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73화 (73/263)

< 73 : 인터뷰(2) >

<안녕하세요, 한. 오늘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소개 부탁드려요.>

제임스의 말에 이어진 한록의 답.

<오늘은 '퀸'의 한국 첫 개봉이자 싱어롱 상영이 진행되는 날입니다.>

화면 속 한록이 침착하게 말했고, 한록의 첫마디를 들은 현차장이 심각한 얼굴로 소리쳤다.

"자...잘생겼어!"

"푸학!"

파티션 너머로 박과장이 물을 뿜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도착한 최대리의 메시지.

[맞는 말이십니다 ^^ㅋ]

'...뛰쳐나가고 싶다.'

현차장의 옆에 앉은 한록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익스트림 씨네에 사진이 올라왔을 때보다 10배는 민망한 기분이었다. 사무실을, 아니 그냥 회사를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 너무 잘생겼네. 왜 연예인 안하고 회사 다니지?!"

한참이나 한록의 외모에 대해 감탄하던 현차장. 현차장이 갑자기 한록에게 물었다.

"근데 이과장 영어도 잘 하네?"

"아뇨, 듣기만 됩니다. 답변은 최대리님이 통역해주셨습니다."

"방금 저 사람 말에 대답했잖아?"

"저건 써서 외워갔습니다."

"아, 이런데서 인간미가 있네. 한국인이면 스피킹은 못해야지. 근데 영어 잘하면 확실히 좋긴 하더라."

"네. 저도 스피킹 학원을 등록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직장인의 자기개발에 대한 화제로 빠진 현차장과 한록. 둘을 지켜보던 유선이 손뼉을 한 번 치며 말했다.

"두 분, 지금 그러실 때가 아니에요! 내용에 집중하세요!"

"어, 응, 응."

"죄송합니다."

유선에게 혼이 난 현차장과 한록. 그 모습에 하대리가 겨우 웃음을 참았다.

<오늘은 한국에서 '퀸'의 싱어롱 상영이 진행되는 날입니다. 반응을 한 번 볼까요?>

<퀸>의 싱어롱 상영을 소개하는 제임스.

화면에는 싱어롱 상영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프레디 머큐리의 대사 하나하나를 따라하고, 마치 콘서트에 온 것처럼 노래를 따라부르는 사람들의 모습.

사람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진행자와 제임스가 대화를 나눈다.

<프레디 머큐리가 실제로 공연을 하는 줄 알았어요.>

<맞아요. 여긴 2022년의 라이브 에이드였죠.>

<거기에 블라인드가 퀸의 노래를 불렀다구요. 그걸 제임스만 보고 온 건가요?>

<그렇죠. 하하하.>

이제 화면은 부산영화제와 삼일의 삶 상영으로 넘어갔다. 알렉산드로 감독이 삼일의 삶을 관람하며 모습이 화면에 송출되었다.

<이건 몇 달 전 한국에서 진행한 바닷가 야외상영입니다. '삼일의 삶'이라는 영화인데, 알렉산드로 감독이 엄청나게 감동했죠. 정말 좋은 영화였어요.>

삼일의 삶을 소개하는 제임스. 기껏 취재한 삼일의 삶 영상을 내보내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그 한을 푸는 듯한 말투였다.

화면은 다시 한록과의 인터뷰로 바뀌었다. 제임스가 한록에게 마이크를 내밀고 말했다. 최대리가 옆에서 한록의 말을 영어로 통역했다.

<여기 이 사람이 블라인드와 퀸을 만나게 한 남자입니다. 바로 이 현장을 기획한 사람이죠. 한, 영화 상영을 락 페스티벌에서 진행한 이유가 있나요?>

"'싱어롱 상영'을 진행할 예정이어서 그렇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며 사람들이 노래나 대사를 따라 부르는 상영입니다. 그걸 소개하기에는 락 페스티벌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호, 싱어롱 상영이라. 일반 상영이 아니라 싱어롱 상영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퀸'은 관객과 호흡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니까요. 영화관에 앉은 관객이 단순히 그 장면을 지켜보는 게 아니라, 콘서트 현장에 있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하, 과연 알렉산드로 감독을 감동시킨 사람답네요. 현장감이라. 영화가 살리기 어려운 부분을 상영방식으로 보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군요.>

한록의 마케팅 방안을 정확히 분석하는 제임스.

"그래, 이거지! 최대리, 제임스한테 고맙다고 전해줘!"

내가 열심히 한 걸 누군가가 알아준다.

그 사실에 감동한 현차장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최대리에게 엄지를 내밀어 보였다. 현차장은 이미 인터뷰에 완전히 몰입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질문이 몇 번 더 이어지고, 제임스가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자, 그럼 한. 마지막 질문을 할게요. <퀸>의 소개글에 당신이 이런 걸 적었네요. '<퀸>을 보고나면 당신은 이 대사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한이 뽑은 퀸의 명대사는 무엇인가요?>

<'에오'입니다.>

<어? 그게 무슨 뜻이죠?>

<그건...>

제임스의 질문에 대답을 하다말고 뜸을 들이는 한록.

<그건?>

마이크를 바짝 가져다대는 제임스. 옆자리의 송과장 역시 모니터에 들어갈 것처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건?!"

모두의 기다림 속에 한록이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씩 웃더니 말했다.

<영화에서 확인하시죠.>

"아악! 이과장!"

한록의 감질맛 나는 답변에 비명을 지르는 송과장. 그리고-

"여기서 끊냐!"

정부장의 외침.

*

"다들 앉아. 이제 일해."

한록의 인터뷰가 끝났다. 정부장이 모두에게 말했고, 사람들은 후다닥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직 일할 마음이 없는 현차장. 현차장은 유튜브에 업로드 된 한록의 인터뷰 영상을 확인했다.

[궁금해 죽겠네! 저렇게 나온다면 보러 가야지.]

[이 남자 뭘 좀 아는데?]

[나도 유학시절에 한국에서 락페스티벌에 참여했어. 미국보다 훨씬 재밌지.]

제임스가 근무하는 방송사는 작은 케이블 채널.

소규모 채널인데도 불구하고 한록의 인터뷰 영상에는 댓글이 세 개나 달려있었다. 그만큼 한록의 인터뷰를 재밌게 본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현차장이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댓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가 아는 친구인데요...잘생기고...아주 인성도 좋은...친구입니다..."

열심히 영작을 하는 현차장. 그렇게 완성된 댓글.

[very nice and handsome man.]

그걸 본 한록이 깜짝 놀라 현차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차장님, 영어 학원 같이 등록하시겠습니까?]

*

"이한록. 앞으로 일정 보고해."

한록을 호출하는 정부장. 정부장의 말에 한록이 정부장의 앞에 앉았다.

"이번 주부터는 TV광고가 나갈 예정입니다. 이번 주와 둘째 주는 '퀸'의 내용에 대한 광고가 나가고, 셋째 주부터는 싱어롱 상영에 대한 광고가 나갑니다."

정부장이 한록의 보고서를 넘겨보다가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록에게 말했다.

"천만은 넘을 것 같냐?"

"확실합니다."

"그러면 인원 충원 준비해라. 본부장님이 천만 넘으면 팀원 하나 더 붙이라고 하셨다,"

인원 충원. 최경준 나름의 보상인 듯 했다. 그러나 한록의 마음 속에는 이미 정해진 사람이 있었다.

"김유선 사원을 데려갈 겁니다."

"우리 회사에서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경우는 없을 텐데."

"사원이 사장님 앞에서 발표를 한 적도 없을 겁니다."

"...그건 그래. 김유선이 잘하긴 해."

비관적인 태도이던 정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유선은 한록의 팀이 된 이후로 엄청난 발전을 보여왔다. 정부장 자신은 미처 몰랐던, 아니 유선 스스로도 몰랐던 유선의 모습.

한록은 그런 유선을 발견하고, 성장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한록에 의해 변하는 사람은 유선뿐만이 아니었다.

"주과장이 너보고 고맙다더라."

-감사합니다. 이과장 덕을 많이 봤습니다.

락 페스티벌이 끝나고 첫 회의에서 주과장이 한 말.

주과장은 한록만큼이나 자존심 세고, 다른 팀에게 비협조적으로 굴던 사람이었다. 그의 변화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놀랐었다.

한록 역시 놀란 표정으로 정부장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록의 말에 생각을 바꿔주고, 또 협력해준 주과장. 주과장이 아니었으면 페스티벌은 두 본부간의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퀸>의 싱어롱 상영 역시 이 정도의 결과를 가져오진 못했을 것이다.

"저도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록이 진심으로 말했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듣고 변화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

주과장과의 협업은 이번 페스티벌에서 한록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인지도 몰랐다.

"다른 본부랑 잘 지내는 건 좋아. 그래도 너무 친하게 지내진 마라. 거긴 우리 라이벌이야."

한록의 호의적인 말투에 정부장이 선을 그었다. 한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본부랑 일해 보니 어떠냐. 할만 해?"

정부장의 질문. 사실 정부장은 한록이 락 페스티벌에서 싱어롱 상영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부터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

TF팀과의 대치. 더 필름과의 주도권 싸움. 거기에 오차장과의 트러블까지. 한록은 뛰어난 능력 때문에 언제나 일에 휘말렸고,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주과장의 반응을 보니 이번에는 한록이 제대로 된 협업을 하고 온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정부장의 물음에 한록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미소를 짓는 한록.

그 미소를 보고 정부장은 생각했다.

'성장했구나.'

회사 최고의 트러블 메이커이던 한록이 다른 본부와의 협업을 잘 끝냈다. 거기에 나름의 인맥까지 만들어 온 상황.

자신의 걱정을 순식간에 기우로 만들어버린 부하. 한층 성장해온 부하의 모습에 정부장이 담백하게 말했다.

"잘했다."

*

자리로 돌아간 한록. 정부장은 보고서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너 미쳤냐?'

한록이 싱어롱 상영을 하고, 거기에 5억을 쓴다고 했을 때 자신의 반응.

그러나 한록은 보란 듯이 당당하게 성과를 가지고 돌아왔다.

'내 감이 많이 떨어졌구나. 싱어롱을 계속 반대했으면 이런 결과는 없었겠지.'

정부장은 최경준의 말처럼 언제나 자기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했고, 부하를 믿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처음으로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반대하던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서 돌아온 부하. 그런 부하를 보고 있으면 드는 감정은 열등감도, 위기의식도 아니었다.

'그래, 부하가 성장하는데 나는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나도 더 잘하고 싶다'란 마음. 그 마음이 정부장의 마음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퀸> 싱어롱 상영, 미국에서도 집중하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싱어롱 상영!]

[마케팅 잘해서 미국 케이블 채널에서 인터뷰 한 CK 직원.JPG]

며칠이 지나자 한록의 인터뷰에 대한 뉴스와 게시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CK ENM측에서 보도자료를 돌린 것. 그러나 한록을 알아보는 영화팬들이 직접 올린 게시글 또한 있었다.

[오!!!퀸 싱어롱 상영 미국에서 찍어간 듯?]

[헐 저도 보이네요 ㅋㅋㅋㅋ]

[인터뷰 하신 저 분 저번에 익스트림 씨네에 잘생겼다고 올라오신 분 아닌가요 ㅎㅎ?]

[ㄴ맞아요. 지구 특공대 GV도 하신 분. 전 지구특공대 GV도 보고 왔어요.]

[ㄴ잘생겼나요?]

[ㄴ실물이 더 잘생기심]

[삼일의 삶이랑 퀸이랑 다 이분이 마케팅 한 거였네요 어쩐지...]

[아이디어가 엄청 좋네요. 영화사 직원 얼굴을 알게 되는 건 처음이에요~]

[흠 삼일의 삶 바다 상영도 좋았는데 퀸도 한번 보러갈까]

나름대로 영화계에서 이슈가 된 한록. 한록에 대한 반응은 자연스럽게 퀸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졌고, 2주차 상영 역시 매진이 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천만은 무난하게 찍겠네."

"얼마만의 천만이지?"

"가장 최근이 최대리가 맡았던 <광해군>이었던 것 같은데. 와, 그게 벌써 반년 전이네."

예상보다도 더 빠르게 천만에 다가가는 퀸.

'다 잘 되고 있긴 한데...'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천만 관객은 문제 없었고,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너 익스트림 씨네 봤어? 우리 회사 사람 올라왔던데?"

"아, 이과장님?"

바로 이런 상황.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던 한록은 뒤에서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몸을 움찔했다.

'이과장 얘기다!'

입모양으로 속삭이는 현차장. 굳어버린 한록과 달리 현차장과 유선은 입이 귀까지 올라간 상황이었다.

"이과장님? 그게 누구야?"

"영화사업본부 이한록 과장님. 저번에 익스트림 씨네에도 올라왔잖아. 그 잘생긴 분."

"아! 그 천재!"

영화사업본부 소리를 듣자 고개를 끄덕이는 여성. 여성이 친구에게 다시 물었다.

"근데 티비에는 왜 나온 거야?"

"이번에 퀸 싱어롱 진행했잖아. 그거 찍어갔대."

"와, 일 잘해서 티비에 나오는구나...이러다 유퀴즈 나오는 거 아냐?"

"그분이면 나올만하지. 지금 퀸도 천만 갈 거 같던데?"

"진짜 대단하다...인센티브 장난 아니겠네."

"인센이 문제가 아냐. 영화사업본부 사람이 그러는데, 거의 차기 임원 확정이래."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자신에 대한 얘기.

아무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익숙한 한록이어도 이런 상황은 민망하다.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 한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그 사람이다. 티비 나온 사람."

한록이 식판을 버리러 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한록을 알아보고 수군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한록과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주과장.

주과장의 웃음을 보며 한록은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구내식당 안 온다.'

아무래도 최소 한 달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

그날 저녁 영화사업본부의 본부장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후지만 최경준은 아직 자리에 남아있었다. 오늘은 임원진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정부장이 올린 보고서를 읽는 최경준. 거기엔 요 몇 달간의 영화사업본부의 실적이 담겨 있었다.

<지구특공대>의 400만 돌파. <퀸>이 천만을 돌파하리라는 예상 실적. <퀸>의 싱어롱 상영이 미국에 방영됐다는 소식.

송과장의 영화가 순익 분기점의 10배에 도달했다는 소식과, 최대리의 영화가 700만을 달성했다는 소식.

거기에 해외에서 <삼일의 삶>과 <식물>등 부산 영화제 작품들에 대해 판권요청을 하고 있단 내용까지.

아직 음악사업본부와 홈쇼핑사업본부의 매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인수전에 참전하기 위한 선전포고로는 충분한 정도였다.

"본부장님. 이동하실 시간입니다."

"그래."

비서의 말에 최경준이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한록, 최윤일, 그리고 퀸. 자신이 눈여겨보는 사람들의 성과를 들은 하정엽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회의실로 이동하는 최경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대회의실이 보였고, 회의실의 문을 보자 심장이 옅게 뛰기 시작했다. 최경준은 미소를 지으며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오늘은 인수전을 위한 첫 출사표를 던지기 위한 순간.

'즐겁군.'

이렇게 회의가 기다려지는 날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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