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72화 (72/263)

< 72 : 인터뷰(1) >

블라인드의 공연이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남은 사람들은 새벽까지 진행되는 공연을 보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헤드라이너의 공연이 끝나자 몰라보게 잔잔해진 분위기. 그리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관객들이 흥얼거리는 퀸의 음악들.

"진짜 좋았지?"

"응. 영화 개봉해도 보러가자."

모두가 오늘 하루에 만족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사람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김준이었다.

한록에게 한 방 먹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한국까지 날아온 김준. 그런데 한방 먹이기는커녕, 한록은 자기를 본체만체 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그렇게 반대하던 싱어롱 상영이 너무나 성공했다. 김준 역시 눈으로 그 현장을 지켜봤으니 '반응이 안 좋다'는 식의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틀렸다고? 난 헐리웃에서 일하고 있다고. CK 놈들이랑은 급이 다르단 말이야.'

[준. 인기 엄청 많네요. 안 왔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한국인들이 원래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죠. 미국이랑은 달라요. 싱어롱이라니, 사람들 목소리 때문에 정작 영화 내용은 들리지도 않잖아요. 한국에서나 먹힐 만한 방식입니다.]

[글쎄요, 전 좋았는데요. 미국에서도 통할 것 같으니 영상을 따오라고 했겠죠.]

그러나 김준의 억지를 딱 잘라버리는 카메라맨.

[늘 생각하지만 준은 한국 영화계를 안 좋게 보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 유학했고, 헐리웃에서 근무 중이란 게 인생 최고의 자부심인 김준. 그런 김준의 모습을 카메라맨이 솔직하게 지적했다. 김준이 당황해서 답했다.

[그야 아직 한국 영화는 헐리웃에 비하면 한참 멀었으니까요.]

[그건 그래요. 그래도 한국 영화만의 매력도 있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이런 이벤트.]

카메라맨의 지적에 김준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멀리서 현차장과 한록이 다가왔다.

"아이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저희가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네요. 영상은 좀 잘 나왔나요?"

넉살 좋게 말하는 현차장. 김준이 현차장에게 딱딱하게 답했다.

"네. 충분히 찍었습니다."

"싱어롱 상영은 어떠신가요? 매니저님이 많이 걱정하셨잖아요."

"...반응이..."

"반응이 좋죠?"

현차장이 웃는 얼굴로 김준의 말을 잘랐다.

"매니저님이 걱정하시는 것 보다 저희가 훨씬 잘하고 있죠? 저도 압니다."

싱글싱글 웃고 있는 현차장. 그러나 그 말 속에는 뼈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알아서 잘 하니까, 이제 더 이상 방해하지 마라.'

그리고 현차장의 말뜻을 알아들은 김준.

현차장. CK는 물론 더 필름에서도 사람 좋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현차장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자신에게 직접 적대감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김준은 더 필름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현차장이 이런 태도로 나온다는 것.

그건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엄청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 녀석 때문이다.'

당연히 이한록 때문이었다.

현차장의 곁에 선 한록은 아무런 말 없이 김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맨이 김준에게 말했다.

[준, 통역 좀 해주세요.]

그리고 한록을 보며 말하는 카메라맨.

[싱어롱 상영이라니, 정말 좋네요. 본사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는 이벤트인데 잘 진행 돼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저도 즐거웠습니다.]

본사에서도 싱어롱을 지켜보고 있다. 김준의 속을 뒤집는 말이었다.

카메라맨의 말을 들은 한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멀리까지 오셔서 촬영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카메라맨에 대한 감사인사. 한록이 고개를 숙이자 카메라맨이 손을 내밀었고, 둘은 악수를 했다.

김준을 제외한 모두가 오늘의 결과에 만족한 상황.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한록이 김준을 바라보았고, 김준이 몸을 움찔했다.

"이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리를 피하려는 김준. 한록이 김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답했다.

"네, 조심히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어진 한록의 말.

"앞으로 제가 맡은 프로젝트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일에 끼어들지 말라'는 말. 한록의 말에 김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러나 한록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유는 매니저님도 알고 계시겠죠."

이제 더 이상 한록에게 간섭할 수 없는 김준. 그리고 그 이유.

'내가 너보다 잘 하니까.'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오늘 한록은 자신의 실력을 보여줬고, 더 이상 김준이 한록을 물고 늘어질 방법은 없었다. 김준은 한록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늦었군요. 들어가 보세요."

한록이 김준에게 짧은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

[엄청 재밌잖아?]

블라인드의 공연 후 카메라를 들고 스테이지에서 나오는 백인 남성.

최대리의 친구 제임스였다.

촬영을 마친 제임스는 먼 곳에서 맥주컵을 들고 있는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윤일! 한국에 오길 잘했어!]

제임스의 말에 최대리가 웃으며 물었다.

[기사거리가 될 것 같아?]

[당연하지! 블라인드가 Don't stop me now를 불렀다고. 역시 윤일이랑 있으면 재밌는 일이 많다니까.]

흥분한 제임스. 그는 제법 괜찮은 기사를 건졌다는 생각에 매우 신이 난 상황이었다.

[미국에서도 하려나? 한 번 찾아봐야겠어. <퀸> 때는 나도 들어가서 같이 노래 불렀다니까.]

[나도 그랬어.]

제임스의 말에 미소를 짓는 최대리.

최대리가 오늘 휴가를 내고 ck 락페스티벌에 참여한 이유. 거기엔 제임스와 한록을 소개시켜주기 위해서도 있지만, <퀸>의 싱어롱 상영을 지켜보고 싶어서가 더 컸다.

최대리는 이미 첫날부터 <퀸>의 싱어롱 상영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싱어롱 상영을 모두 감상한 최대리의 생각.

'예상보다 더 좋네.'

1일차 싱어롱 상영까지는 최대리의 예상대로였다. 사람들은 즐거워했고, 다음 상영을 기다렸다.

언제나 완벽한 한록의 계획. 한록이 늘 그렇듯 참신한 시도를 준비해왔고, 잘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째 날부턴 생각이 달라졌다.

갑자기 메인 스테이지로 바뀐 무대. 그 와중에 주과장을 설득하고,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운 한록.

[제임스, 아마 블라인드한테 <퀸>의 노래를 부르게 한 것도 이한록일 거야.]

[정말?!]

거기에 [블라인드]에게 퀸의 노래를 연주할 것을 요구한 것 역시 한록이 분명했다.

[아, 빨리 인터뷰 하고 싶어. 벌써 제목도 떠올렸다고. 미스터 한. <퀸>과 <블라인드>를 만나게 한 남자.]

잔뜩 들떠서 말하는 제임스. 한록에 대한 제임스의 기대는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장비서와 함께 다가오는 한록. 한록이 최대리를 보고 약간 놀란 얼굴로 물었다.

"최대리님도 아직까지 계셨습니까."

"네, 싱어롱 상영이 생각보다 재밌더라구요. 보다보니까 이 시간이 됐네요."

"재밌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한록과 최대리가 한국어로 대화를 하자, 제임스가 애가 타는 듯 최대리에게 말했다.

[윤일. 인터뷰가 남았잖아. 빨리 인터뷰 하자고 말 해줘.]

[알겠어, 제임스. 진정해.]

"이과장님. 지금 인터뷰 괜찮으신가요?"

"네, 좋습니다."

"그럼 제가 통역할게요."

한록이 고개를 끄덕였고, 최대리의 통역 하에 드디어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

인터뷰를 마친 한록. 제임스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미남에, 말도 잘하고...인터뷰가 상당히 잘 나왔네요. 다들 좋아할 거예요. 첫 인터뷰라고 들었는데, 대단해요.]

"감사합니다. 실수한 부분이 있으면 잘 편집해주셨으면 합니다."

제임스의 칭찬에도 한록은 담담하게 답했다.

회귀 전 <식물> 때문에 국내 매체에서 몇 번 인터뷰를 한 경험이 있는 한록. 그 때문인지 제임스와의 인터뷰도 크게 떨리진 않았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마 다음에 또 보게 될 것 같네요.]

제임스가 한록에게 악수를 건넸고, 한록이 제임스의 손을 잡았다.

인터뷰가 모두 끝나고 자리를 정리하는 한록.

"이과장!"

그때 누군가 한록을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현차장과 gv팀이 손에 맥주잔을 들고 함께 서 있었다.

"우리 또 할 일이 있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현차장.

"무슨 일이십니까?"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아주 드물게 보여주는 현차장의 심각한 모습에 한록이 걱정을 담아 물었다. 한록의 질문에 현차장이 진지하게 답했다.

"여기 락페잖아.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해야 할 일이 있어."

"뭡니까?"

걱정이 담긴 한록의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현차장의 답.

"놀아야지."

"그게 무슨..."

한록이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현차장을 바라보았다. 그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실컷 노는 겁니다.'

자신이 부산 영화제에서 했던 말.

"당해보니까 어때?"

그 말을 따라하는 현차장의 모습에 한록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

3일차 메모리 테잎의 공연은 역시 성공적이었다. 3일차가 되자 현차장은 집으로 돌아갔고, gv팀은 남아서 페스티벌을 즐기며 공연사업본부를 도왔다.

그렇게 페스티벌이 끝나고 며칠 연차를 낸 후 오랜만에 회사로 돌아온 한록.

"이과장! 싱어롱 반응 엄청 좋던데?"

한록이 출근을 하자마자 송과장이 말을 걸어온다.

"주과장이 그렇게 사람 많은 거 처음 봤다더라."

"어, 진짜 많았어. 나도 거기 있었다."

송과장과의 대화에 끼어드는 박과장. 박과장의 말에 현차장이 발끈해서 말했다.

"뭐야, 박과장 왔었어? 근데 인사도 한 번 안 하냐?!"

"다들 일하고 있는데 놀러왔다고 하기 좀 그렇잖아."

"웃기시네. 혹시 붙잡혀서 일할까봐 그런 거잖아."

"아니, 휴가내고 간 건데 일하기 싫은 건 당연한 거 아냐?"

"그래서 우리가 뛰어다니는 걸 보고만 있었다?!"

사이좋게 싸우기 시작하는 박과장과 현차장. 그 모습에 미소를 지은 한록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의 반응을 확인하는 한록. 싱어롱 상영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ck락페 후기-<퀸>이 왔다.]

[못간 분들은 반성하시길 ㅎㅎ]

[프레디머큐리영화봤는데완전감동이었음 ㅠ#ck락페 #퀸 #프레디머큐리]

[CK 락페 2일차 후기입니다.]

[싱어롱이라..처음 보는 방식이네요. 재밌어 보여요.]

[이번에 영화로도 한다고 함!!]

[친구새끼 락페에서 무슨 영화냐고 하다가 보고 나와서 울더라 ㅋㅋㅋ물론 나도 울었음 ㅎ]

[이거 꼭 보셈 특히 마지막 떼창은 꼭 해야함]

인터넷을 뒤덮은 ck 락페스티벌의 후기. 그리고 거기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싱어롱 상영에 대한 얘기까지.

'그래, 이 열기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곧 시작 될 예매와 TV광고. 그리고 영화관에서 싱어롱을 즐긴 사람들의 후기.

앞으로 있을 이벤트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음악 영화 최초의 천만 관객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광고 시안 협의. 광고 영상 제작. 싱어롱 후기 이벤트 진행. 영화관 포토존 개설. 영화 개봉 전까지 남은 일정을 마무리 하다보니 어느덧 <퀸>의 예매날짜가 다가왔다.

[오늘이네요...다들 각오하시길.]

영화 사이트와 락 사이트에 올라온 비장한 어투의 글.

[아 너무 떨려요ㅠㅠ]

[수강신청인줄...]

[피켓팅 ㄴㄴ퀸켓팅임]

[자 다들 집중합시다 5분 남았어요]

모두의 기대 속에 <퀸>의 첫 예매가 시작되었고-

[잡은 사람있어요?]

[부산 자리 교환하실 분?]

[한자리만 구합니다 ㅠㅠ]

[이거 잡을 수는 있는 거임???]

[님들 진정하셈 앞으로도 계속 열려요.]

[아니 나는 지금 당장 보고싶다고 지금 당장]

첫 주의 모든 싱어롱 상영관이 매진되었다.

*

모든 싱어롱 상영관 매진.

거기에 싱어롱 상영관을 잡지 못한 사람들이 일반 상영을 예매하기 시작했고, 일반 상영관들 역시 차례로 매진되기 시작했다. <퀸>은 첫날부터 어마어마한 기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현차장, 축하해. 첫 천만영화 아니야?"

"나중에 얘기하자, 박과장."

그러나 오늘 GV팀이 기다리고 있는 빅 이벤트는 다른 것이었다.

"이과장님 인터뷰 화요일에 공개된대요."

며칠 전 최대리가 알려준 소식. 오늘은 바로 한록의 인터뷰가 공개되는 날이었다.

[유선씨. 이거 사이트 어떻게 접속해?]

[제가 링크 보내드릴게요!]

업무중인데도 불구하고 한록의 인터뷰가 나오는 사이트에 몰래 접속한 GV팀. GV팀만이 아니라 마케팅 부서의 대부분이 한록이 나오는 방송을 켜놓은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부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다들 그냥 켜놓고 봐라."

"네!"

"다 이리와!"

정부장의 허락에 GV팀이 후다닥 현차장의 자리로 모여든다.

[한국에서 퀸의 야외 상영이 진행되었다고 하는데요.]

오후 2시. 정각이 되자 진행자가 퀸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과장이다!"

한록이 화면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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