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74화 (74/263)

< 74 : 최경준의 보상(1) >

회의실의 문을 연 최경준. 대회의실 안에는  CK ENM의 본부장들이 앉아있었다. 최경준을 발견한 공연사업본부장이 목례를 했고, 최경준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일곱 명의 본부장을 지나 자신의 자리에 앉은 최경준.

음악사업본부장 문오석과 홈쇼핑사업본부장 정우영이 최경준을 바라보았다. CK ENM의 매출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었다.

"사장님 오십니다."

장비서의 말과 함께 문이 열렸고, 하정엽이 등장했다.

본부장들이 일어서서 인사를 하는데도 아무런 대꾸 없이 곧장 자리에 앉는 하정엽.

하정엽이 흔한 인사말 하나 없이 회의를 진행했다.

"보고하세요."

매달 하정엽의 주도 하에 진행되는 실적 보고 회의.

본부장들의 한달치 운명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회의였다.

게다가 오늘은 하정엽이 '가장 매출이 높은 사업부에 방송국을 넘기겠다'고 말한 후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는 각 본부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가져올 시점이란 뜻이었다.

'철저히 준비해왔군.'

최경준의 예상대로 한손 가득 서류를 들고 온 본부장들. 그리고 그만큼 준비를 해온 건 최경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악사업본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오석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 있게 보고를 시작했다.

"우선, 이번 달 매출은 목표치의 130%를 달성했습니다."

과연 제일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유가 있었다. 문오석이 당당한 목소리로 음악사업본부의 성과를 말했고, 하정엽은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연예사업본부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사업본부는.."

"저희는..."

그렇게 이어지는 보고들. 음악사업본부는 최근의 부진을 만회할 성적을 가져왔고, 홈쇼핑 본부는 언제나 그렇듯 가장 매출이 높았으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이번 달이 비수기여서 매출이 높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음 달부턴 가을 제품이 본격적으로 팔려서 매출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 달에 제대로 된 결과를 가져오겠습니다."

홈쇼핑본부장 정우영의 말에 하정엽이 정우영을 바라보았다. 하정엽의 눈빛에 침을 삼키는 정우영.

하정엽이 마이크를 한 손으로 들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회의에서 '다음'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이익을 내야하는 회사. 그 회사를 이끌어가는 임원들. 아니, 1년 단위의 계약직 임원들. 그들이 하정엽의 말에 몸을 움츠렸다.

그렇게 엄숙해진 분위기 속에서 손을 든 최경준.

"영화사업본부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분위기를 기다렸다가 발표하겠다니. 어지간히 자신이 있구나.'

최경준의 오랜 라이벌 문오석이 어금니를 악물고 생각했다.

문오석의 생각처럼 최경준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보고를 시작했다.

"<지구특공대>는 400만 관객으로 마감했으며, <유레카>가 300억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스캔들>은 700만 관객을 달성했습니다."

한록, 송과장, 최대리가 담당한 영화가 나올 때마다 점점 시선을 피하는 본부장들.

"그리고 <퀸>이 곧 천만을 달성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최경준의 말에 본부장들은 결국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천만 영화. 모두가 그 말의 무게를 안다.

한국 영화계의 역사에 남을 수 있는 관객수다. 그리고 이 시기에 최경준이 그걸 만들어왔단 사실이 의미하는 것.

영화사업본부가 인수전을 위해 엄청나게 칼을 갈고 있단 뜻이었다.

"이상입니다."

보고를 마치고 자리에 앉은 최경준.

하정엽이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평가를 시작했다.

"홈쇼핑 본부. 실망스럽습니다."

그 말에 깊이 고개를 숙이는 정우영.

"음악사업본부와 공연사업본부는 잘했습니다. 나머지는 언급할 가치도 없군요. 이런 결과를 가지고 잘도 회의에 나왔습니다."

하정엽의 말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본부장들. 아마 이들은 오늘 밤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본부장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하정엽이 공연사업본부장 유정태를 바라보았다.

"이번 CK 페스티벌이 역대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정엽의 말에 최경준이 유정태를 바라보았다. 본부장들 모두가 고개를 숙인 와중에 최경준만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영화사업본부와 함께 협업해 CK페스티벌의 인지도를 대폭 높인 유정태.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기획한 것은 최경준이다.

하정엽이 그 부분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영화사업본부와의 협업이 좋은 성과를 냇군요."

영화사업본부 얘기가 나오자 눈에 띄게 긴장하는 본부장들.

'영화사업본부와 공연사업본부가 손을 잡았다.'

'아니, 영화사업본부가 공연사업본부를 삼켰다.'

이미 회사 내부에서 기정 사실로 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실상 본부장들은 이번 인수전의 승자가 홈쇼핑사업본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홈쇼핑 사업본부는 매출이 다른 사업본부의 3배 이상이었고, 방송국과 긴밀한 연결고리가 있었다.

그런데 음악사업본부가 갑작스럽게 치고 올라오는 상황. 거기에 영화사업본부 역시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최경준을 향한 하정엽의 말.

"공연사업본부와의 협업도 좋았고, 미국 채널과의 인터뷰도 좋았습니다."

한록의 활약을 언급하는 하정엽.

영화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매출은 한정적이다. 그래서 최경준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매출을 노리는 동시에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그 첫 시도가 바로 공연사업본부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이는 훌륭하게 성공했다.

거기에 <퀸>이 천만관객을 달성하기 직전이고, 몇 달 뒤에는 대규모 영화들의 개봉 일정까지 잡혀있는 상황.

이쯤되면 이제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판이 바뀌었다.'

홈쇼핑본부의 독주로 보이던 인수전. 그 인수전에서 영화사업본부가 갑자기 떠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하정엽이 모두에게 말했다.

"제가 가장 매출이 높은 본부에 방송국을 넘기겠다고 말했었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번 락 페스티벌과 싱어롱 상영을 지켜본 하정엽. 공연사업본부와 영화사업본부의 협업을 보면서 그 역시 느끼는 바가 있었다.

"꼭 매출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방송국은 이번 년도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본부에게 넘기겠습니다. 다만, 매출은 여전히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겁니다."

한록의 페스티벌은 하정엽의 마음을 바꿨고, 그건 동시에 인수전에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왔다.

홈쇼핑 본부의 독주에 따라붙은 음악사업본부. 그리고 사장의 마음을 바꾼 영화사업본부.

인수전의 2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

회의가 끝나고 본부장실로 돌아온 최경준.

그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생각보다 큰 수확이군.'

오늘 회의에서 하정엽이 말한 '매출만이 아니라, 여러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방송국을 넘기겠다'는 말.

그 말은 영화사업본부에 큰 기회가 왔음을 의미했다.

'영화는 돈이 안 되지. 매출로 다른 본부를 이기는 데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사장님이 생각을 바꿨어.'

지금 이 시기에 나온 하정엽의 발표. 이건 락 페스티벌과 한록의 활약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아마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가 가장 사장님의 마음을 흔들었겠지.'

'한국의 영화 마케팅'이라는 제목으로 해외에 방송된 한록의 인터뷰.

비록 소규모 채널이라 하더라도, 영화사업본부의 활약이 해외까지 전달되었다. 이는 어느 본부도 이루지 못한 성과였다.

'매출이 아니어도 좋다. 무엇을 하든간에 나를 설득해봐라.'

한록의 활약을 보고 마음을 바꾼 젊은 사장. 최경준이 한록을 생각하며 말했다.

"이한록이 인수전의 판도를 바꿔주었지."

최경준의 말에 비서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보상을 해주어야지."

보상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더 필름, 그리고 김준.

최경준은 페스티벌 당일 김준을 만났던 것을 떠올렸다.

*

페스티벌 2일차. 한록과 마지막 인사를 한 김준.

-앞으로 제가 맡은 프로젝트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보다 잘할 자신 없으면 내 일에 간섭 말라'던 한록의 말.

김준은 그 말을 듣고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이한록, 이 개새끼!"

한록 앞에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면서, 한록이 사라지자 씩씩거리며 욕을 하는 김준.

자신은 헐리웃의 직원이고 이한록은 CK의 사람이다. 헐리웃과 한국 영화계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는 것처럼 한록도 자신을 하늘처럼 우러러 봐야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한록.

'다시 컴플레인을 걸어야겠어. 난 더 필름 사람이라고.'

김준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최경준의 비서가 김준에게 다가와 말했다.

"본부장님이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래, 아예 이쪽한테 말하자. 더 필름의 직원이 화가 났다는 걸 보여주자.'

그렇게 판단한 김준은 비서의 뒤를 따랐다.

"본부장님. 김준 매니저를 데리고 왔습니다."

비서를 따라 영화사업본부의 부스에 도착한 김준. 거기선 최경준이 의자에 앉아 김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최경준은 의자에 앉은 채로 김준에게 인사를 건넸다.

'..뭐지?'

자신이 도착했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최경준을 보고 김준은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어진 최경준의 질문에 김준은 바로 이성을 잃고 대화를 시작했다.

"얼마 전 저희 직원에게 컴플레인을 걸지 않으셨습니까. 그에 대해 얘기를 좀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네, 이한록 과장이 제게 아주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제가 싱어롱 상영에 반대한다고 크게 화를 내시더군요. 오늘도 제가 여기까지 왔는데 인사 한번 하더니 그 뒤로는 본체만체 하고요. 아까는 아예 자기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인사가 없었고, 의견충돌이 있었다라."

김준의 말을 되풀이한 최경준. 최경준이 미소를 지으며 김준을 바라보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김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고작 그 정도로 컴플레인이라. 무례하게 군 게 누군지 모르겠군요."

여전히 웃는 얼굴의 최경준. 그러나 그 위압감은 대단했다. 김준은 자신의 앞으로 성큼 다가온 최경준을 겨우 올려다보았다.

"우리라고 얘기를 안 전해들었을 것 같습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태 우리 직원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명령을 하고, 간섭을 했단 사실 말입니다. 우리도 다 보고 받았습니다."

"간섭이 아니라, 업무 협조를..."

"협조를 해서 싱어롱을 취소하려 했습니까?"

날카로운 지적에 김준이 할 말을 잃고 최경준을 바라보았다.

"본인이 반대하던 싱어롱이 이렇게 성공했습니다. 저라면 부끄러워서 얼굴도 들지 못 했을 텐데, 또 컴플레인을 걸겠다고 하시는군요. 매니저님도 좀 자제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최경준이 김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갑작스럽게 바뀐 최경준의 말투에 김준이 소리쳤다.

"지금 거래처한테 시비를 거시는 겁니까? 이것도 보고하겠습니다!"

"말해."

그에 대한 최경준의 답.

"당신이 CK 최고의 직원을 건드렸고, 그래서 CK 본부장의 심기를 거슬렀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놓지 말고 전달해."

'위험하다.'

김준은 본능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김준이 아무리 한국 영화계를 무시한다 해도 최경준이 대단한 사람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한국 영화계의 아버지. 재벌가의 총애를 받는 본부장.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위협을 하고 있다.

무거워진 영화사업본부 부스의 분위기. 그리고 바짝 긴장한 김준.

그 속에서 최경준이 김준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내 직원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지금부터 알려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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