다 진심인 둘. 그 둘의 조합이-
'괜찮겠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며칠이 지나자 회사에는 '이한록 과장이 칸에 간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
홈쇼핑 사업본부장이 소식을 듣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한록이면 최경준이 밀어주는 영화사업본부 간판 아니야?"
"맞습니다."
"아무리 사장님이 여러 부분을 고려한다고 하셨어도 지금은 매출이 가장 중요한 시기일텐데. 왜 본인 전문 분야가 아니라 다른 쪽에 돌리겠다는 거지?"
최경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홈쇼핑 사업본부장의 반응.
반면 음악사업본부장 문오석은 소식을 듣고 혀를 찼다.
"최경준이 머리를 잘 썼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한록이면 영화사업본부에서 가장 유명한 녀석이야. 그 녀석이 칸에서도 잘하고 돌아온다면 사장님의 관심은 영화사업본부 쪽으로 쏠리겠지."
"꼭 그러리란 보장은..."
"보면 모르겠어? 벌써 그 녀석이 칸에 간단 소식이 회사 전체에 돌았잖아. 최경준이 인수전의 흐름을 가져간 거야."
한록을 괜한 곳에 돌리고 있다는 홈쇼핑 사업본부장의 생각. 반대로 최경준이 인수전의 쟁점을 선점해 버렸다고 생각하는 문오석의 생각.
'내 선택이 맞는지 틀린지는 사장님이 결정한다.'
그 모든 반응들 속에서 최경준은 하정엽의 앞에 서 있었다.
앞으로 영화사업본부의 일정에 대해 하정엽에게 보고하는 최경준.
"10월에는 천만관객을 준비하는 영화가 두 개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마무리 되는 즉시 시상식 준비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9월은 칸 필름마켓에 참여합니다."
"알겠습니다."
"필름마켓에는 이한록 과장이 최윤일 대리와 함께 참석합니다."
최경준의 말에 보고서를 바라보던 하정엽이 고개를 들었다.
"필름마켓은 이한록 과장의 분야가 아닐 텐데요."
"하지만 마케팅이 꼭 필요한 분야입니다. 우리 CK는 제작한 영화의 질에 비해 판권의 가격이 너무 낮습니다. 이한록 과장이 길을 잘 닦아두면 앞으로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인수전이 달려 있는 이 시기에 무모한 결정을 하셨군요."
사람들과 똑같은 지적을 하는 하정엽. 그리고 최경준의 대답.
"네. 제 뒤를 잇기 위해서는 칸 정도는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우리 사업본부가 얼마나 매력적인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겠다.'
그런 뜻이 담긴 최경준의 말.
최경준의 말에 하정엽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선생님. 위험한 결정을 하셨습니다."
자신을 성장하게 해 준 사람에게 하정엽이 존중의 의미로 충고를 건넨다.
"이한록 과장이 뛰어난 성과를 만들어 온다면 당연히 영화사업본부에게 마음이 갈 겁니다. 하지만 성과가 좋지 않다면, 아니 평범한 성과에 그친다면 저는 선생님의 전략이 현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선택을 하신 겁니까."
하정엽의 말에 최경준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이한록 과장이 성공할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하정엽은 더 이상 충고를 하는 대신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하정엽이 말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군요."
그 말에 최경준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의문을 가지던 모두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자, 봐라.'
이 회사의 모든 권력을 가진 하정엽. 그가 기대된다고 말하는 한록.
'이게 내가 가진 카드다.'
최경준의 전략에 실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