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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75화 (75/263)

< 75 : 최경준의 보상(2) >

"자네 직속 상사가 빈센트 리센이더군. 누군가 했는데, 예전에 더 필름에 방문했을 때 날 수행한 사람이야."

김준에게 말하기 시작한 최경준.

"*디렉터는 마이크 오딘슨. 한국에 올 때마다 식사약속을 잡고 가지. 아시아 지부 지부장은 만나본 적이 있나? 캐서린 로베타야. 올해 새해 선물을 보냈더군."

*디렉터:한국의 부장 정도 위치

최경준의 입에서 아는 이름이 나올때마다 김준의 몸이 움츠러든다.

자신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도 예의를 갖추고 대하는 최경준의 업계에서의 위치.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하는 말.

"다시는 이 바닥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줄까."

'협박이 아니다. 이 남자라면 정말 나를 그렇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생각에 김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최경준이 그걸 그냥 넘어갈 사람은 아니었다.

"할 말이 있을 텐데."

"제가...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한록 과장에게 사과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CK 직원들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겠습니다."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김준. 그리고 김준을 바라보는 최경준.

'어떻게 할까.'

최경준은 김준의 처벌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경준의 서늘한 시선에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김준. 최경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정말 이 업계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네. 하지만 그건 이한록이 좋아하지 않겠지. 자네 처벌은 이한록이 정할테니, 이한록에게 잘 사과해보게."

최경준은 더 필름에게 연락을 할 것이고, 한록이 사과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로 김준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자신이 무시하던 사람이 자신의 목줄을 쥐게 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준은 최경준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최경준의 기분을 거스르는 순간, 정말 자신의 자리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최경준이 김준을 보며 말했다.

"젊은 친구.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고 싶으면 기억해두게. 대단한 건 자네의 회사지 자네가 아니야. 자네는 그저..."

이어진 최경준의 말.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지."

*

김준의 모습을 떠올리던 최경준이 비서에게 말했다.

"내일 더 필름 쪽에 연락해. 이한록 과장의 일을 방해한 것에 대해 사과 요청을 할 거야."

"알겠습니다."

이제 김준은 <퀸>과 관련해서 한록에게 어떠한 방해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한록은 인수전이란 기회를 물어왔고, 최경준은 자신의 사람에게는 확실한 보상을 하는 사람이었다.

'조금 더 큰 보상이 필요하다.'

앞으로 한 달이 지나면 하반기 최고 기대작의 홍보가 시작된다. 최경준은 한록에게 그 영화를 맡길 생각이었고, 그렇다면 한록이 더 크게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생각에 잠겨있던 최경준이 비서에게 말했다.

"이한록을 불러."

그리고 잠시 후 한록이 도착했다.

*

본부장실에 도착한 한록. 최경준이 한록을 보고 말했다.

"사장님이 이번 싱어롱 상영이 아주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야. 인수전을 위해 다양한 방식을 고려하겠다고 하시는군."

한록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최경준.

"자네의 공이 크네."

"공연사업본부와 협업한 덕분입니다."

한록은 최경준의 앞인데도 불구하고, 최경준이 아니라 공연사업본부의 덕이라고 말을 했다.

"정말 자네답군."

한록의 솔직한 모습에 최경준이 한 번 웃고는 답했다.

"페스티벌을 진행하는 걸 보니 인원이 부족해보이더군. 사람을 충원해주겠네. 자네가 원하는 사람이면 어느 부서의 누구든 붙여주지."

'기회다.'

인원충원. 최경준의 말을 들은 한록의 눈이 번뜩였다.

한록은 정부장이 언질을 줬을 때 부터 준비해온 말을 꺼냈다.

"새로운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김유선 사원과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김유선 사원은 이번 12월에 계약이 만료됩니다."

"그래서?"

"김유선 사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길 원합니다."

"김유선이라."

최경준이 생각에 잠겨서 말했다.

유선의 모습을 떠올리는 최경준. 유선은 최근 뚜렷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고, 최경준 역시 유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 신뢰하기엔 부족한데."

하지만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은 불가능하다'란 게 CK의 내부 방침이었다.

"김유선 사원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그건 전부 자네 덕분이지."

'이한록 덕분에 출세했네.'

현차장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말. 그리고 유선과 하대리마저 듣고 있는 얘기들.

최경준은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자네에게 송과장과 최윤일을 붙여주려고 했네. 자네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자네와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는 사람말이야."

무엇보다 최경준은 한록을 위해 최고의 팀을 꾸려주려던 상황. 마케팅 부서의 전략가로 소문난 두 사람과 비교하자면 유선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한록이 최경준의 말에 진지하게 답했다.

"본부장님. 그 사람들이 저를 돕는 거란 사실은 왜 모르십니까. 그 사람들이 없으면 저는 활약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충고가 필요하겠군. 그런 식으로 말하고 다녀선 안 되네."

그리고 이어지는 최경준의 말.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은 많지 않아. 마케팅 부서에선 자네와 정부장, 최윤일 정도가 끝이지. 그리고 그런 사람이란 걸 드러낼 수 있어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거라네. 그러니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지 말게."

다정한 말투로 한록에게 충고하는 최경준. 그러나 그 다정함은 오로지 한록을 위한 것일 뿐, 내용은 싸늘했다.

회사에서 직원이란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품이다. 그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사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셔서 저를 교체하려고 하셨을 겁니다."

"자네는 김유선과 다르지. 자네는 내가 인정한 내 사람인 걸."

"김유선 사원도 제가 인정한 사람입니다."

생각보다 강경한 한록의 태도. 최경준이 한록에게 물었다.

"그렇게까지 김유선을 아끼는 이유가 있겠지. 한 번 말해보게."

"사람들이 아직 싱어롱 상영에 익숙하지 않을 때, 김유선 사원이 제 말에 박수를 치면서 반응을 유도했습니다."

싱어롱 상영 직전, 한록의 말에 분위기가 가라앉자 박수를 쳐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던 유선.

유선의 임기응변은 사람들이 싱어롱에 빠져들 수 있게 했던 요소 중 하나였다.

"저도,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김유선 사원이 충분한 능력이 없다고 말씀하시면..."

한록이 최경준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본부장님은 그 자리에서 김유선 사원 같은 아이디어를 내실 수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한록의 질문이 의미하는 것.

'김유선이 회사에 남을 능력이 없다면, 그 말을 하는 당신은 얼마나 대단하냐.' 라는 말이었다.

한록의 말뜻을 이해한 최경준이 미소를 지었다. 최경준은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은 듯한 얼굴이었다.

"나라면 현장에 미리 사람을 몇 명 투입해놨겠지. 분위기가 가라앉을 일은 애초에 생기지도 않았을 거라네."

왜냐하면 한록도, 김유선도 아직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입사 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고, 아직 계약직인 상황에서도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밀리지 않는 한록. 한록의 말에 최경준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했다.

"물론이지. 그래도 이번에 김유선이 꽤 활약을 했단 사실은 인정하겠네."

유선은 아직 마음에 들진 않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이다. 그 부분을 받아들인 최경준. 최경준이 한록에게 말했다.

"다음 프로젝트에선 자네가 없이 김유선 혼자서라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해보게. 그렇다면 전환을 고려해보지."

최경준의 말에 한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웬일로 토를 달지 않는군."

"정규직 전환이 어려운 일이란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최경준이 한 번에 제안을 수락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최경준은 수 천명의 사원을 거느린 본부장이었고, 10여년을 함께 한 오과장을 한순간에 잘라버릴 만큼 냉정한 사람이었다.

최경준의 눈에 계약직 사원들은 아마 회사의 컴퓨터 정도와 비슷하게 보일 것이 분명했다.

"기한을 정해주겠네. 인수전이 끝나기 전까지 내가 만족할만한 성과를 가져오게."

그런 사람이 어쨌든 '결과를 가져오면 받아들이겠다'라고 제안한 상황.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자신과 유선이 그 결과를 가져가면 그만이다.

한록과 최경준의 사이에 생긴 새로운 딜이 생겼고, 한록은 자신있게 답했다.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최경준에게 딜을 걸고 자리를 떠난 한록. 한록이 나간 직후 누군가 본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안녕하십니까, 본부장님."

본부장실을 찾은 것은 최대리였다.

최대리를 본부장실로 부른 최경준. 최경준이 최대리를 자리에 앉히고 얘기를 시작했다.

"9월에 있을 칸 영화제에 출장을 다녀와야겠네."

최경준의 말에 최대리가 답한다.

"<스캔들>의 판권을 팔고 오라고 말씀하시는 거군요."

"눈치가 빠르군."

영화의 판권을 판다는 것. 그건 단순히 판권으로 돈을 벌어온다는 게 아니라, CK에서 만든 영화를 세계로 퍼뜨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최대리는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자신이 담당한 모든 영화의 판권을 판매했고, 최경준은 그때부터 최대리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세계의 주목과 함께 올라가는 CK의 인지도. 이는 인수전의 또 다른 카드가 될 것이다.

"사장님도 지켜보시는 일이네. 자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야."

"감사합니다. 본부장님이 드디어 저를 믿어주시는군요."

최경준의 말에 최대리가 웃으며 말한다.

'이제야 나를 쓸 마음이 생겼냐.'

라는 최대리의 말.

자신이 CK기획의 출신이란 이유로 최경준이 여태 마음을 열지 않아왔음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정말 보통 녀석들이 아니군.'

자신에게 '너는 김유선만큼 할 수 있냐'고 물어보던 한록. 그리고 최경준의 인사를 꼬집는 최대리.

CK ENM의 젊은 스타 둘은 확실히 그 실력만큼이나 통제하기 어려운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닮은 구석이 많군. 아직 어려서인가.'

그러나 어차피 최경준에게는 애들 장난일 뿐이다. 최경준이 최대리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 자네도 최선의 성과를 보이게."

"명심하겠습니다."

"물론 나도 최선을 다해 도와야겠지. 함께 업무를 맡을 사람을 말해보게. 누구라도 붙여주지."

한록에게 한 것과 똑같은 제안을 하는 최경준.

한록은 유선을 원했지만, 최대리는 사사로운 정에 휘둘릴 타입이 아니다.

최경준은 이번에야말로 최고의 팀을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누구든 붙여준다'는 말. 그 말에 최대리가 최경준에게 물었다.

"정말 누구든 붙여주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어차피 한 달짜리 프로젝트니, 어느 팀의 누구라도 빼올 수 있어."

'아마 송과장을 원하겠지.'

오과장 다음으로 실적이 좋았던 송과장. 최경준은 최대리가 원한다면 송과장의 모든 업무를 멈추게 하고 최대리에게 붙여줄 생각이었다.

"자네가 원하는 사람으로 누구든-"

그리고 최대리의 미소를 본 순간 최경준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최대리가 원하는 건 송과장 정도가 아니었다. 최대리는 정말 '최고의 팀'을 만들 생각이었다.

"저는 이한록 과장을 원합니다."

최대리가 말했다.

*

"이한록이라."

마케팅부의 간판 한록. 그리고 회장이 지켜보는 인재 최대리. 본인들은 부정하더라도 모두가 라이벌로 지켜보는 두 사람.

사장이 '무슨 짓을 해서든 나를 설득하라'고 한 상황에서 그 둘이 협업을 한다.

"제법 재밌는 일을 꾸밀 줄 아는군."

최경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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